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758)
개임을 시작하자? (3)
“일단 글자 자체도 그렇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게임을 ‘개임’이라고 쓸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이는 들리는 대로 써 버리니까…….”
그러니 게임이 개임이 될 수도 있다.
한글을 이제 막 배운 애들이 귀에 들리는 대로 쓴 글.
“그런데 한국에 그런 애들이 어디 한두 명이야?”
아이를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찾아낸다고 해도, 그 아이가 그 문장을 쓰라고 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초콜릿 하나에 써 주고 잊어 먹을 일일 테니까.
“더군다나 그렇게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증언 능력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특정한다고 해도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증언으로 인정하지 않지요.”
“와, 그러면 그놈은 추적도 못하고, 설사 한다고 해도 못 잡는다는 건가요?”
“그렇게 되는 거지요.”
삐뚤빼뚤 오타를 내면서 갓 한글을 받아쓰는 수준의 어린아이인 이상 사람에 대해 기억하기도 힘들 테니 추적도 힘들다.
“문제는 이런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는 거지.”
노형진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정보를 아는 사람은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한정적인 이들뿐이다.
심지어 변호사조차도 이런 걸 다 아는 게 아니다.
변호사들이 받아 드는 것은 결과뿐이다.
“그러면 법률 쪽 근무자?”
“그건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응? 왜?”
“그쪽 근무자치고는 방식이 너무 지저분합니다.”
그런 이들의 도전 방식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데 있다.
쉽게 말해서 법무 법인 청계처럼 완벽한 범죄를 설계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이놈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살인이라는 직접적 방법을 선택했다.
그 말은, 내부인은 아니라는 거다.
“다시 말해서 법조인도 아닌 사람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추적될 만한 걸 배제한 건데, 그 정도면 상당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범죄자들은 일반인보다 멍청하다고들 하지만 이 정도면 일반인보다 훨씬 똑똑할 거다.
“박사나 뭐 그런 거?”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직 모든 조사가 끝난 건 아니다.
그런 만큼 완벽한 프로파일이 나온 게 아니지만, 단순히 상황만으로도 무척이나 위험한 타입의 범죄자로 분류되고 있었다.
“일단 자료가 다 넘어오면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지만…….”
강진환은 다크서클이 완전히 턱 아래까지 내려온 듯한 얼굴로 말했다.
“시간이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노형진도 오광훈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사진만 바라볼 뿐이었다.
***
“변호사가 왜 온 겁니까?”
수사를 시작하는 회의실.
경찰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수사가 진행되자 오광훈도 참가하게 되었다. 일단 범인이 도발한 것이 오광훈이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동행한 변호사인 노형진은 환영받지 못했다.
몇몇 경찰들이 불만에 차서 노형진을 노려봤다.
“노 변호사님은 피해자 측 변호사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여기에 참석하냐고요?”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찰들.
하긴 경찰들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수사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자신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당연히 경찰들이 제대로 일하나 확인하러 왔지요.”
“뭐요? 우리를 뭐로 보고!”
“글쎄요. 배신자? 마약 판매상?”
몇몇 사람들이 욱하는 표정이 되었다.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몇몇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마약을 빼돌려서 팔다가 걸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를 죽이기도 했으니까.
“입 좀 닥쳐라. 제대로 일도 안 하면서 문제만 일으키지 말고.”
“부장님!”
“닝기미. 이번 사건도 제대로 해결 못해서 또 모가지 날아갈래? 정신 안 차려? 가족들 모가지가 걸려서 벌벌 떨던 게 뭐, 한 10만 년쯤 지났냐?”
부장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도전.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관의 가족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인.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리고 이번 사건도 같은 유의 도전이고. 테러는 아니지만 도전은 도전이야. 자기 가족 목숨이 걸린 게 아니니까 일 편하게 하고 싶어? 그럴 거면 나가서 치킨이나 튀겨, 이 새끼들아.”
부장의 말에 노형진을 도발하던 몇몇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미안합니다, 노 변호사.”
“별말씀을요.”
부장이 노형진에게 이렇게 좋게 대하는 것은 노형진 덕분에 그의 가족이 대룡에서 만든 사법계, 경찰 가족들을 위한 안전 아파트인 세이프 하우스에 입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행하지요.”
강진환은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자신의 프로파일 결과를 이야기했다.
“범인은 30대에서 40대 사이의 성인일 겁니다. 직장은 고정적이지 않을 테고, 자산이 어느 정도 되는 유복한 집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업의 수준은 아주 높을 겁니다. 최소한 석사급 이상은 될 테고 박사급일 수도 있습니다.”
“닝기미, 그건 나도 하겠네.”
“박 형사, 아가리 좀 닥쳐라.”
다시 입을 다무는 박 형사.
강진환은 그 장면에서 피식 웃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취업자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오광훈 검사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는 주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성향은 아닐 테고, 주변에서는 그를 자신만만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으음…….”
“많은 연쇄살인범이 그렇듯이 현실적으로 그는 자신의 신분을 잘 감추고 있을 겁니다. 피해자와 연관성은 없을 것이며…….”
“아니, 말도 안 돼. 피해자와 연관성이 없다고?”
“네, 없습니다. 그는 추적을 막기 위해 막 글을 배우는 아이를 이용해서 편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인간이라면 희생자로 연관성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운동을 잘하는 놈인가?”
“그것도 아닐 겁니다.”
희생자는 노끈으로 목이 졸려서 죽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하지만 저항도 안 하고 죽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을 잘 쓰는 타입이라면 격투 흔적이라도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피해자를 제압했다는 거지요.”
“그러면 그걸 추정할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부검 결과 격투의 흔적도 없고 약물의 흔적도 없다.
위압당했을 수도 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면 행동반경은요?”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 지능을 기준 삼아 판단해 보면 그가 가장 먼저 주의했을 부분은 행동반경이었을 겁니다. 즉, 그는 피해자를 완전히 랜덤하게 골랐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 피해자 주변을 털어 봐야 개털이다?”
“그럴 겁니다.”
물론 피해자의 동선 같은 걸 추적해서 따라다니거나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피해자는 시골 학교의 학생입니다. 주변에 비교 대상도 많지 않은 곳이지요. 그런 곳에서 피해자를 골랐다는 것은 다른 요소, 즉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CCTV를 피하겠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실제로 시체가 버려진 현장에도 CCTV는 없었다.
“더군다나 시체를 버린 방법 또한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아무리 현장에 CCTV가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는 있다.
당연히 경찰은 벌써 그걸 탈탈 털었다.
하지만 움직이는 속도와 시간을 계산하면 시체를 내리고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꾸미는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시골이라 그 시간에 그곳을 돌아다니는 차량 자체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미 확인이 끝난 상황.
“즉, 범인은 차량이 아닌 다른 것을 이용해 시신을 옮겨 두고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는 걸 의미합니다.”
“미치겠네. 헬기로 떨군 것도 아닐 테고.”
경찰들은 질색했다.
보통 사건을 추적하는 건 동선 확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아무리 봐도 동선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이 직접 들고 옮겼다거나?”
“그 부분도 감안했습니다만, 신체에서 다른 유전적 성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짊어지고 논과 밭을 지나가 버리고 가려면 어마어마한 땀이 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땀이라도 묻어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이놈은 필연적으로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겁니다. 검찰과 오광훈 검사에 대한 도전을 목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런 만큼 아마 근 시일 내에 다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피해자가 사망한 지 얼마나 지났지요?”
“이제 나흘 지났습니다.”
“그러면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노형진의 말에 강진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만 언제 드러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살인까지의 기간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성격이 급하면 빨리 일어날 테고, 아니라면 천천히 일어날 테고.
“일단은 피해자가 어디로 움직였는지, 평소에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등등을 확인해 보고…….”
막 부장이 조사를 명하는 그때,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강 순경? 무슨 일이야?”
“부장님, 잠시만.”
그렇게 말한 강 순경은 부장에게 다가와 속닥거렸다.
그리고 곧 부장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방금 오광훈 검사의 집에 또 편지가 왔답니다.”
“편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 같은 걸 주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게 내용인데…….”
당연히 오광훈의 집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편지를 당장 들고 왔는데, 편지 속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격투 게임에서나 볼 만한 단어인 ‘라운드 2’.
그리고 그 아래에 붙어 있는, 어두운 회색빛 공간에서 눈이 가려진 채로 의자에 묶여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사진. 그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회색의 콘크리트뿐이었다.
“이게 왔다고요?”
“그리고…….”
강 순경은 부장에게 가지고 온 USB를 건네주었다.
부장은 그걸 컴퓨터에 꽂고 내부를 살폈다. USB 안에는 음원 파일이 하나 저장되어 있었다.
부장은 그 파일을 더블클릭 했다.
-제발……! 아악……! 누구든 제발 살려 주세요! 아악……! 죽기 싫어! 엄마! 나 죽기 싫어요! 제발…… 누구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엄마, 엄마……!
처절한 비명 소리. 그리고 함께 들리는 물이 차오르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살려 주세요…… 컥…… 컥컥…… 살려…….
물이 끝까지 차올랐는지 컥컥하는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들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건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플레이 시간은 15분.
범인이 이번에는 사람을 익사시킨 것이다.
“미친…….”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