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040)
정의라는 가면 (2)
“저놈 뭡니까?”
“여기 입주인이세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지하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그의 차를 바라보았다.
“그게…….”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저분이 자꾸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대시더라구요.”
“장애인 주차 구역요? 사지는 멀쩡해 보이던데요. 뭐, 머리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분, 장애인 아니십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된 상황은 이러했다.
어디든 장애인 배려 차원에서 입구 가까이에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을 만든다.
하지만 사실 이런 아파트에 장애인이 들어오는 건 쉽지 않다.
일단 장애가 있으면 돈을 벌기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법적으로 장애인 주차 구역은 만들어야 하고, 그 때문에 노형진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곳에 차가 세워진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자꾸 차를 세우시는 거예요.”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주차 구역이 있으니 마음대로 주차하고, 어차피 빈자리 아니냐면서 마치 자기 전용 주차장인 것처럼 굴었다는 거다.
“아아.”
노형진은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런 놈들이 꼭 있다.
“그래서 그거 막으셨어요?”
“아니요. 제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신고해서 벌금을 먹여야 하는 일이지만 경비원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바로 다음 날 모가지가 날아갈 게 뻔하기에 그저 모른 척해 왔다는 것.
그런데 그가 모른 척한다고 해도, 이 단지 내에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세상에 미친놈이 있으면 정상인 사람도 있는 법.
누군가가 그가 주차하는 걸 보고 참다못해 불법 주차해 둔 모습을 계속 사진을 찍어서 신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다섯 번 찍혀서 딱지가 날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어이구야.”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 벌금은 10만 원이다.
그런데 그게 다섯 번이면 50만 원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왜 경비원 아저씨한테 그랬대요? 아저씨가 신고하신 것도 아닌데.”
“저보고, 거기서 지키고 서 있다가 사진 찍어서 신고하는 새끼 잡아 오라고…….”
“얼씨구?”
가관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많은 것이 자동화되어서 경비원의 숫자가 줄었다.
그런데 자동화되지 않은 것도 많기에, 결국 경비원의 업무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경비원을 폭행하고 자기 차를 지키란다.
“저거 신고하시죠.”
“아이고, 안 됩니다. 저분 변호사세요.”
“네?”
노형진은 골이 띵했다.
“유명한 로펌의 변호사세요. 그것도 제법 직급이 높으신 분이에요. 제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손사래를 치는 경비원을 보면서 노형진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이런 놈들이 있지. 그러면 저거…… 완전 고의로 세운 거구만.’
노형진은 남자가 세로로 입구를 막은 지하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내의 도로는 공도가 아니라 사도, 즉 개인의 땅이다.
그래서 거기에 주차된 차들을 불법 주차로 견인해 가지 못한다.
더군다나 딱 봐도 차를 세우고 사이드까지 채웠다.
“지랄맞네.”
누가 건드리지도 못하고 견인도 못 한다.
자기를 신고한 게 누군지 모르지만 엿 먹어라 이거다.
결국 같은 주차장을 쓰는 같은 주민이라는 소리니까.
“그 사람이 나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면서 벌금을 내주기 전에는 절대 못 비켜 준다고…….”
경비원은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이 나올 리도 없고, 설사 나온다 한들 그 사람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벌금을 내주겠는가?
“흠…….”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 차가 얼마더라?”
“네?”
“아니, 계산 좀 해 보려고요.”
노형진은 핸드폰을 열어 해당 차종의 가격을 확인했다.
“휘유, 8천만 원이네?”
노형진은 그걸 보고 빙긋 웃었다.
8천만 원. 한국에서는 확실히 비싼 차다.
“걱정 마세요. 제가 해결할게요.”
“네?”
“아니, 저도 가끔 돈지랄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노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뒤로 빼서 다른 곳에 주차하고 다가왔다.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주변에 있는 게 보였다.
“왜 다들 안 가시고?”
“아니, 그 해결책이라는 게 궁금해서.”
“저거, 혼자서는 못 옮길 텐데?”
웅성거리는 사람들.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재미있는 걸 구경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차 키를 하나 가지고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지하 주차장 출입구로 모습을 드러낸 차를 보고,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노형진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한번 웃어 주고는 차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〇〇〇〇 차주 되시죠?”
-뭐? 그런데?
일단 다짜고짜 반말하는 상대방.
“죄송한데 제가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거든요. 차 좀 빼 주시겠어요?”
-지랄하지 말고 꺼져라.
“제가 진짜 급해서 그래요. 차를 좀 빼 주셨으면 하는데.”
-절대 안 빼. 꺼져.
“아니, 자꾸 그러시면 저도 급해서 이거 그냥 밀고 가야 하는데요.”
-돈 많으면 밀든가.
“아, 네. 그런데 아저씨.”
노형진은 거기에다가 대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까 제가 돈 겁나 많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그도 불안했는지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튀어나오려는 모양이었다.
“이미 늦었지.”
노형진은 전화를 끊고 자신의 차, 즉 슈퍼 카에 올라타 후진시켰다.
그러자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부아아앙!
마치 야수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돌아가는 엔진.
“어디 보자, 일단 고의 통행 방해니까 8 : 2나 7 : 3쯤 나오겠는데? 운 좋으면 9 : 1이려나?”
만일 평범하게 정차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노형진의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로 방해를 위해 고의로 길을 막았고, 빼 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못 빼 주겠다고 버텼다.
노형진은 그걸 다 녹음해 놨다.
이 경우 잘못한 건 노형진이 아니라 그 남자다.
“가라!”
안전벨트를 매고 카시트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키는 노형진.
그리고 최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주차된 차의 트렁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 안 돼!”
그때 집에서 다급하게 튀어나온 남자가 그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노형진의 슈퍼 카는 무서운 속도로 튀어 나가고 있었고, 주차된 차의 트렁크 옆을 들이받아서 힘차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악! 내 차!”
남자는 비명을 질렀지만 노형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돈 좀 나올 거야.’
***
연락을 받고 온 보험회사 측 직원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길을 막는 미친놈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게 기분 나쁘다고 그냥 차도 아닌 수억짜리 슈퍼 카로 밀어 버리는 사람도 처음 봤으니까.
“이건 솔직히 5 : 5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당신네 고객이 차로 도로를 막고 못 빼 주겠다고 버틴 건데 이게 어떻게 5 : 5가 됩니까?”
“우리는 정차 중이었잖아요.”
“도로에서 정차한다고 해서 거기가 그때부터 주차장 된답니까?”
양쪽 보험회사 직원 모두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기존에 없던 스타일의 사건이었기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불법으로 길을 막은 걸 고의로 박아 버린 거니 책임 관계를 따지기 애매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좀 뻔하지.’
결국 재판으로 가게 된다.
노형진은 그걸 알기에 고의로 들이받은 거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변호사시라면서요?”
“내가 법무 법인 태양 부대표야, 이 새끼야!”
“법무 법인 태양?”
“그래! 이제 무섭냐? 어!”
“오호?”
노형진은 일이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했다.
법무 법인 태양이면 손채림의 아버지인 손하균의 회사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지난 정권에서 사건을 싹쓸이하던 태양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톱 1위에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대항마는 다름 아닌 법무 법인 새론.
‘제대로 붙어 본 적이 없네.’
자잘한 사건 몇 개로는 싸워 봤지만 사실 두 회사는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다.
새론은 친서민 라인을 유지했고, 태양은 친권력자 친재벌 라인을 유지했다.
그렇다 보니 그 둘이 싸울 만한 일은 많지 않았고, 어쩌다 작은 사건이 들어가도 태양은 그냥 버리는 사건 취급해서 최선을 다해서 방어하지도 않았으니까.
“이거 공교롭네요. 저도 변호사인데.”
“뭐?”
“법무 법인 새론의 노형진 이사라고 합니다.”
노형진은 자신의 명함을 꺼내서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참 반갑습니다. 아주아주,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네요.”
히죽 웃는 노형진의 모습에 남자는 움찔했다.
***
“자네, 태양 법무 법인의 주식태하고 한판 했다면서?”
“주식태? 아, 그 남자 이름이 주식태였나? 하여간 뭐, 네, 한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노형진이 회사에 오자마자 달려온 김성식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아주 소문이 파다해.”
“파다해요?”
“알게 모르게 우리가 태양 쪽이랑 라이벌 구도가 서지 않았나?”
“그런 게 좀 있지요.”
정반대의 성향 때문인지, 두 집단은 알게 모르게 라이벌 구도에 서 있었다.
태양이 업계 1위인 데 반해 새론은 업계 5위다.
그 순위로 보면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태양은 업계에서 수임료로 톱을 찍었지만 새론은 수임료가 그만큼 높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신에 소속 변호사들의 돈을 마이스터를 통해 불려 주는 방식을 채택해서, 결과적으로 수임료 순위로는 5위일지 몰라도 변호사 개인당 수익률은 새론이 1위다.
그렇다 보니 태양 쪽에서 미묘하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뭐, 재미있는 상황이기는 한데, 사실 우리가 나설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긴, 그건 그렇지.”
양쪽 다 당사자가 변호사이긴 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건에서 소송해야 하는 대상은 새론과 태양이 아니라 각 보험회사다.
그 과정에서 진술 같은 건 해 줄 수 있지만, 그걸 노형진이 알아서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대충 상황을 보면 뭐 7 : 3 정도 나올 것 같은데.”
“뭐, 상관없지요. 제대로 엿 먹은 건 제가 아니라 주식태니까요.”
현재 정비 업체에서 나온 견적은 그의 차가 대략 1,100만 원 그리고 노형진의 차가 2억 1천만 원이다.
설사 5 : 5가 나온다고 해도 노형진이 줘야 하는 돈은 550만 원이지만 그가 노형진에게 줘야 하는 돈은 1억 500만 원이다.
그리고 거기에 동급 차량의 렌트비가 더 나온다.
“다만 아쉬운 건, 그 돈을 보험사에서 내야 한다는 거지요.”
“나도 그게 조금 아쉽네. 제대로 엿 먹일 수 있었는데.”
물론 그만큼 보험이 할증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쯤 하면 그래도 정신 좀 차리지 않겠습니까?”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상대가 자기 이상으로 미친놈이라는 걸 알면 보통은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법이니까.
‘보통은’ 말이다.
***
“얼씨구?”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노형진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입구를 다른 차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국산 차가 아니라 수입 차다. 그것도 싼 것도 아닌, 2억 8천만 원짜리.
“뭡니까, 이거? 어? 아저씨, 눈이 왜 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