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40)
대해적 시대? (4)
“일단 중국 선박이라고 하면 저놈들도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같은 나라 소속이니까요. 그러니 속여서 증거를 모아 볼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가 카메라를 설치해 볼까요?”
“몇 개 설치하기는 했습니다만, 더 설치해 주시면 감사하지요. 각 나오겠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서진규는 그 작은 배로 넘어가서 카메라를 달았고, 잠시 후 작은 배는 불을 켜고는 좀비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낯선 배가 다가오자 아니나 다를까, 좀비선에서 전처럼 다급하게 사람들을 배 아래로 밀어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노형진에게 고용된 사람들은 모른 척하면서 황곰의 조직원들에게 친근한 척 말을 붙였다.
“반갑소. 여기서 동지를 만나는군. 어디 소속이오?”
실제로 중국어를 쓰면서 이야기했기에 그들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기도 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꺼져. 우리는 황곰 소속이다.”
“황곰이 어딘데요?”
“황곰을 모른다고? 너희는 해상민병대에 속한 자들이 아닌가?”
어부라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해상민병대. 그런데 황곰을 모른다?
조직원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노형진 측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중 한 남자가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도시가 다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곰을 몰라?”
그리고 멀리서 숨겨진 마이크를 통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노형진은 연결된 마이크로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같은 편인 척하면서 가능하면 말을 많이 시키세요. 다른 도시에서 왔다고 하면 크게 의심은 안 할 겁니다.
남자는 바로 알아듣고는 함정을 팠다.
“그쪽 지역은 해상민병대를 황곰이 통제하는 모양이군요.”
“그래, 너희는 어디이기에 그것도 모르나?”
그때 노형진 측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과장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황곰이라는 곳은 모르는데.”
이어서 몇몇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신들, 당에서 허가받은 거 맞아? 내가 해상민병대 어지간한 곳은 다 아는데 황곰이라는 곳은 처음 듣는데?”
“당 사칭하는 거 아냐?”
적반하장으로 노형진 측에서 날카롭게 나오자 황곰의 조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미친놈. 당의 명령을 받는 해상민병대에서 당을 사칭하면 죽는 거 모르나?”
“아무래도 멀리서 온 모양인데, 이곳은 우리가 접수했다. 당에서 허락도 받은 거야.”
“다른 곳에 가서 물고기 잡아. 여기는 황곰 구역이야.”
‘나이스!’ 노형진은 그들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그래도 황곰을 당에서 밀어준다는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알아서 나불거리다니.
‘아마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서겠지.’
황곰이 서해를 다 지배하는 건 아닐 테니 당연히 다른 지역은 다른 조직이 지배할 테고, 영해를 넘어서 공해로 나오는 놈들은 아무래도 조직에 속한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해에서 물고기를 잡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밤중에 서로 적대하면 좋을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겠어.”
“저 새끼들, 아무래도 해상민병대 아닌 것 같은데?”
이쪽에서 도리어 설레발치면서 접근하자 저쪽은 잔뜩 경계하는 눈치가 되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꺼져!”
“그렇게 피를 보고 싶어?”
지난번과 다르게 칼과 도끼, 심지어 창까지 꺼내 드는 인간들.
배에 뜬금없이 웬 창인가 싶지만 중국의 어선들 중 일부는 한국 해경이 배에 올라타는 걸 막기 위해 실제로 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런 걸 대놓고 꺼내면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뭐?”
저들이 싸우기 위해 갑판으로 모이는 것. 그게 노형진이 노리는 것이었다.
기습하면 조직원들이 선창 아래의 방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경우 노예들이 인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면 자연히 한데 모이게 되니까 숨어 있는 놈들을 전부 끌어내기가 수월해지지.’
상식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인원수가 많은 쪽이 상대를 빠르게 담가 버리기에 유리하니, 당연히 황곰의 조직원들은 너도나도 갑판 위로 올라와 싸움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게 그들의 실수였다.
펑!
“끄아아악!”
“앞이 안 보여!”
“내 눈! 내 눈!”
컴컴한 밤의 어둠에 익숙해 있던 그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사이에 숨어 있던 병력이 우르르 그쪽으로 넘어갔다.
조폭들 사이에서 섬광탄은 생각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잡아!”
“다 때려잡아!”
“우리는 해적이다!”
“목숨만은 살려 주마, 하하하!”
아직도 역할에 취해 있는 몇몇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노형진은 괜스레 헛기침을 해야 했다.
“이건 편집해 주시는 걸로.”
“아니요, 좋은데요?”
“네?”
“해적이라는 게 남자들한테는 로망 아닙니까? 거기다가 좋은 일 하는 해적이라고 하면 충분히 먹힐 만합니다. 그리고 자칭 해적이라고 하면 그 황곰이라는 곳에서 추적도 못 할 테고요.”
“추적당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분을 감출 뭔가가 필요하기는 했다.
“일단 두고 보시죠, 위험하게 넘어가지 마시고.”
아주 잠깐이지만 싸움이 벌어졌고, 그곳이 정리된 후에 노형진과 서진규는 황곰 측 배로 넘어갔다.
“이 배는 다른 나라에서 빼앗은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단어들이 중국어는 아니었다.
“아마 그런 배들을 좀비선으로 운영하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에 안쪽에서는 잔뜩 겁먹은 노예들이 위로 올라왔다.
“혹시 이 안에 한도중 군. 있습니까?”
덕만수는 자신이 의뢰를 받은 게 있기 때문에 바로 한도중을 찾았다.
그러나 그 안에 한도중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국 사람입니까? 진짜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입니다만.”
“하느님, 감사합니다.”
남자는 번개같이 튀어나왔다.
“나 좀 한국으로 데려가 주시오. 제발…… 제발…… 한국으로 좀 데려가 주시오.”
“한국분입니까?”
“그렇소. 한국에서 여행 왔다가 납치되었소. 제발…… 한국으로 좀 데려다주세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매달리는 남자.
서진규는 그 장면을 찍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국 아이를 찾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국인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출 작전이 끝나면 한국으로 모셔다드릴 테니.”
노형진은 서둘러서 그를 일으켰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다른 곳도 가야 합니다.”
“다른 곳?”
“좀비 어선은 한두 척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능하면 빨리 구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 많은 희생자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게 노형진의 생각이었다.
***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계속 털어 내자 황곰에서도 결국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바로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식수와 식량을 공급하고 잡은 물고기를 회수하기 위해 갈 때마다 목격한 것은 떠다니는 부유물뿐이었고, 다른 좀비 어선도 그런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무전기를 쓰기에는 거리가 멀고 위성 전화는 너무 비싸서 못 쓰기에 어쩔 수 없이 인원을 동원해서 각 선박의 위치를 확인했는데, 그 결과는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뭐? 열 척을 잃었어?”
“그렇습니다.”
“배가 열다섯 척인데 열 척을 잃어버려?”
“누군가가 우리 배를 습격하고 다니는 게 분명합니다.”
“어떤 놈이야? 다른 조직이야?”
“모르겠습니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어서.”
잡히는 족족 노형진이 그들을 무인도로 데려갔으니 모두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 가는 놈 없어?”
“전혀 없습니다. 좀비선 몇 척 건드린다고 해서 우리가 넘어갈 것도 아니고…….”
좀비선이 황곰에 중요한 수입원이기는 하지만 그게 없다고 해서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굳이 좀비선만 노리다니.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네.”
“이런 개 같은!”
보스는 길길이 날뛰었다.
잃어버린 좀비선 따위가 아깝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칼을 들이민다는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경비 붙여.”
“네? 그게 무슨……?”
“남은 좀비선에 경호선을 붙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그 선박들은 일을 못 합니다.”
“누가 때려잡으래? 몇 척에만 붙이고 나서 어떤 놈이 그러는지 알아 오란 말이야!”
누군지 모르지만 삼합회 소속 조직이라면 삼합회를 통해 항의해야 하고, 아니라면 자신들이 그들을 밟아 버려야 한다.
이 바닥에서는 한번 무시당하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
“당장 가서 잡아 오란 말이야!”
보스의 눈은 분노로 인해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이거, 생각보다 곤란하겠는데?”
그날 밤. 정해진 위치로 갔을 때 노형진은 레이더에 나오는 선박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봐도 좀비선을 경호하는 것 같지요?”
“경호보다는 감시일 겁니다.”
덕만수는 초췌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열 척의 배를 뒤졌는데도 아직 한도중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습격하는 걸 이제는 알아차렸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걸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돈을 아끼려고 운영하는 게 좀비 어선이다.
그런데 그걸 지키기 위해서 선박을 주변에 배치하고 감시해야 하니, 당연히 그 선박들은 일을 못 한다.
그 피해가 계속 누적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경호가 목적이 아니라 접근하는 놈들이 누군지 궁금해서일 겁니다.”
현장에서 제압할 수 있으면 제압하고, 제압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 척이라도 도망쳐서 그 존재가 누군지 알린다면 황곰에서는 충분히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어선을 이렇게 마음대로 징발할 수 있는 겁니까?”
서진규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해상민병대는 준군사 조직입니다. 즉, 내부는 군사 조직처럼 위계에 따라 운영된다는 거죠. 그러니 거부는 못 할 겁니다. 더군다나 그걸 지배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황곰이라면요.”
법적으로도 부담스러운데 황곰이라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선원이나 선주를 납치해서 바다에 던져 버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따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저들은 못 구하는 거 아닙니까?”
세 척의 배가 있다.
이쪽에서 접근하면 당연히 도망가서 보고할 것이다.
“못 구하지는 않지요.”
저들이 전투를 하는 전투 요원도 아니고, 문제가 생기면 도망갈 게 뻔하다.
“다만 세 방향으로 도망갈 테니 우리가 따라가서 잡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잡아도 문제인 게, 잡는다고 해서 그들을 침몰시키거나 끌고 갈 수는 없다.
좀비 어선이야 명백하게 피해자가 있고 등록된 배도 아닌 데다가 거기에 있던 선원들은 범죄자인 만큼 데리고 있어도 어떻게 무마할 수 있지만 저들은 아니다.
저들은 선원이고, 저들이 탄 배는 중국에 등록된 선박이다.
그러니 침몰시키거나 선원을 인질로 잡는 건 곤란하다.
“그러면 우리가 곤란해지는 거 아닙니까?”
덕만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러나 노형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저는 완전 반갑습니다만.”
“네?”
“이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왜 굳이 이 배를 중국에서 구입했을까요?”
노형진은 배를 탕탕 발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