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18)
왕의 자리 (2)
밖을 보던 유민택은 몸을 돌려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영민이는 아직 어려. 자네도 알다시피 이제 얼마 후면 대학에 들어가네. 거대한 그룹은커녕 작은 동아리 하나 운영해 보지 않았어.”
“그래도 교육은 충분히 받지 않았습니까?”
“교육이야 충분히 받았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는 경험이 생기지는 않아.”
힘겨운 듯 소파에 기대서 말하는 유민택.
“이 자리는 피를 볼 줄 알아야 하는 자리야. 하지만 영민이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네.”
선택의 가혹함. 그런 걸 겪어 본 적이 없기에 똑똑한 것과 별개로 이 자리에는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줄 거야. 군에 갔다 온 다음에 말이지.”
많은 재벌가에서 후계자를 만들기 전 외부에서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해 보게 한다.
드라마에서처럼 입사하고 3개월 만에 과장, 6개월 만에 부장, 1년 만에 본부장 같은 식으로 승진하는 기업은 이제 별로 없다.
“누군가는 죽여야 하는 자리가 이 자리일세.”
유민택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는 하지요.”
단순히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의 월급은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니까.
대룡 내부를 정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갑질이나 성추행 등 자리를 이용한 범죄로 추방되고 감옥에 갔다.
그 당시에 그들은 살려 달라며 빌었고, 딸린 가족들을 봐서라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하다.
사실 그들이 쫓겨나면 가족들까지 고통받으니까.
그러나 유민택은 모두를 쳐 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러운 놈들만 잘라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민택은 지금까지 자신을 밀어준 수많은 개국공신들을 쳐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후계자가 들어오면 개국공신은 짐이 된다.
전대 왕과 같이 일했다는 이유로, 지금의 대룡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새로운 왕에게 특혜를 요구하고 그 위에 서고 싶어 한다.
그걸 알기에 지금도 개국공신들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노형진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해.”
유민택은 늙었고, 유영민은 자기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어리다.
“소영이 누님에게 넘겨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럴까 했지. 소영이는 지혜로운 여자니까.”
“무슨 문제가 있군요.”
강소영은 무능력하고 예쁘기만 한 여자가 아니다.
암살의 위험에서 아들을 지키면서 끝까지 버텼던 여자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는 영민이에게 중계해 주기 위해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계속 교육을 받아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안 좋은 소리가 나온 걸까?
“소영이만 본다면 괜찮아. 하지만 집안을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집안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쪽 집안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더군.”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외가가 문제라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외가라고 해도…….”
강소영은 사실 친정에서도 내쳐진 상태였다.
노형진이 강소영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혼자서 영민이를 키우느라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핏줄인 게 알려지고는 상황이 달라졌지.”
“설마?”
“뻔뻔하게 들어오더군.”
자기들의 외손주라며,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리 내쳐졌다고 해도 강소영에게는 부모님이었고, 막고 싶다고 해도 법률적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민택은 그들이 만나는 걸 방치했다.
“하지만 요즘 선을 넘는 경우가 많더군.”
“선을 넘는다라…….”
“자기 일가 사람들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소영이한테 부탁하는 모양이야.”
“흠…… 일자리라…….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합니다만 일자리 정도야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어찌 되었건 소영이 누님도 가족인데.”
“그 정도면 자네를 안 불렀지. 선을 넘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설마? 무리한 요구를 합니까?”
“부장급 이상의 자리를 달라고 하더군.”
“미친 거 아닙니까?”
부장급 이상의 자리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작은 회사에서는 죄다 과장, 부장이라 불러 주기도 하지만 최소한 대룡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재계 2위다.
그런 곳의 부장이라면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그만한 실적을 보여 준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자리다.
하물며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을 충성을 바친 충성파에게 제공되는 것이 바로 부장이라는 직급이다.
그런데 단순히 강소영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장급 자리를 요구한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외척 세력이 되겠군요.”
“내가 봐도 그러네. 외척 세력이 될 거야. 내가 살아생전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외척. 어머니 쪽의 친척을 뜻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등장하는 외척이라는 말은, 보통 왕의 외가가 왕을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하는 나쁜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실제로 그러한 외척 세력이 나라를 좀먹는 경우는 엄청나게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도정치다.
그 세도정치로 조선 시대에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는 조금만 역사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다.
“내가 죽으면 소영이와 영민이만 남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노형진은 눈을 찡그렸다.
그때 벌어질 일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겠지요.”
정상적이라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받아서 승계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간이 없기에 문제가 된다.
“나는 친가의 돈을 투자받아서 지금의 대룡을 이끌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친가를 모두 받아 준 것은 아니야.”
돈은 돈이고 능력은 능력이다.
아무리 친가 사람이라고 해도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퇴출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나면?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친가에서도 욕심을 부리는 놈이 나오겠지.”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 재계 2위 대룡이니까.
“그리고 소영이와 영민이가 남았다지만, 문제가 생길 걸세.”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아들만 남은 상황.
친가 쪽에서는 분명 이대로 놔두면 재산을 모조리 강소영의 집안에 빼앗길 거라고 선동하는 놈이 나올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권력을 잡을 테니까.
유영민은 유민택의 핏줄이지만 그 아이를 컨트롤하는 것은 강소영이니까.
“내가 피바람을 일으켜서 내부를 정리했다고 하지만 핏줄은 어쩔 수가 없네.”
친가에서는 강소영에 대해 불만이 나올 테고, 유영민은 자기 엄마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과 자신의 엄마 편, 즉 외가를 내부에 들이는 것일 테고.
“외척 세력이 들어오면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지겠지.”
이 모든 게 유영민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양쪽 다 유영민이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리를 탐할 것이 뻔하니까.
“회장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유민택은 유씨 일가의 편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민이는 그의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다.
그러니 마냥 가문 편만 들어 줄 수는 없다.
“애매하군요.”
가문의 편을 들어 주자니 유영민의 정당한 권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놈이 나오리라는 걸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고, 반대로 유영민만 키워 주자니 외척 세력의 전횡이 심해질 건 뻔한 일이다.
“대룡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주변에서 그냥 두고 싶겠나?”
“아…… 그렇군요.”
노형진에게 유씨 가문과 강소영의 집안을 중심으로 설명하기는 했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외부에 있다.
“내가 죽고 나면 분명 다른 기업들이 후계 가능성이 있는 놈들에게 달라붙겠지.”
그리고 서로 싸움을 붙이고 내부를 분열시키면서 대룡을 갈가리 찢어 먹을 것이다.
사실 집안 문제는 거의 핑계에 가깝다.
“문제는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거군요.”
“우리 집안에 그런 신의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 기꺼이 썼을 게야.”
하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거대한 제국을 이끌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해내지 못한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그들이 낼 수 있는 능력의 한계는 천지 차이다.
“내부의 피는 충분히 흘렸지. 하지만 외부의 피는 내가 어쩔 수가 없으니까.”
유민택과 지금의 대룡을 만든 개국공신들은 나이도 있고 또 유민택이 적당히 설득해서, 대부분 은퇴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 올라간 누군가 또는 집안의 사람들은 그게 아니겠지.”
하루하루 늙어 가는 유민택이다.
아무리 그가 노력한다고 해도 유영민이 완벽하게 성장해서 한 기업을 이끌 때까지 대룡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이미 체력적인 한계가 오고 있는 상황이고.”
회장이라는 게 그냥 그만두고 그다음 날부터 큰아들이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조금씩 자신의 능력에 맞춰서 또는 체력에 맞춰서 일을 넘기며 가르쳐 줘야 한다.
하지만 유민택에게는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회장님이 원하는 건 내부를 단속할 방법이군요.”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그거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민택.
외가와 친가의 싸움에서 강소영과 유영민을 보호하다가, 물러나야 하는 때가 왔을 때 욕심을 내지 않고 뒤로 물러날 만한 사람.
그리고 외가와 친가를 이용해서 대룡을 갈가리 찢어 먹으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대룡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
“딱 자네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유민택의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제가 너무 바쁜 사람이라서요.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제인 거지, 허허허.”
“그런데 외부에서 접근한다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대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10년 후를 내다봐야 하지. 최소한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밀려오는 파도에 쓸려 버리니까.”
농담이 아니다.
당장 스마트폰이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망한 것은 핸드폰 회사만이 아니었다.
카메라 회사, 게임 회사, 심지어 컴퓨터 회사나 달력 회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핸드폰에 달려 있는 카메라 렌즈는 어지간한 카메라 못지않고, 컴퓨터 게임보다 핸드폰 게임을 하는 시간이 더 길며,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컴퓨터의 판매량이 줄어서 일본 같은 경우는 신입 사원이 워드조차도 못 치는 판국이다.
달력이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날짜를 알아보기 위해 벽에 걸린 달력을 보기보다는 핸드폰을 들고 확인한다.
하나의 상품이 수십 개의 회사들을 도산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미 몇몇 기업들이 우리 집안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하더군. 특히 대학에 다니는 능력 있는 놈들에게 장학금을 핑계로 접근하는 모양이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유민택이 그 고생을 하면서 세워 올린 대룡이다. 하지만 자신이 먹으면 아주 쉽게 운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놈들이 많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 같군요.”
“콜럼버스의 달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나서 있었던 일화지요.”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난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파티장에 가면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그걸 시기하는 놈들도 있었고, 그들은 한쪽으로 쭉 배만 몰고 가기만 하면 신대륙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다면서 비웃음을 날렸다.
그때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세워 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달걀은 그 자체가 세워질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당연히 죄다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