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5)
“독하시군요.”
“독한 게 아닙니다. 저런 녀석들은 남의 피눈물을 먹고 자라납니다. 이제는 자신이 피눈물을 흘릴 차례가 되었을 뿐이지요.”
노형진은 정신이 나간 채로 멍하니 있는 김숙명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피눈물은 평생을 흘려도 부족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라본 김숙명은 그저 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능력의 개방 (1)
“그래요?”
“네.”
손예은은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런데 담당 변호사도 아닌데 관심을 가지시네요.”
“확인차 연락드린 겁니다.”
손예은은 감옥에서 김숙명의 상황에 대해서 문의했고 그쪽에서는 그녀의 상황을 알려 줬다.
그쪽 말에 따르면 별의별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머리채를 붙잡히기도 했고 두들겨 맞기도 하면서도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노형진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악착같이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실을 확인한 손예은은 바깥으로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그런 그녀를 덥게 만들었지만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대책이 안 선다.’
자신은 그저 법적으로 공부만 잘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그녀는 노형진과 자신의 차이를 알 수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접근 방식.
자신은 법적으로 접근한다. 사실 모든 변호사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다르다. 그는 법적으로 접근하는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접근한다. 법이라는 기반 위에 심리라는 기둥을 세우고 처벌이라는 집을 완성한다. 단순히 법 위에서 그리고 법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다른 변호사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방식.
‘결국 다른 공부를 해야 하나.’
아무리 법을 공부한다고 해도 이건 넘어설 수가 없다. 법에 정통한 사람들은 많다. 자신 같은 초년생 변호사는 아무리 공부해도 그걸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럼…… 심리학을 공부해? 하지만 제대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잖아?’
물론 범죄심리학이니 하는 학문이 있기는 하지만 교양 수준으로 알려 주는 거지, 이렇게 범죄자들의 내심을 파악할 정도는 못 된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단순히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프로파일링을 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일이야.’
한 번은 노형진을 이기겠다는 목표. 그런데 그게 가능한지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일단은 신경 쓰지 말자. 언젠가 이길 수 있겠지.’
당장 노형진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 손예은이었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응.”
그녀는 몸을 돌려서 사무실로 향했다. 어차피 여기서 할 것은 없으니까. 당장 하나라도 더 배워 볼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한 아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아이는?”
분명 아침에 자신이 나올 때에도 있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한단 말인가? 아침에 나온 게 10시경. 지금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니까 못해도 여섯 시간은 저 앞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 있나?’
보아하니 일을 맡기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딱 봐도 여고생으로 보이는데 변호사 사무실에 일을 맡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경우 대부분 무시하는 데다가 사건이 중하지 않은 경우에는 타박해서 쫓아내기도 하니까.
‘흠.’
다른 변호사들은 무심하게 그 아이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손예은은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그 아이를 보다가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니?”
“네?”
“아니, 아까부터 이 앞에서 계속 서 있어서.”
“아…… 아니, 그게요. 저기, 그러니까…….”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하지 못하는 아이.
“걱정하지 말고 말해 보렴. 난 변호사란다.”
“변호사세요?”
“그래.”
손예은의 말에 소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요……. 의심스러운 사건이 있는데 아무도 안 받아 줘요.”
“사건?”
“네.”
“그런 건 변호사가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지.”
“갔다 왔지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접수도 안 해 줬어요.”
“접수도?”
“네.”
그렇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는 뜻이다.
‘장난일까?’
하지만 장난치고는 뭔가 이상하다. 당장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무려 여섯 시간을 넘게 이 땡볕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아이의 얼굴은 장난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절박했다.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도 가 봤는데…….”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는 소녀. 제법 두툼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많은 돈은 아니었다. 대략 120만 원 정도. 그 정도면 새론의 수임료조차도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갔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진짜로 이상하면 새론 쪽으로 가라고. 그쪽은 그런 사건은 대룡에서 내줘서 그런 사건을 받아 주기도 한다고.”
“아, 그렇기는 하지.”
새론이 다른 변호사 사무실과 다른 것. 진짜로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대룡의 지원을 받아서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그래?”
“네.”
손예은은 잠시 고민했다. 주변에 어른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억울한 마음에 그저 온 아이들의 치기일 수도 있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자꾸나.”
손예은은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희 할아버지가 이상해서요.”
“할아버지?”
“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가 모시던 할아버지를 큰집에서 모시겠다면서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 후에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졌다고 하면서 요양 병원에 넣었는데 점점 안 좋아지신다는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니?”
흔한 일이다. 모시고 있다가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넣는 사람들은 많다. 현대는 매일같이 일해야 하는 시대다. 누군가 남아서 돌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알아요. 그런데 제가 할아버지랑 친해서 자주 가거든요. 그런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게 점점 몸이 안 좋아지시는 거예요.”
“그거야 당연한 거잖니. 사람이 몸이 안 좋으니까 병원에 입원시키는 거고.”
“알아요.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병원인데.”
“할아버지 나이가 얼마신데?”
“88세요.”
그러면 더 안 좋아질 만한 나이다. 손예은은 약간은 실망했다.
‘그냥 아이의 치기 어린 의심이었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뭔지 모를 느낌이 손예은을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은 단순히 의심하는 것이 아닌 뭔가를 두려워하는 눈빛이었다.
“혹시 아는 게 있니?”
“네, 소문인데요.”
“무슨 소문?”
“그 병원에 들어가서 살아서 나온 사람이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지 않니.”
사람이 치료받으려고 가는 병원도 아니고 입원해서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바로 병원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멀쩡하게 퇴원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가요?”
“그래.”
손예은은 뭔가 기대한 자신이 실망스러워졌다.
‘내면을 살피는 변호사라…….’
그건 어쩌면 허황된 꿈일지도 몰랐다.
‘아니다. 그래도 한번 물어보자.’
“하지만 일단 다른 변호사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네.”
“다른 변호사님이요?”
“그래.”
사실 그 아이는 어딜 가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비웃음만 받았다. 그러니 진심으로 들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가 보자.”
“네.”
손예은은 그 아이를 데리고 노형진의 방으로 갔다.
“노 변호사님.”
“네, 들어오세요.”
노형진은 그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손예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문 앞에 있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라지만 그녀의 손에 다른 사람의 손이 잡혀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님.”
“네?”
“문의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이 아이가 이상한 일이 있다는데 좀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마침 바쁜 일은 끝났으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노형진은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고 그 후에 자리를 권하면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오신 거죠?”
“저…… 그게.”
“아까 나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면 돼. 이분도 그렇게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야.”
“사실은요.”
결국 소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한 점을 이야기했고 듣고 있던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이상한 것은 없는데요?”
“그런가요?”
“네.”
“그렇군요.”
노형진은 그 말을 듣고 무심하게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약간은 실망한 듯한 얼굴로 있는 손예은을 보면서 조금 더 말을 꺼냈다.
“뭐가 이상했습니까?”
“네.”
“뭐가요?”
“글쎄요.”
무표정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세상에 이상한 일은 많지요.”
노형진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유의 사건은 없었다.
‘병원이라.’
그런데 뭐랄까? 자신도 뭔지 모를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병원…… 병원…….’
자신이 기억하는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말은 영 찝찝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없던 일이지만.’
가끔 미국에서는 죽음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사건이 터지기는 한다. 왜 죽음의 천사냐 하면 그들의 직업이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을 죽여 보고 싶다거나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사람을 죽여 대고는 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그런 사건이 없었지?’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적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 훨씬 스트레스가 심한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런 죽음의 천사 사건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아픈 사람을 대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다.
“그거에 관해서 할아버지가 뭔가를 말한 적은 없니?”
“없어요.”
“그래?”
“네, 다만 배가 고프시다고.”
“배가 고프시다고?”
“네, 식사를 많이 못하시거든요.”
“흠…….”
아무래도 그것이 저 소녀의 불안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손예은이 반응할 걸지도 몰랐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우리가 가서 그곳에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면 우리한테 이야기해 주시겠지.”
“그래 주실래요? 하지만…… 돈이…….”
“걱정하지 마라.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으니까.”
솔직히 자신의 찝찝함을 없애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만 그걸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곳에 가서 이야기해 보자. 그러면 뭔가 알 수 있겠지.”
“여기라고?”
“네.”
경기도권 시내에서 좀 벗어난 병원. 그곳을 보면서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가 요양 병원이야?”
“네.”
“정신병원이잖아?”
“아래층은 정신병원, 위쪽은 요양 병원으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그게 돈이 되기는 한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요?”
“여기 윤미선 양의 할아버지인 윤상준 씨를 찾아왔습니다.”
“누구신데요?”
“변호삽니다.”
노형진은 무심결에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간호사의 눈치가 이상했다.
“네? 변호사요? 변호사가 여기를 왜 와요?”
“여기에 못 올 곳도 아니잖습니까?”
“올 이유도 없죠. 사전에 연락도 없었잖습니까?”
‘응? 뭐지.’
물론 이런 곳이 낯선 사람을 꺼리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그의 행동은 꺼린다기보다는 경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뭐지?’
노형진은 한번 느껴 본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자신을 그렇게 경계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언제 그런 느낌이 있었던 사건이 기억이 났다.
‘그때 그 정신병원에서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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