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687)
안전한 곳은 없다 (2)
“약점까지 모조리 확인하고, 역시나 모노스 교단 쪽에서 확실히 많이 준비한 모양이군.”
“한 번 실패해서 조직이 날아가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놈들이 그냥 물러날 리가 없지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워낙 치밀하게 준비한 탓에 잡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모르지.’
노형진은 슬쩍 스프레이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대고는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증거품들도 많이 있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이거니까.
“모노스의 영광이 곧 이곳에 내려올 것이다!”
잠시 후 나타난 영상.
한 남자가 작은 창고 안에서 외치는 것이 보였다.
“모노스께서는 이곳을 우리의 땅으로 허락하셨다!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를 우리 모노스가 지배하는 순간이 오면 그대들은 위대한 선교자이자 선각자로서 추앙받을 것이다.”
노형진은 그 남자의 모습을 최대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심각하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족히 열 명은 되었다.
그리고 공장의 구석에 있는 몇 통의 스프레이들.
‘숫자만 보면 서른 개는 넘겠는데?’
못해도 서른 번 이상의 테러를 가할 수 있는 양이 있다는 거다.
“내일 자매가 공격을 시작하면 위대한 우리 모노스의 영광이 동아시아 전부를 채우게 될 것이다.”
노형진은 그 기억을 읽으면서 범인이었던 여학생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국회의사당역에서 테러할 계획이었다.
국회의사당역이 워낙 보안이 철저하니 상대적으로 보안이 약한 그곳에서 탑승하려고 했던 것.
‘미친놈들.’
노형진은 그 기억에 진짜 화가 났다.
국회의사당역이라지만 거기에 테러한다고 해서 진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에게 피해가 갈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다 운전기사 딸린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결국 지하철을 타는 서민들을 노린다는 뜻이다.
시간상 아마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할 때쯤이면 퇴근 시간이었을 테니, 국회의사당에서 퇴근하던 수많은 직원들이 그 테러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이놈들을 잡아야 하는데.’
노형진이 이 기억을 읽으려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물론 호텔 같은 곳에 단체로 있을 수도 있다.
정부에서는 수상한 일본인들이 단체로 숙식하고 있다면 제보해 달라고 방송했지만 그런 제보는 없었다.
‘그 말은, 그들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숨어 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기억 속의 공간은 호텔이 아니었다.
당장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빠져나간 한국에서 일본 사람들이 단체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면 의심받을 게 뻔하다.
‘공장은 아니고 창고 같은데.’
노형진은 주변에 특정할 만한 뭔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창고였기에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다.
‘한국 내부에 누군가 내통하는 놈이 있어.’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창고가 비어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창고 구석에 간이침대와 난방장치까지 있는 걸 보니 미리 준비한 게 분명했다.
‘젠장, 난방장치는 좀 먼데…….’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억이 끊어졌다.
아마도 스프레이를 가방에 넣은 듯했다.
“흠…….”
노형진은 그 상황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내 그 모든 고민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나? 실패했나?”
송정한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현 상황에서 추적할 수 있는 건 노형진뿐이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이라니? 그러면…….”
“잠시만…….”
노형진은 송정한을 데리고 조용한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말했다.
“정확하게는, 기억 자체는 읽었습니다. 다만 특정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완전히 깔끔했습니다.”
“전혀? 혹시 신문 같은 것도?”
“없습니다. 있는 거라고는 이불과 요뿐이더군요. 난방장치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건 모델 넘버나 생산 번호를 모르면 추적이 힘들지.”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오래된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는 중고로 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추적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송정한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그러면 나가리인가?”
“아니요. 나가리는 아닙니다. 사실 저는 그 상황 자체가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 자체가?”
“그렇습니다. 이불에서부터 난방 기구까지 갖춰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을 해외에서 들어온 그들이 준비하기에는 좀 빡빡하죠.”
“으음?”
물론 물건이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간은 구하기 힘들다.
“그러면 한국인이 내통하고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되잖나? 일본이 한국에 테러하는데 누가 도와준단 말인가? 국정원에서도 한국인의 협조는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네.”
그렇게 말하는 송정한을 보고 노형진은 아차 싶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정보가 안 모이나 싶었더니 지금 국정원이 전혀 엉뚱한 곳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멍청한 국정원.’
물론 송정한이야 국정원 요원이 아니니 그렇다고 친다고 해도, 국정원에서도 이러면 안 된다.
“송 의원님.”
“응?”
“우리가 싸우는 건 일본이 아닙니다.”
“뭐라고?”
“우리가 싸우는 건 일본이 아니라 모노스 교단이라는 종교! 입니다. 종교인데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종교?”
“지금 프랑스에서 이슬람을 믿는 자발적 테러리스트가 활개 치고 있지요. 그 애들은 프랑스 국적인데 왜 자국 내에서 테러를 하겠습니까?”
“아!”
송정한은 아차 싶었다.
모노스 교단이 사이비 교단이고 그 교세가 작다지만 어찌 되었건 종교다. 그리고 종교를 국가보다 우선하는 게 종교인들의 특성이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 장군 중에서 크리스천이 있었다면서, 그에 저항한 이순신 장군은 지옥에 갔을 거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도 있을 정도다.
“그 말은?”
“국적에 따라 의심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들은 이번 일을 오래전부터 준비했을 겁니다. 애초에 바다에서 독가스를 건져 올렸다는 것 자체가 오래 준비했다는 증거죠.”
“으음…….”
“제 생각에는 분명 한국에 내통자가 있습니다.”
“종교라……. 그러면 종교에 빠졌다는 건데…….”
송정한은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대로라면 내통자가 일본에서 생활했겠군.”
“맞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요.”
상식적으로 모국에 테러를 가해서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을 죽이겠다는데 그걸 좋다고 할 놈은 없다.
그 말은 오랜 시간의 세뇌를 거쳐서 받아들인 결과라는 뜻이다.
“물론 종교의 경우는 광신적인 부분이 언제 발현될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언어적인 문제가 있다.
아무리 완벽한 세뇌법이라고 해도 그걸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짱 의미가 없으니까.
한국어만 하는 사람에게 영어로 죽어라 세뇌해 봐야 그냥 벽에 대고 떠드는 셈이다.
“특히 세뇌 작업은 상당히 정교합니다.”
모든 말을 그럴듯하게 비비 꼬아서 말해야 한다.
오늘 저녁에 부대찌개를 먹자는 의견 전달은 간단하지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찌개류가 좋겠는데.’와 같은 식으로 꼬아서 전달하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자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알아들을 정도로 일본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이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일 가능성은 낮지요. 저들은 철저하게 준비해 왔으니 의심받지 않을 만한 사람을 골랐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땅을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적지도 않겠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감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아무리 국정원이 못났다고 해도 그 정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요?”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지. 일본에서 최소 3년 이상 지낸 사람들 위주로 하면 되겠군.”
제대로 된 언어를 배우고 포섭되려면 그 정도 시간은 걸릴 테니까.
“가능한 한 서둘러 달라고 하십시오. 기억 속에서 테러용 스프레이가 족히 서른 개는 보였습니다.”
그 말에 송정한의 얼굴은 핼쑥하게 변했다.
***
“찾았네.”
송정한은 다음 날 아침에 노형진을 찾아왔다.
“그래요? 생각보다 빠르군요.”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은 좀 되지만 그중에서 창고로 쓸 만한 공간을 산 사람은 별로 없더군.”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 땅을 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노형진이 본 창고는 너무 깨끗했다.
그 말은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새 창고라는 거다.
창고를 새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송정한은 정보를 흘렸고, 국정원은 기겁하여 인원을 총출동시켜 추적했다.
정보대로 서른 개의 스프레이로 한꺼번에 테러가 벌어지면 난리가 날 테니까.
그들이 체포에 움츠러들어서 일단 움직임을 멈출 수도 있지만, 반대로 죽음을 불사하고 온 놈들이니 막나가자고 동시에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데요?”
“소가진이라는 사람일세. 원래 일본에서 10년 살았어.”
그는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작은 원예 사업을 하고 있네만.”
“원예업이라…….”
딱 창고 같은 걸 쓰기 좋은 직업이다.
“일본에서는 뭘 하다 왔나요?”
“일본에서는 프로그래머였어.”
“확실히 이상하군요.”
프로그래머와 원예업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물론 새로운 길을 찾아가려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원예업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창고를 올렸더군. 그것도 200평 정도 되는 규모야.”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기억 속에서 본 규모도 딱 그 정도다.
“그리고 특이한 게, 사업자는 냈는데 매출은 없단 말이지.”
“특이하군요.”
물론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창고를 세울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원예 같은 경우는 필요한 건 비닐하우스 정도이지 창고는 필요하지 않다.
“일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 경찰 특공대가 기습을 준비하고 있네.”
“알겠습니다.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같이 가야지.”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벌써 정치인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네.”
“네? 무슨 말입니까?”
“한국 최초로 테러 단체를 소탕하는 일이야. 그곳에 가서 사진 좀 박으려는 놈들이 천지야, 천지.”
“미친놈들.”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그곳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런 목적이 아니다.
혹시나 그들이 다른 수작을 부렸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한 번에 소탕하지 못할까 해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한 장 박겠다고 그곳에 가겠다니.
“설마 의원님도?”
“난 그럴 생각 없네. 그 새끼들이 수틀리면 가스 터트릴 걸 뻔히 아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안정된 후에 들어가야지.”
“뭐, 다들 그러겠지요. 일단 같이 가시죠.”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어야 할 텐데요.”
***
노형진은 용가리 통뼈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앞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번 일같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는 경우는 나서지 않는다.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경찰 특공대장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