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86)
‘글자야 뭐, 다 똑같다고 치고.’
결국 남은 것은 다름 아닌 도장이다. 문제는 도장을 어디서 구했는지 노형진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변호사들의 싸움만 길어지는 상황이었다. 의외로 타개책을 만들어 낸 것은 유명한이었다.
“결국 시간이 제법 걸리네유.”
“아무래도 그렇지요.”
상대방이 작심하고 덤비다 보니 노형진과 유명한은 계속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지칠 지경이었다.
“결국은 저들이 가지고 있는 차용증과 증명서가 문제입니다.”
“차용증은 그냥 위조하면 안 되나유?”
“그거야 위조가 쉽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장을 위조하는 건 쉬운 게 아닐 텐데요.”
“네?”
“도장 말입니다. 도장 자체야 파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디에 가든 그걸 똑같이 파 줄 사람은 없습니다.”
도장을 파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된다고 무시하고들 하지만 사실 도장을 파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예민한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장을 똑같이 파 달라고 한다는 건 위조에 쓰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장을 파는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으니 그렇게 파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거야 대충 쉽게 파내면 되지 않나유?”
“사람들이 안 파 준다니까요.”
“그거야 대충 뽑아내면야…….”
“뽑아내다니요. 도장이 무슨 가래떡도 아니고.”
“기계로유. 요즘은 도장 파 주는 기계도 있잖아유.”
“네?”
“도장 파 주는 기계유.”
그 말에 노형진은 멍하니 있다가 아차 싶었다. 그동안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산 덕분인지 도장을 파는 것을 아직도 손으로 파 주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지! 기계가 있었지?’
요즘은 도장을 파는 것도 그냥 기계에 수치를 입력하면 파 준다. 그 덕분에 과거보다 도장을 파 주는 사람이 늘어났다. 과거의 도장은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파는 수동식인 반면, 이건 그냥 수치를 넣으면 나오는 공산품에 가깝다.
“일단 그걸 확인해 봐야겠군요.”
“근데 어떻게유?”
“어떻게 하긴요. 이 주변에 도장 가게가 몇 개인데.”
아무래도 법원에서는 도장을 많이 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도장을 많이 쓰는 편이다 보니 주변에 도장을 파 주는 가게가 몇 군데나 된다.
노형진은 서둘러 그런 곳으로 같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도장 파는 거요?”
“네, 정확하게는 똑같이 파는 거요.”
“흠…….”
그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치만 안다면 어렵지 않죠.”
“그런가요?”
“네.”
“간단하게 시연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비용은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도장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시연용으로 쓸 도장이 필요한데.”
“여기 있습니다.”
“아.”
노형진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자신의 도장을 꺼내서 건넸다. 일반적으로 쓰는 막도장이었다. 남자는 그걸 받아서 이리저리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런 건 쉽죠.”
“그럼요.”
그는 일단 도장을 꾸욱 찍어서 그 형태를 만들었다.
“보다시피 이 도장이 찍혀 있죠? 이걸로 스캔하는 거죠.”
스캔하고 난 후 그걸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옮긴 그는 비어 있는 막도장을 넣고는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하는 기계. 잠시 후, 노형진의 손에는 완벽하게 똑같은 도장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런 건 아주 쉽거든요.”
“그런데 보통 이런 식으로 안 해 주지 않습니까?”
“보통은 안 해 주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어깨를 으쓱하는 주인. 그러니까 자신이나 보통 도장 주인들은 안 해 주기는 하지만 의외로 돈을 준다면 해 주는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
세상에 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장 돈만 주면 사람을 죽여 주겠다는 놈도 있는데 도장 하나 파 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변호사님의 말씀대로 도장을 똑같이 안 파 주는 건 못 파서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서예요. 만일 그런 양심 없는 놈이면 해 주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걸 알아볼 방법이 있나요?”
“음…… 글쎄요? 뭐,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 말에 노형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재판.
내용은 똑같았다. 사실 이건 판사가 저쪽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어야 하는 재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돈을 갚은 후에 추가적으로 돈을 빌려준 겁니다. 이 모든 증거가 말해 주지 않습니까?”
“그건 그저 서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쪽은 공증까지 받은 서류들입니다. 그럼 누가 더 신빙성이 있습니까?”
“누가 그게 가짜라고 했습니까? 진짜 맞습니다.”
아무리 남궁혁우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직접 가서 공증까지 받은 서류를 가짜라고 할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빚을 다 갚고 추가로 빌려준 거라니까요?”
“그럼 최갑환 씨의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나야 모르죠. 도박에 빠져서 강원랜드에 가져다 줬는지.”
“우리 아빠는 도박 안 해요!”
그 말에 울컥하는 최정화.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면서 남궁혁우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네놈이 과연 잠수 후에도 그렇게 느긋하게 노려볼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보자.’
노형진이 봤을 때 그는 자신이 돈 준 사실을 믿고 저러는 모양이었다. 하긴 보통은 그게 먹힌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면 아무리 판사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2심에 올라가서 뒤집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랬다가 돈을 받은 게 드러나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요즘은 도장 파는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요. 그런데 피고는 최갑환 씨와 거래해서 그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걸 가지고 복제할 수도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노형진은 슬쩍 던졌지만 별 반응이 없는 변호사와 다르게 최갑환의 얼굴이 살짝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쩐지.’
그렇게 보면 마치 짠 것처럼 나온 모든 서류들이 죄다 위조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증거 있습니까? 증거도 없이 그런 위험한 말을 하는 거 아닙니다.”
딱 선을 그어 버리는 피고 측 변호사. 하지만 노형진은 이미 증거를 확보한 상태였다.
“증거요? 있습니다.”
그 말에 눈에 띄게 흔들리는 남궁혁우의 눈동자. 그리고 그제야 피고 측 변호사는 남궁혁우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재판에 시청각 자료로써 갑제 22호증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전자현미경 사진입니다.”
“전자현미경 사진?”
“웬 전자현미경?”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사건에서 도무지 전자현미경이 할 노릇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 도장을 파 주는 사람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장을 파는 방식은 네 가지가 있다는 말.
‘그리고 이건 절대 흉내를 낼 수 없지.’
노형진은 바깥에 신호를 했고 미리 준비한 전자현미경을 모니터와 연결했다.
“이 전자현미경은 과학용으로 사용되는 현미경으로 2,400배까지 사용되는 전문가용입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요.”
노형진은 그 아래로 도장을 넣어서 그 내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척이나 거친 표면이 나타났다.
“보이십니까? 이건 이 도장 내부의 상태입니다. 고인이신 최갑환 선생님인 이 도장을 그 당시 거래하던 도장 장인에게 팠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계로 파는 방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장인 조각칼로 하나하나 파야 했지요. 그래서 정밀해 보이지만 실상 그 내부는 이렇게 좀 거칠게 됩니다.”
그는 그 도장에 인주에 묻힌 뒤 종이에 찍은 것을 다시 현미경으로 확대했다.
“당연히 그렇게 거칠게 파인 도장은 도장을 찍어도 이것처럼 주변이 다듬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수공예의 한계라는 것이겠지요. 대신에 수공예로 판 도장을 복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노형진은 거기까지 말하고 남궁혁우를 노려보았다. 남궁혁우는 이제는 완전히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는 가능하지요.”
노형진은 노트북으로 미리 촬영된 모습을 보여 줬다. 자신의 도장을 도장 장인이 똑같이 복제하는 장면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복제가 가능하다는 증거이지, 복제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애써 선을 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증거는 있습니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 측이 고 최갑환 씨의 도장이 찍혀 있는 서류의 원본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 검증을 위해 그걸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변호사가 나서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재빨리 말을 끊어 버리는 남궁혁우.
“과연 그럴까요? 제가 아까 봤는데요?”
“피고 측 변호인, 있습니까?”
판사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는 남궁혁우 대신에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이 제대로 틀어져 버렸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있습니다, 변호사님.”
“제출하세요.”
“네.”
그는 가방 안에서 서류를 꺼내서 노형진에게 건넸다. 그걸 받은 노형진은 천천히 전자현미경으로 다가갔다.
“보다시피 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 이 두 도장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세하게 보면 달라지지요.”
노형진이 기존에 있던 종이를 빼고 증거로 제출된 서류를 아래에 넣는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이럴 수가!”
“전혀 다르잖아?”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똑같았지만 그 도장이 찍혀 있는 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자 전혀 달랐던 것이다. 아까 전 원본 도장으로 찍은 것과 다르게 그 면이 무척이나 깔끔했다.
“보이십니까? 똑같은 도장이지만 그 안쪽은 완전히 다릅니다.”
“헉!”
남궁혁우의 ‘헉.’ 하는 소리.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노형진은 그 서류를 빼내고 난 후 그 아래로 다른 서류를 밀어 넣었다.
“저희는 이 증거를 비교하기 위해서 미리 여러 방식으로 도장을 파 왔습니다. 이름이 가나다인 건 무시해 주시면 됩니다. 일단 수공예 방식이죠. 아까 전 본 도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건 그다음에 개발된 바늘 방식입니다. 아까 전 도장과 비슷하면서도 일정한 사이클이 있지요. 그리고 이건 요즘 사용하는 레이저 방식입니다. 말 그대로 초고열로 태워서 그 형태를 만드는 거죠. 아주아주 정밀 작업도 가능합니다.”
노형진이 레이저 방식으로 만든 도장을 찍어서 비교하는 순간 그곳에 나타난 특징은 남궁혁우가 제출한 서류에 찍힌 도장의 특징과 똑같아졌다.
“즉, 피고 측이 제출한 서류에 사용된 도장은 레이저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레이저 방식 도장은 개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이 도장이 만들어질 때는 바늘 방식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피고 측 서류에서는 레이저 방식의 도장이 튀어나왔을까요?”
모두의 시선은 피고 측에 향했다. 빼도 박도 못한 증거가 나타나면서 뭐라고 할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할 수가 없었다.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남궁혁우는 의자에 앉아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변호사는 곤란한 듯 미간을 문지르고 있었다.
“재판장님…… 증거 확인을 위해서…… 정회를 요청합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고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망치를 들었다.
“변론 기일을 다시 잡겠습니다.”
그리고 노형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국 재판은 이겼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겼다. 증거가 나온 이상 아무리 뇌물을 쓴다고 해도 그걸 뒤집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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