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
물론 그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로스쿨은 시험을 봐서 변호사 자격을 따는 데에 반해서 지금의 사법연수원 제도는 2년간 교육을 받아야 변호사 자격을 받기 때문이다.
“후우, 그나저나 이거 잘 수나 있겠나?”
술에 취해서 너부러진 사람들을 보며 장풍천은 입맛을 다셨다. 사방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에 잘 수도 없어 보였다.
“뭐, 산책이나 좀 하죠.”
“이 시간에?”
“이 시간이니까 해야지요.”
“끙, 그렇군.”
지금 시간이 아침 8시 30분. 밤새도록 술을 마셔 댄 것이다.
“난 빈방에 가서 잠을 좀 자야겠구나. 101호가 비었으니 너도 피곤하면 와서 눈 좀 붙이거라.”
“네.”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지라 규정도 있었다. 여관을 빌려서 남자 선생이 번갈아서 불침번을 서는 것이다. 한 명은 입구를 지키고 한 명은 순찰하면서 말이다. 혹시나 술 먹은 원생들이 사고를 칠지 몰라서였다. 다행이 이런 대처 덕분에 지금까지는 사고가 난 적이 없었다.
‘정신이 말똥말똥하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술에는 입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이 멀쩡했다.
‘몸이 적응한 건가?’
공부하면서 숱하게 밤을 새워서일까? 그다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좋다.”
노형진은 좋은 기분으로 산책하기 시작했다.
학원의 일상은 단순하다. 7시에 기상, 8시부터 수업 시작, 11시 취침. 노형진처럼 특별한 경우는 사정을 봐줘 가면서 빼 주지만 대부분은 그 타이트한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인다. 노형진 역시 사정이 있어서 바깥에 나올 때 말고는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이런 아침에 산책하는 것은 왠지 낯설고 기분이 좋았다.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랄까?
“와하하!”
“꺄하하!”
그러나 아침이라고 조용한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침을 준비하는 상인들과 학교를 가는 아이들까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드디어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기는 한데 시끄럽군.”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정신이 멀쩡하기에 멀쩡한 줄 알았더니만 시끄러운 소리에 오히려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일단 조용한 곳에 가 있어야겠다.’
하지만 아침의 산책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무너질 것 같은 놀이터였다.
‘사람이 없어서 좋기는 한데 왠지 으슥하군.’
아파트 자체도 오래되어서 무너질 것 같은 데다가 놀이터 자체도 워낙 오래되어서 녹슨 상태라 조용하기는 하지만 너무 으슥했다. 하긴, 그러니까 아이들조차도 접근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냥 가야겠다.’
아무래도 기분을 살리려고 왔다가 도리어 죽일 것 같아 노형진은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
나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흔들리는 오래된 그네에 작은 꼬맹이 한 명이 앉아서 삐걱거리면서 바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곳에…….’
그걸 보고 노형진은 움찔했다. 여기는 이 시간에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갈까?’
왠지 모르게 온몸을 흐르는 소름. 다가가면 상황이 꼬일 거라는 확실한 느낌. 안 그래도 좋은 기분으로 큰 시험을 끝냈는데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서 갈까 하던 노형진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늘에 숨어서 이쪽을 바라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이런, 썅.’
문제는 자신처럼 우연히 왔다가 발견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위치 자체가 우연히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데다가 상당히 능숙하게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 쪽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위치. 결정적으로 그의 눈에 과거 이규성에게서 보았던 탐욕의 눈빛이 보였다.
‘한두 번 온 게 아니라는 건가?’
저러는 걸 봐서는 저 아이가 여기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라는 거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놀이터. 혼자 있는 아이. 그걸 발견한 소아 성애자.
‘차라리 도와 달라고 꿈에 나타나지 그러냐.’
도무지 그냥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노형진은 그 아이한테 다가갔다.
“꼬마야.”
형진이 부르자 힘없이 고개를 드는 아이.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안 되지. 학교 가야지.”
노형진은 등 뒤로 느껴지는 분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윽…… 나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이거든?”
꼬마는 보아하니 열세 살쯤 된 듯했다. 초등학교 6학년. 한창 천진난만할 나이다.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될까.”
“…….”
하지만 대답은 하지 않는 아이. 그저 바닥만 보고 삐걱거리면서 오래된 그네를 움직일 뿐이었다.
“학교 가야지.”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여자아이였다. 이럴 때의 대처법은 세 가지뿐이다. 첫 번째, 경찰을 부른다. 그런데 고작 열세 살짜리쯤 되어 보이는 애가 세상 다 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왠지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했다. 둘째, 그냥 모른 척하고 간다.
‘그게 될 리가 없잖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소아 성애자 녀석이 있다. 하는 짓거리를 봐서는 아직 강력 사범까지는 아니고 은근슬쩍 추행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느 쪽이든 아이한테는 좋은 일은 아니다. 결국 남은 건 세 번째뿐.
털썩!
그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아서 똑같이 그네를 흔들기 시작하는 노형진. 그렇게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안 했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귀동냥이라도 해 두길 잘했네.’
아무래도 변호사 시절 아동 사건도 많았고 실제로 미국에서 아동 강간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그쳐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노형진은 그저 시간만 보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자 다행히 그 아동 성범죄자는 사라진 듯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꼬르륵.
어디선가 들리는 꼬르륵 소리. 밤새도록 고기를 먹은 노형진이니 그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배고프지?”
하지만 여자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노형진은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에 전화기를 들었다.
“오빠도 배고프거든? 나 짜장면 시킬 건데 넌 뭐 먹을래?”
“…….”
“말 안 하면 내 맘대로 시킨다.”
“아빠가 낯선 아저씨가 주는 거 먹는 거 아니랬어요.”
“난 낯선 아저씨가 아니야. 낯선 오빠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행동 때문인지 그래도 살짝 마음을 연 것 같았다.
“그러면 짜장면요.”
“짜장면 좋지.”
노형진은 짜장면을 시켰고, 얼마 후 놀이터 한복판에 두 사람은 신문지를 깔고 짜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허허, 참, 내가 새참 배달은 많이 해 봤지만 놀이터에 배달하는 건 처음이네요.”
배달원은 웃으면서 그릇을 받아 갔고 그 한 그릇의 짜장면 덕분인지 아이는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학교 안 가?”
친해지고 나서 천천히 질문하는 것은 아이와의 교류 방법 중 기본이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다그치지만 말이다.
“가기 싫어요.”
아니다 다를까, 한참을 함께 있었고 짜장면까지 먹고 나자 조금은 입을 여는 아이였다.
“왜?”
왕따일까?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왕따를 하기에 10대 초반은 좀 이른 나이다.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한테 혼나요.”
“선생님이 혼내?”
“네.”
“왜?”
“돈 안 가지고 온다고요.”
“돈? 무슨 돈?”
“급식비요.”
“급식비?”
그 말에 자신의 책가방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안내장 하나를 내밀었다. 그걸 본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러 가지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네 달째 식비를 미납했으니 가지고 오라는 소리였다. 만일 안 가지고 온다면 급식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단다.
“끙.”
노형진은 선생이 무슨 짓을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작은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부모님은?”
“맨날 싸워요.”
“왜?”
“돈이 없어서요.”
“뭐 하시는데?”
“일하세요.”
‘일하는데 돈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아이 급식비도 내지 못할 정도라니.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바라봤다.
“너, 어제 저녁은 먹었니?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야?”
“예림이에요. 이예림.”
“저녁은?”
그 말에 고개를 흔드는 아이였다. 그걸 보고 노형진은 속이 터졌다. 아무리 돈이 없기로서니 설마 아이를 굶길 정도라니.
“부모님은 뭐래?”
“맨날 싸워요.”
“그래서 이거 안 드린 거야?”
“이걸 드리면 또 싸울 테니까요.”
당연하다. 당장 저녁 할 쌀이 없어서 애를 굶기는 판국에 네 달 치 급식비 16만 원이 나올 리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한다며?’
일하는데 그 정도 돈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이 오빠랑 같이 갈까?”
“어딜요?”
“네 집에.”
“집에 가기 싫어요. 가면 또 싸울 거예요.”
“괜찮아. 오빠가 막아 줄게.”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노형진이었다. 머뭇거리던 이예림은 고민하다가 노형진의 손을 잡았다.
“뭐…… 꼬이라면 꼬이라지.”
포기한 듯 중얼거린 노형진은 예림이의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을 벗어났다.
“아오!”
“때릴 거면 때려 봐! 돈도 못 벌어 오는 게!”
“조금 기다리면 준다잖아!”
“언제! 언제! 쌀이 떨어진 게 벌써 사흘이야! 이제 외상도 못 해!”
“이걸 확!”
“그래! 패라, 패! 같이 죽자!”
집 근처로 가자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고 예림이는 겁을 먹은 듯 주춤주춤 노형진의 뒤로 몸을 감췄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잘하는 짓이다.’
아무리 애가 없기로서니 저 꼴이라니. 그나마 애가 있을 때는 좀 나을 테지만 지금은 없으니 막나가는 모양이었다.
“이건 말로 해 봐야 안 될 것 같은데.”
들어가서 ‘진정하세요.’라고 말해 봐야 저 상황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넌 뭐야, 이 새끼야!’나 ‘넌 빠져, 이 새끼야!’ 정도일 것이다.
“말이 안 되면 행동으로 해야지.”
노형진은 몸을 돌려서 예림이를 똑바로 바라봤다.
“예림아, 여기서 눈 꼭 감고 이백까지 세고 따라 들어와. 손으로 귀 막고. 알았지?”
“이백?”
“그래, 이백. 그때까지 엄마랑 아빠를 화해시켜 둘게.”
그 말에 예림이는 눈을 꼭 감고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나, 둘, 셋…….”
부모님을 화해시킨다는 말에 숫자를 세는 예림이를 두고 노형진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구석에 있는 꺾인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이백이면 되겠지?”
천천히 집으로 다가가는 노형진.
“죽자! 같이 죽자!”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울음소리.
“흐읍!”
노형진은 나뭇가지를 꽉 잡고 입구에 붙어 있는 유리창을 그대로 깨 버렸다.
와장창!
“꺄아악!”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자 기겁하는 두 사람. 그들의 시선은 노형진에게 향했다.
“실례합니다. 예림이 문제로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뭐야? 넌 뭐야, 이 새끼야!”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격한 반응. 노형진은 주먹을 꽉 쥐고 그대로 다른 유리창을 박살 냈다.
와장창!
“꺄아악!”
그걸 보고 기겁하는 예림이 엄마. 노형진은 그걸 깨고 나서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
“돈이 없어서 쌀도 떨어진 모양인데 저랑 이야기하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이거 다 깨트리고 튈까요? 참고로 유리창, 은근히 비싼 거 아시죠?”
너무 황당한 짓에 두 사람은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좋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우리가 미안하네……. 예림이가 그런 상황인 줄도 모르고…….”
노형진은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예림이를 데리고 왔다. 예림이는 잔뜩 겁을 먹기는 했지만 다행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왜 이 난리를 피운 겁니까?”
“크흠, 그냥 별거 아닐세.”
‘이게 별게 아니라고?’
온갖 세간이 날아다녔다. 예림이가 학교에 간 사이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별게 아니라니.
“저기, 이거라도…….”
“아, 네.”
컵에 담겨서 나오는 것. 그건 음료수도, 흔한 티백 차도 아닌 찬물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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