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13)
악마교 (4)
그렇지 않다면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을 감출 방법은 없다.
그러는 사이에 회의 준비가 끝나고 모두가 앞쪽을 바라보았다.
제임스 버킨이 자료 화면이 떠 있는 슬라이드를 등진 채 모두를 살피고 있었다.
악마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거의 20년이 흘렀다. 다시 같은 사건이 드러난 것에 대해 그는 걱정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 당시의 경험이 있는 동료들도 없는 상황.
“준비 끝났습니다.”
다른 직원이 모든 브리핑 준비가 끝났다고 말해 주자 그는 바라보던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칼 구스타프 사건은 알 거라 생각한다. 미리 이야기했으니 모두 그 기록을 보고 왔겠지.”
그렇게 시작된 회의.
사건에 대한 제임스 버킨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그 당시의 문장이 발견되었다. 기록에서 확인했겠지만 그 당시 칼 구스타프 일당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없다. 그리고 칼 구스타프는 가족도 없었고. 사살당한 신자들의 가족에 대한 조사 결과도 깨끗했지.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가능성을 감안하고 있다. 칼 구스타프가 누군가에게서 이 모든 것을 배웠다, 반대로 말하면 칼 구스타프를 가르친 악마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거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수사관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악마 숭배자들의 살인이 얼마나 힘든 사건인지 아니까.
“현재 조사한 것에 따르면 그 당시 칼 구스타프가 특별한 행보를 보인 적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추적할 대상이 아예 없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칼 구스타프라는 대상이 있었고, 그의 과거를 추적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칼 구스타프는 구소련에서 넘어온 2세대 사람이다. 학교도 미국에서 다녔지.”
제임스 버킨의 설명을 들으며 노형진은 그 기록을 살폈다.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칼 구스타프의 가족들은 잘사는 건 아니었다.
사실 공산주의 아래서 살던 사람들이 극단적 자본주의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칼 구스타프가 분노하게 된 원인인 것 같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고작해야 입에 풀칠밖에 할 수 없는 비참한 삶.
그런 삶 안에서 칼 구스타프는 내면의 악마를 키웠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 후 칼 구스타프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미국 전역을 떠돌았다. 그 와중에 누군가를 만나서 교리에 대해 교육받았다고 생각한다.”
칼 구스타프의 행방이 불확실한 시기는 대략 5년 정도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그는 미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노가다도 해 보고 일당직 알바도 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떠났다.
“흠…….”
노형진은 그 부분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는 그곳들을 뒤지면서 칼 구스타프의 뒤를 쫓는다. 필시 어마어마한 추적이 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추적 지역을 배정하겠다.”
수사관들이 각자 추적 지역을 배당받고 떠난 후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뭐? 왜?”
“기간이 너무 짧아.”
악마 숭배자들은 동료를 만드는 데 있어 대상을 아주 진지하게 조사하며 어떤 사람인지 오래 감시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예 포섭도 안 할 거고, 포섭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제물로 용도를 바꿀 것이다.
당연한 거다. 자신들을 감춰야 하는 상황이고, 기본적으로 미국은 크리스천 국가니까.
“그런데 고작 몇 달 사이에 접촉해서 설득하고 교육하는 게 가능할까요?”
“으음?”
제임스 버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렇지요. 저희도 압니다. 이건 일종의 미끼입니다.”
“미끼?”
“그렇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우리의 눈을 피했다는 건 내부의 적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거든요.”
“아아.”
무려 수십 년이다.
아무리 조용히 살인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될 만한 시간이다.
“설사 우리가 아니라고 해도 지역 경찰이 넘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요.”
미국은 악마 숭배자들과 오랜 싸움을 해 왔다.
당연히 노형진보다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하긴 그렇지요.”
FBI가 수사한다지만 그들의 인력이 그렇게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지역에 가서 경찰 인력을 지휘하는 형태로 사건을 수사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에게 정보가 새어 나갈 수도 있겠네요.”
오광훈도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엉뚱한 지역에 가서 조사한다고 하면 저들의 눈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일단 엉뚱한 지역이라면 그들에게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 지역에 악마 숭배자들이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까.
설사 새어 나간다고 해도 그들은 안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을 견제할 수 있고요.”
“맞습니다. 한국에 있는 놈들도 그들 파벌이라면, 아마도 당분간은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어찌 되었건 자신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수사에 들어갔다는 위험성 때문에라도 인간은 당연히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제물로 사람을 바치는 일도 당분간은 멈출 수밖에 없다.
“잘 아시네요.”
제임스 버킨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진짜 범인을 잡는 게 쉽지는 않겠지요.”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워낙 넓은데 거기다 몰래 수사해야 하니 당연히 그 지역에서 경찰을 동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말인데, 오광훈 검사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요?”
오광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버킨은 진지했다.
“기밀 수사에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워낙 중요한 사건이라서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결하고 싶습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모든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런데 오광훈은 수사와 관련해서 훈장까지 받은 인재다.
노형진은 그런 오광훈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오광훈은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어디로 갈까요?”
***
라이센트빌. 제임스 버킨이 의심하는 장소였다.
라이센트빌은 전형적인 슬럼가였다.
“이런 곳이니 미칠 수밖에 없지.”
노형진은 흘러가는 외부의 시선을 보면서 말했다.
“왜?”
“보면 몰라?”
“모르는데?”
“대부분 흑인이잖아. 인종차별은 백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야.”
이곳은 칼 구스타프의 고향이다.
즉, 여기서 그가 자랐고 그의 아버지 역시 여기서 살았다는 소리다.
“그런데 봐 봐, 대부분은 흑인이잖아. 소위 말하는 할렘가의 특징이지.”
슬럼가는 할렘가처럼 절대적으로 흑인의 비율이 높다.
그런데 칼 구스타프는 전형적인 백인이다.
“사방이 흑인인데 혼자 백인이라면 무슨 꼴을 당하겠어?”
“아, 그러겠네.”
이런 지역에 백인이 혼자 있다면 위험한 게 사실이다.
심지어 그런 경우는 목숨도 내걸어야 한다.
“아마 매일같이 구타당하고 협박당하고 갈취당하겠지.”
슬럼가는 범법 지대인 경우가 많은데, 그곳에서 백인은 주요 공격 대상이다.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갱단의 경우는 대부분 흑인일 테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
“있지. 그들이 백인을 받아 주겠어?”
당연히 받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은, 백인은 털어도 보복이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네.”
쉽게 말해서 인종차별 역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데다 피부색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하는데 심지어 동네에서 고립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사람이 멀쩡하게 자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확실히 그렇지요. 이런 지역에서 자라는 백인들은 주요 린치 대상 중 한 명입니다.”
동행하는 FBI의 수사관인 플린 요원도 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가 되기 딱 좋은 형태죠.”
외로운 늑대란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뜻하는 은어다.
유럽 등지에서 고립된 이슬람 신자들이 그런 외로운 늑대가 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백인이라고 외로운 늑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실제로 외로운 늑대 중에는 백인도 존재한다.
외로운 늑대들은 고립과 분노의 문제이지 그들의 인종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슬람이 아니라 악마 쪽이고.”
노형진은 바깥을 보며 말했다.
문제는 이슬람과 다르게 악마 숭배자라는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음지에 숨어 있기 때문에 특정해서 추적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은 학교겠지요.”
어찌 되었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학교다.
현실적으로 칼 구스타프가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일 테니까.
“아마 많이 놀라실 겁니다.”
“저는 별로 안 놀랄 것 같은데.”
오광훈의 말에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오광훈 검사는 많이 놀랄 것 같네요.”
***
“이게 학교라고? 무슨 조폭들 본거지나 폐교가 아니고?”
학교에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사방에 그려진 낙서였다.
길거리 예술이라 불리는 그라피티가 아니다.
진짜 낙서다.
가장 먼저 그들을 맞이해 준 것은 학교 담벼락에 커다랗게 써진 ‘SEX’라는 단어였다.
“슬럼가 학교들은 보통 이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플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 사람들, 생각보다 무식해.”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슬쩍 플린의 눈치를 보았다.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말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플린은 담담하게 수긍했다.
“그놈의 예산 타령하면서 최소한의 지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너무 심한데?”
안으로 들어가면서 오광훈은 혀를 끌끌 찼다.
낙서는 바깥뿐만 아니라 안에까지 되어 있었고, 심지어 학생들이 쓰는 걸로 보이는 캐비닛도 다 그런 상황이었으며 그마저도 찌그러지고 우그러든 게 다수였다.
“캐비닛도 안 쓰네?”
“부수고 다 훔쳐 가니까요. 자물쇠를 달아 봐야 절단기를 가져다가 꺼내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CCTV라도 달든가.”
“그건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하거든.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감시는 정부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야.”
“원, 별 미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오광훈.
“도색이라도 해 주든가. 이게 뭐야?”
“해 줘도 의미가 없습니다. 안 해 봤겠습니까?”
도색해도 채 두 달이 되기 전에 다시 이 꼴이 된다.
그렇다 보니 결국 포기한 거다.
“이게 자본주주의 극단적 상황이지, 계층 간의 사다리가 박살 났을 때 벌어지는.”
여기서 공부해서 계층 간의 사다리를 올라가서 성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
“그리고 이런 공교육은 수준이 낮아.”
“그래도 최소한의 커리큘럼은 있을 거 아니야?”
“있지. 하지만 그걸 지킬 뿐이야.”
“이해가 안 가는데?”
“그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해. 그런데 그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아. 심지어 수업 중에 자는 건 기본이고 떠들고 싸워도 신경도 안 쓰지.”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에 그걸 커버하기 위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라면 그런 경우는 부모가 개인 교습을 하든가 아니면 학원을 보내든가 하면서 최소한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게 없지.”
포기하면 그걸로 끝.
딱 한 달만 인생을 포기하면 커리큘럼에서 나가떨어지는데, 그 이후에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위한 다른 시스템이 전혀 없다.
“그러니 인생을 막사는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그러는 사이에 울리는 벨 소리.
동시에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