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36)
사건은 정석에서부터 (3)
“아닙니다. 딱 부서 내부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챙겨 주는 정도의 포지션이면 됩니다.”
“알았어요. 그건 제가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뭐가 바뀌나요?”
“그걸 알아보기 위한 겁니다. 만일 유재민 씨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내연녀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사건을 조사하면 된다.
“그런 여자가 없다면?”
“모두 끝인 거죠. 유재민 씨는 2천만 원을 받으시는 거고 자상한 여직원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겠지요.”
유재민에게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요. 하도록 하지요. 물론 이 모든 건 비밀이겠지요?”
“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거나 유재민 씨에게 화를 내는 여자가 있다면 저희 쪽으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해 드리지요.”
유재민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제 남은 건 상대방의 반응뿐이었다.
***
그날부터 유재민은 바로 이광인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다 주는 정도는 아니어도 빵이나 음료수를 사다 주며 자주자주 힘내라고 하면서, 미묘한 위치에서 이광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요즘 부장님한테 잘한다면서?”
“안 하게 생겼냐? 하루가 멀다 하고 바짝바짝 말라 가는데.”
“하긴. 그 살인범은 아직 재판 중이라지?”
“그러니까. 억울해서 잠도 못 주무시는 것 같아.”
동기들은 잘해 준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의심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광인이 상당히 불쌍한 상황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더군다나 유재민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무심하게 넘어갔다.
딱 한 명만 빼고.
“너 요즘 이광인 부장님한테 꼬리 친다면서?”
다짜고짜 자신을 휴게실로 불러서 짜증을 부리는 호상미 과장의 말에 유재민은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
“아니야? 너 요즘 아주 이광인 부장님한테 공들이던데?”
“제가 공을 왜 들여요?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는데. 그냥 힘들어하시는 거 보고 챙겨 드리는 거지.”
“그런 말 하는 년들이 꼭 설레발치더라? 이제 부장님이 부자 된다고 하니까 꼬리 치는 거 아니야?”
평소와 다르게 극도로 공격적으로 나오는 호상미 과장의 모습에 유재민은 노형진이 해 줬던 말이 생각났다.
-만일 내부에 바람피우는 여자가 있다면 분명 유재민 씨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겁니다. 현재 상황을 본다면 그녀는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당연히 유재민 씨를 라이벌이나 적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자기 자리가 위험해지니까.
노형진은 유재민에게 그렇게 설명해 줬지만, 유재민은 설마 하면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손해 보는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설마 진짜로 바람피우는 중이었던 거야?’
유재민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애써 속으로 화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꼬리를 치니 하는 식의 의심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바람이나 피우는 여자가 자신을 압박한다는 게 어이가 없기도 했다.
“죄송한데요, 저는 진짜 부장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요.”
“그렇잖아도 부장님 요즘 힘드신데 주변에서 그만 알짱거려. 그럴수록 주변에서 말 나오는 거 몰라?”
“죄송해요.”
‘말 나오기는 개뿔.’ 이미 친구들과 명백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냥 힘든 부장님 챙겨 드린다는 이야기가 돈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거 어이가 없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온다는 것. 그건 호상미가 불륜녀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쓸데없이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회사나 다녀. 안 그래도 박구한 때문에 회사 분위기 개판 된 거 몰라?”
“죄송합니다.”
“너, 내가 두고 본다.”
그렇게 말하면서 휴게실을 나가는 호상미.
뒤에 남은 유재민은 한숨을 푹 쉬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고 변호사님? 저 유재민이에요. 좀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요.”
그녀는 혼수 비용 벌었다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
노형진은 바로 호상미와 이광인에게 사람을 붙였다.
호상미가 유재민을 몰아붙였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결국 외부에서 조용히 만났다.
-지금 장난해요?
-또 뭘? 내가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했잖아?
-아니, 눈앞에서 여자랑 짝짜꿍해 대는 게 빤히 보이는데 만나지 말자는 말이 나오냐고요?
-나 아무런 감정도 없다니까.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내가 힘들어 보인다고 챙겨 주는 걸 그럼 어떻게 해? 안 그래도 나 힘든 티 내느라고 밥도 굶어 가면서 그 지랄 하는데 너까지 이럴래?
-적당히 하라는 거예요, 적당히.
-적당히 어떻게 해? 새론 그 새끼들이 회사에 내 출근 자료 달라고 했다잖아! 그 새끼들이 날 노리는데 그냥 당하고 있어?
-그게 상관있어요? 어차피 송하은은 죽었어요. 박구한 그 멍청이가 왜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년이 이제 와서 뭘 어쩐다고요? 솔직히 난 당신이 나와 거리를 두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어차피 그년도 없는데 나랑 만나는 게 뭐 어때서요?
-눈치가 보인다는 거지, 눈치가!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죽었는데 바로 재혼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좋게 보겠어? 너는 회사 안 다닐 거야?
-그거야…….
-아직 재산 정리도 안 끝났어. 재판도 안 끝났다고. 최소한의 시간은 보내자. 나 못 믿어? 내가 너 사랑한다니까. 널 위해 내가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노형진은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플레이어를 그냥 꺼 버렸다.
다행히 두 사람이 커피숍에서 이야기한 덕분에 슬쩍 녹음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들은 그런 걸 몰랐겠지만 말이다.
“바람피우는 건 확실해졌네요.”
고연미는 진지하게 녹음 파일을 듣고는 말했다.
“대충 상황을 보니 호상미 쪽은 이광인이 살인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모양인데.”
“그런 것 같아요.”
만일 살인에 호상미가 가담했다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당장 호상미는 그 문제를 꺼내고 있지만 반대로 이광인은 말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면 호상미에게 접근해서 사실을 말해 주면 정보를 줄까요?”
“글쎄요. 그건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네요.”
노형진은 고연미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호상미의 경우는 어느 쪽이든 손해 보는 게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나중에 큰 이득이 남는 쪽을 선택하겠지요. 그리고 그건 이광인 쪽이고요.”
호상미에게 접근해서 최면술을 이용한 살인을 이야기해 준다 해서 과연 그걸 믿을까?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설사 믿는다고 한들, 어차피 이광인과 결혼하게 되면 이광인이 물려받는 송하은의 유산은 자기 돈이나 마찬가지가 되는데 과연 그냥 물러날까?
설혹 물러난다고 해도, 경찰에 제보한다거나 그럴 것도 아니다.
호상미가 경찰에 사실은 자신이 이광인과 바람피웠다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불륜은 이제 범죄도 아니며 그 피해자인 송하은은 이미 죽었다.
당연히 그걸 제보하지 않는다고 그녀가 피해를 입진 않는다.
“입을 다물면 수십억대 재산이 굴러들어 올 수 있지만 걸려도 처벌은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입을 다물겠지요.”
“그러면 이광인과 사이를 찢을 방법을 찾는다거나…….”
“그것도 힘들 겁니다. 이광인은 살인을 불사하고 호상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들 사이를 찢어 놓기는 힘들 겁니다. 더군다나 증거가 없는 데다가 그런다고 해서 뭔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끄응.”
고연미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렸다.
“도대체 왜 최면술까지 동원해서 살인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최면술을 통해 그냥 이혼하는 걸로 하면 안 되었던 걸까요?”
“모르지요. 돈 욕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을 수도 있고요.”
설사 합의이혼이라고 해도 송하은의 재산은 결혼 전까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재산이기에 이광인이 재산을 거의 못 가지고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설사 송하은을 최면술로 불륜에 빠트리거나 이혼 사유를 만든다고 해도, 몇천만 원 정도의 손해배상을 더 받을 수 있을 정도이지 충분한 돈을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시도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잘 걸리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정확하게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다 보니 쉽게 걸리지 않는 것이다.
“송하은은 자신의 학원을 운영했을 정도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을 가진 박구한과는 여러모로 다르지요.”
그러니 시도했다고 해도 실패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악의 경우 그 모든 걸 알아차리고 역으로 저쪽에서 이혼 얘기를 꺼내게 되면 이광인은 완전히 개털이 되는 거다.
“아무래도 이광인이 살인하도록 한 건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을 믿는 박구한을 이용하여 최면을 걸고 살인하게 했을 것이다.
“응?”
그런데 노형진은 계속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살인을 시켰지요?”
“최면이라면서요?”
“최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 전혀 최면을 시도할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박구한은 회사 업무가 끝난 후에 자신의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학원으로 갔다.
정확하게는, 집에 갔다가 나와서 학원으로 가 송하은을 살해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가능하게 했느냐는 거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광인은 그날은 박구한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지도 않았고 같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박구한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
이미 경찰이 현장의 차량과 집 앞에 있는 CCTV를 다 털어서 확인한 내용이다.
“쉽게 말해서 어떻게 발동시켰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요.”
“어, 그 부분은 우리도 모르기는 하네요.”
사람이 옆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게 아니라면 당연히 다른 뭔가를 이용해서 했다는 거다.
“교수님한테 한번 여쭤보지요.”
노형진은 바로 심정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심정상은 그 이야기에 바로 대답해 줬다.
-아마도 단어 발동일 겁니다.
“단어 발동요?”
-영화에서 많이 나오지요? 특정 단어를 들으면 그에 따라 최면으로 지시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그 단어 자체는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일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실수로 그 말을 했다가 발동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같이 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만.”
-핸드폰 같은 걸로도 발동이 가능합니다. 단어 발동에서 중요한 것은 단어 그 자체이지 발동자가 아닙니다. 누구든, 그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 발동할 수 있지요.
“핸드폰이란 말이지요.”
노형진은 물끄러미 박구한의 통화 기록을 바라보았다.
경찰에서는 당연히 박구한의 통화 기록을 확보했다. 다른 누군가가 청부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만한 내용은 없었다.
단 하나 집을 나서기 바로 직전에 걸려 온 전화가 있었지만 그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건 통화 기록을 보면 채 3초도 되지 않는다.
뭔가를 시키거나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단어 하나란 말이지.”
그러나 단어 하나를 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
노형진은 드디어 꼬투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