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71)
열리는 트로이의 목마 (2)
“아무래도, 나도 저쪽이랑은 일하기 힘들겠네.”
조합 쪽의 멤버였다.
이렇게 극단적인 분위기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아, 잠깐만요. 조금 진정하시고…….”
감독은 애달픈 목소리로 만류했지만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번 리딩은 망했다는 걸.
***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박상규는 보고서를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조세빈 측과의 충돌로 드라마가 멈췄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으니까.
그나마 기사화는 막았지만 말이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는 하지 않지요?”
“네. 프로니까요.”
사이가 아무리 안 좋아도, 그래서 서로 욕하고 무시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키스를 할 수 있는 게 바로 배우들이다.
그런데 그런 배우들이 이렇게 극단적 대립을 하게 한 것.
그게 바로 노형진이 설계한 트로이의 목마였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 되는 거죠.”
“자존심 싸움?”
“이쪽과 저쪽은 같이 못 간다는 겁니다.”
지금 제작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화해를 시켜서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그게 정상이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리해지는 건 포직스거든요.”
왜냐하면 포직스는 돈을 가지고 성장하고 배우를 흡수할 수 있지만, 조합에 속한 곳은 그게 불가능하다.
애초에 작고 약하기에 모여서 조합을 만든 거니까.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포직스만 성장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입니다.”
이쪽은 군소 소속사들의 모임이지만 최소한 작품마다 한 명씩은 속해 있기 때문에 숫자로 본다면 당연히 이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포직스의 경우는 데리고 간 배우들이 소송 중인지라 아직 그들을 쓰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조세빈 씨도 공식적으로는 소송 중이니까요.”
그러니 그 손해배상과 관련된 금액이 결정되면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
“그래서 포직스가 말라 죽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그게 쉽지 않을 텐데요.”
포직스의 뒤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있다.
최소한 수천억의 자금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포직스가 망할까?
그럴 리가 없다.
“포직스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망하겠지요.”
“누구 말입니까?”
“방송국 말입니다.”
“방송국?”
“그렇습니다. 지금 포직스, 아니 두한에서 로비해서 방송국에서 우리가 출연할 자리를 줄이고 있는 건 아시죠?”
“그렇게 티가 나는데 모를 수는 없죠.”
사실상 게스트 등 한계가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런 자리들을 포직스가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두한의 방식을 생각하면 국장이나 부장 같은 고위직을 통해 압력을 행사했을 겁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요.”
두한의 방식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포직스도 두한의 계열사인 만큼 그런 방법을 선호할 테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직위를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부장 또는 CP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직책의 명칭이고요. 그 직위를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이 바로 관리직입니다.”
관리직. 말 그대로 뭔가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관리직 하면 권력을 쥐고 갑질 하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실제로 권리는 쥐지만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직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자기는 쏙 빠져나가니까.
그러나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사이즈가 되는 일일 때의 이야기다.
만일 그 체급을 한참 넘어 버리면?
그때는 본인의 목부터 날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친구 만들기>는 예비 촬영분이 1주가 남았고 드라마 경기 연가>는…… 빵꾸 직전입니다. 뮤직 월드>는 섭외할 수가 없다고 하고. 고향 어부>는 다다음주 촬영이 취소되었고…….”
상황 보고가 계속될수록 회의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보고를 듣는 사장의 얼굴은 분노로 점점 붉어지고 있었고, 일부 부장들과 이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찍소리도 못 했다.
“그래, 좋다. 어쩔래?”
사장이 날카롭게 물었다.
“로비받아서 출연 금지시키고 접대받을 때는 좋았지?”
두한과 대룡.
이 두 집단의 싸움이 격해지고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한 출연 금지를 요구하니 방송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사장님, 그게…….”
“미쳤냐? 어? 해 처먹는 것도 작작 해야지!”
사장도 바보는 아니다.
방송계에서 부장급만 되면 그 파워가 하늘을 찌른다는 것은 안다. 자신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장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잖아!”
“아니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씹쌔끼들아!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돼?”
연예인이 다른 회사로 가지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다른 회사로 쫓아 보내기 위해 몰래 출연 금지를 걸거나 방해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여기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각자 로비받은 결과가 이거야?”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줄어 버렸다.
“그게…… 대룡에서 그렇게 대놓고 공격할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잘했다 이거야?”
포직스는 몰래몰래 뒤에서 공작을 했는데 대룡은 아예 포직스 쪽 전부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을 요구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그걸 요구했고, 심지어 거절한 곳에 대한 공격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이거 보이냐?”
툭 하고 서류철을 던지는 사장.
어젯밤 방송을 캡처해서 컬러 인쇄한 것이었다.
“뭐가 보이냐?”
“…….”
“모르겠어?”
“…….”
모르는 게 아니다.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다.
“PPL이 여섯 개나 끊겨서 추가 지원을 요청해 왔는데 그 돈, 너희들이 줄 거야?”
프린트된 캡처에는 언제나 보이던 PPL 상품들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음료수와 과자류까지 모조리.
당연하다.
PPL이라는 건 결국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홍보하는 거다. 그런데 대룡과 두한의 싸움에서 엉뚱하게 두들겨 맞기는 싫다는 것이다.
“야, 달려라 일요일>은 뭐라는 줄 아냐? 돈이 없어서 종영해야 한단다.”
달려라 일요일>은 인기가 아주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광고와 PPL이 엄청 붙었다.
그 때문에 방송국에서는 제작비를 많이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남았기에, 외주 업체도 그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에 갑자기 광고고 PPL이고 모조리 다 떨어져 나갔다.
” 달려라 일요일> 저녁 6시 30분 방송인 거, 알지?”
말 그대로 가장 황금 시간대. 그 시간대를 날려 버리게 된 것이다.
“거기를 도대체 뭐로 메꿀 거야? 어?”
“…….”
당장 다다음주면 방영분이 없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갈 프로그램이 필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드라마와 다르게 예능은 사전 제작해 둔 것도 없다.
“드라마야 그래, 한두 달 정도는 사전 제작된 걸로 어느 정도 메꿀 수 있다 쳐. 물론 가격은 더럽게 올랐더라?”
원래 회당 2억을 달라고 하던 사전 제작 드라마가 회당 4억까지 올라갔다.
그마저도 방송국마다 못 구해서 안달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미 드라마 제작이 완료된 이상 배역을 바꿔서 재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당연히 방송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전 제작 드라마로 시간을 버는 한편 그동안 그 둘의 싸움에 끼지 않은 배우를 섭외해 드라마를 제작해야 했다.
“상대방이 누군 줄 알고 이 지랄 한 거야? 어?”
만일 그저 그런 소속사나 회사였다면 이런 지랄맞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두한과 대룡이다.
한순간 눈 돌아가면 뵈는 게 없다는 대룡.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진 두한.
“아, 미치겠네.”
양쪽 다 자존심 대 자존심으로 부딪친 상황에서 방송국은 말 그대로 두들겨 맞는 수밖에 없었다.
“PPL은 그렇다 쳐. 광고는 어쩔 거야? 어?”
PPL이야 어차피 제작사에서 먹는 것인 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광고다.
왜 방송국에서 시청률에 매달리는가?
자존심 싸움 때문에? 아니면 자신들이 이룩한 것에 대한 보람?
아니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광고의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고가 싹 빠졌다.
대룡은 광고란 광고는 다 빼 버렸고, 두한은 자금 문제로 광고를 집행하기 버거워한다.
당연히 빈 시간을 다른 곳에 팔아야 하는데, 다른 기업들은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낮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두 대기업의 대리전이 벌어지면서 애꿎은 방송국이 죽기 직전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뭐야?”
뭔가를 던지는 사장.
서류철이 촤악 퍼지면서 내용물이 테이블 위로 흘러나오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룡의 갑질? 방송계를 붕괴시키는 거대한 탐욕? 장난해? 지금 그게 누구한테 어울리는 소리라고 생각해?”
“…….”
대룡은 처음부터 매너 좋게 시작했다.
포직스엔터처럼 갑질을 한 적도 없고, 소송을 통해 배우의 출연을 막으려고 한 적도 없으며, 자기네 사람들 쓰라고 뇌물 처먹인 것도 없다.
“너희들은 뇌물이 궁하지? 그렇지?”
그리고 그 부분이 바로 이들에게 불편했다.
전이라면 매 분기마다 출연 좀 시켜 달라고 온갖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고 현금으로 가득한 가방이 배달되곤 했다.
하지만 대룡이 나타나고 나서 그런 것들이 모조리 막혀 버렸다.
“그래도 선은 넘지 말아야지!”
철저하게 대룡에 불리하게 쓰인 기사.
신문에 실리기 전에 사장이 먼저 커트한 것이다.
“사장님, 그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나갔으면 대놓고 대룡과 싸우게 됐을 거 아니야! 그렇지?”
“…….”
말을 못 하는 사람들.
“나는 모르겠다.”
“네?”
사장은 긴 한숨을 쉬었다.
이 기사가 나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상황이 자신이 막을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그 괴물이 찾아왔을 때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희들 알아서 재주껏 살아남아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를 자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얼굴이 창백해지는 부장급들과 이사급들.
그러나 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너희 자르고 끝나면 다행이지.”
“그게 무슨……?”
“난 몰라. 알아서 살아남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 버리는 사장.
회의가 끝난 것도 아닌데 나가는 사장의 모습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사장과 교대해서 들어온 존재를 본 그들은, 사장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두한 여러분들?”
“두한?”
“두한이라니요? 저희는 그 회사에 안 다니는데…….”
그들의 항변은 다음 말에 모두 무시되었다.
“두한에 줄 서신 거 맞지요? 그러니까 두한 사람이지요.”
“그게…….”
“그리고 적을 살려 두기에는 공기가 아까워요.”
“저…… 적이라니요!”
“원래 전쟁이라는 건 말입니다, 졸병들을 다 쳐 내야 대장 모가지를 쳐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한의 졸병이라는 겁니까?”
“아니요. 졸병‘이었던’ 사람들이지요. 과거형.”
“과거형…….”
그 사람, 노형진은 웃으면서 사장석에 앉았다.
“그래, 유언이나 들어 봅시다. 자살을 이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그 순간,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확실하게 알아들은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거 아시네요?”
싱글거리는 노형진.
설마 노형진이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