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80)
텃세는 결국 욕심 (2)
“이장도 선거로 뽑을 수 있거든. 사건 초기에 노형진 변호사가 이야기해 줬었지.”
그 말에 노형진은 빙긋 웃었다.
김성식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맞습니다. 선거가 답이지요.”
“허, 이장과 읍장이 물러난 후까지 생각한 건가?”
“결국 닥칠 미래니까 준비는 해야지요.”
이장은 선거 아니면 읍장이 선임하는 형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냥 읍장이 알아서 선임해 버린다. 선거하려면 복잡하고 귀찮으니까.
“하지만 책임 문제가 생겨 버리면 이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만일 선임했다가 그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좋은 말을 실수로라도 한다면, 잘못하면 선거법 위반이 되어 버린다.
그 사람을 선임한 것이 읍장이니 당연히 읍장에 대해 고발이 들어간다.
“하지만 선거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선거를 통해 지역 주민이 고른 사람을 읍장이 선임하는 형태가 되어 버리면 그 책임은 면해진다.
그를 고른 건 읍장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니, 그 사람이 실수를 해도 그건 그의 실수가 될 뿐 읍장의 실수는 아닌 것이다.
“설마 다음 이장 선거를 노리고 업무상배임을 걸고넘어지신 겁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머릿속에 관리 책임에 관해 확실히 각인시켜 줄 수 있으니까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김성식은 혀를 내둘렀다.
“자네는 말이야, 진짜 볼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군.”
“맞네. 다른 변호사들 찾아가니까 기껏 한다는 말이 이장을 고소하라는 소리밖에 안 하던데.”
한오성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한오성은 노형진이 왜 나서든 아니면 구경만 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나 제가 이장으로 나설 가능성도 감안하고 그렇게 하신 겁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거든요.”
이 지역에서 전 이장인 이중기에 대한 불만이 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중기를 욕하는 건 아니다.
“인간 세상에는 파벌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중기의 파벌이라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장을 했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의미도 된다.
지금이야 도망갔다지만,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혜택을 빼먹던 인간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이장이 가지는 혜택은 어마어마합니다.”
당장 농업 지원금도 우선 대상이 되고 대출도 쉽게 되는 편이다.
그 지역의 권력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걸 같이 누리던 인간들이 과연 그냥 물러날까요?”
“결국 그들 중 한 명이 다시 나서겠군.”
“하지만 다른 파벌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이중기 파벌에서는 다시 한번 권력을 쥐기 위해 누군가를 후보로 내겠지만, 그 때문에 벌금을 내게 된 지역 주민들이 그들을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지역사회가 완전히 붕괴될 텐데요?”
“상관있습니까?”
“네?”
“사람들은 뭔가를 꼭 지키는 게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답이 없는 걸 지킬 필요가 있나요? 진짜로 답이 없다면 차라리 완전히 부숴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때로는 답이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 제가 말하는 건 무슨 쿠데타 같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선거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긴…….”
김성식은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국가 전복 같은 걸 하자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잘못된 문화인 텃세를 없애자는 것뿐이다.
“선거를 통해 잘못된 걸 고치는 건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일이 틀어져 봐야 도시화되는 것뿐이지요.”
도시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기존 지역 사람들이야 어색할지 모르지만, 도시에서 이사 온 한오성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일이다.
“선거라…….”
한오성은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
“결국 안 한다고 하시네요.”
“이 나이 먹고 은퇴해서 내려온 사람이 이 상황에서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을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시골 사람들에게는 이장이 권력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도시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미지보다는 동네의 온갖 귀찮은 일을 다 해야 하는 자리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더군다나 한오성의 경우는 어느 정도 돈을 벌어서 은퇴해서 내려온 상황.
농사를 크게 지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 만큼 농업인 대출이니 뭐니 하는 걸 굳이 크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빠지면 되는 건가?”
“아직 아닙니다.”
“아직 아니라고?”
“일단 시작했으면 제대로 해야지요. 선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이중기 파벌이 승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그렇지.”
정치는 파벌 싸움이다.
물론 이중기가 선거법을 위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100% 이장 선거에서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그랬고.’
이중기 본인은 선거에 나올 수 없지만 그 지지 세력이 나올 수도 있고 또 그 성향의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이 승리하면 사건을 키워서 이중기와 김덕술을 쫓아낸 한오성에 대해 보복이 안 들어갈 리가 없다.
“더군다나 김덕술의 경우는 여전히 읍장입니다.”
당연히 김덕술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재판을 하면서 시간을 끌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리를 지키는 건 거의 상식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들의 보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거에서는 승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한오성 씨가 직접 이장이 되는 거였는데 거절하셨으니, 차선을 선택해야지요.”
“차선이라고 하면……?”
“우호적인 새로운 이장을 선임하는 거지요.”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제로 선거를 치른다는 공고가 붙었다.
이중기가 도주한 이후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인간은 뻔한 행동 패턴에서 한 치를 못 벗어나냐.”
이중기는 그만뒀지만 그의 파벌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밀기 시작했다.
이중성. 이중기의 형이었다.
너무 뻔하게 보이는 짓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면 남은 건 상대방 파벌인데.”
마을은 결국 그 사건으로 두 개의 커다란 파벌로 갈라졌다.
이중성을 밀어주는 기존의 이중기 파벌.
그리고 그들로 인해 벌금을 부과받은 적대적 파벌.
작은 마을이 그렇게 갈라지게 되니 마을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사이가 안 좋아졌다.
“재미있는 상황이기는 하군. 저들을 화해시킬 생각은 있나?”
“전혀요. 제가 저들을 화해시켜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살벌한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노형진은 김성식에게 말했다.
“제가 화해시킨다고 해서 저들이 바뀔 것도 아니고요. 고향의 정이라는 건 이미 사라진 단어입니다.”
“너무 비참한 말 아닌가?”
“비참하지요. 하지만 현실입니다. 세상은 모든 게 비즈니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게 결국 텃세로 연결되었지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걸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좀 웃기지 않습니까?”
물론 푸근한 고향의 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전히 그런 분위기를 가진 마을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마을은 아닙니다. 한번 이권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꿀을 빨아 본 사람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중기가 일부 파벌에게 혜택을 몰아줬다면 당연히 그들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이장은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아 간 원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비즈니스로 일을 처리해야지요.”
“하지만 무슨 수로 말인가? 선거에 개입해서? 하지만 이건 아무리 작아도 선거야.”
당연히 정치적 중립의무가 중요하다.
물론 노형진이 돈을 밀어주면서 선거를 도와준다면 그쪽이 이길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제가 그럴 이유는 없지요. 이 지역의 주민인 것도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중성을 떨어트리는 정도입니다.”
그에게 부여된 의뢰는 텃세를 없애는 것.
만일 이중성이 이중기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으면 분명 보복성 텃세는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텃세에 대해 소송을 거는 거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텃세는 괴롭힘 행위이니 그걸로 민사소송을 걸면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렇게 되면 원한만 쌓일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새로운 권력 집단을 이용하는 것.”
“새로운 권력 집단?”
“그렇습니다. 이런 시골에는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있거든요.”
그들의 힘은 말 그대로 절대적이다.
그래서 누구도 저항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권력 집단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노형진이 아는 진리였다.
***
농민은행.
한국 전역에 있는, 농민들을 위한 은행.
“그런데 이 지역 지점이 느슨하거든요.”
사실 느슨하다기보다는 거의 별도로 운영되는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농민은행은 엄밀하게 말하면 조합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앙에서 다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각 지방별로 관리하는 형태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고 그 조합이 농민은행에 속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농민은행의 구조 특성상 아무래도 조합장 선거라는 게 있으니까요.”
중앙의 농민은행은 사실상 일반 은행으로 굴러간다.
하지만 그 아래쪽에 있는 지방 농민은행의 경우는 조합이라는 특성상 대표를 위에서 내려보낼 수가 없다.
조합이라는 건 모든 조합원이 공정하게 한 표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
그렇다 보니 위에서 한 명을 내려보내면 조합원을 무시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지방의 조합장은 선거를 통해 뽑습니다.”
“선거.”
김성식은 눈을 묘하게 모았다.
지금 노형진은 이장을 선거로 뽑을 수 있게 해 놨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이미 선거가 있었다.
“설마, 지방은행 선거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지요.”
“확실한 증거라…….”
“이곳은 원래 이씨 집성촌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의 텃세도 문제가 된 게, 원래 집성촌이 생각보다 텃세가 심하다. 자기 가문 사람들이 아니면 대놓고 사람 취급도 안 하니까.
“설마?”
“설마가 아니죠. 당연히 여기서 조합장 선거를 하면 조합장은 이씨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겠군.”
“맞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군다나 이중기가 이장을 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거의 모든 특혜를 다 쓸어 담았을 겁니다.”
“그쪽을 뒤집을 생각인 건가?”
“이미 농민은행 중앙 지점에 증거와 함께 제보를 해 놨습니다.”
당연히 감사가 들어올 테고, 감사가 시작되면 그 특혜에 대해 문책이 들어올 것이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장이 가진 권력 중 하나가 바로 대출 우선권이지요. 아마 이장이 추천하는, 정확하게는 자기네 가문의 사람들에게만 대출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집성촌 성향이 강한 시골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 중 하나다.
“그리고 감사가 들어가면 당연히 해당 돈에 대한 환수가 이루어지겠지요.”
벌금 300만 원?
아무리 가난한 시골이라고 해도 아예 못 낼 정도의 돈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빚을 한꺼번에 환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하겠군.”
이번 사태로 이 지역의 농민들은 파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업자득입니다.”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아니, 갑자기 돈을 갚으라니!”
“나한테 당장 그런 돈이 어디 있어!”
농민들은 생각보다 빚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