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907)
진실 추적자 (3)
‘일단 이름은 기록해 두고…….’
노형진은 핸드폰의 메모장 앱에 관련자들의 이름과 직책 등을 적어 뒀다.
‘그리고 마지막 기억은…….’
다급한 상황이다.
류마 겐지에게 전화를 받자마자 당연히 도피를 준비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을 확인한다. 그 말은, 그게 가장 중요한 정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소각은 이뤄졌고.’
하지만 노형진은 애초에 여기에 있는 자료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여기는 개인 숙소다.
그 말은 보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며, 당연하게도 여기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간 자료는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이놈이지.’
노형진은 웃으면서 반쯤 타다 만 책상을 스윽 문질렀다.
그가 뭘 하든 모든 행정 업무는 서류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필요한 서류들은 여기서 이메일로 작성했어야 한다.
그 말은 서류 작성에 필요한 기억이 여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말이다.
‘어디 보자고, 사노 유지.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이야, 후후후.’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차근차근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
“꺼어어억!”
퇴근하다가 납치당한 류마 겐지는 배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칼날의 느낌에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구멍이 난 폐는 비명이 아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낼 뿐이었고, 류마 겐지의 헛된 손길을 수월하게 피한 상대방은 칼을 빼고는 그를 툭 밀었다.
그러자 힘없이 쓰러지는 류마 겐지.
그는 바닥에 누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축 늘어졌다.
“괜찮으십니까, 과장님?”
칼을 꺼낸 남자는 고개를 돌려서 뒤에 서 있는 상관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별다를 건 없어.”
사노 유지는 이제는 시체가 되어 버린 류마 겐지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분수도 모르고 정치 쪽에 발을 담그겠다고 해서 위에서 불만이 나오는 중이었어.”
“아, 그랬습니까?”
“그래. 냄새 맡는 사냥개 노릇 몇 년 했다고 주인이 되려고 하더군.”
사노 유지는 피식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손을 흔들자, 보고 있던 사람들이 류마 겐지의 시체를 땅속으로 묻기 시작했다.
“예정대로 북한에 납치당한 것으로 한다. 납북민단에 이야기해서 그쪽으로 몰아붙이라고 해.”
사실 일본에서 납북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본 경찰이나 정치인이 제대로 수사하거나 추적하기보다는, 수사가 조금만 힘들어질 듯해도 그냥 납북으로 주장해 버린다는 데에 있다.
물론 실제 북한에 의한 납치 사건은 벌어졌다.
북한은 한국에 스파이를 보낼 때 비슷하게 생긴 일본인으로 위장시키는 걸 선호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칼기를 폭파시킨 김현희다.
그녀는 맨 처음 잡혔을 때 일본인임을 주장하다가 같이 목욕하러 간 여자 수사관이 기습적으로 뜨거운 물을 뿌리자 한국어로 ‘앗, 뜨거!’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신분이 들통났다.
북한 입장에서는 스파이 교육에 제대로 된 선생님을 쓸 수는 없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북한 사람은 미묘한 성조의 차이가 있기에 실제로 일본에서 사람을 납치해서 스파이로 키우는 데 썼고 여전히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은 열세 명을 납치한 걸 인정했고, 일본은 열일곱 명이 납북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웃긴 건, 민간단체가 주장하는 납북 의심자는 사백 명 정도인데 정작 일본의 경찰은 거의 구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납북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즉, 수사하다가 방법이 안 보이면 그냥 납북 처리하는 것이다.
그 말 한마디면 북한이 욕먹고 자기들은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걸 알기에 사노 유지는 경찰에 이야기해서 이걸 납북으로 몰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류마 겐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뭐, 대체할 수 있는 개들은 많으니까. 슬슬 나이 먹는데 쓸데도 없었고.”
사노 유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곳에서 나왔다.
“노형진은?”
“불이 난 아파트에 들어가서 잠시 있다 나왔습니다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걸로 추정합니다.”
“당연하지. 건질 만한 것도 없었을 거야.”
그야 당연하다. 제대로 불을 질렀고, 그 때문에 내부가 완전히 타 버렸을 테니까.
“일단 당분간은 모든 선을 끊는다. 만일 탄핵까지 가면 우리가 곤란해.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 있을 때 뭐든 건져 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스파이로 쓸 만한 놈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보고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부하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사노 유지는 자신의 차로 새로운 숙소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노 상!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바, 방금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연락? 무슨 연락?”
이들이 말하는 회사는 당연히 조직이다.
그곳에서 지금 연락이 올 이유는 없었다. 당분간은 조심하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순간, 사노 유지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얼어붙었다.
“사노 상의 부모님 댁에 노형진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
“사노 상이 쉽게 안 오네요.”
“…….”
사노 유지의 부모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들을 찾아온 남자들.
그들은 위협하고 있지는 않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사노 상을 만나 뵙고 가려고 할 뿐입니다.”
“저희 아들이 바빠서…….”
“바쁘기는 하지요. 국가를 위해 일할 스파이들을 교육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제가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사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래요?”
노형진은 웃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슬슬 저쪽에서 알아차릴 시간이다.
“그걸 증명하는 건 이런 거죠.”
“네?”
“제가 사노 씨에게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 그런가요?”
“그런데요?”
“만일 사노 씨가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로 온다면 제 말이 맞을 테지요. 물론 오지 않는다면…….”
노형진은 말하다 말고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고.”
사노의 부모는 움찔했다.
그 다른 방법이라는 게 결코 그들에게 좋은 방법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형진 상…… 우리 아들은 평범하게 살았는데…….”
“네, 평범하게 한국에 스파이를 보내면서 살았지요. 사실 그런 인생치고는 제법 평범하기는 합니다만.”
노형진은 힐끔 시계를 보았다.
이제 해가 뜨고, 바깥의 경호 팀은 더더욱 경계하고 있다.
‘선빵은 못 치지.’
노형진은 기억 속에서 사노 유지의 가족을 찾아냈다.
물론 상관도 찾아냈지만 계획을 위해서는 상관보다는 사노 유지의 가족이 더 적당했다.
‘뭐, 내가 간 후에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워질지, 아니면 조용히 지나갈지.
‘아니, 조용히 지나가는 건 무리이려나?’
노형진은 이번 사건을 감출 생각이 없기에 대놓고 사노 유지가 스파이 양성 담당이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아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안 오시는군요. 아무래도 제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노형진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마창식이 다가와서 노형진의 귓가에 작게 중얼거렸다.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자기 집인데 못 들어오는 것도 웃긴 일이고.”
잠시 후 사노 유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당혹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노형진에게 정보를 주었다고 의심되는 류마 겐지는 이미 죽었고, 죽지 않았다 해도 어쨌건 그가 아는 건 자신의 집과 전화번호 그리고 이름뿐이지 가족들의 정보는 전혀 모른다.
“앉으시지요, 사노 유지 씨.”
노형진은 그렇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자리를 좀 비워 주시겠습니까?”
“아…… 저…….”
“저희는 조용히 갈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떨리는 눈빛으로 방에서 나갔다.
“도대체 네놈은 뭐냐?”
사노 유지는 이를 뿌드득 갈면서 말했다.
노형진은 대답하는 대신에 눈짓했다.
그러자 경호원 두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류마 겐지 때처럼 다짜고짜 사노 유지를 붙잡았다.
“뭐 하는 짓이냐?”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서 말이지.”
“개인적인 질문?”
노형진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근하게 웃었다.
“일본으로 보낸 스파이 말이야, 네가 훈련시켰다며? 그러면 그 위 라인에 대해서도 알겠네?”
“헛소리! 난 그런 일 따위 한 적이 없다!”
“그래.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당찬 거 아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위험하니까 바로 달려왔잖아. 어떻게 안 거야?”
“으음…….”
사노 유지는 침음성을 삼켰다.
안전 문제로 부모님의 집을 감시한다는 건 비밀이었으니까.
‘나한테는 아니지만.’
노형진은 그걸 알기에 그를 불러내기 위해 고의로 여기로 온 것이다.
계획을 위해서는 그와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
“난 그런 거 모른다!”
“그래?”
노형진은 절대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만일 네가 가족이 걱정되어서 온 거라면 혼자가 아니라 경찰을 데리고 왔어야지.”
“큭.”
“하지만 못 부르겠지. 난 아직 살아 있고, 그 뒷감당은 힘들 테니까.”
만일 경찰이 여기서 노형진을 잡아간다면?
마이스터와 미다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평소라면 모르지만 위급한 상황인 일본에 있어서 그들의 공격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니 일은 크게 벌이지 못할 거야. 물론 주변에 있는 부하들은 사정이 다르지만.”
사노 유지가 주변에 사람을 배치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미 내 뒤로 따라오는 놈들이 몇인데.’
하지만 노형진이 노골적인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들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말이야, 둘이서 이야기할 때는 제대로 예를 갖춰야지.”
“뭐?”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어깨에서 손을 스윽 내렸다.
그리고 절묘하게 감춰진 도청 장치를 꺼냈다.
“이런 건 예의가 아니지. 당사자 간의 녹음이 아니면 불법인 거 몰라?”
그러면서 노형진은 도청 장치를 뜯어내 박살 냈다.
도청 장치는 무려 세 개나 있었는데, 벨트에 하나, 단추 중에 하나, 그리고 구두에 하나였다.
“어떻게…….”
사노 유지는 당혹스러웠다.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미리 준비한 도청 장치를 다 박살 내 버렸으니까.
“뭐, 너는 스파이를 교육시키는 정보부 요원이잖아. 사람을 너무 믿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야.”
사노 유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 말은 최측근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순순히 관련자들을 이야기하지?”
“웃기는 소리. 내가 할 것 같으냐!”
“그래?”
노형진의 말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노 유지.
자신이 스파이인 것을 부정하지도 않는 걸 보니 정말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찾아온 침묵.
노형진도 사노 유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의외로 노형진은 쉽게 포기한 듯 일어났다.
“뭘 하려는 거지?”
“뭘 하긴. 설마 내가 너희들처럼 사람 거꾸로 매달고 손발톱 뽑아 가면서 고문할 거라 생각했어?”
“으음…….”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말하기 싫다는데 외국인인 내가 뭐라고 하겠어?”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문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다음에 노형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노 유지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쿄우타 츠토무 씨에게 미리 연락해 둬. 조만간 찾아뵙는다고 말이야, 후후후.”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