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26)
피보다 진한 그것 (4)
“시간이 왜요?”
“관리 상태를 보면 바로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보세요, 깨끗하지요? 정원도 관리가 잘되어 있고. 그런데 지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쯤 귀가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 그렇겠네요.”
보통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시간쯤 되면 일단 들어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시설에 있겠네요.”
“시설?”
“내부의 장식이나 집 안의 상태가, 노인분들 취향은 아니지요?”
“으음, 확실히 그러네요.”
개인차가 있다곤 하나 각 지역, 각 세대를 관통하는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할머니네 또는 할아버지네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 나라 사람들의 공통된 취향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는 아무리 봐도 30대에서 40대 취향입니다.”
이런 시골에서 30~40대의 사람들이 살아갈 이유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이유는?
“잠시만요.”
노형진은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농이나 서랍, 화장실 같은 곳을 확인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성용품이 없군요. 즉, 이 집에 여자는 살지 않았습니다.”
“낙향해 온 가족은 아니라는 거군요.”
“네. 흔적을 봐서는 아무래도 네 명 정도의 남자들이 같이 생활해 온 것 같네요.”
“네 명이라…….”
이런 시골에 네 명의 남자가 숨어서 산다?
확실히 이상하다.
“역시 전문 탐사 팀을 불러서 땅부터 파헤쳐야겠네요. 아니면 이 산을 다 뒤지든가.”
이 산속에 뭔가를 감춰 놨다면 그걸 찾아야 하니까.
‘아니야. 분명 여기에 있어.’
신동우의 기억을 읽었을 때 그는 이동식 침대에 묶여서 계속 끌려다녔다.
만일 산속이라면 침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물론 들고 이동하는 형태의 침대라면 모르겠지만, 굴러가는 느낌을 봤을 때 사람이 드는 형태는 아니었다.
신동우야 공포에 벌벌 떨고 있었기에 몰랐겠지만 말이다.
“흠…….”
한참 고민하던 노형진은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은 그 이동식 침대를 이용했다.
그 말은 입구가 침대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며,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 평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고 하면…….
“이 근처에 호스 없을까요?”
“호스요?”
“네.”
“호스는 뭐 하시려고요?”
“확인해 볼 게 있어서요.”
다행히 집 안에는 긴 호스가 있었다.
그걸 수도에 연결한 노형진은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었다.
그리고 호스를 잡고 물을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입구를 찾는 겁니다.”
“입구요? 그런다고 나올까요?”
“나오겠지요. 여기는 전형적인 시골집입니다. 일본식이기는 하지만요. 어찌 되었건 이 마당은 흙으로 되어 있지요. 만일 그 아래에 뭔가가 있다면 흙이 비를 흡수하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내릴 겁니다. 마치 저곳처럼 말입니다.”
“어?”
노형진의 말에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마당의 한구석. 그곳에 쏟아진 물줄기는 땅속으로 흘러들어 가지 못하고 옆으로 퍼지고 있었다.
“입구에 방수 처리는 당연히 해 놨을 테니까요.”
“당장 저기를 치워!”
다급하게 몰려간 사람들이 젖은 흙을 긁어내자 제법 커다란 문이 드러났다.
완전히 굳게 닫혀 있는 문.
“이거 힘으로는 안 열리겠는데요?”
딱 봐도 기계의 힘이 아니면 열리지 않게 되어 있는 두꺼운 문이다.
소리를 죽이기 위해서인지, 금속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문.
“어딘가에 버튼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어이없군요.”
국가의 예산을 빼돌려서 이 정도의 시설을 만든 것도 어이없는데, 노형진의 추측대로라면 이곳은 사람을 고문하고 미치게 만드는 용도로 지어진 것이다.
“야베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사람들은 다급하게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아낼 수 있었다.
“번호 키 같은데요.”
벽의 나무 안에 감춰진 번호 키.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니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거 암호해독기라도 가지고 와야 하는 건가? 아니면 해킹이라도 해야 하나?”
다들 고민하는 그때 노형진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뭐, 일단 아무거나 눌러 보죠.”
“아무거나 누른다고 되겠습니까? 몇 자리 숫자인지도 모르는데.”
네 자리일지 다섯 자리일지 여섯 자리일지 알 수가 없는 번호 키다. 물론 ‘남한테만’.
‘여덟 자리군.’
노형진은 번호 키에서 어렵지 않게 기억을 읽어 냈다.
물론 바로 눌러 버리면 의심받을 게 뻔하기에, 그냥 랜덤하게 한 10분 정도 막 눌렀다.
다행히 비밀번호가 여러 차례 잘못 눌리면 작동되지 않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덟 자리 번호를 누르는 순간, ‘위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바닥을 덮고 있던 콘크리트 문이 그대로 옆으로 사라지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떻게……?”
“어…… 저도 그냥 막 누른 거라…….”
노형진은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노형진이 막 눌러 대던 모습을 10분이나 봐 왔기에 다들 그 운발에 혀를 내둘렀다.
“그게 열리네.”
“일단 들어가지요.”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선두에 선 사람들은 라이트를 들고 권총을 하나씩 어둠 속으로 겨냥하고 천천히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략 10미터쯤 아래로 내려가자 콘크리트로 된 공간이 나왔다.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불을 켜는 것으로 보이는 버튼이 있는데, 켜 볼까요?”
“켜 봐.”
불을 켜자 드러나는 공간.
그 공간은 대략 사방 10미터쯤으로 보였다.
“지하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 두다니 어이없군.”
수사 팀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가운데에 텅 빈 홀을 기준으로 양쪽에 대략 열 개 정도씩 방이 있고 각 방마다 문이 달려 있었다.
“방음도 잘되어 있군.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소리를 질러도 모르겠어.”
그리고 감방의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간단한 걸쇠 형태의 잠금장치지만, 안에서는 절대 탈출이 불가능했다.
지하 10미터니까.
“이거군.”
천장을 보자 작은 호스가 달려 있다.
그건 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사람을 묶어 둘 수 있는 형태의 고정형 침대가 있었다.
노형진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구석에 있는 수도를 열었다.
그러자 호스를 통해 조금씩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다르군요. 무슨 끔찍한 고문 도구들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고문용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자동차용 배터리로 만든 전기 도구뿐이었다.
“이건 고문용이 맞습니다. 중국에서 사람의 정신을 무너트릴 때 쓰던 물건이지요.”
“사람의 정신…… 음, 알겠네요.”
야베를 추적하던 중 이상하게 자살하거나 미쳐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걸 추적해 온 게 이들이다.
자살 사건을 수사해도 너무 명확하게 자살이기에 특정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서 고문을 당했다면, 아마도 다시 고문을 당할까 두려워 죽음을 선택했으리라.
“팀장님! 여기 좀 보십시오! 신분증들이 있습니다!”
“신분증?”
“네.”
한구석에 처박아 둔 물건들. 그 안에는 신분증들이 있었다.
물론 한국처럼 주민등록증이 있는 나라는 아니라서 그런 건 없지만, 여기에 끌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던 자들이었다.
“어, 이 사람 기자 아냐? 실종되지 않았어?”
“이 기자는 얼마 전에 자살했잖아?”
“도쿄 경찰? 경찰 신분증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
줄줄이 나오는 각양각색의 신분증들.
그걸 본 사람들이 그 주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다들 야베한테 당한 거로군요.”
그나마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건지 뒤늦게 들어온 신동하는, 쌓여 있는 신분증들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일종의 트로피인가 보네요.”
사람을 고문하면서 천천히 미쳐 가는 걸 보는 놈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
아마도 일종의 트로피처럼 이 신분증들을 모아 두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야베의 쿠데타가 실패한 후 도망간 것 같네요.”
언제 조사가 들어올지 모르니 재빨리 도주한 것이리라.
“바로 이곳이 신동우가 미친 곳이군요.”
“그리고 우리가 신동성을 추적할 곳이지요.”
노형진은 막혀 있는 천장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