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20)
왕의 자리 (4)
누님이 안 된다고 해 봐야 가문을 생각하라거나 가족들이 불쌍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계속 매달릴 게 당연한 일.
“그럴 때는 책임을 넘겨 버리면 그만입니다.”
내가 이야기해 놨으니 새론으로 가라, 그 말이면 시시덕거리면서 새론에 지원할 것이다.
“물론 왕창 떨어지겠지요.”
강소영의 집안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을 합격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도리어 더 깐깐하게 조사할 것이다.
“조사하다 보면 분명 뭐든 나오겠지요.”
그걸로 역으로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 노형진의 계획이었다.
이후에는 도대체 얼마나 무능력하면 내가 미리 이야기까지 해 놨는데도 제대로 합격도 못하냐고 몰아붙이면, 그쪽에서는 뭐라고 말도 못 한다.
실제로 결과지에 무능력으로 인해 떨어졌음이 증명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조사해 보니 유씨 가문과 나란히 두기도 애매하더군요.”
유민택의 유씨 가문은 그래도 각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제법 있고 그 재산도 제법 많다.
즉, 성공한 가문이라는 거다.
그에 반해 강씨 가문, 아니 강씨 집안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가서 불만을 가진다고 한들 이쪽에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공식적으로는 기회를 줬으니까.
“하긴, 자네 말대로 기회를 주는 척은 한번 해 봐야 포기하겠지.”
이해가 간다는 듯 유민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유씨 가문입니다만…….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뭐, 그쪽이야 내가 잘 알고 있지. 호시탐탐 나를 몰아내고 싶어 하는 자들로 넘쳐 나니까.”
쓰게 웃는 유민택.
같은 가문 사람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편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같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적이나 마찬가지.
“가문 회의가 소집되었네. 나도 가야 하고.”
“가서 한 소리 들으시겠군요.”
“그러겠지.”
유민택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잖아도 그 문제 때문에 자네를 부른 거야. 그들이 나를 압박할 것은 뻔하니까.”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해결책도 있겠구먼.”
“당연하지요. 그날 그곳에 가면 보여 드리지요.”
***
유씨 가문의 종친회.
보통은 집안의 제사나 기타 재산을 처분할 때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종친회가 유민택 때문에 열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오, 유 회장!”
“정신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우리 가문을 무시하는 거요!”
어마어마한 성토가 벌어지는 현장.
그곳에서 유민택은 평소와는 달리 찍소리도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싸우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기업의 운영은 그의 소관이니까.
‘하지만 나한테 참으라고 했단 말이지.’
무슨 행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라고 한 노형진 때문에 유민택은 그 모든 모욕을 꾹 참고 넘겼다.
그저 원론적인 수준에서 자신을 방어할 뿐이었다.
“내부의 부패가 심하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내부 환기 차원에서…….”
“내부 부패? 지금 우리 유씨 가문 사람들이 썩었다는 건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내부에서 일부 부당한…….”
“그걸 우리가 검사해서 잡아야지! 왜 엉뚱한 놈들의 손에 맡기나!”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 봐야 어차피 먹혀들지도 않을 테니까.
“흠…….”
노형진은 조용히 두고 보고만 있었다.
‘유민택 회장님은 외국의 재벌 가문을 꿈꾸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힘들겠네. 하긴, 그게 쉬운 건 아니지.’
로스차일드 가문, 카네기 가문 등 외국에는 금전적 능력을 가진 가문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힘은 일국을 뒤흔들 정도다.
그런 걸 꿈꾸고 유씨 가문을 밀었던 유민택이지만 딱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하긴 가문이라고 하지만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그게 가능하겠어?’
그런 해외의 유명 가문들이 받는 교육이란 국영수나 대학 수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한 가문을 이끌 사람으로서 평생에 걸쳐 경영만을 파고드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의 유씨 가문은 그게 아니다.
대학까지는 적당히 나와서, 나중에 가서야 이쪽에 관심을 보인다.
도리어 대학을 적당히 나와도 나는 대룡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렁설렁 공부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참 애매한 문제야.’
무한 경쟁은 사람을 지치고 쓰러지게 만든다.
하지만 경쟁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같달까?
“뭘 그리 생각하나?”
“아, 언제 내려오셨어요?”
“방금 내려왔지. 아주 죽겠구만.”
땀을 뻘뻘 흘리는 유민택.
유씨 가문에서 이렇게 가루가 되도록 공격받은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철저한 아군이었는데 적이 되고 나니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막 들이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차라리 적이라면 노형진과 함께 손잡고 밟아 버리면 그만인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된다.
“그런데 저들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인가?”
“특혜를 줄 겁니다.”
“특혜?”
고개를 갸웃하는 유민택이었다.
노형진은 누군가에 특혜를 줘서 문제를 해결하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특혜 말인가? 줄 만한 특혜가 있나?”
“있지요. 지금 유씨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유씨 가문의 사람이 얼마나 되는 거냐는 거죠. 정확하게는, 유씨 문중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연락을 주고받고 최소한 연락처라도 남겨진 사람들을 기준으로 속한 사람들의 숫자. 그게 중요했다.
“한 3만 명쯤 될 거네.”
“생각보다 많네요?”
“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네 말마따나 연락처라도 있는 사람들 기준일세.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백 명도 안 되지.”
“꼭 정치판 같네요.”
“정치판?”
“네, 한 줌도 안 되는 인간들이 뭔 일만 하면 국민들을 팔아먹지 않습니까?”
유민택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실제로 정치인들이 이권을 챙길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다.
심지어 국민을 때려잡는 법을 만들 때도 그들은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한다.
그 법으로 국민의 99%가 죽고 상위 1%만 살아남아도 무조건 국민을 위해 만드는 법이다.
“결국 그 백 명, 아니 백 개의 집안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 사람들이 다 해 처먹는 거네요?”
“그렇지.”
“뭐, 예상대로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제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단상에 올라갔다.
“친애하는 유씨 문중의 여러분, 저는 유민택 대표님을 대리하는 변호사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노형진에게 쏠렸다.
노형진은 그들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여러분들이 잘못 아시는 게 있어서 알려 드립니다.”
“잘못 알다니!”
“뭘 잘못 알았단 말인가!”
“저희 새론은 유민택 회장님과 충분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가능하면 기회를 만들어 드리자고 말입니다. 이에 저희 새론에서는 이번에 모집하는 분들을 기준으로 20%의 할당제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할당제?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할당제입니다. 저희 새론에서는 이번에 새로 뽑는 인원 중에서 20%는 무조건 유씨 문중의 분들로 채울 예정입니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으니까.
심지어 유민택이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믿어?”
“어차피 선발자 명단은 회사의 홈페이지에 공개될 것입니다. 저희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요.”
“할당제라고?”
“그러면 최소한 20%는 우리가 먹는 거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들.
“그러면 많은 지원 바랍니다.”
노형진은 짧은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유민택은 황당한 표정으로 노형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미쳤나?”
“뭐가 말입니까?”
“내가 왜 유씨 집안을 배제하려고 하는 건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일단 나가시죠.”
노형진은 유민택을 데리고 그곳을 나갔다.
저들이 헛된 꿈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에 타고 나서도 유민택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닐세. 20% 라니! 그게 말이나 되나?”
움직이는 차 안에서 유민택은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자신과 상의도 없이 결정하다니.
“도리어 유씨 집안의 파워가 더 강해질 거야. 나는 그걸 원하지 않네.”
노형진은 그런 유민택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제가 왜 회장님과 상의하면서 그걸 결정해야 합니까?”
“뭐?”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뽑는 사람들인데.”
“저는 대룡의 인재 선발에 관해 터치한 적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는 대룡에서 일할 사람을 유씨 문중에서 20% 뽑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아까 전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보는 유민택.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노형진은 대룡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제가 선발한다고 한 건 대룡이 아니라 새론입니다.”
“아!”
“일종의 심리적 함정입니다.”
새론의 전문 경영인 파견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서비스다.
일반 대중을 위한 것도 아니고 회사의 전문 경영인,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써야 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보이는 만큼,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 이번 일만 아니었다면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겠지요.”
다른 곳도 아닌 재계 서열 2위의 대룡.
그곳에서 일할 사외 이사를 뽑는다는 것.
그게 아니었다면 언론을 탈 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빠지는 함정이지요.”
새론에 뽑히면 대룡으로 간다.
이번에 홍보할 때 이용한 일종의 심리적 함정.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새론은 새론이고 대룡은 대룡이다.
별개의 기업이며, 새론에서 하는 경영인 파견 서비스는 당연히 그 이전부터 해 온 일반적인 업무다.
즉, 대룡에 종속된 게 아니다.
“새론에서 이번에 뽑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글쎄. 많지는 않겠군.”
현실적으로 파견되는 전문 경영인은 많을 수가 없다.
경영인을 파견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올해 선발 예정은 대략 이백 명입니다. 대룡의 사외 이사를 포함해서요.”
아무래도 대룡의 사외 이사 건 때문에 평소보다는 많이 뽑아야 한다. 그게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서 20%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이백 명에서 20%면 대략 마흔 명. 절대 적은 수는 아니다.
“그게 함정입니다.”
“그게 함정이라고?”
“그렇습니다. 파견직이라는 게 왜 불합리한지 잘 모르시네요.”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20%라고 하면 마흔 명. 많아 보이지요? 하지만 그게 끝입니다.”
“응?”
“회장님, 회장님도 기업을 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 아시죠?”
“흠…… 알고 있지.”
장애인 의무 고용이란 장애인들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 의무적으로 장애인들을 고용하게 하는 제도다.
지키지 않으면 그만큼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법적으로 현재 한국에서는 민간 기업의 경우 2.9%의 고용률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대룡은 어떻게 하십니까?”
“응?”
“사실 대룡도 대상 기업 아닙니까? 그러면 그 기준은 지키고 있으시지요?”
“당연히 지키지.”
현실적으로 대룡은 지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