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62)
“뭐라고?”
미합중국 장군쯤 되면 어지간하면 당황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송?”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네.”
“누가?”
“엠버라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그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미친……. 얼마나?”
“그게…… 무려 4억 달러입니다.”
그 말에 입을 쩍 벌리는 게릭슨이었다. 자신이 장군으로 승진하면서 이런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4억 달러?”
“네.”
4억 달러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한국 돈을 4,600억 정도 되는 돈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개발된 F-22 랩터 전투기의 가격은 2700억 원으로 그 기체 두 대 값도 안 되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돈 많다는 미군도 너무 비싼 나머지 도입을 꺼릴 정도로 비싸다는 것. 그것보다 약간 작은 돈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청구되었다는 사실에 게릭슨은 머리가 아파졌다.
“도대체 왜?”
“주한 미군의 범죄 때문입니다.”
“주한 미군? 그 새끼들이 문제 일으키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
“그게…….이번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입니다.”
“전체적인 문제?”
“네.”
전체적인 문제란 개개인의 범죄 사실이 아니라 주한 미군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게릭슨.
“아무래도 SOFA쪽 문제가 걸린 것 같습니다.”
“SOFA?”
“범죄자들을 고의적으로 빼돌린 것 말입니다.”
“이런 젠장!”
그 말에 게릭슨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아시아 쪽 문제를 담당하면서 그는 미국 정부에 수차례 경고했다. 한국 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거라고. 그런데 국방부는 그건 것을 애써 무시했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한국은 언제나 미국에 기대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민사는 어쩌라고.’
문제는 아무리 한국 정부라고 해도 민사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걸린 것인데?”
“소장에 따르면 SOFA 규정을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범죄자들을 도피시킨 것이 발각된 듯합니다.”
“끄응…… 이런 미친…….”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문제가 생기면 미국은 범죄자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손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겠지.”
지금까지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SOFA 개정에 소극적이었고 개개인은 미국까지 와서 소송하는 데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렸기 때문이다.
“엠버라는 변호사는 단순히 미군에게만 건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도피해 있던 주한 미군 출신의 범죄자들에게도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되는데?”
“모르겠습니다.”
“뭐?”
모른다는 말에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는 게릭슨이었다. 하지만 부관의 입장에서도 속이 터질 일이었다.
“주한 미군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강제로 예편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처벌받거나 손해배상을 한 녀석은 없습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한 시간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숫자가 얼마나 될는지…….”
“통계는 확인했을 거 아냐?”
“한해 평균…… 200건 정도입니다.”
“200건?”
10년의 기간을 감안해서 생각하면 못해도 2천 명 이상의 주한 미군이 범죄로 인해서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소리다. 그리고 미군은 2천 명에 달하는 범죄자들을 한국에서 지켜줬다는 소리고.
“끄응…….”
게릭슨의 고민이 여느 때보다 커지고 있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장난 아니게 미어터지고 있다고 하더군.”
남상주 변호사는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송정한이 한국에서 소송을 위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워낙 도피한 녀석들이 많으니까.”
“그럴 겁니다.”
이상하게 주한 미군은 다른 나라의 미군들보다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폭행 사건은 거의 하루에 한 번은 일어날 정도였고 강간이나 추행 등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중 하나였다.
“뭐, 그중에는 소소한 재물 손괴도 있기는 하지만.”
“상관없다고 해요. 어차피 한국과 미국은 법체계가 다릅니다. 한국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일은 없습니다.”
한국은 손해배상에 대해서 극도로 보수적이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판결한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특히나 바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지금처럼 도피한 경우는 그 배상액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한국에서 테이블 하나 부술 정도면 미국에서는 조금 뻥을 보태면 아마 소형차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을 배상해야 할 겁니다.”
“그렇겠지. 일단 환율도 다르니까.”
“그러니까 모두 받아 오라고 하세요. 엠버도 이번 일에 엄청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공짜로 하는 일도 아닌데 왕창 부려 먹어야지요.”
“하하하.”
엠버는 노형진이 사건 기록을 보면서 국방부를 대상으로 소송하자고 했을 때 기겁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국방부 아니면 군인에 대한 대우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방부를 대상으로 소송할 생각을 하다니 자네도 참 대단해.”
“국방부는 나라를 지키는 자들이지, 범죄자 양성소가 아니잖습니까?”
노형진은 애나머스가 넘겨준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소파를 이용하여 주한 미군이, 아니 국방부가 고의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범죄자들을 빼돌린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SOFA에서 표시된 것은 재판권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지, 범죄자를 풀어 주자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군은 범죄자가 발생하면 미국으로 소환하고 난 후 다시 풀어 주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가장 흔한 사건인 강간 사건의 경우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최소한 5년 이상의 형량이 나오고 미성년자 강간 사건은 종신형까지 나오는 등 극악한 범죄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성년자를 강간한 녀석은 그저 불명예 제대한 것 말고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참에 소파는 못 고치겠지만 미군의 버릇은 고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럴까?”
“그럼요. 미군이 가진 건 재판권이니까요.”
만일 이 소송에서 이긴다면 미군은 그 짓을 못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 송환된 사람은 결국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처벌이 강력하다는 것.
“아마 미군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설 겁니다.”
첫째는 한국에 재판권을 포기하고 돌려주는 것이다. 미군 입장에서는 그게 편하다. 나중에 말도 안 나오고 한국은 미국보다 처벌이 약하니 형량 자체도 적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끝까지 재판권을 지키면서 미국에서 처벌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처벌하지 않으면 또다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이는 즉, 범죄를 저지른 군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미군은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겁니다.”
전자의 경우 나라를 위해서 노력한 사람을 해외에 버렸다는 욕을 먹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동일한 이유로 국가에 헌신한 사람을 버렸다는 욕을 먹을 수 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머리 좀 터지겠는데?”
“그럴 겁니다.”
노형진과 남상주가 이야기하는 사이, 한 무더기의 서류를 든 엠버가 문을 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요?”
“엠버 님을 시집 보낼 방법을 강구 중입니다.”
“흥.”
엠버는 코웃음을 치면서 서류를 내려놓았고 남상주는 그런 엠버의 가슴골이 드러나자 얼굴을 붉히면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건 뭡니까?”
“소송 관련 서류들이죠. 미군들이 많이도 해 먹었네요.”
“그렇지요?”
“네, 이건 아무리 그래도 도와주러 간 입장에서 할 짓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한국이야 뭐, 글로벌 호구 아닙니까.”
“글로벌 호구? 호호호호.”
말뜻을 알아들은 엠버는 신나게 웃었다. 글로벌 호구. 그건 한국 사람들이 요즘 여기저기 까이기만 하고 제대로 외교 업무를 못하는 현 정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국 관련 사건을 담당하다 보니 그런 말도 배우게 된 것이다.
“뭐, 호구라는 말이 제가 아는 바가 맞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우리 미국이 한국을 6.25 때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는 우리 미국에 너무 저자세에요.”
“그게 문제죠.”
글로벌 호구라는 자조적인 말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이 미국에서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수입하려고 했는데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걸 비웃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원래 멍청한 고객님들을 호객, 또는 호구라고 부르는 것에서 생긴 말이었다.
“하여간 사건을 접수하는데 이건 이만저만 큰 사건이 아니네요. 솔직히 말하면 저 혼자는 아무리 제가 잘났어도 못해요.”
더운지 펄럭거리면서 블라우스를 흔드는 엠버. 그리고 더더욱 얼굴이 붉어지는 남상주. 그런 남상주를 보면서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엠버, 더 그러다가는 아주 유능한 변호사를 한 명 잃을지도 모릅니다.”
“왜요?”
“과다 출혈로요.”
“호호호.”
엠버는 그 말에 블라우스를 잠그기는 했지만 반대로 책상에 올라타고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진짜 무서운 여자야.’
노형진은 그녀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에 능숙했다. 어찌 보면 본능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쓸 정도로 말이다. 지금도 그렇게 함으로써 남상주가 끼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려 다는 것.
“엠버,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우리 변호사님이 죽기 전에.”
“역시 노 변호사, 눈치 하나는 빠르군요.”
“뭐, 그러니까 변호사를 하죠.”
“저분은 눈치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제가 득도해서 그런 겁니다.”
만일 자신이 미래에 대한 기억이 없는 현재 나이대로의 사람이었다면 아마 엠버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놀아났을 것이다.
“원하는 게 뭡니까?”
“투자금을 늘려 줘요.”
“네?”
“투자금을 늘려 달라고요. 이건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더 많은 변호사를 고용해야 해요.”
“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로스쿨이 넘쳐나고 노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변호사들은 아주 비싼 가격을 줘야 하는 인력들이다.
“그건 좀 무리입니다. 우리로써도 최대한 투자한 겁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버는 새론이라고 해도 환율도 강하고 돈도 넘치는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이 사무실만 해도 한국에 있는 본사보다 훨씬 월세가 비싼 곳이다. 아무리 새론이 건물주를 구해 주고 싸게 얻은 거라고 해도 그 지역의 세는 약한 게 아니었다.
“새론 말고 적당한 투자자가 있잖아요.”
그러면서 마치 더운 듯 슬쩍 블라우스를 여는 엠버.
‘끄응…… 애초부터 목표는 나였구만.’
그런 엠버를 보면서 노형진은 혀를 내둘렀다. 아마도 어디선가 자신이 부자라는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꼬시는 거고.
‘내가 잠자리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 테고.’
엠버는 유능한 변호사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런 식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건 남상주를 배제하고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에게 단독적으로 투자받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확실히 노형진은 고민이 많았다. 자신은 미국에서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서 다 알고 있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