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39)
상상의 범죄자 (3)
“최면술이라는 것의 존재가 증명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피고인이 최면술에 걸려 있었는지 그리고 최면술로 살인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주장한 피고인 측이 입증해야 하는 영역이나, 그게 가능하다면 최면술을 걸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경우 피해자의 유가족이라곤 하나 불륜이 사실이라면 살인의 청탁이 의심스러운 바, 최면술과는 별개로 불륜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판사의 말에 노형진은 속으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시간은 벌었으니까.
“다음 기일 잡겠습니다.”
그렇게 재판부에서 기일을 정할 때 이광인은 재빠르게 현장을 벗어났고, 그 뒤로 두 사람이 일어나서 스윽 따라가고 있었다.
***
“현장에서 최면술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반응 봤지요?”
“네. 뭔가 아는 눈치였어요.”
“그렇다면 이제 그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아마도 최면술을 건 사람에게 접근하려고 하겠지요?”
고연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는 전문 범죄자가 아니다. 변수가 생기면 그 변수에 대해 잘 알고 해결할 만한 사람에게 가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요. 첫 번째는 핸드폰으로 접촉하는 것, 두 번째는 직접 접촉하는 것.”
“전자는 무리 아닐까요?”
“무리일 겁니다.”
일단 노형진이 거기서 의심스럽다고 내지른 이상 진양호는 그를 조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조사의 대상에는 그의 핸드폰이 포함될 테니, 핸드폰으로 통화한다는 건 상대방의 신분을 드러낼 수도 있는 짓이 되어 버린다.
“어쩌면 그것도 대포폰일 수도 있고요.”
노형진은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일을 하는 놈들은 절대로 자기 핸드폰을 오래 쓰지 않습니다. 물론 가족이나 일반적인 업무에는 드러나게 쓰겠지만, 업무용 폰은 자주자주 바꾸는 편이지요.”
길어 봐야 3개월 쓰는 게 일반적인 만큼 아마도 상대방은 그 핸드폰도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두 번째 방법은 직접 가서 접촉하는 것뿐이지요.”
핸드폰으로 거래하고 돈을 계좌로 보내 주는 건 아닐 테니 이광인은 어디선가 그를 만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 그를 대신하는 누군가라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광인이 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지요. 아마 본인은 생각도 못 할 테지만요.”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하오니…….
“젠장!”
몇 번이나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이광인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절대 걸리지 않는다며! 절대로!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집 안을 뱅뱅 도는 이광인.
그런데 걸렸다.
난데없이 상대방 변호사가 최면술을 꺼내어 들고나오고 자신의 불륜까지 알아냈다.
불륜이야 어떻게 잘 감시하고 주변을 확인한다면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최면술을 이용한 것까지 알아낸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이광인은 집 안을 뱅뱅 돌았다.
그러나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이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따라오기 시작한 사람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이 누구인지 모를 수는 없다.
분명 새론에서 붙인 사람들일 게 뻔하다.
“그냥 무시할까? 응? 그냥 무시해? 그게 최선일까?”
그는 애써 머리를 굴렸다.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니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도 재산을 넘겨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불륜으로 인한 살인이라면 문제가 된다.
만일 살인을 청탁한 것이 발각되는 경우, 자신은 끝장이다.
“젠장.”
그냥 모른 척하자니 찝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최소한 그들에게 접촉해서 지금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도망치거나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거다.
그러다가 그들이 걸리면…….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호상미에게 전화해서 무조건 발뺌하라고 했지만 마냥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호상미는 현재 상황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인까지 불사했다는 걸 모르니 위증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씨발…….”
호상미에게는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숨통이 조여 오기 시작하자 이광인은 과거의 자신이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나갈 수도 없고…….”
이미 아파트 앞에는 감시하는 놈들이 있다.
그들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놈들을 어떻게……. 잠깐만, 그놈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가장 안전한 것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눈앞에서 감시하는 놈들을 치우는 것뿐.
“그래,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이광인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
“아마도 이광인은 다른 사람을 불러올 겁니다.”
“누구를 말이죠?”
고연미는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일에 대비해서 자신들을 포함해서 세 팀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사실 도와주러 올 만한 사람들은 없어 보였으니까.
“당연히 알려 준 사람이지요.”
“알려 준 사람?”
“사건 초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는 그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았겠느냐고.”
“아!”
최면술 범죄 전문가라고 홍보하지는 않을 테니 누군가는 소개시켜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일종의 공동체다.
한 명이 잡혀서 입을 나불거리면 다른 한 명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지요.”
노형진은 그런 도움 요청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대놓고 추적자를 붙였다.
추적자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는 분명 그들을 떼어 내려고 방법을 찾을 테니까.
“그리고 그 방법은 뻔하지요.”
영화나 드라마에 흔하게 나오는 방법.
노형진도 몇 번이나 써먹었던 방법.
그건 다름 아닌 대리인을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그 사람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속여서 추적자가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
“어차피 감시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아파트의 형태상 1층에 있는 아파트 현관 입구와 지하 주차장 입구, 이 두 곳만 감시하면 일반적으로 어디로 가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게 할까요?”
“아마도요.”
노형진은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고의적으로 검찰의 사정권 안에 밀어 넣은 이상 이광인은 무슨 수라도 쓰려고 할 테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삐빅’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그건 다름 아닌 이광인의 차였다.
물론 그쪽에는 감시하는 요원이 있었다.
-이광인의 차에 누군가가 접근합니다.
노형진의 무전기에 들리는 목소리.
노형진은 잽싸게 무전기를 받아 들었다.
“신발은 확인했습니까?”
-갈색. 구두입니다.
“갈색 구두를 신은 사람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신 분 있습니까?”
바로 들리는 목소리.
-1층 감시 팀입니다. 갈색의 구두로 보이는 것을 신고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간 지 대략 30분쯤 되었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낼 방법은 많았다.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동일한 구두입니다.
“역시 우리 예상대로네요.”
“구두를 감시한다니, 진짜 저는 생각도 못 했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사람들은 감시한다고 하면 당연히 옷이나 얼굴을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광인이 얼굴을 보여 주지는 않을 테니 결국 옷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 옷을 주고, 입고 나가서 자기 차를 끌고 나가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어지간한 감시자들이라면 그걸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봐도 이광인이니까.
“하지만 신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신발은 대부분 신경을 쓰지 않는 요소 중 하나인 데다가, 사람은 자신이 신었던 신발을 그냥 신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마다 신발 사이즈가 다르니까.
“들어갈 때 신었던 신발과 동일한 신발을 신은 다른 사람이라…….”
당연히 그건 이광인에게 불려 온 누군가였다.
그는 이광인의 옷을 입고 그대로 나와서 이광인의 차를 타고 움직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광인은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재판정에 입고 나갔던 옷을 그대로 입고 다시 나와요?”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갈아입고 나간다.
그게 벌써 3일 전이니까.
“그는 우리가 자신이라고 확신하기를 원한 겁니다.”
물론 노형진은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척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놈도 최면술을 이용한 사건을 벌인 놈일 수도 있으니까 그대로 따라가세요. 이광인을 속여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이광인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로 따라 움직이는 감시자들의 차.
노형진은 시계를 힐끔 확인했다.
“이제 이광인이 움직일 시간인 것 같은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층입니다. 이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현관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조용히 따라가세요.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얼굴을 감추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가 신었던 신발은 그대로였기에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고, 이광인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나가 외부의 상가 주차장으로 가더니 거기에서 새로운 차에 올라탔다.
“아마도 방금 나간 놈이 가지고 온 차인가 보군요.”
“그런가 보네요.”
“우리는 이제 저 차만 따라가면 되는 거지요.”
노형진은 그렇게 움직이는 차를 따라 한참을 내달렸다.
혹시나 자신도 속았을 수 있기에 한 팀을 더 남겨 뒀지만, 다행히 내달리는 차에는 이광인이 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바로 인천 쪽으로 향했으니까.
“어디로 갈까요?”
“아마 고정 접선책을 만나러 갈 겁니다.”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광인이 상대방과 전화로 통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설명하고 대피시키든가 아니면 증거를 인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간 이광인의 차는 인천 외곽에 있는 작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주 흔한 곳이네요. 그리고 아주 작고요.”
노형진은 외부에서 힐끔 안쪽을 살피며 말했다.
테이블이라고는 고작 네 개뿐인 작은 커피숍.
한눈에 손님들을 다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커피숍이었는데, 커피숍 안에서는 반백의 노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을 대접하고 있었다.
“따라서 들어가지 않고요?”
“너무 좁아서요. 저런 곳이면 감시자가 있다면 바로 티가 날 수밖에 없지요.”
노형진은 커피숍을 보면서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노년의 신사가 소일거리로 커피숍을 운영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단정하게 깎은 머리는 포마드로 관리하고, 느릿느릿하지만 확실한 움직임으로 손님에게 커피를 내주는 노인.
하지만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고연미는 이내 알 수 있었다.
“웃고 있네요.”
좀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내부를 살피고 있는데, 이광인은 잔뜩 흥분해서 격하게 행동하는 것에 비해 그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상적인 건 아니죠.”
누군가 당황해서 눈앞에서 횡설수설하고 있다면 누구든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거나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쫓아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인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 이광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놓아 주고는, 천천히 입구로 다가가 입구에 걸려 있는 팻말을 ‘영업 종료’로 바꿔 놨다.
“저 사람이 범인일까요?”
“글쎄요, 그건 확실하지 않네요.”
최면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만큼 저런 노인이라고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저런 노인이 어떻게 최면술 전문가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한국은 최면술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모지 아닌가요?”
고연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