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
서류를 받아 든 민시아는 왠지 모를 쾌감에 부르르 떨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증거. 저 녀석들이 지웠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던 원본이 드디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게 그 당시 작품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찍혀 있네요? 왜 그렇지요?”
“과거 모 작가가 동일한 작품으로 3중 계약을 해서 혼란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회사 규정 차원에서 우선권 확인을 위해서 시간을 찍었습니다.”
“재판장님, 이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민시아가 그걸 넘기려고 하자 청계의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그 말에 그에게 향하는 시선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저도 모르게 나선 것이다.
“이유가 뭔가요?”
“그게…….”
이유가 없었다. 원본 파일이 들어 있는 작품이고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이다 보니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뭘 어찌해야 할지는 몰랐다.
“이의를 신청하려면 합당한 이유를 대세요.”
판사의 다그침.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의를 철회하겠습니다.”
“그럼 증거로 인정합니다. 서기관, 기록하세요. 갑제 5-7 출판계약 신청 보고서 사본.”
그 말에 청계의 변호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졌다.’
모든 면에서 분석하고 결정적인 증거까지 들어갔기 때문에 결판은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최종 판결문이 도착했을 때 한지연은 멍하니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겼네?”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만난 변호사들도 대부분 합의하자고 이야기했다. 이길 수 없다고.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으니 이길 수 없다고. 그런데 이겼다.
“꿈은 아니지? 아파? 진짜 아파?”
“한지혜, 꿈인지 확인하는 건 좋은데 왜 내 얼굴을 꼬집냐? 아프지, 그럼 안 아프냐?”
노형진은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 자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어, 이게 어떻게 이긴 거지?”
“잘.”
“잘?”
“그래, 잘.”
관련이 될 만한 건 모조리 뒤져 대는 노형진의 스타일 덕분에 이겼다. 만일 보이는 것만 가지고 재판에 임하는 일반 변호사라면 분명 졌을 것이다.
“10억이라니…….”
출판사에서 정상하에게 인세로 주기로 한 돈은 10억. 그중 5억은 지급되었고 나머지 5억은 아직 주지 않았다.
“10억이라니…….”
판결문에 써 있는 10억이라는 막대한 돈에 감을 잡지 못하는 자매.
“그것보다는 더 많아질걸?”
“더 많아진다고?”
“그래, 일단 정상하한테서 손해배상은 따로 받아야 하는 데다가 소설도 계약을 갱신해야 하고. 더군다나 영화가 있잖아.”
“소설? 영화?”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큰일이 터진 거거든.”
“왜?”
“자본이라는 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이제 원작자가 바뀌었으니 기존 출판사는 그동안 거둬들인 판매액을 모조리 토해 내야 한다. 더군다나 책을 만드는 데에도 돈이 들어갔고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재고도 남아 있다. 만일 한지연이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수익의 반환뿐만 아니라 재고 처리까지 겹쳐 도산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지. 크랭크인이 되었잖아.”
그렇다는 건 영화 장비 대여소와도 계약되었고 출연자와도 계약되었다는 것이다. 한지연이 ‘No.’라고 말해 버리면 영화는 날아가는 셈이고 수십억에 달하는 돈은 그냥 증발하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사는 막대한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아마도 정상하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꼬시겠지.”
“이보다 더 좋은 조건?”
“그래, 뭐, 이것저것 하면 30억은 남지 않을까?”
30억이라는 말에 멍하니 노형진을 바라보는 자매.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부모님은 여전히 일하러 가신 상황이다. 그러니 재판을 한 건 알고 있어도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긴, 사실대로 말해야지.”
“사실대로…….”
“참고로 돈은 전문 관리사들한테 분산해서 맡겨.”
“뭐?”
“한 사람당 한 5억씩 해서 전문 관리사들한테 맡기라고.”
“왜?”
“그렇게 갑자기 돈이 생기면 막 쓰다가 나중에 망하더라고.”
“이걸 다 쓸 수는 있는 거야?”
“있어.”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막말로 30억이면 서울에서 좀 큰 아파트 하나 산다고 하면 한 방에 날아갈 돈이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서 공장에 다니며 작은 지하의 방에서 살던 이들 가족에게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큰돈일 것이다.
“표정이 왜 그래?”
“그냥…… 겁이 나서.”
한지혜는 겁에 질려 있었다.
“하긴, 그게 좋은 마음가짐이다. 돈을 겁낼 줄 알아야 돈을 잘 쓰게 되는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노형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 가?”
“어디 가기는. 나 공부해야 하거든?”
“공부? 아…….”
“야, 이게 얼마짜리 사건인데. 내가 변호사였으면 최소한 3억은 받는 사건이야.”
“3억…….”
“더러워서라도 빨리 변호사 자격증을 따야지.”
“고마워.”
“울지 마요, 누나. 그 돈으로 좋은 일이나 하세요.”
“응!”
“아, 그리고 사랑 출판사 쪽에 차기작 내주기로 한 거 잊지 마요.”
그들이 자기들의 증거를 내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좋은 일 한다고 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3부작 중 2부는 그 출판사에서 내기로 한 것이다.
“알았어.”
“뚝! 울지 마요. 아, 사나이 가는 길에 눈물을 보이지 말라니까요.”
“너 진짜 말 잘한다.”
“변호사 지망생이니 말은 잘해야지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온 노형진의 앞에는 작은 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기숙사에 데려다줄 차였다. 그리고 그 차의 운전사는 다름 아닌 민시아였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차 문을 열고 옆자리에 앉자 민시아는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 이번 사건의 복기.”
복기란 말 그대로 그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을 뜻한다. 하긴, 그녀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정보만을 가지고 재판한 것이 아닌 스스로 정보를 찾아서 하는 재판이라니.
“그래서 어때요?”
“어떻게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을 못 잡겠어.”
그 말에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쉽겠습니까?’
그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숱하게 당했다. 변호사입네 하고 거들먹거리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철저하게 능력제다. 한국처럼 변호사에게 맡겼다고 변호사가 도리어 가만히 좀 있으라고 윽박지르는 관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 그러니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온갖 방법을 다 쓰게 된다.
‘미국이 달리 소송의 천국이 아니지.’
아니, 소송의 천국이라기보다는 소송의 지옥일 것이다. 그만큼 치열하고 경쟁적이며 승리만이 모든 것을 보장하니까.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조언 하나 해 드릴까요?”
“조언? 뭔데?”
비록 노형진이 나이가 어리다는 걸 알지만 재판에 대한 통찰력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순순히 물어봤다.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네, 심지어 우리에게 일을 맡기는 피고나 원고도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요.”
“왜?”
“후후후, 그건 직접 체험해 보시면 알 거예요. 어쨌거나 잊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라.”
그 말을 중얼거리는 민시아였다. 사실 그건 맞는 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판단한다. 그러니 일을 맡길 때 자기 위주로 변호사에게 일을 설명하고, 정작 사건에 들어가서 보면 전혀 다른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맡기는 당사자는 변호사를 믿어야 하지만 변호사 자신은 의뢰인을 100% 신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몸으로 겪어 봐야 알지.’
그건 당해 봐야 느끼지, 지금은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절 학원에 내려 주세요.”
“알았어.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라.”
그리고 그 조언 덕분에 민시아는 유명한 변호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체불임금(1)
“합격이드아!”
노형진은 마지막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고 눈물을 흘렸다.
“아, 썅…… 더럽게 힘들었네.”
드디어 마지막 독학사 자격증 시험이 끝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합격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축하하네!”
“자네는 우리 학원의 복이야.”
학원도 경사가 났다. 독학사를 따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노형진의 나이는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이다. 즉, 고 1. 하지만 그는 검정고시와 독학사를 거쳐서 법적으로는 대학 과정까지 마친 셈이 된 것이다. 그것도 최연소로 말이다.
“그래, 바로 고시반에 들어갈 건가?”
“그래야지요.”
“내 그렇다면 학원비를 70% 깎아 주겠네.”
학원장도 기대를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번 독학사 시험에서도 전국 1위다. 벌써 학원에 오려는 사람들의 전화가 폭주하는 상황. 만일 예상대로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자가 나온다면 학원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가 될 것이다.
“뭐, 그래 주시면 거절은 하지 않겠습니다.”
노형진은 그걸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봐야 하는 사법시험이고 여기서 준비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딱히 위법 사항도 아니고 서로 윈윈하자는 건데 거절할 필요는 없다.
“그래, 그럼 방은 그대로 쓰게나.”
“하하하.”
노형진은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예상은 하고 있었다지만 실제로 합격증을 받아 드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자, 자, 이렇지 말고 합격자들끼리 술 한잔하러 가죠?”
“어, 전 술 못 마시는데요.”
“한 잔인데 어때?”
“사법고시 준비생한테 벌써 법을 위반하라는 겁니까?”
“그럼 자네만 주스를 마시게.”
“하하하.”
그렇게 합격자들은 미리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매년 말 독학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끼리 모여서 회식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고깃집이 예약되어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오, 우리 어린 천재님.”
“누나, 그만 좀 갈궈요. 마지막까지 갈구네.”
“이제 언제 갈구겠냐. 이참에 갈궈야지.”
“아, 진짜.”
“캬! 좋네.”
효린은 기분 좋게 술 한 잔을 마시고 히죽 웃었다.
“그나저나 누나는 대학에 가는 거예요?”
“그래, 난 목표가 있으니까.”
그녀가 독학사를 딴 건 그걸로 취업하기 위해서 아니다. 원하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학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게 엄청난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식으로 대학생이 되는 거지.”
“한가하다고 놀러 다니는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아, 나도 놀고 싶다.”
“누가 들으면 네가 미친 듯이 공부한 줄 알겠다. 우리 중에서 제일 여유 있게 공부한 게 너거든?”
“헤헤헤.”
4년 치 공부를 한 방에 몰아서 1년에 다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대학처럼 교양과목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게 독학사 과정이다.
“나중에 사회에서 만나서 쌩 까기 없기?”
“없기!”
“콜!”
“위하여!”
합격자들은 술잔을 가득 채우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수고했다.”
마지막 사람을 방에 던져 놓으면서 장풍천은 씩 웃었다.
“이 짓을 매년 하신다고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뭐, 전통이니까. 학원이라고 해서 전통이 없다는 건 편견이다.”
“하하하.”
매년 해 왔다고 하더니만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고깃집만 예약된 게 아니라 아예 근처에 모텔 두 개를 예약한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투숙시키기까지 했다. 그걸 위해 선생님들 중 절반은 술을 마시지 못했다.
“그나저나 상인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네요.”
“이 시기에는 큰손님이니까.”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넌 어쩔 거냐?”
“뭐, 잠깐 집에 갔다 와야지요.”
“진짜로 한 번에 사법시험까지 합격할 생각이구나.”
“네.”
“어쩌면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르겠구나.”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모 정치인이 열다섯 살에 1차 합격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합격과 실용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형진의 계획이 성공하면 그는 스무 살에 변호사 자격증을 따게 되는 것이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었으니 올해 안에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열여덟 살이 되어 2년간 연수원을 마치면 스무 살이 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미래에 로스쿨이 생기고 나서 스물둘이 최연소였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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