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877)
범인의 이면 (1)
“방송에 나오기는 하네.”
오광훈은 저녁을 먹다가 고개를 돌려서 방송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좀 달랐다.
서울과 경기도의 동물 보호 단체와 유기 동물 보호소를 싹 털었지만 범인은 없었다.
아예 비슷한 사람 자체가 없었다.
-이번 사태로 경찰과 검찰의 무능이…….
세 번째 화재의 발생. 운이 좋은 건 이번에는 피해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오래된 원룸 건물이었다.
두 번째와 마찬가지로 계단에 불을 피워서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형태로 화재가 벌어졌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원룸의 입주자 중에는 불면증 환자가 있었다.
그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야식을 사서 오다가 화재를 발견했고, 고함을 지르면서 사람들을 깨웠다.
그러자 범인이 막 불을 피우다가 놀라서 도주했는데, 그 사람은 그 모습을 보았으나 범인을 쫓기보다는 불을 끄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 때마침 옆집 사람이 비치해 놨던 소화기를 들고 나와 피해는 입구에 생긴 그을음 빼고는 제로.
“그리고 그 사람은 범인이 남자라고 증언했고.”
오광훈은 이를 쑤시며 말했다.
결국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검찰과 경찰에 대한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검찰 입장에서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 했다.
“병신 같은 거야, 아니면 우리가 잘못 짚은 거야?”
이미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조사할 곳을 알려 준 상황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진짜로 그 동물 다섯 마리를 다 잡았다는 건가?”
“그게 가능할까? 방송을 봐서 알잖아. 동물 하나 잡는데도 그 난리를 치는데.”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
그런 동물을 인간이 혼자서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그물을 치거나 머리를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그 불에 탄 동물들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고.”
하다못해 그 동물이 있었다면 어떤 품종인지 알아내서 그걸 받아 간 사람을 추적이라도 해 보겠는데, 회사에서는 그냥 산업폐기물로 버렸다고 한다.
사실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동물의 사체는 일반 쓰레기가 맞고, 그곳은 온통 파내서 아파트가 생길 예정인 곳인 만큼 그곳에 묻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 사체들을 차에 싣고 어딘가로 가서 파묻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남의 땅에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불법이니까.
당연하게도 사체를 그냥 폐기물 트럭에 실어서 보냈고, 그 이후에 추적은 불가능해졌다.
“쯧쯧, 윤영지 검사, 이번에는 자신 있게 나섰는데 말이지.”
오광훈은 혀를 끌끌 찼다.
이번에 자신 있게 해결하겠다고 나섰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코너에 몰린 그녀가 불쌍해졌기 때문이다.
딱히 공적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 경쟁할 필요도 없었던 것.
“흠.”
노형진은 계속 고민했다.
자신의 추리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다.
대부분은 맞아떨어졌다.
연습이라는 부분까지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그놈은 뭐야?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갑자기 튀어나온 연쇄 방화 살인범. 그런데 왜 잡지 못할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행동반경이 넓은 방화 살인범도 없기는 하고.’
다급한 마음에 수사 반경을 전 경기도로 확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뚜렷한 흔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네가 말한 대로 옷을 갈아입는 건 확실한 것 같더라.”
“아, 그래?”
“세 번째 범인이 입은 옷은 다른 옷이래.”
“아무래도 추적을 막기 위해 옷을 사서 입는다고 봐야겠지?”
“그렇겠지. 머리 좋은 놈이니까. 워낙 옷 종류가 많아야 말이지. 용케도 낡은 옷을 골라서 구한다니까.”
“응? 낡은 옷?”
“그래. 보니까 입고 있던 옷들이 다 낡았더만.”
노형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범인이 옷을 산다면 새 옷을 살까?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새 옷은 가격이 높고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옷 가게에 그러한 옷을 구입한 기록이 남는 게 정상이다.
“낡은 옷……. 그래…… 내가 그걸 생각 못 했네.”
화면에 보이는 옷들은 대부분 낡고 허름했다.
그렇다면 평소에 범인이 입던 옷인 걸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추적을 막기 위해 온갖 준비를 다 한 범인이 평소에 입던 옷을 걸치고 범행을 저지르며 흔적을 남길 리가 없다.
“옷이라…….”
노형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어쩌면 돌파구가 될지 모르겠어.”
***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윤영지는 며칠 사이에 얼굴이 완전히 시체처럼 변해 있었다.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으니 멀쩡한 게 이상한 거죠.”
“아니, 다른 검사들도 있잖아요?”
오광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사건이 커지고 나서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은 윤영지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 사건을 추적하는 검사들은 늘어났는데, 그들 역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전 다른 검사들하고 입장이 다르잖아요. 제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또 파벌 싸움이군.”
윤영지를 밀어주는 파벌은 그녀가 계속 전면에 나서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을 밀어주는 파벌은 윤영지를 밀어내고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는 거다.
“잘하는 짓이네요,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오 검사님,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 일이었으면? 일단 그놈 멱살부터 잡고 흔들었을 겁니다.”
“하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윤영지는 한숨만 쉬었다.
오죽하면 이 정도 사건에 오광훈을 배제하겠는가?
그를 밀어 넣었다가는 새론에서 사건을 쓸어 갈까 봐 못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범인이 입었던 옷에 대해 확인해 보려고요.”
“이미 확인해 봤어요. 나온 지 벌써 2년이 넘은 옷들이에요. 심하게 오래된 건 5년이나 지났고요.”
이미 확인해 봤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옷들은 너무 오래전에 팔렸던 디자인인지라 추적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판매 시기도 제각각이고, 그걸 구입한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러니 그 옷을 구입한 사람을 추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제가 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그 옷들, 다 브랜드가 있는 옷들이지요?”
“맞아요. 하지만 그 브랜드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데요.”
“브랜드는 관련이 없지요. 하지만 그 이후가 달라집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윤영지의 자리로 다가갔다.
“잠깐 컴퓨터 좀.”
노형진의 말에 윤영지는 일어나서 자리를 내줬다.
윤영지의 자리에 앉은 노형진은 모니터에 캡처한 화면 세 개를 띄웠다.
“이 사진은 모두 현장에 있던 CCTV에서 뽑아낸 겁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범인이 원래 소유하고 있던 옷이라고 보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요. 워낙 스타일도 제각각이고……. 그렇다고 해서 범인이 수년간 옷을 모으면서 범죄 준비를 했다고 볼 수는 없고요. 결국 중고로 샀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브랜드를 왜 물어요?”
“중고는 거래되는 곳이 다르니까요.”
진짜 비싼 명품 브랜드는 중고라고 해도 전문 매장을 통해 유통된다.
중간급의 물건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브랜드도 제대로 없는 하급의 물건이라면 고물상을 통하거나 종묘와 같은 장소를 통해 유통된다.
“어…… 잠깐만요.”
윤영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추적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만요. 그 옷이…….”
바지 같은 건 특정할 수가 없어서 기록에 없지만, 상의는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어서인지 그 브랜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 후드티가 나온 곳이 로코로빈이라는 곳이네요.”
“로코로빈요?”
“네, 이미 로코로빈에 판매량을 확인해 봤어요. 대략 5만 장쯤 팔렸다고…….”
그렇게 팔린 물건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보통은.
“잠시만.”
노형진은 로코로빈의 브랜드에 대해 검색해 봤다.
중고가의 브랜드로, 명품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디서나 입기 편한 수준의 옷을 만든다.
보통 이런 옷들이 중고로 많이 거래된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는 거지만…….”
노형진은 인터넷에서 가장 큰 중고 거래 사이트인 중고천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코로빈 후드티를 검색했다.
“고작 열 건?”
그런데 생각보다 거래하는 글의 수가 적었다.
고작 열 건.
“생각해 보니 옷을 파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로코로빈의 후드티 같은 경우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었다.
그 말은 인터넷상에서도 그다지 거래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 독특한 디자인이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은 가능하면 팔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이 후드티 파는 사람, 한번 만나 볼 생각 없습니까?”
***
“아, 이거요? 제가 판 거 맞아요.”
중고로 나온 매물 중에서 판매가 완료된 것은 여덟 벌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경기도에서 판매된 것은 세 벌이었는데, 그중 두 벌은 지방으로 택배 배송되었고 나머지 한 벌은 현장에서 거래되었다.
“이건 팔 만했어요. 뭐, 유행도 지났고.”
남자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한 타입인 듯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건 적당히 팔아넘기고 새 옷을 사는 게 이득이니까요.”
“그러면 현장 거래했다는 사람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혹시 전화번호 같은 거라도 있나요?”
“너무 오래되어서 전화번호는 없어요. 쪽지도 없는데. 아, 글을 안 지웠으니 아이디는 있겠다.”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사람들은 거래가 끝나면 글을 삭제하거나 판매 완료라는 글을 올린다.
이미 거래가 끝났는데 계속 연락 오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후자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따로 보유한 연락처는 없으시다는 거죠?”
“그냥 여의도역에서 만나서 현거래를 했으니까요. 8만 원 받았으니 잘 받았죠.”
“원가가 비싼가 보군요.”
“원래 가격이 42만 원쯤 하는 거니까요.”
생각보다 높은 가격. 그러니 중고 거래도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남자는 어떻게 생겼나요?”
윤영지는 다급하게 물었다.
드디어 범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느낌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런데 판매자의 답변이 이상했다.
“네? 남자요? 전 여자한테 팔았는데요.”
“네? 여자라고요?”
“네, 자기 남친 주려고 사는 거라고 했어요.”
“아…….”
범인이 바로 코앞이라고 생각했던 윤영지는 힘이 빠진 듯 신음을 냈다.
노형진 역시 잠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일단 추적은 해 봐야 했다.
남자 친구가 그 옷을 입고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말이다.
애초에 혐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추적은 필수다.
“혹시 그러면 그 여자분에 대해 기억하세요?”
“겁나 예쁘던데요?”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노형진은 사건이 어느 쪽으로 튈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