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07)
바꿀 건 바꾸자 (2)
아버지는 막 끌려가려는 소진아에게 매달렸다.
그 순간 슬쩍 노형진이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만.”
“누구?”
“변호사입니다.”
“변호사요?”
변호사라는 말에 노형진에게 매달리는 소진아의 아버지.
“변호사님, 제발 살려 주세요. 우리 딸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딸 좀 살려 주세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아직 중상해인 것 같더군요.”
“네, 그렇습니다만?”
경찰은 모른 척 대답을 했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러면 지금 가서 기증하면 어떻게 됩니까?”
“네?”
“보니까 위험한 상황에 기증을 거절해서 문제가 된 것 같은데, 다시 말하면 환자는 아직 살아 있다는 거 아닌가요? 중상해니까.”
만일 죽었다면 당연히 살인이 되어야 하지만 면역 시스템만 붕괴된 것이니 중상해다.
즉, 아직은 환자가 살아 있다는 거다.
“어…… 만약 지금 가서 기증하시면…….”
경찰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경우는 답이 어떻다는 걸.
“그러면 혐의 없음이 되겠군요.”
기증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조혈 모세포 기증을 했다면 그건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게 실패해서 죽는다고 해도, 기증 계약은 기증이 완료된 시점에서 끝나는 거다.
기증이 완료된 시점에서 그 적응이 성공해서 살든 아니면 실패해서 죽든, 그건 의학의 영역이지 기증자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렇죠? 기증 계약만 이행되면 혐의 없음이 되는 거 맞지요?”
“일단은 그렇게 되겠지요?”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영장이 나온 상태라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가서 기증하겠습니다. 기증하게 해 주세요.”
“하지만 체포 영장이 나온 거라…….”
경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경찰에게 소진아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제발…… 우리 딸 좀 살려 주세요.”
“하아.”
“그냥 모른 척해 주시죠. 체포 영장은 구속영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체포란 말 그대로 데려다가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강제로 잡아 둘 필요는 없다.
“그러니 가서 기증해 줄 수 있게 해 주시죠.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알겠습니다. 사람이 우선이니까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죠, 어차피 서울로 가야 하니.”
노형진은 그렇게 슬쩍 끼어들었고, 잠시 후 거기에 손채림까지 합해서 네 사람은 서울로 출발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소진아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따라오는 아버지의 차량.
“미안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진짜 처벌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건 그런데, 부모님을 속인다는 게…….”
“딱히 속인 건 아니죠. 만일 거절하셔서 진짜로 처벌이 확정되면 부모님도 살인 교사범이 되시는 겁니다.”
부르르 떠는 소진아.
“그러면 가서 바로 하는 건가요?”
“네. 바로 조혈 모세포를 뽑아내게 될 겁니다. 다행히 모든 검사는 이미 끝났으니까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분이 성공하셨으면 좋겠네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형진은 창밖으로 흐르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도, 모두가 살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소진아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 행동으로 허락을 받아 낸 것이다.
하지만 박성인의 회사인 앤티크광고기획은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사흘만 빼 주세요. 사람이 죽게 생겼습니다.”
“이 새끼가, 내가 월급을 너무 많이 줬더니 대가리에 똥이 찼나? 안 된다고 했지? 지금 일이 너무 많은 거 알아, 몰라?”
“일은 늘 많지 않았습니까? 인원이 부족하다고 한 게 벌써 몇 년입니까?”
하지만 그 인원 보충은 언제나 거절당했다.
“지금 있는 인원으로도 충분한데 내가 왜 뽑아?”
“사람이 죽는다니까요!”
“그냥 죽게 놔둬. 알지도 못하는 새끼야 뒈지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넌 내가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해. 어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새끼가, 뭐? 기증? 지랄하고 빠졌네. 그래, 기증하고 싶으면 니 인생 조지고 기증하든가. 너 기증하면 내가 이 바닥에서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알아?”
사장인 장익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서 일해!”
박성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장실에서 나왔다.
그걸 보면서 직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박 과장, 너무 신경 쓰지 마.”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그런 거 다 신경 쓰면서 어떻게 살아?”
“글쎄요. 신경 쓰지 않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지금이라도 새로운 직장 알아보세요.”
“뭐? 무슨 소리야?”
“여기, 아무래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니? 진짜 왜 그래? 화가 나서 그래?”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하여간…… 오늘 저녁에…… 그것을 알고 싶다> 보세요.”
“ 그것을 알고 싶다>?”
“보시면 알아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그리고 ‘보면 안다’는 아리송한 말, 그 말의 뜻을, 그들은 그날 저녁 방송이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
“오늘 전혀 상관없는 주제인데?”
그것을 알고 싶다>의 오늘 주제는 사기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도대체 뭘 보란 거야?”
박성인과 같은 직장의 상관인 김성광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이야기.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
그러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자본주의의 살인
기업의 강제적 압력으로 인해 조혈 모세포 기증을 실패한 분들을 찾습니다.
매주 그것을 알고 싶다>는 취재하고자 하는 사건의 정보원을 찾는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한다.
당연하게도 지금 방송에서 하는 말이 뭔지, 김성광은 모를 수가 없었다.
조혈 모세포 기증을 시도하였으나 회사에서 금전적 이유 때문에 기증을 방해받은 분들을 모십니다. 한 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타의에 의해 기증 의사를 철회하고, 그 때문에 수만 명의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 그 뒤에는 단 사흘의 시간이 아까운 자본주의가 있습니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살인. 제보자들을 모십니다.
“저…… 저…….”
회사가 작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모두 안다.
그리고 박성인이 사흘만 달라고 빌던 모습도 봤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성광은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네, 박성인입니다.
“야! 너 지금 방송 나온 거 뭐야?”
-…….
“너 설마 아니지?”
-이미 제보해 놨어요. 녹음 파일도 제공했고.
“야, 이 미친 새끼야!”
-이미 늦었어요.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살인 교사로 수사 들어간다고.
“사…… 살인 교사?”
-죽을 걸 알면서도 강제했잖아요. 저 내일 회사 안 나갑니다. 일단 살인죄는 피해야 하니까 기증하러 갈 겁니다. 어차피 그 회사, 오래 못 가요.
당연히 오래 못 간다. 갈 수가 없다.
이 정도로 세게 때려 버렸는데 계속 살아남는다면 그게 비정상적인 거다.
“우리는 어쩌라고!”
-지금이라도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요.
“무슨 수로, 이 새끼야!”
-업체를 가지고 가면 되잖아요.
“업체?”
-어차피 이거 터지면 우리랑 일하는 회사들 다 날아가요.
업체들이 미친놈도 아니고, 살인범이 운영하는 회사와 손잡고 싶어 할 리가 없다.
물론 광고에 그런 정보는 들어가지 않지만, 혹시라도 그 사실이 드러나면 진짜 회사가 망하는 수도 있다.
광고라는 것은 이미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망가트릴 수 있는 변수를 광고 회사가 좋아할까?
-미리 관련 정보를 빼내서 다른 광고 업체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박성인의 말에 김성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배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있는 회사가 악덕 기업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식 표현을 빌리자면 블랙 기업 같은 거다.
“너 진짜 작심했구나.”
-그래야지요. 더 이상 더러운 꼴은 못 보겠으니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단 사흘의 휴가를 주지 않는 기업들.
물론 그게 살인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애초에 판례도 없고 직접적인 공격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데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결국 그 블랙 기업들이다.
-저라면 다른 기업에 전화해 볼 거예요.
그리고 끊어지는 전화.
순간 김성광은 아차 싶었다.
가장 먼저 제보한 것은 박성인이다.
당연히 그는 거래처를 빼내서 다른 곳으로 가기로 이미 약속도 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성광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쩌지? 어떤 것으로 빼 가지? 아니, 잠깐만…… 제일 좋은 건…… 박성인 그놈이 빼냈을 거야. 그러면 남은 건…….”
그는 고민하다가 적당한 거래처 하나를 찾았다.
얼마 전에 계약하고 제작에 들어가기 직전의 중견 기업이었다.
자신이 전담 직원이니 박성인이 빼낼 수도 없는 곳이다.
김성광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앤티크광고기획의 김성광입니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런 전화가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날 수밖에 없지.”
경찰에서는 이번 사건을 살인 교사로 보고 수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그런 제보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회사 때문에 결국 기증을 못 했다는 제보.
그리고 그 제보를 본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자기 기증을 거부한 사람들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제보.
법률 프로그램에서는 이것이 살인이 될 것이냐에 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에서 토론을 하도록 돈을 준 것은 노형진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게 살인이 아니냐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고, 더군다나 아이들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보호 대상으로 본다.
아이들이 그러한 기증 거부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극도로 분노한 사람들은 살인마 기업을 찾기 시작했고, 회사의 압력에 못 이겨 기증을 거부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양심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양심선언을 하는 거야?”
“기증자들이니까.”
“그게 뭔 소리야?”
“이기적인 사람들은 기증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아. 너도 알잖아?”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기적인 사람이 과연 남을 위한 조혈 모세포 기증에 동의할까?
안 한다.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아예 초반에 거절해 버린다.
그러나 초반에 거절하는 건 상관없다.
면역 시스템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문제로 사람이 죽을 일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볼 시간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막판에 회사 때문에 기증을 못 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한 이들이야.”
마음이 약할지언정 악하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이, 남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까?”
“설마?”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하지만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내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과연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네.”
“불가능하지. 내가 장담하는데 대부분은 이직했을 거야.”
자신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시킨 회사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계속 다닐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입 닥치고 있었겠지.”
그걸 처벌한 방법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언론에서 신나게 씹어 대기 시작했지.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
“밉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