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7)
가난하다고 했을 때 예상은 했지만 한지혜의 가족은 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바깥에서 본 밝은 모습 때문에 몰랐을 뿐. 더군다나 원래 3부작인 걸 감안하면 제대로 된 작품으로 쓰면 얼마나 큰돈을 벌지 모른다.
‘하긴, 그러니 2부와 3부가 망했지.’
처음 시작만 있고 제대로 쓰질 않았으니 정상하가 직접 써야 했던 건데 실력이 없다 보니 결국 기존에 있던 작품을 베끼는 수준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베끼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형진아, 여기.”
“생큐.”
노형진은 한지혜가 사 준 커피를 받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극구 사양했지만 미안해서라도 사 줘야 한다면서 가져온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때문에 공부 못 하는 거 아냐?”
노형진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한지혜는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난 이편이 좋아.”
어차피 모든 지식은 다 머릿속에 있다. 그저 학점이 필요해서 다니는 학원이니 안 가도 그만이다. 물론 안 가면 원칙상으로는 다른 학생들처럼 잘라 버리겠지만, 그쪽에서는 지난번 왕따 사건 이후부터 자신에게 잘해 준다. 그러니 사정을 말하고 양해만 구하면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현 상황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네.”
블로그의 글은 지워 버렸으니 언제 올렸는지 확인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원본 파일의 제작 시점을 보여 주는 건 조작 가능성이 높아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해당 사이트 회사에 연락해서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돼?”
“나도 그 생각은 해 봤어. 그런데 그건 무리야.”
일단 인터넷에 글을 올린 시점을 해당 사이트에 문의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기록에 없다는 것이었다. 글을 삭제한 상황에서 기존의 기록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딱 그 폐기 기간이 지나자 마치 알았다는 듯이 고소장을 넣었지.’
확실히 청계에서는 한지연을 노리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 책을 판 돈만 해도 못해도 10억 가까이 된다는 말이 있으니 청계의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
“참 고민이다. 블로그는 날아갔고.”
“블로그는 안 날아갔는데?”
“뭐?”
“블로그는 안 없어졌어. 글만 삭제한 거야.”
“글만 없어졌다고?”
“그래.”
“오호?”
노형진은 타개책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래야 말이 되지.”
노형진은 한지연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모든 글은 삭제되어 있고 텅 비어 있지만 블로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게 왜?”
“아니, 방법이 보여서.”
방문자 기록을 확인해 보니 하루에 많아야 스무 명 정도. 즉, 인기 있는 블로그가 아니었다. 하긴, 볼 거라고는 없는 재미없는 블로그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글은 매일같이 써서 올리신 거죠?”
“그래.”
“오케이.”
노형진은 그걸 바탕으로 방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원래 블로그는 누가 방문했는지 기록을 남긴다. 물론 그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글 자체의 기록은 삭제되었을지 몰라도 블로그 자체는 살아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당 블로그 사이트에 문의한 결과, 아니나 다를까, 방문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노형진은 특정 닉네임을 확인하는 데에 성공했다.
“깜찍이라.”
“그 닉이 왜?”
“그냥 느낌이 와서요.”
깜찍이라는 닉네임은 다른 닉네임들과 달랐다. 지속적으로 왔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봐 주던 극히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깜찍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연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심지어 아예 연재 자체나 관리 자체를 안 할 때 일주일 내내 온 사람이 깜찍이 혼자인 경우도 있었다.
“아무 관리도 안 하고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 그런가?”
“네, 상당히 이상한 일이죠. 마치 뭔가를 기다리듯이 정기적으로 왔잖아요.”
“기다리다니? 관리도 안 하는 블로그에 기다릴 게 뭐가 있다고.”
“딱 하나 있죠. 누나 작품.”
그 말에 한지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예쁜이는 분명 그녀의 작품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정기적으로 그녀의 블로그에 와서 글이 올라왔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그럼 설마…….”
“네, 깜찍이가 예쁜이일 가능성이 높죠. 아무도 안 오는 블로그에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보통은 이삼일에 한 번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걸 확인해?”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이걸 법원에 확인 요청한다 해도 법원에서 해 줄 리가 없다. 일단은 이쪽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있으니 말이다. 설사 해 준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럴 때 쓰라고 구글링이 있는 겁니다.”
“구글링?”
“그런 게 있어요.”
노형진은 방문자의 이름 중 깜찍이의 닉네임을 클릭한 다음 ‘쪽지 보내기’ 버튼을 누른 뒤, 그 옆에 나타난 ‘메일로 전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메일 보내기’ 화면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깜찍이의 메일 주소가 나타났다.
“이런 식이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빵 부스러기를 흘릴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기능이 있었어?”
“그럼요. 세상은 넓습니다.”
변호사들은 이런 기능을 잘 모른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직접 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기술을 배우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애초에 다른 변호사들처럼 ‘나는 변호사입네.’ 하고 거들먹거리면서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 덕분에 흥신소 사람들에게 이런 잡기 같은 것을 배운 것이다.
“이 메일 주소를 구글을 통해서 검색하면…….”
화면 가득히 나타나는 정보들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자 않아서 노형진은 한 개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거래 원합니다. 메일이나 전화번호로 연락 주세요. 메일은…….
중고 물품을 사기 위해서 남긴 기록이었다. 그 기록을 열자 그 안에는 전화번호 하나가 나타났다.
“후후후, 찾았다.”
고소장에는 전화번호가 없었다. 오로지 변호사의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전화번호를 찾아낸 것이다.
“누나, 전화기 좀 줘 봐요.”
“전화해 보려고?”
“네. 전화해서 누군지 알아내야지요. 아, 녹음 버튼 누르시구요.”
“하지만 합의는 안 해 준다고…….”
“합의할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전화해서 누군지만 확인하면 돼요.”
“그러면 된다고?”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노형진의 말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거는 한지연. 몇 번이 울리던 전화기는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연결되었다.
“네, 정상하입니다.”
‘나이스!’
노형진은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내심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바뀌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정상하 씨인가요?”
“네.”
“저기…….”
한지연이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노형진은 전화기를 그녀의 손에서 받아서 재빨리 꺼 버렸다.
“왜 그래? 사과라도 해야지.”
“누나, 이 점은 명확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 도둑질당한 건 누나예요, 저 녀석이 아니라.”
“그거야…….”
“여기서 사과하고 고소를 취소해 달라고 하면 자기가 표절했다는 인정밖에 안 된다구요.”
“하지만…….”
여전히 경찰이라는 말에 겁먹고 있는 한지연이었다. 물론 노형진은 경찰 따위에 겁먹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은 절대 누나한테 손대지 못합니다.”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왜 남의 글을 올린 겁니까?”
깐죽거리는 경찰관의 앞에 앉아 있는 한지연.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노형진이 서 있었다.
“자, 자, 빨리합시다. 이름.”
불안한 눈빛으로 노형진을 바라보는 그녀였다. 노형진은 그런 한지연을 바라보면서 미소로 진정시키더니만 경찰을 노려봤다.
“그래서 수사하시려구요?”
“그래, 꼬맹아, 근데 넌 누구니? 동생이야? 동생이라도 당사자 사건에는 못 끼어들어.”
“일단 아는 동생인데요.”
“어찌 되었든 못 끼어든다. 나가서 놀아라.”
무심하게 바라보는 수사관. 노형진은 그의 앞으로 종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뭐냐? 설마 돈 봉투는 아닐 테고.”
“증거입니다.”
“증거?”
“네.”
증거라는 말에 그 봉투를 열어 보는 수사관. 그걸 열자 거기에는 컴퓨터 화면이 인쇄된 종이가 나왔다. 수십 장의 종이에는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표시가 명확하게 되어 있었다.
“뭐냐, 이거?”
“보다시피 누나의 블로그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던 깜찍이라는 네티즌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가 구글링으로 찾았지요.”
“구글링?”
“네,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을 이용하여 정보를 검색하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말입니다, 참 재미있더군요. 깜찍이라는 닉을 가진 사람이 누나의 블로그에 오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그러니까 정식으로 책이 나오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증제 1-7에 보면 그 깜찍이라는 사람의 이메일 주소가 나타나죠?”
“그거야…… 그러네.”
불안한 눈빛이 되는 형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대한 강하게 처벌해 달라고 따로 부탁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증제 운운하는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증제란 증거 제시 번호의 약자로, 쉽게 말해서 경찰에 제출하는 증거에 붙는 번호다. 그리고 일반인은 그런 걸 잘 모른다.
“그리고 1-15에 보면 그 메일 주소로 구글링을 하니 나오는 전화번호가 하나 있습니다.”
“그러네.”
“그리고 그 전화번호로 통화한 내역입니다. 서면 제출한 것 말고 오디오 파일도 있죠. 들어 보실래요?”
핸드폰으로 오디오 파일을 작동시키자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네, 정상하입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경찰은 곤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노형진이 노리는 것이 뭔지 알아챈 것이다.
“즉, 이 기록에 따르면 고소인인 정상하는 2년 전부터 최근에는 세 달 전까지 지속적으로 수백 차례에 걸쳐 해당 블로그를 방문하였습니다. 즉, 해당 글이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최소한 2년 전에 알았다는 거죠.”
“크흠, 그래서?”
애써 모른 척하는 경찰이었다. 속으로는 그냥 넘어가라 말하고 있었지만 노형진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친고죄 관련 규정에 따르면 범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상하는 2년 전부터 해당 블로그에 작품이 연재 중인 걸 발견하고 수백 회에 걸쳐서 방문했으니, 다시 말해서 6개월은 벌써 오래전에 끝났다는 거죠.”
“크흠.”
“그런 경우, 공소권이 없으니 사건이 종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생각합니다.’지,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알았다. 너의 의견은 잘 들었고.”
“제 의견이 아니라 현행법인데요? 설마 경찰씩이나 하는 분께서 현행법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크흠, 이건 일단 받아 두마.”
슬쩍 종이를 받아서 구석에 놓는 경찰. 노형진은 그걸 보고 씩 웃었다. 그가 노리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아, 참고로 말하는데 그거 경찰 접수실에서 따로 접수하고 접수 번호까지 받아 놨습니다. 실수로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경찰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사실은 슬쩍 받아 두고 잃어버렸다고 하고 넘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서 민원실을 통하여 정식으로 접수하고 접수 번호까지 받아 두면 빼도 박도 못한다.
‘네놈들이 하는 짓거리야 뻔하지, 뭐.’
경찰이라는 작자들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직업으로 삼고 있을 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돈을 주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게 대부분이다.
“알았다. 일단 조서는…….”
“아니, 애초에 공소권이 없는데 무슨 조서예요? 안 그래요?”
“…….”
“누나, 가죠.”
“어? 가면 되는 거야?”
노형진의 말에 순간 당황하는 한지연이었다. 잔뜩 겁먹고 왔는데 조사는커녕 이름도 말하지 않고 그냥 끝났다.
“공소권이 없으면 고소할 권리가 없고 고소할 권리가 없으면 고소 자체가 무효이며 고소 자체가 무효인데 누나를 조사할 이유가 없죠. 안 그래요, 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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