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
그 말에 청계의 변호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말인즉슨 자신들이 제출한 글과 《비 오는 날의 무지개》와의 연관성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득의양양해지는 얼굴들. 하지만 다음 질문에서 그들의 얼굴은 급속도로 딱딱해졌다.
“그럼 동일 작가가 썼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동일 작가가 썼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어떠한 글을 보고 베끼다시피 이용하여 베이스로 삼고 살짝 고쳐 썼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겁니다.”
“무슨 뜻이죠?”
“창작한 게 아니라 고쳤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동일성은 10% 내외입니다. 이 부분은 작가의 버릇이나 창작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 바뀝니다만 10%를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럼 70% 라는 건? 표절?”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기존에 있던 작품을 살짝 내용을 바꾸고 몇 가지를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동일 작가인 경우 자기 표절이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표절?”
“네, 전작을 베껴서 썼다는 뜻이지요.”
“피고의 신작이 도리어 옛날 글을 베껴서 썼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당황하는 청계의 변호사들이었다.
“재판장님, 보다시피 피고의 신작은 저작권 분쟁 중인 《비 오는 날의 무지개》, 아니 ‘비 오는 날의 우울’을 베껴서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피고가 동일 작가라면 전작을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베껴서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흠.”
“즉, 피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의 창작을 포기하고 과거의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여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피고의 상황이 특별히 변하지 않은 이상에야 그럴 이유는 하나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입니다.”
민시아가 안으로 들어가자 판사는 피고 측을 바라보았다.
“질문 있습니까?”
“아, 네, 네, 네.”
당황하고 있던 그들은 허둥지둥 나왔다. 그러고는 증인석의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증인은 자기 표절이라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증인도 피고의 작품을 봐서 알겠지만 그 특성상…….”
“전 피고의 작품을 보지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순간 당황하는 청계 쪽 변호사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반적으로 이럴 때의 파훼법은 상대방이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예 보질 않았다면 무슨 선입견이 있겠는가?
“원고 측 변호사는 분석을 의뢰하면서 어떠한 개인적 감정도 없기를 요구했고 저 역시 그 부분에 동의하였습니다. 컴퓨터 작업은 제 제자와 조교에게 부탁했고 증인 본인은 두 작품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연재되었다고 말한 그 작품들 역시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그럼 아까 말한 70%니 10%니 하는 그건……?”
“제 판단이 아니라 기계의 판단입니다.”
“아…….”
청계의 변호사들은 반박할 말을 잊어버렸다. 최고의 증언 파훼법이 증인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방식인데 아예 증인 자체가 감정이 없는 무생물이니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계가…… 오류를 일으킨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해당 결과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와 제휴하는 세 곳의 대학에서 동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세 대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고장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습니까?”
“각 학교는 학생들과 조교들, 교수들의 논문 표절을 막기 위해서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럼 동일한 실험을 세 번 했는데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맞다. 자신이 쓸 능력이 되면 자기 복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걸 직접 쓸 능력이 되지 않으니 복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
변호사는 할 말이 없었다. 상대방이 인간이어야 반격하는데 상대방이 인간이 아니니 어떻게 공격할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입니다.”
결국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인간만을 상대해 온 그들은 기계라는 새로운 적수에 대해서 뭐라고 공격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던 노형진은 그런 것에 익숙했다. 미국에서는 과학적 증거가 아주 중요한 판단의 척도로 쓰이기 때문에 과학적 시스템을 쓰기 마련이고 변호사들은 그런 증거에서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약점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판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도 청계의 이름을 모르지는 않는다. 비록 자신이 아예 깨끗한 인간은 아니라 할지라도 청계의 변호사들처럼 돈 앞에 영혼마저 팔아 버리지는 않았다. 모른 척해 주는 것과 아예 불법을 조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 말이다.
“끙.”
그걸 본 청계의 변호사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개인적인 사건이라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문학적 소양에서부터 현실적인 분석에까지 모든 것에 익숙해 보였다.
“도대체 저년은 뭐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왔습니다.”
“젠장.”
그들이 봤을 때 민시아는 다크호스였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들이 이길 싸움이었다. 증거가 없는 저쪽과 달리, 이쪽에는 출판계약서 등 주요 증거가 있다. 그런데 저쪽에서 출판계약서를 증거 목록에서 날려 버렸다.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작품의 제작에 관해서 증명까지는 못 하더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피고 측, 불러올 증인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말에 판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없습니까?”
“네.”
분명 저쪽은 증인 신청서를 냈고 오늘 모 대학의 교수가 증인으로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르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저쪽에서 교수를 부른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반박하기 위해서 부른 건데 상대방이 프로그램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원고 측은 부를 사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만, 피고 측이 부르려고 했던 증인을 원고 측 증인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피고 측 증인을 원고 측 증인으로요?”
“그렇습니다.”
그 말에 눈이 파르르 떨리는 청계의 변호사들. 보통 증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람으로 부르고, 불리한 사람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불리한 사람을 불러들이다니.
‘자신 있다는 거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그러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흠.”
지금까지 없던 사태에 잠시 고민하던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 되었든 판사의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더 의견을 들어야 하니 말이다.
“인정합니다. 피고 측 증인은 원고 측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네?”
피고 측 증인은 순간 당황했지만 어찌 되었든 부른 이상 여기까지 와서 안 나갈 수가 없었다.
그가 증인석에 앉자 민시아는 앞으로 다가왔다.
“증인은 카피킬러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럼 증인의 대학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까?”
“저희 대학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선택할 사항이 아닌지라.”
“증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기록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다섯 건의 전문 논문 표절과 스물네 건의 졸업논문 표절 사건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맞습니까?”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원고 측은 피고의 학교 표절 시비에 관한 뉴스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데요?”
“기타 증거로 제출하는 바입니다.”
“인정합니다.”
기타 증거는 사건과 관련은 없지만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일정 부분 감안해도 되는 증거를 뜻한다.
“그에 반해서 카피킬러를 설치한 세 곳의 대학에 대한 5년간 기록을 보면 첫해 서른다섯 건의 표절이 발견되고 2년째에 열세 건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후 내리 3년간 어떠한 표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카피킬러의 성능이 상상 이상이라 표절 시비가 될 만한 행동 자체가 사전에 차단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증인의 학교에서는 그걸 설치하지 않았나요?”
“글쎄요.”
“그럼 증인의 학교에서는 표절 시비에 대해서 관대하게 판단하는 겁니까?”
“그건 잘…….”
“딱히 하실 말씀이 없나 보군요.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마치겠습니다.”
별로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 가는 민시아.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청계 측 변호사들은 점점 얼굴이 구겨졌다. 민시아, 아니 민시아의 입을 빌려서 노형진이 하는 질문은 전혀 상관없는 듯하면서도 허점을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피고 측 변호인, 질문하세요.”
‘젠장.’
결국 질문하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은 절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처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보가 뭐가 잘못된 거야?”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청계의 변호사.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얼핏 카피킬러의 성능 자랑처럼 보이지만 교묘하게 대학의 논문 표절 사실을 공개하고 이를 결부시킴으로써 증인에 대한 믿음을 확 깎아 버린 것이다. 이제 자신들이 무슨 질문을 하든 증인이 다니는 대학 자체가 표절에 대해서 관대한 곳이니 저작권 사건인 이번 재판에서 주효한 증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망할.’
“없습니다.”
증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쓸데없는 질문을 해 봐야 의미도 없다. 도리어 꼬투리를 잡혀서 반박당하게 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불러온 증인에게 한마디도 물어보지 못했다.
“더 이상 증인이 없으면…….”
‘이쯤에서 끝낼까?’
노형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쯤이면 충분히 의심은 끝났고 남은 것은 끝내기 한판뿐이다. 다음 재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재판장님, 마지막 증인을 부르고자 합니다.”
노형진의 신호를 받은 민시아는 당당하게 일어나서 말을 꺼냈다.
“인정합니다. 부르십시오.”
마지막 증인이라는 것이 이번 판을 끝내겠다는 뜻이라는 걸 아는 청계의 변호사들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인데 무슨 증인이 더 있단 말인가?
“증인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증인이 자리에 앉자 민시아는 증인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사랑 출판사의 편집장인 황학교라고 합니다.”
“사랑 출판사는 뭐 하는 곳이죠?”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입니다.”
“그럼 피고인 정상하가 책을 낸 출판사와 동일 업무를 진행하나요?”
“뭐,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피고 측이 낸 출판사와 일면식은 없지만 일단 로맨스라는 동일한 장르를 출판하고 있습니다.”
전혀 엉뚱한 출판사의 등장에 약간은 당황하는 사람들. 물론 동일 출판사는 아니지만 동종 출판을 하고 있다고 하니 뭐, 문체가 비슷하다든가 아니면 카피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발언을 하려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건 충분히 나왔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질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럴 거면 내가 데리고 올 리가 없지.’
노형진은 증인을 찾기 위해서 기록에 있던 블로그 접속자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 뭔가요?”
“‘사랑의여로’입니다.”
“여기 증거상에 드러난 메일 주소가 귀하의 메일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슨 메일이죠?”
“회사의 법인 메일입니다. 회사 차원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메일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의여로’라는 닉네임을 가진 계정은 회사 차원에서 쓰는 계정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태를 깨달은 청계 쪽 변호사는 말 그대로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튀어나온 것이다.
“보다시피 ‘사랑의여로’라는 닉네임은 2년 반 전, 그러니까 원고의 작품인 ‘비 오는 날의 우울’이 완결될 때쯤에 수십 차례 해당 블로그를 방문했습니다.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이유는요?”
“출판계약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계약을 하고 싶어서였다?”
“네.”
“근데 왜 못 했죠?”
“답장이 없으시더군요.”
“그래서 포기한 거다 이거죠.”
“네.”
“그럼 그와 관련된 증거가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그 당시 계약 승인을 받기 위해서 내용 중 일부를 캡처하고 올린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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