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942)
모두가 평등하다는 게 농담인 줄 아나? (2)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이재춘은 화들짝 놀라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교도관들은 철저하게 그를 무시했다.
“거기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라고.”
“씨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재춘이었지만 누구도 그를 꺼내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며칠 후 다시 노형진을 찾아온 심혁민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재춘의 상태는 어떤가요?”
“요즘 많이 힘들어하더군요. 잠잠해요. 왜 저러는 겁니까?”
이재춘에게 독방에 들어가 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독실로 돌아오면 다시 지랄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심리적인 문제죠.”
“심리적 문제?”
“핑크는 사람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색이거든요. 그건 몇 번의 실험으로 나온 결과입니다. 실제로 핑크로 운영되는 교도소도 있고요.”
교도소 운영 규칙에는 내부의 색에 대한 규정 같은 건 없다.
당연히 그건 교도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이재춘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닌 교도소장은 노형진의 말에 동의해서 바로 핑크로 방을 도배했다.
“고작 그걸 가지고 저렇게 잠잠해진다고요?”
“하하, 물론 아닙니다.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요?”
“남성성의 거세죠.”
“남성성의 거세요?”
“네. 핑크 교도소에서도 나온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핑크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이라고 한다.
물론 색으로 남녀를 나누는 게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옷이나 색의 선호도를 보면 확실히 핑크색은 여성에게 더 선호되고 있다.
“이재춘 같은 놈들은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은 남자니까 자존심이 있고, 그래서 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여도 반성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며 자신의 기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핑크핑크 한 방은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의 심리적 남성성에 대한 거세입니다.”
“거세라…….”
“물리적인 거세는 아니죠.”
하지만 그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 취급받는다고 느껴지게 만들면, 남성성을 자신의 주요 핵심 감정으로 살아온 이재춘 같은 녀석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는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황이 온 거죠.”
심지어 그가 핑크로 물들인 옷을 입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른 죄수들도 키득거리는 상황이다.
“공격성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지만 심리적인 붕괴도 일으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남자들에게 있어서 남성성의 인정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헐.”
“애초에 이재춘에 대한 프로파일 분석도 그렇게 나오고요.”
이재춘은 아내와 그 일가족을 깡그리 죽였다.
그런데 그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가 그렇게 화가 난 이유는 와이프가 배신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폭력을 행사한 것은 이재춘이니까.
“그가 아내와 그 가족을 죽인 이유는 이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했다는 게 문제가 된 거라고 하더군요.”
“이해가 안 가네요,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중요하지요. 가진 게 없으니까.”
가진 게 없으면 얼마 없는 가진 것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재춘은 잘사는 집도 아니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사회생활이 원만한 것도 아니었죠.”
그렇다 보니 폭력적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제 그게 부정당하고 있는 거죠.”
그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걸로 그냥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네?”
“아까 말했다시피 핑크 교도소도 일부를 핑크색에서 다시 회색으로 바꿨지요.”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에도 자칭 교도소 사회운동 전문가들이 인권 탄압이라고 지랄했기 때문이다.
분명 핑크색은 폭력 성향을 낮추고 범죄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에게 중요한 건 범죄자들의 기분이지 실질적인 효과가 아니다.
“그러니 조만간 그들이 나설 겁니다.”
심혁민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
“죄수인권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여자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여기서 죄수의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그건 오해입니다. 저희는 죄수의 인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담당자인 중일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들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죄수들이 쓰는 모든 편지는 검열하게 되어 있다. 증거인멸을 사주하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검열한다고 해서 그게 나가는 걸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건 진짜 인권 침해다.
그래서 인권 단체에 편지를 보내는 걸 확인했으니 당연히 그들이 달려올 거라 생각했다.
“이 편지에 따르면 끊임없이 고소하고 계속 징벌방에 집어넣으면서 핑크색으로 된 방에 가두고 심리적 학대를 하고 있다는데요? 이건 심각한 인권 침해입니다.”
여자의 말에, 조용히 뒤에 있던 노형진이 끼어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하면 될 것 같네요.”
“누구십니까?”
“노형진입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죠.”
“변호사?”
“그렇습니다.”
여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겠지.’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경우 대부분의 교도소는 자체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교도소에서 변호사를 못 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사실상 선임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워낙 죄수들에게서 고소가 많이 들어와서 감당하기도 힘들다.
‘이게 문제란 말이지.’
사회단체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일단 한국에서 인권 단체라고 하면 대놓고 적대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기선을 빼앗기고 들어가는 형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협상에서도 불리해진다.
‘하지만 변호사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
살살 달래서 그냥 가라고 하는 담당자가 아니라서 법적으로 들이밀고, 필요하다면 인권 단체에 소송도 불사할 테니까.
“죄수인권위원회라고 하셨지요?”
“네, 그런데요?”
“일단 법인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아시지 않습니까? 워낙 자칭하는 놈들이 많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지요?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요?”
“네.”
당당하게 ‘네.’라고 답하는 노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
노형진은 물론 그런 심리적 압박용 시선에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무슨 위원회라는 말씀만 믿고 그 단체가 실존한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존재를 확인해야지요.”
“명함을 드렸잖아요?”
“아까도 여쭤 봤듯이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 등록하셨냐는 겁니다.”
“그건…… 안 했습니다.”
“그러면 하고 오시죠.”
“뭐욧?”
“하고 오시라고요. 법인 등록도 하지 않고 와서 인권 단체라고 주장하면, 저희가 뭘 어떻게 믿습니까?”
“이거 인권 침해 아닌가요?”
“재단법인으로 등록하는 데 얼마 안 합니다. 제대로 활동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요.”
붉으락푸르락해지는 여자.
여자는 화가 난 듯 바로 핸드백을 낚아채듯 집어 들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뭐 하신 겁니까?”
“자칭을 걸러 낸 겁니다.”
“자칭요?”
“네. 인권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수법이지요.”
원래 인권 운동이라는 것은 대부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인권 운동가들 입장에서는 몸은 하나고 일은 여러 개다.
그렇다 보니 결국 한두 가지 주제로만 집중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머지는 다른 단체와 협력해 가면서 한다.
“정상적인 단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단체가 아닌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목에 힘주는 용도로 명함을 판다.
진짜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 권력을 유지한다.
“선거철이 되면 별의별 인간들이 다 국회의원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작은 시 하나에 무슨 놈의 위원회가 백 개가 넘는 경우도 있지요.”
그들은 선거를 핑계로, 도와준다면서 대신에 지원을 요구한다.
“대부분은 제대로 된 단체가 아닙니다.”
무슨 무슨 위원회 위원장이니 이사장이니 하면서 명함은 판다.
“그런데 거기에 속한 사람은 위원장과 이사장 두 사람뿐인 거죠.”
“네에? 설마요?”
“설마가 아닙니다. 실제로 위원장 타이틀만 백 개가 넘는 놈도 봤습니다.”
그게 정상적으로 굴러갈 리가 없다.
애초에 백 개나 되는 인권 운동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그중에는 중복되는 단체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즉, 죄수 인권을 위해 일한다는 자가, 비슷한 목적의 단체에 스무 군데나 속해 있거나 하는 거다.
“방금 저 여자도 보니까 명함에 직함이 열두 개더군요.”
정상적이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는 등록 여부를 확인하면 됩니다.”
“그게 차이가 큰가요?”
“크죠.”
만일 재단을 등록하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허울뿐인 존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름만 존재한다면, 자신의 권력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그건 허상이죠.”
권력을 지탱해 줄 지지 세력이 없으니까.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수법 중 하나입니다.”
그걸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등록되어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
“등록하지 않고 활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힘은 없죠.”
“힘이 없어요?”
“한국은 자본주의국가입니다. 돈이 없으면 힘이 없죠.”
숫자? 그건 의미가 없다.
100억을 가진 한 사람이 10만 원을 가진 10만 명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게 현대다.
“만일 등록하지 않으면 현행법상 모금법 위반입니다.”
그리고 모금이 불가능하다면 자기가 가진 돈으로만 활동해야 한다.
과연 그럴 사람이 있을까?
그런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등록해서 활동한다.
관련된 모든 걸 변호사에게 맡기면 순식간에 해결해 주니까.
“아까 전의 그 여자도 죄수인권위원회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인터넷을 보세요. 그딴 곳은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 이름 정도는 올라와 있었다. 어디 어디 시위에 누가 참가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걸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거든요. 즉, 존재하지 않지만 이권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하는 것처럼 굴었던 겁니다.”
하지만 노형진이 등록 번호를 물어보자 여자는 다급하게 도망갔다.
“그러면 다시 오지 않을까요?”
“뭐, 아예 안 오지는 않을 겁니다.”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인 만큼 관련자들과 선이 닿아 있을 테니까.
그들 중 한 명쯤은 등록된 사회운동 단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저를 이기지는 못하겠지만요.”
***
“한국수형자인권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형진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단체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서글서글하게 생긴 남자였다.
“여기, 등록 번호입니다.”
등록 번호까지 가지고 온 걸 보니 아무래도 노형진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군요.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이시지요?”
“지금 여기에서 이재춘 씨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떤 면에서요?”
“일단 고소와 고발을 무차별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군요.”
노형진은 머리를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