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756)
개임을 시작하자? (1)
“으하하하아암.”
오광훈은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방에서 나왔다.
온 집 안이 진한 청국장의 냄새로 그득했다.
“아, 좋네.”
배를 벅벅 긁으면서 냉장고로 간 오광훈은 시원한 물을 한 통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잠을 깼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백자연이었다.
“아저씨, 지금 몇 시인데 아직까지 잔 거야?”
“넌 핵교 안 가니?”
“할배야? 학교도 아니고 웬 핵교?”
백자연은 아예 당연하다는 듯 찌개를 끓여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이사. 제발 남친 좀 사귀고 그러라니까.”
“아니, 싫다니까.”
백자연은 이젠 지겹다는 듯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오광훈은 문득 호기심이 동해 넌지시 물었다.
“야, 근데 넌 내가 왜 그렇게 좋은 거냐?”
“검사 싫다는 여자 못 봤는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오광훈은 일부러 과장되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자연은 넘어가지 않았다.
“빨리 밥이나 먹어. 아저씨 밥 챙겨 주고 갈게.”
“그러면 대학이라도 가든가.”
“이미 많이 늦었거든요? 제 머리로 대학은 무리이옵니다, 마마.”
“아, 진짜.”
오광훈은 툴툴거리면서도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고봉밥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밥이 바뀌었잖아.”
“아, 미안.”
거대한 고봉밥은 백자연의 앞으로, 그리고 작은 밥공기는 오광훈 앞으로.
“너 진짜 연비 안 좋구나.”
오광훈이 백자연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보육원에서 제대로 밥을 안 줘서 그녀가 그렇게 마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밥을 제대로 안 준 것도 사실이지만, 백자연은 소위 말하는 ‘연비’가 너무 안 좋았다.
남자 성인 기준 네 배는 먹는데 살이 안 찐다.
“걱정하지 마. 곰국 끓여 놨어.”
“그러니까 네가 먹을 걸 왜 우리 집에 끓여 두냐고.”
“어차피 내가 먹을 거니까.”
“못 산다, 진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자연이 요리 솜씨는 좋다는 거다.
나이 먹고 주방에서 보조를 해서 그렇다나?
“그나저나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늦잠을 다 자? 출근 안 해?”
“반차 냈다. 나도 사람이다. 좀 살자.”
지난 며칠간 너무 바빠서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할 만큼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오광훈은 어쩔 수 없이 반차를 냈다.
“날 그 일중독자 노형진하고 비교하지 마. 그놈은 일 없으면 못 살지만 난 놀고 싶은 남자야.”
“흠…….”
“왜,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고 싶어지냐?”
“그럴 리가 있나?”
“제발 좀 만나라.”
툴툴거리면서 청국장을 뜬 오광훈은 밥에 벅벅 비벼서 한입 먹었다.
딩동, 딩동.
“뭐지?”
시계를 힐끔 본 오광훈은 인터폰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아 씨, 진짜 택배 좀 그만 주문해.”
“뭐 어때. 어차피 여기서 엉겨 붙을 건데.”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오광훈은 툴툴거리면서 현관문을 열었고, 잠시 후 택배 기사가 다가와서 그에게 박스를 내밀었다.
“오광훈 씨?”
“네, 그런데요.”
“주문하신 택배입니다. 여기 확인 좀.”
“네?”
오광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백자연이 주문한 택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온 거란다.
“전 택배를 받을 일이 없는데요.”
“네? 하지만 여기 송장에는 오광훈 씨라고 되어 있는데요.”
“내용물이 뭔데요?”
“아이스 홍시입니다.”
“아이스 홍시?”
오광훈은 아이스박스에 담긴 물건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아이스 홍시치고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었다.
“저 홍시 안 먹는데……? 야, 백자연! 네가 홍시 주문했냐?”
“어? 나 주문 안 했는데.”
주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러더니 백자연이 말을 덧붙였다.
“선물인가 보지.”
“그런가?”
오광훈은 무심하게 택배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칼을 가지고 와서 밀봉한 테이프를 잘라 냈다.
“뭐야? 홍시? 누가 보냈대?”
“글쎄.”
“이름 없어?”
“보낸 사람이 ‘홍시주식회사’란다. 뭔 이딴 이름이 다 있어?”
툴툴거리면서 아이스박스를 연 오광훈은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뭐야, 이건?”
삐뚤빼뚤하게 쓰인, 간신히 알아볼 정도의 글씨.
“이게 뭐야? 개임을 시작하자?”
“개임? 홍시가 아니라 개임이야?”
“아니, 안 샀다니까. 그리고 뭔 글자가 게임도 아니고 개임이야?”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오광훈.
하지만 그 종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데. 뭐 이딴 택배가 다 있다냐?”
“글쎄.”
오광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종이를 뒤집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적힌 것이 보였다. 오광훈은 찬찬히 문구를 읽었다.
“전라북도 순천면 월광읍 33번 국도 음항리 입구?”
“뭐야, 그게?”
“나도 모르지.”
오광훈은 그걸 그냥 꾸겨서 휴지통으로 휙 던졌다.
“별 그지 같은 장난질이 다 있네.”
“어?”
그사이에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백자연이 놀란 듯 말했다.
“왜?”
“아까 음항리 입구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뉴스 떴는데?”
“뉴스? 무슨 뉴스?”
오광훈은 핸드폰을 받아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전라북도 음항리 입구에서 10대로 보이는 남성 시신 1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은 도로 옆에 버려져 있는 것을 밭으로 나가던 농부가 발견했습니다.
신분은 닷새 전 실종된 그 근처 학교의 학생 김 모 군(16)으로 추정되며 사망 시간은 어젯밤 11시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
갑자기 날아온 편지에 쓰인 곳에서 발견된 시체.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시체가 발견된 후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일 수는 없다. 지금 택배가 도착했다는 건 최소한 어제 낮에는 발송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망 추정 시간은 밤 11시.
즉, 택배를 보낸 시점에는 살아 있었다는 소리다.
“이거 뭐야?”
오광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옆에서 함께 보던 백자연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야? 이거…… 완전…… 소름 돋아. 지금 예고한 거야, 사람을 죽이겠다고? 아저씨한테?”
“아니,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오광훈은 전화기를 들었다.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우연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해당 사건의 담당자를 찾아낸 오광훈은 그 검사와 통화했다.
“서울 중앙지검의 오광훈 부부장검사입니다.”
드디어 승진해서 좋아했는데 이런 꺼림칙한 사건이라니.
-아, 오진아 검사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음항리 살인 사건 때문에 그러는데요, 특이 사항 없습니까?”
-특이 사항요? 실례지만 그건 말씀 못 드리는데요. 전화로 부부장검사님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저희가 뭘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그건 그렇지요?”
오광훈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얼마 전에도 모 지사가 ‘나 도지사인데.’라고 헛소리하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바람에 전화상의 신분 주장만으로는 정보를 건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건 확인 가능할까요?”
-확인요?
“어…… 개임을 시작하자?”
상대방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장난치시는 건가요?
“아니었나요? 아, 그러면…… 미안합니다. 제가 뭘 잘못 알았나 보네요.”
-아닙니다. 저희 검찰은 어떠한 정보도 환영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아시는 거 있나요?
“아니, 딱히 아는 건 없는데요.”
결국 딱히 밝혀진 것 없이 끝난 통화.
“역시 기우였나?”
“역시나 장난?”
“그런가 봐. 우연인가 보지.”
남은 밥을 마구 먹어 치운 오광훈은 일어나서 씻고 나왔다. 그리고 기지개를 켠 다음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 일하기 싫다.”
“쉬어.”
“공무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먹는 양을 생각해 봐라. 내가 일을 쉬는 순간 넌 굶어 죽어.”
“아니, 아저씨 부부장검사잖아! 그러면 하루쯤 쨀 수 있는 거지.”
“검찰이 학교냐? 째면 잘려.”
“아, 몰라, 몰라. 그럴 때는 째는 거야.”
백자연은 갑자기 피식 웃더니 그대로 오광훈의 목에 거는 출입증을 가져다가 자신의 목에 걸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부부장검사야, 부부장검사.”
“지금 나 따라 하는 거냐?”
“지금 나 따라 하는 거냐?”
“하나도 안 똑같거든!”
“하나도 안 똑같거든!”
“그만 내려놔라. 나 출근해야 한다.”
“그만 내려놔라. 나 출근해야 한다.”
“아, 씁.”
오광훈은 백자연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목에 걸린 출입증을 빼앗으려고 했고, 백자연은 그런 오광훈을 피해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나 잡아 봐라, 꺄하하하!”
“쌍팔년도 영화 찍고 있네. 그거 안 내놔!”
백자연은 집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나 집이 크지 않았기에 얼마 가지 않아 오광훈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꼼짝 마! 경찰이다!”
총을 들이밀며 집 안으로 들이닥친 흉흉한 눈빛의 남자들의 모습에 오광훈과 백자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얼어붙은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총을 든 남자들 또한 밀려오는 당혹감을 주체할 줄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이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러닝 차림의 남자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듯한 묘한 풍경이었으니까.
“너…… 너…… 뭐 하는 거야?”
“아니, 뭘 하냐고 물으신다면 이건 오해가…….”
오광훈은 다급하게 변명하려고 했지만 백자연은 생각보다 더 뻔뻔했다.
“교복 플레이?”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잡아! 잡아!”
“우아악!”
오광훈은 몰려드는 경찰들에게 찍어 눌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
“죄송합니다. 검사라고 거짓말한 줄 알고…….”
잠시 후, 오광훈은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경찰들과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한 경찰이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진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흠흠…… 동생이 장난쳐서.”
오광훈이 뻘쭘한 얼굴로 말하는데, 옆에서 백자연이 불쑥 끼어들었다.
“동생 아닌데?”
“아, 씁. 넌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백자연을 한번 흘겨본 오광훈은 멍이 든 얼굴을 계란으로 문지르며 경찰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남의 집에 들이닥친 겁니까?”
“아…… 그게, 긴급 전화 추적을 해서…….”
“전화 추적?”
“범인으로 의심되는 전화가 왔다고…….”
오광훈은 자신이 했던 유일한 통화가 생각났다.
오늘 한 통화는 그것뿐이니 그들이 말한 것도 그것이리라.
“그런데 왜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 담당 검사인 오진아 검사에게 중요한 핵심 코드를 말씀하셨다고 들어서요.”
“핵심 코드요?”
“네, 개임을 시작하자고.”
“네? 그게 왜 핵심 코드…….”
경찰은 사진을 한 장 건넸다.
아마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 사진에는 삐뚤빼뚤한 악필로 글씨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개임을 시작하자.
“닝기미.”
“그래서 급하게 추적한 겁니다. 그런데…….”
오광훈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경찰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아침에 이상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요?”
“네. 주소 외엔 똑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지요. 개임을 시작하자고.”
“글자는요?”
“똑같아 보이네요.”
눈을 크게 뜨는 경찰들.
“주방 쪽에 있는 휴지통에 던져 넣었으니까 빨리 사람 보내서 확인해 보세요. 일단 증거인 것 같으니 더 이상 우리가 손대지 않는 게 좋겠네요. 과학수사 팀 부르세요.”
“네! 네! 빨리 사람 보내서 수거해!”
“그리고…….”
오광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전화 한 통 씁시다. 변호사 좀 불러야 할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