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31)
패배가 남기는 것들 (1)
“처음 뵙지요, 야베 전 총리?”
노형진은 야베를 만나러 가서 미소를 지었다.
“반갑군, 미스터 노. 그렇게 나를 괴롭혔는데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 이 패장에게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야베는 노형진을 당당하게 맞이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당당하시군요. 그 많은 피를 보게 하신 분치고는요.”
“그런 게 전쟁이지. 난 잘못한 게 없네. 오로지 조국과 신민을 위해 평생을 바쳤을 뿐. 만일 그게 실패했다면 패장으로서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겠지. 그게 야마토 정신 아니겠나?”
‘이 와중에도 야마토 정신이라니.’
노형진은 그런 그를 빈정거릴까 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못 할 건 아니다.
사실 말로 싸워서 변호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후의 순간에도 과연 야마토 정신을 외칠 수 있을지, 그건 알 수가 없지.’
설사 외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은 상관없다.
“당신 말 중 하나는 맞네요. 당신은 졌고 나는 이겼지요.”
“축하하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야베.
그런 그에게 노형진은 대놓고 물었다.
“다만 당신이 싸지른 똥이 문제란 말이지요. 신동우, 당신이 시킨 거 맞지요?”
“그게 누군가?”
“모르는 척하지 마십시오. 이미 하시무라 유켄이 다 불었습니다.”
하시무라 유켄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무너졌다.
그는 죽여 달라고 하면서 야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까지 다 이야기했다.
“특별수사 본부에서는 그 증거를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공소를 준비 중이지요. 벗어나지는 못할 겁니다.”
“하하하하.”
크게 웃는 야베.
“그래, 인정하지. 내가 시켰네. 그래서? 뭐가 바뀌는가?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내부를 먼저 정리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내부 정리가 아니라 억울한 민간인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억울한 민간인? 대일본국을 위해 충성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은 비국민이야! 그들에게 억울한 일이란 없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일까? 야베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은 일본을 분열시키고 적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려고 하던 자들이야. 그들은 적이네.”
“명예는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에서 나옵니다.”
“일본은 잘못된 게 없네!”
‘또 시작이군.’
일본 특유의 문화라고 할까?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그게 사라지면 문제가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일본은 잘못된 게 없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뭔가를 터트려서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려고 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니 그들도 터트리려고 한 거 아닙니까?”
노형진이 논리적으로 말해 주려고 했지만 야베는 당당했다.
“그들이 말한 건 모두 거짓이야!”
“그 모든 증거가요? 그 높은 방사능 수치가?”
“그래! 일본국은 완벽해. 그런 비국민들이 말하는 거짓에, 일본은 결코 흔들리지 않아!”
노형진은 그걸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이러면 곤란한데.’
야베는 사실상의 확신범 타입이다.
즉,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야베 입장에서 그가 받는 처벌은 처벌이 아니라 구국의 행동이다.
‘뭐, 내가 말발로 이겨도 소용이 없겠군.’
이런 타입은 논리적으로 이겨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
자기 나름의 정신 승리를 시전하니까.
‘하긴, 생각해 보면 그러네.’
일본과 한국이 경제 전쟁을 했을 때 패배한 것은 일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일종의 정신 승리를 해 왔다.
“그러면 간단하게 다시 묻지요. 신동우, 당신이 시킨 거 맞지요?”
“맞아.”
“그리고 그걸 부탁한 것은 신동성이 맞습니까?”
“아니야. 그건 내가 독단적으로 한 것일세.”
“독단적으로?”
“그러네. 신동우는 조센징의 스파이야. 그는 죽을죄를 저질렀어.”
“그렇군요.”
노형진이 생각보다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야베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질문은 그게 끝인가?”
“그렇습니다. 나중에 뵙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일어났다.
너무 짧은 면회에 야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지만, 노형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는 물어볼 것도, 물어볼 필요도 없었으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동하는 노형진이 나오자 바로 달라붙어서 물었다.
재판이 다가오는 상황이니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고문을 시킨 건 자신이 맞다고 하더군요.”
“역시! 그놈이 그랬을 줄 알았어!”
“하지만 그걸 청탁한 게 신동성은 아니랍니다.”
“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신동우를 미치게 만든 건 자신이 맞지만, 누군가로부터 청탁을 받고 한 일은 아니랍니다.”
“아니, 그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죠?”
상식적으로 야베가 신동우를 미치게 할 이유가 없다.
신동우 역시, 신동성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극우 세력이나 정치인들과 상당한 선이 닿아 있던 인간이다.
그런 자를 미치게 한 게, 청탁을 받아 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