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044)
대리전 (2)
물론 입주민인 주식태가 경비원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의 인생을 망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버려진 쓰레기에 관해서 그 관리 회사조차 묵인해 주는 상황이라면 그가 고발을 넣을 이유는 없다.
거기에다 단순 고발도 아니고, 압력을 행사해서 고작 이 정도 사건에 수색영장이 나오게 한다?
말도 안 된다.
그러면 답은 하나뿐이다.
“채림이 아버지가 거기 대표 아닙니까? 손하균.”
“아, 맞다. 그랬죠.”
“그래서 제가 성격을 잘 압니다. 손하균 씨는 능력이 됩니다. 야망도 있고요. 문제는, 그만큼 비정하지요.”
직장인의 동료애? 서로를 배려하는 직장 문화?
그런 건 없다.
태양의 분위기는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약육강식.
“채림이가 집을 나온 후로 집에 전화 한 통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겁니다.”
그러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손채림의 아버지인 손하균은 딸과 가족에게도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못 버틴 아내는 이혼하고, 딸인 손채림도 손절을 하고 따로 나와 사는 지경이 된 것이다.
“손하균이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바로 승리죠.”
“노 변호사님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승리를 위해서는 뭐든 한다. 어떤 면에서는 비슷합니다. 최종 목적이 승리라는 점은 같지요. 하지만 시작점이 다릅니다.”
노형진이 추구하는 승리는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 내는 승리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승리해서 의뢰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에 반해 손하균의 승리는 말 그대로 그게 목적입니다.”
패배하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바로 축출 대상이 되는 거다.
“새론이 최선을 다해서 싸웠어도 별수 없었다면 포기하는 분위기인 데 반해 그들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증인에 대한 린치나 공격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증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별의별 수를 다 쓰지요.”
증인이 없으면 사건도 없다.
그게 바로 해결책인 경우, 태양은 진짜 죽이지는 않지만 증인을 자살시키기 위해 별의별 고소와 괴롭힘을 다 한다.
증인이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위증을 하든가 자살을 하든가, 둘 중 하나다.
“두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을 뿐, 태양은 그런 방식으로 재판에서 승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게 회사의 승률이나 홍보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변호사라면 그 책임감은 어마어마하다.
“주식태가 안하무인으로 굴고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하긴 하지만, 그 배경에는 아마도 법무 법인 태양으로부터 받는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 문제도 있을 겁니다.”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으면 좀 더 온화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법무 법인 태양은 약육강식.
아무리 주식태가 부대표의 자리에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을 꺾고 이겼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매일같이 이기는 건 힘들죠. 특히 요즘 태양의 승률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아니다, 알 것 같네요.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맞습니다. 정권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이 정권을 뒤에 두고 판결을 내리게 할 수는 없게 되었지요.”
과거에는 정권에 반대되는 판결을 하면 국가 차원에서 보복하고 그마저도 결국은 2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대부분 태양에 유리한 판결을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태양은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되었지요.”
물론 태양도 일본에 그동안 받아먹은 게 있기에 최대한 사건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장 재판 중인 홍안수의 변론을 담당하는 게 바로 태양이니, 그들이 얼마나 한 몸처럼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태양 쪽에서야 설사 살인마라고 할지라도 변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만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적이 다른 건 사실이지요.”
태양은 어떻게 해서든 홍안수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설마 태양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모종의 집단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요?”
민시아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홍안수 사건 이후에 사방에 숨어 있는 일본인 스파이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는 게 드러났으니까.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손하균의 성격을 봐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네? 하지만 그가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네. 그리고 안하무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 아래에 들어갈 사람은 아닙니다. 그의 실력은 진짜입니다. 일본에서 손하균을 포섭하려면 웬만한 돈으로는 안 될 겁니다. 애초에 채림이네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손채림은 심각한 길치 성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타고난 게 아니라, 평생을 오로지 운전사가 태워다 주는 차만 타고 다녀서 생긴 후천적 길치였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부자였으니 딱히 일본에 포섭되어서 그들을 위해 일할 이유가 없지요. 그는 일본 스파이는 아닐 겁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손잡을 수는 있겠지만요.”
그리고 현 상황에서 그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일본은 한국의 동맹국이니까.
“그러면 이번 사건은, 그 주식태가 스트레스에 못 이겨서 저지른 짓이라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그렇게 공격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요.”
“저는 이해가 갑니다. 당해 본 경험이 있거든요.”
“네? 의외네요? 그런 경험이 있을 틈이 없었을 것 같은데.”
“하하하.”
‘회귀 전이니까.’
노형진이 회귀 전 군에서 제대하고 잠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매일같이 찾아와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로 뭐가 불편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그저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토해 낼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법무 법인 태양의 부대표 정도라면 상대하는 클래스가 있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건이 상위 클래스와 얽힌 건일 것이다.
지면 지는 대로 어마어마한 부담이고, 죄다 신분상 자신들보다 높은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그걸 경비원에게 푼 거고요.”
그러다가 노형진과 엮이면서 이 싸움이 난 거다.
“그런데 의외네요. 보통이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갈 일인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손하균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노형진에 대한 패배? 그건 치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완벽한 삶을 파괴시킨 존재가 바로 노형진이다.
노형진 때문에 딸인 손채림이 그의 손에서 벗어났고, 아내와 이혼하고 그 과정에서 재산도 어마어마하게 빼앗겼으니까.
“이참에 주식태를 통해 대리전을 하려고 하는 거죠.”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과정에서 경비원을 이용하는 거구요. 제 성격을 아니까.”
경비원을 공격하면 노형진이 방어에 나설 것이다.
그걸 예상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노 변호사님이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나서지 않으면 주식태 마음대로 한 사람의 인생을 종 치게 만들고 끝나는 거고요. 설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태양에는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건 대 사건으로 붙은 거다.
그러니 태양은 진다고 해도 딱히 피해가 없다.
“누군가를 대표로 방패 삼아서 싸우는 건 오랜 수법이지요.”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군 가산점 재판이다.
그 당시에 여성 단체에서 방패로 내세운 것이 바로 장애인들이었다.
장애인들이 군 가산점을 못 받아서 공직에 진출하지 못한다고 소송하는 데 도와준 것이다.
물론 그 후에 장애인들은 여성 단체에서 버려졌다.
실제로 법률 세계에서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 힘든 경우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소송하는 것은 그다지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쪽 사람들 진짜 마음에 안 드네요.”
“민 변호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사실 소송의 30% 이상은 감정싸움인 거.”
소송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인생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런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건 보통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한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싸움은 대부분 결국 자기 기분 나쁘니까 상대방을 괴롭히려고 하는 짓인 경우가 많지요.”
특히나 법에 대해 잘 아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법대로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법을 모릅니다. 하지만 조용히 찌르는 놈들은 법에 대해 잘 알지요.”
법대로 하자는 건 본인도 법에 대해 잘 모르니 법을 들먹이면 상대가 지레 쫄 거라 생각해서 내뱉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고소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법에 대해 잘 알고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이들이다.
그중 상당수는 그 법을 자신이 지배할 수 있다 생각하고.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이거군요.”
“맞습니다.”
크게 짖어 대는 개는 경고하는 거다.
접근하지 말라고.
물론 코너에 몰리면 물기는 하겠지만, 일단 경고한다는 점에서 사람이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사람을 무는 개들이 있지요.”
그런 개들은 인간을 사냥감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경고도 없이 조용히 다가가서 물어뜯는다.
“그런 개들은 방법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불쌍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개들의 처리 방법은 살처분뿐이다.
하물며 인간을 죽이는 인간도 사형에 처한다. 그런데 개라고 왜 특혜를 받아야 하겠는가?
“하지만 사건 자체가 애매한데…….”
민시아는 그게 걱정이었다.
이쪽에서 총력전으로 나가기에는 사건이 너무 작다.
그러나 경비원 입장에서는 사건이 너무 크다.
금액 자체는 얼마 되지 않지만, 확정되는 순간 경비원은 해직당할 수밖에 없다.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나름의 방법을 쓰죠. 우리도 대리전을 하는 겁니다.”
“대리전이라…….”
“일단은 부녀회부터 털어 주죠.”
주식태의 와이프가 부녀회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식태는 그녀를 통해 관리 회사를 바꾸겠다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 기억났다!”
노형진의 말에 민시아는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런 경우의 대응책을 노형진이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조직폭력!”
“후후, 기억하시네요.”
“저도 그 사건을 보고 황당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해결책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노형진이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오피스텔에서 살 때, 그를 상대로 협박을 하던 부녀회가 있었다.
사실 한국의 부녀회에서 가지는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그 권력에 취해서 그들은 선을 넘었고, 노형진은 그들을 단순 폭행이 아니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즉 조직폭력배로 고소해 버렸다.
“그런데 부녀회를 만들었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아요?”
“아니요. 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부녀회에 관련된 법적인 규정이 없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이지요?”
대표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대표권이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애초에 칭호 자체가 부녀회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아파트 명의는 남편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녀회가 운영되는 경우에는 정작 집주인인 남자가 가입하지 못하는 괴상한 형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현재는 대부분 아파트 입주민 회의라는 형태로 구성되지요. 하지만 이곳에는 아파트 입주민 회의가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부녀회에서 권력을 잡은 상태였기에 말 그대로 시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