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08)
바꿀 건 바꾸자 (3)
자신을 이런 고통 속에 살게 만든 회사가 밉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복수하고 싶어 하겠지.”
그 복수의 방법이 무엇인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경우는 바로 인터넷의 양심선언이다.
“그것도 실명을 까고 하는 거지.”
“하지만 이렇게까지나 많다고?”
양심선언이라고 올라오는 글이 수백 개가 넘어간다.
퍼 가는 사람들도 있고 가짜도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더 많았다.
“당연한 거야. 이들 입장에서는 기증이 실패했다는 것이 중요한 거거든.”
“아!”
기증한 사람에게 상대방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상대방의 신분도 알려 주지 않는다.
대략적인 정보, 나이와 성별 정도만 제공하는 게 보통이다.
“즉, 초기 기증 실패도 기증 실패란 말이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화학요법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승인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락이 오면 입원 과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설명해 주니까.
“그런데 거기서 안 된다고 하면 그냥 기증 실패거든.”
그러면 그 상대방이 다른 기증자를 만났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그도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써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건 기업 때문에 기증에 실패했다는 거지.”
“너도 그냥은 안 넘어가는구나.”
“넘어갈 만한 문제가 아니잖아.”
자의도 아니고, 타의에 의해 기증이 실패하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다.
생존의 기회가 단 몇십만 원 때문에 사라진다.
“그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잖아?”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두 분 다 살았지만.”
노형진의 계획 덕분에 두 사람 다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확실하게 못 박아야지.”
기증을 막는 것은 살인이라는 이미지를 전국에 박아 두고 그런 회사들을 몇 군데만 망하게 한다면, 다시는 그런 헛짓거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망하게 한다라…….”
“망하게 해야지. 사람 목숨 위에서 서 있는 기업은 정상적인 기업일 수가 없어.”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기업은 조혈 모세포 기증을 위해 입원하면 휴가를 주고 사장이 좋은 일을 한다며 직접 병문안을 오고 심지어 금일봉까지 하사하는데, 어떤 곳은 단 몇만 원 때문에 휴가도 안 주고 착취에 눈이 멀어 사람을 죽게 몰아붙인다.
“그런 놈들은 망해도 싸지.”
“그래, 망해도 싸지.”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한번 시작된 인터넷상의 고발은 자연스럽게 기업의 실명을 까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실명을 까지 않아도 대충 어떤 기업인지 정보는 다 흘려 놓은 편인지라, 악착같이 직원을 쥐어짜던 회사들은 난리가 났다.
물론 실제 사건으로 연결된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저도 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회사에서 거기에 기증하러 가면 죽여 버린다는데 뭐라고 합니까?”
“그러면 좀 빨리 말하든가요. 화학요법까지 다 끝내 놓고 면역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도망을 가요? 그건 살인입니다, 살인!”
경찰의 말에, 진짜 살인자가 된 직원들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동안의 기록을 확인해서 일정 한계, 즉 화학요법이 끝난 시점에서 도망간 사람들을 죄다 살인으로 기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법률적으로 아직 확실하게 자리가 잡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증도 결국은 계약의 하나이고, 수차례의 의견 교환이 있었으며, 철회 시에 환자가 사망한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
“애초에 안 한다고 했으면 되잖아요.”
“회사에서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니까요!”
“그러면 살인을 교사한 것은 결국 회사라는 거네요?”
“아니, 살인을 교사한 게 아니라…….”
“그러면 환자가 죽는다는 걸 알고도 단독적으로 기증 계약을 깬 건가요?”
“아니요……. 회사에서 시킨 건 맞아요.”
“잘 생각하세요. 제대로 증언해야 책임 문제가 안 불거집니다.”
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회사에서 시킨 거 맞아요.”
“맞지요?”
“네.”
“증언해 줄 사람 있어요?”
“있지요.”
그렇게 빠르게 퍼지는 살인마 기업들.
대기업들 중에는 그런 곳이 없었지만, 중소기업들 중에는 수두룩했다.
특히나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앤티크는 치명적일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그 새끼가 뒈지든 말든 대체 무슨 상관인데?
-고작 다섯 살짜리를 죽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네 자식을 죽여, 이 새끼야. 왜 알지도 못하는 새끼를 살리는데 내가 피해를 봐야 되냐고!
-사흘입니다. 딱 사흘만 주시면…….
-그냥 죽게 놔둬! 그런 새끼한테는 사흘이 아니라 세 시간도 아까워! 나가서 일해, 이 새끼야!
전국으로 방송된 사장의 말은 아무리 변조했다지만 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금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거래하던 회사들은 다급하게 손절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사장님. 그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닙니다. 그 새끼가……!”
-장 사장,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길게 통화하지 맙시다. 어차피 오래가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사장님!”
하지만 가차 없이 끊어지는 전화.
앤티크의 장 사장은 멘탈이 나간 듯 전화기만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씨발!”
방송에 뉴스가 나간 후에 출근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를 맞이한 것은 책상에 있던 직원들의 사표였고, 사방에서는 살인마 기업 앤티크광고라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앤티크만 그 꼴이 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그런 식으로 직원들을 쥐어짜면서 사람을 죽이는 데 일조했던 기업들은 죄다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앤티크광고의 장 사장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성인이 그만두고 나가서 살인죄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거지만, 아직 살인 교사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쾅!
그 순간 열리는 문. 그리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
“이 새끼야! 너, 뭔 짓을 한 거야!”
그들은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이었다.
고작 직원 열다섯 명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고작이 아니다.
직원 열다섯 명을 고용하여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한 달에 5천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즉, 투자자가 없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한다.
그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때마다 그들에게 이익을 배분해 줘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씨발 새끼야!”
장 사장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투자자들.
“내 돈 내놔! 내 돈!”
“경찰 불러!”
완전히 망해 버리게 된 장 사장은 이런 상황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웃어? 웃어?”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시작되는 폭행.
그러나 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하.”
***
앤티크는 시작일 뿐이었다.
제3의눈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기업과, 그들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에 대하여 합법적인 선에서 보복하겠노라고 천명했다.
그렇잖아도 제3의눈이 가진 위력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거래하던 기업들은 너도나도 손절을 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제야 다급하게 조혈 모세포의 기증을 방해하거나 협조 요청을 거부하는 기업들에 대한 처벌을 하겠노라고 설치기 시작했다.
“참 빨리도 바꾼다.”
노형진은 처벌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처벌은 오래전에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결국 그들이 그러한 처벌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면 이제 끝난 건가?”
“일단은 끝났지.”
아직 법리적인 판단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건 노형진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재판부에서 판단하고, 그 후에 법에 적용되게 될 것이다.
“진짜 절묘하기는 하네.”
“확실히 애매하기는 하지.”
이런 사건은 책임의 영역이 애매하다.
기증은 자유다. 하지만 그 약속으로 인해 생명이 위험해진 경우,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도주한 경우 그건 미필적고의가 될 수밖에 없다.
“기증도 결국 일종의 계약이거든.”
“그래도 의외로, 반대로 늘어났다?”
기존의 기증 단체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러한 고발로 인해 사람들이 기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표적을 기업으로 잡은 거야.”
물론 자기가 갑자기 겁이 나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 또는 기업의 반대로 기증을 철회한다.
“아예 다른 기업을 공격함으로써 기증자에 대한 이미지를 지킨 거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기업에서 방해해서 그들이 살인자가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살인을 시킨 것은 기업이라는, 일종의 속임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보고 기증자를 욕하는 게 아니라 기업을 욕했고, 그 후에 즉흥적으로 조혈 모세포 기증을 신청했다.
“하지만 순간적인 감정에 하는 거잖아. 나중에 진짜로 하려고 할까?”
“최소한 검사 대상이 많다면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할 수 있지 않겠어?”
“하긴 그러네.”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명이라도 기증자가 더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확실하게 사례가 생겼으니까.”
화학요법 이후의 기증 거부는 살인이라는 확실한 이미지를 박았다.
“하지만 아직 재판부에서 나온 건 아니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야.”
“아니라고?”
“민사소송이 있잖아.”
“아!”
어찌 되었건 그들이 기증을 거부하고 도망감으로써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
형사적으로 어떻게 처벌을 피한다고 해도, 이런 경우 민사소송은 피할 수가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기증도 일종의 계약이거든.”
다만 한쪽에 유리한 계약이다.
“하지만 그 계약이 양자 동의하에 체결된 거라면, 그때부터는 위반 시 당연히 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노형진은 그 문제로 이미 도주한 사람들과 협상 중이다.
그들은 그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적극적으로 회사가 방해한 것을 증명하고 나섰고, 그걸 방해했던 회사들은 외부로 공개되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한번 난리가 났으니 사람들도 기증을 결심할 때에는 진지하게 생각하겠지.”
“회사에서도 그걸 막지 못하게 되고 말이지?”
“그 말이 정답이야.”
현재 기증률은 대략 10% 정도. 그 두 배만 되어도 조혈 모세포 기증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두 배가 된다.
“이번에는 진짜 다급하게 일했네.”
손채림이 의자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자 노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끝난 게 아니야.”
“응? 끝난 게 아니라고?”
“다른 나라들과 유전자 공유 작업을 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걸 시도해 보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기증자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
한국에만, 혹은 미국에만 기증자가 있는 게 아니다.
인종적인 차이 때문에 확률이 떨어질 뿐이지 아예 다르지는 않다.
더군다나 미국에도 한국인 환자나 이민자는 넘쳐 난다.
“설마?”
“맞아. 그런 사람들이 서로 왕래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겠지.”
실제로 백인 환자에게 흑인이 기증한 적도 있을 만큼, 유전자라는 건 누구한테 맞을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아! 미국에 있는 병원들!”
“맞아.”
미국에 있는 병원들을 통해 한국과 다른 나라의 기증자들을 연계하고 그들의 유전적 풀을 교차 채취해서 항공편으로 보낸다면?
“넌 뭐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사람을 구하기 위한 거잖아. 사람이 생명이 달린 일인데 제대로 해야지.”
노형진은 그게 자신의 의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