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98)
우발적 살인 (2)
***
노형진은 홍혜인에게 온 변호사가 백운주류에서 보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녀 혼자서 불렀다기에는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저 정도 되는 변호사는 사건을 골라 가면서 받아들인다.
단순히 부유하기만 한 의뢰인보다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의뢰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혜인은 그런 의뢰인이 아니다.
“그러니 그 부분을 노릴 거야.”
노형진은 서세영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 제대로 배우겠다고 그녀가 마음을 먹었으니까.
“재판정에서 싸우는 게 아니고?”
“재판정에서만 싸우는 변호사는 하급, 그리고 재판정 바깥에서도 싸우는 사람은 중급, 재판도 하기 전에 결판내는 사람은 상급.”
“변호사 등급이?”
“그래.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등급이지.”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정하지만 사실이야. 그리고 그 변호사는 아마 중급 정도 수준일 거다.”
“고작? 그래도 차장검사 출신이라면서? 그런데 중급이라고?”
부장검사는 그래도 한 지역에 한 명에서 네 명까지 있다.
그러나 차장검사는 한 지역에 많아야 두 명이다.
쉽게 말해서 차장검사는 지역의 검사장 바로 아래라는 거다.
그런 사람을 노형진은 고작 중급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서세영은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치트 키를 쓰는 사람은 결국 실력이 안 늘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전관이잖아. 그것도 차장급 전관. 차장급 전관이 변론 실력이 좋겠어? 애초에 업무가 다른데.”
“아하!”
차장검사까지 했다는 것은 실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격에 대해서다.
그에 반해 변호사는 방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방식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차장급이면 기자들과도 어느 정도 선이 있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어지간하면 언론에서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움직여 주니까. 게임을 할 때도 치트 키 쓰는 놈들은 실력이 안 늘어. 업무 자체가 달랐던 데다가 정당하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치트 키로 싸웠던 놈들이, 실력이 늘겠어?”
그래서 차장급들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과대평가된다.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야 전관이라는 강력한 치트 키가 있으니 이길 수 있겠지만, 그 치트를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한 적이 등장하는 경우 도리어 실력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일이 제법 많았다.
“그러면 오빠는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리?”
“당연하지.”
노형진은 씩 웃었다.
“최상급 변호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배워 둬. 너도 언젠가는 써먹어야 할 테니까.”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
백운주류는 지역의 패자다. 그리고 당연히 그 지역에는 그 지역의 언론이 있다.
그런 지역의 언론은 지역의 패자에게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
“아무래도 광고 같은 걸 받아 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전국구 언론도 자본에 밀려서 휘청거리는데 지역 언론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생각을 해 봐. 백운주류가 지역 내에서 패자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품을 다른 지역에 팔지 말라는 법은 없거든.”
과거에 있던 그 법은 이미 사라졌다.
당연히 백운주류 입장에서는 외부에 술을 팔아서 수익을 내는 게 훨씬 이득이니, 기왕 광고를 한다면 지역신문이 아니라 전국 신문에 광고하는 게 낫다.
실제로 지역민의 술에서 전 국민의 술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노력 중이니까.
“그런데 그거랑 지역 언론사랑 무슨 관계야?”
“보면 알아.”
노형진은 서세영을 향해 싱긋 웃은 뒤 언론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명함을 내밀자 기자는 바로 그를 응접실로 모셨다.
“그런데 어떤 일로……?”
새론이 아무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각 지역별로 지점이 있는 데다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언론사에서 모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경찰이야 주변만 신경 쓰면 그만이지만 언론은 폭넓게 봐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노형진에게 대응하는 기자는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사실은 좋은 정보가 있어서 왔습니다.”
“좋은 정보요?”
“네. 적당한 대가만 주신다면 넘겨드릴 수 있는데…….”
“적당한 대가요?”
살짝 눈을 찡그리는 기자.
설마 새론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의 당황스러운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건지……?”
“백운주류,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가 있나.’ 백운주류는 이 언론사에 광고를 엄청 주는 회사니까.
당연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백운주류의 오선하 씨가 실종된 것도 아시겠네요?”
“아, 네……. 뭐, 가출이라고는 하던데…….”
백운주류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발표했으니 기자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오선하 씨가 가출 전력이 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번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선하 씨의 피가 차량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자의 눈이 커졌다. 이건 진짜 처음 들어 본 말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단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분명 노형진은 적당한 대가가 있어야 정보를 공개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공개한 정보는 참으로 감질나는 정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백운주류의 며느리의 피가 차에서 발견되었다?
그 말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만일 단순히 사고였거나 입원했다면 이미 자신들에게 정보가 들어왔어야 하니까.
“얼마를 원하십니까?”
“간단하게 300 정도면…….”
싱긋 웃는 노형진.
“아, 물론 현금입니다, 현금.”
“현금…….”
잠깐 고민하던 기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리고 한 30분쯤 지나서 그는 제법 두툼한 갈색 봉투를 가지고 왔다.
“현금으로 300만 원입니다. 그러면 다른 제보 사항을 좀…….”
“백운주류에서는 가출인 줄 알고 가출 신고를 했는데, 같이 연극하던 분들은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실종으로 보고 수사하던 중에 중고차를 산 사람이 차량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신고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노형진.
물론 옆에 있는 서세영이 그 차 주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조사해 보면 서세영이 차 주인이라는 걸 알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현행법상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외부에 피의자를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법이 그렇듯 힘이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검찰과 경찰 모두 그걸 지킬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형진의 동생의 신분을 죄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한다면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노형진이 말한 보이지 않는 협박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에, 노형진은 그녀의 얼굴이 드러날 가능성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전 차 주인이 유력한 살인 용의자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저기, 이거…… 혹시……?”
“독점으로 드리는 겁니다.”
노형진은 씩 웃었다.
“300만 원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후안무치한 놈은 아닙니다.”
독점이라는 말에 기자의 얼굴은 환해졌다.
“그러면 사건 번호도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요.”
노형진은 사건 번호까지 꼼꼼하게 알려 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좋은 정보 있으면 다시 부탁드립니다.”
“그래야지요. 적당한 대가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입니다.”
노형진은 아주 자비로운 얼굴로 웃었다.
옆에 있던 서세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무시한 채.
***
백운주류의 비극
백운주류의 며느리 오 모 씨가 실종된 가운데 경찰에서는 유력 용의자를 붙잡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관계자는 해당 용의자의 차량에서 오 모 씨의 혈액이 발견되었으며…….
해당 언론에서 나온 뉴스.
그 뉴스는 무서운 속도로 인터넷에 퍼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에서 재벌이나 준재벌은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종의 관음의 대상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런 중견급 기업들의 가족에 대한 사건이 나온 건 거의 없거든.”
백운주류는 규모로 본다면 중견기업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준재벌급이다.
그만큼 지명도가 있고 유명한 기업 중 하나다.
그런 곳을 경영하는 집안의 며느리가 피해자인 살인 사건.
그 살인 사건이 이슈가 안 될 리가 없다.
독점 기사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갔다.
노형진이 우라까이를 가지고 고소해서 기자들의 영혼을 털어 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사건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명백한 증거나 결론이 나 있는 사건들은 고소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 사건은 분명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
당연히 무서울 정도로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
“제보했다고 바로 기사화했다고?”
“알아서 긴 거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아니겠니?”
살짝 비꼼을 담아서 노형진이 말했다.
“저들 입장에서야 설마 차진광이 의심받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테고, 이럴 때는 언론의 포지션은 뻔하거든.”
백운주류 일가에 피해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줌으로써 일종의 동정표를 받게 하는 것.
그게 나중을 위해 언론에는 유리하니까.
동정표를 받게 해 줘서 나쁠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게 오빠 전략이랑 무슨 관계야? 아니, 최상급 변호사랑 무슨 관계냐고 물어야 하나?”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제발 오래된 개그는 하지 말고.”
“오래된 건 아닌데.”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다른 신문을 건넸다.
거기에 실린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른 곳과 달랐다.
용의자 오 모 씨의 변호인은 오늘 전격 사퇴를 발표하였다.
변호인은…….
“어?”
갑자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자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서세영.
언론에서 백운주류를 빨아 주는 것이 변호사가 물러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게 바로 최상급 변호사의 능력이지. 상관관계를 추론하고 그걸 차단하는 것.”
“차단?”
“언론에서 오선하 사건을 파게 되면 그 사건에 관심이 쏠리게 되지. 안 그래?”
“그렇지.”
“그리고 홍혜인에게는 지금 아주 비싼 변호사가 붙어 있지. 그런데 그 비싼 변호사를 보내 준 건 누구?”
“아!”
그제야 서세영은 노형진이 뭘 노린 건지 알아차렸다.
“변호사와의 선을 끊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지.”
언론에서 까이고 있는 홍혜인. 그리고 홍혜인에게 붙어 있는 비싼 변호사.
“만일 기자 중 누군가 그걸 의심하면?”
그래서 그 비싼 변호사를 누가 보냈는지 확인하면?
재수 없으면 그 변호사를 보낸 게 바로 백운주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백운주류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홍혜인을 위해 변호사를 샀다, 그게 뭘 의미하겠어?”
“살인을 방조하거나 같이 죽였다?”
“빙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저쪽은 세영이 너한테 내가 붙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노형진이 뒷조사를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대로 비싼 변호사를 붙여 둔다는 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일.
“그러니까 커트하겠지. 그리고 그 말은, 홍혜인이 백운주류에서 버려졌다는 걸 의미하고.”
“잠깐…… 그러면 홍혜인은?”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지.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