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47)
죄의 고백 (4)
정상적이라면 아픈 척한 거 아니냐, 내면의 상황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같은 식으로라도 반격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뭔가 이상해.’
왕진백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탈할 수는 없었다.
당장 자신의 등 뒤에 일반 방청객으로 앉아 있는 사람도 척 보는 순간 요원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피해자로 추측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최면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노형진의 말에 진양호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검사와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다는 거다.
“검사 측, 검사 측은 이번 실험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 실험 대상은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최면에 걸린 게 사실이라면 최면을 통한 살인도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즉,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최면은 아닐 거라는 거다.
“그러면 다음 증인을 호출해 주십시오.”
노형진은 미리 준비한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등장했을 때, 왕진백의 눈은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방청석에 앉아 있던 그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으니까.
“증인들, 알은척하지 마세요. 여기는 신성한 재판정입니다.”
증인들은 재판정에서 서로 대화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서로 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네가 그러겠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왕진백을 보면서 노형진은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대로 잡았다.’
이미 왕진백이 최면 전문가라는 건 알고 있다.
만일 최면을 풀려고 하면 고통을 느끼게 해 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오래된 사람이라면?’
아주아주 오래전에 건 사람이라면?
그리고 딱히 그게 풀릴 거라 생각하지 않고 언제든 다시 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익숙한 대상에게는 방심하기 마련이지.’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자신의 아내가 설마 배신하리라고 생각할까?
애초에 이 나이가 되면 불타는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으로 산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래서 방심하는 게 사실이다.
“함숙자 씨.”
노형진은 진지하게 증인에게 말했다.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최면 여부에 대해 확인하고자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함숙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노형진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증거들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젊어서 왕진백을 불같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분명 존재했다.
처음에는 불같이 반대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왕진백에게 우호적으로 변했고, 자식들도 사춘기에 갑자기 변했다.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사람이 갑자기 바뀐 일이 많았다.
심지어 함숙자도 바뀌었다.
젊어서 그녀는 비혼 주의자였다. 하지만 왕진백을 만나고서 바뀌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왕진백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났고 처음에는 시큰둥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다.
천천히 스며든 것도 아니고 한눈에 반한 것도 아니다.
“재판장님, 시작하겠습니다.”
심정상은 조심스럽게 나와서 함숙자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이 시계를 보세요. 이 시계는 당신을 과거로 데려갑니다.”
천천히 흔들리는 세계 그리고 점점 눈이 감기는 함숙자.
그리고 그걸 보면서 왕진백은 심각하게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눈치는 이내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어디 가시려고?”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왕진백의 양옆으로 앉는 두 사람.
시커먼 양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누가 봐도 국정원 요원이었다.
‘아…….’
왕진백이 절망하는 그때, 최면에 걸린 함숙자는 천천히 입을 열고 있었다.
“당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집이에요. 작은 2층집.”
“거기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왕진백 씨의 자취방이에요.”
어느 틈엔가 20대로 돌아간 그녀는 그때의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기서 뭘 하고 있나요?”
심정상의 말에 함숙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누워 있어요. 남편이 제 눈앞에서 동전을 흔들고 있네요.”
“뭐라고 하는지 들리나요?”
“당신은 내일부터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시키는 건 뭐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함숙자의 눈은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당신 기분은 어떤가요?”
“뭔 마르다 만 멸치같이 생긴 놈이 헛소리를 한다고…….”
“크흠.”
순간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애써 참는 사람들.
그러나 그 결과는 사실 뻔했다.
그게 성공했으니 결혼했을 것이다.
“다시 다른 시간대로 가 봅시다.”
심정상은 천천히 함숙자에게 말을 꺼내었다.
“저희 신혼집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뭐 하고 계신가요?”
“침대에 누워 계세요.”
“그러면 왕진백은 뭐 하고 있나요.”
“아버지 앞에 서 있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동전을 흔들고 있어요. 그 동전…… 그걸 보면 안 되는데, 말릴 수가 없어요. 안 돼…….”
말이 계속될수록 점점 떨어지는 왕진백의 고개.
“뭐라고 하는지 들리나요?”
“아버지에게…… 자료를 달라고 하고 있어요. 내일부터 정보를 가지고 오라고.”
거기까지 들은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판사에게 말했다.
“재판장님, 미리 알려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함숙자 씨의 아버지 함규필 씨는 안기부의 2차장이셨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아차린 판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 일이 이쯤 되면 판사도 어쩔 수 없이 최면술을 인정해야 하거든.’
그래야 왕진백을 체포하고 최면 피해자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제 변론은 이상입니다.”
노형진은 거기에서 말을 마치고 물러났지만 진양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앉아 있던 왕진백의 양팔 아래로 건장한 팔 두 개가 들어와서 팔짱을 꼈다.
“우리와 함께 갈래, 아니면 중국 요원들을 불러 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
“결국 최면술이 인정되네요.”
“엄청 복잡했지만요.”
노형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청 복잡했지만 그래도 최면술을 이용한 범죄를 인정받았다.
한국의 재판부가 아무리 보수적이고 새로운 걸 인정하지 않는 편이라 해도, 한국의 스파이 조직과 최면술을 통한 정보 포섭 문제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당연히 그걸 인정하는 판례를 만들어 놔야 나중에 처벌이 쉽기 때문에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어떤가요?”
왕진백은 결국 포기하고 사실을 다 말했다.
드러난 이상 외부로 나가면 중국 요원들에게 살해당할 게 뻔한 데다가, 노형진이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최면술로 한번 싸워 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최면술을 버티기 위한 훈련을 받았겠지만 그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최면술의 이론은 더더욱 발전했고 반대로 그의 정신력은 옛날과 같지 않았다.
“그나저나 최면술 살인이라는 게 가능할 줄은 진짜 몰랐네요.”
“몰랐지요.”
심지어 최면술 살인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최면술을 이용해서 이득을 챙긴 건 백 건이 넘고, 최면술을 이용해서 살인한 건 무려 세 건이었다.
“정말 인간은 발전하지만 범죄는 더 빨리 발전하는 것 같네요.”
고연미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잘해야지요. 노력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거니까요.”
다만 그게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