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6)
맞는 말이었기에 박광석은 어쩔 수 없이 취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들어온 말은 박광석을 더 기가 막히게 했다.
“그럼 5일 치 취소 비용으로 40만 원을 주셔야 합니다.”
“뭐라고?”
“뭐라고요?”
“말씀드렸잖아요. 예약한 걸 그쪽 사정으로 취소했으니 당연히 위약금을 물으셔야지요. 하루에 8만 원씩 40만 원.”
“장난하나!”
아무리 박광석이 호인이라고 하지만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애초에 취소하는 이유가 그들이 고지도 없이 차량의 가격을 무단으로 올려서 그런 것 아닌가?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우리가 여행 왔다고 만만하게 보는 거야?”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니라 애초에 동의하셨잖아요.”
“그럼 차량 가격이라도 제대로 고지하던가!”
“계약서에 분명히 써 있었을 텐데요? 차량의 렌트비는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이게 변동이야! 바가지지!”
“하여간 40만 원 주세요. 안 주시면 법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뭐?”
“법대로 하겠다고요.”
아주 막 나오는 상대방을 보면서 박광석은 도리어 차분해졌다. 방금 자신 앞에서 법대로란다.
“법대로 하겠다라. 후후후.”
왠지 미심쩍은 미소를 보이자 담당 직원은 움찔했다. 보통 이런 경우 상대방이 미쳐서 날뛰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대로 하자는 말에 도리어 차분하게 미소를 보인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그래? 법대로 하시겠다?”
“네, 법대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보통 이런 경우 상대방은 더럽다면서 돈을 놓고 나간다. 그럼 자신들은 가만히 앉아서 40만 원을 버는 것이다. 차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말이다. 어차피 이 바닥은 1년 지나고 간판 바꿔 달면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데 화내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렇게 웃는 사람은 처음인지라 직원은 불안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현아야, 이 사람이 법대로 하겠다는데?”
“호호호, 아이고, 배야…… 호호호…… 배야……. 아, 잠깐…… 나 그만 웃겨. 호호호…… 내 배…… 내 배……. 아이고, 애기…… 놀라겠다.”
미친 듯이 웃는 두 사람을 보면서 직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법대로 하지, 뭐.”
박광석은 미소를 지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어, 난데.”
“수고하셨습니다.”
노형진은 마지막 사건을 정리하고 피해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조심하시구요.”
“네,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아닙니다.”
그렇게 막 피해자와 이야기를 끝내고 그들이 나가는 순간 전화기가 울리면서 노형진을 불렀다. 노형진은 그걸 받아 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거기에는 박광석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처남.”
“와, 닭살 끝내주네요.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알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처남으로 부르자 노형진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사실은 말이야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서…….”
박광석이 사정을 이야기하자 노형진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뭐 병…….”
병신 같은 짓도 적당히 해야지, 법대로 한다는 말에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그래서 법대로 한대요?”
“응.”
“음…….”
법대로 한다는 말이 노형진은 무척이나 거슬렸다.
‘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 아닌데.’
물론 상식적으로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정부가 철저하게 기업 편에서 재판하도록 압력을 넣기 때문이다. 계약서 내부에 아주 깨알만 한 글씨로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는 한마디만 넣으면 그 후에 10만 원 더 청구하든 100만 원을 더 청구하든 기업 마음이다.
“어떻게 할까?”
“일단은 말이죠……. 무시하세요.”
“무시?”
“네.”
“아니, 왜?”
노형진의 말에 박광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노형진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법대로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간대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과연 그들이 소송할까요?”
애초에 소송하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고작 40만 원 때문에 소송한다는 건 기업의 입장에서는 손해다.
“뭐, 개인이라면 모르지만요.”
가끔 개인이 자존심 때문에 소송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들은 기업이다. 당연히 돈이 안 되는데 소송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무시하세요.”
노형진은 소송하면서까지 누나의 신혼여행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 정도 돈에 왈가왈부할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박광석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하긴 누가 자기 신혼여행을 망치고 싶어 하겠는가?
“그냥 신경 끄시고 신혼여행이나 잘 다녀오세요.”
노형진은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할일은 많고 시간은 없구나.”
노형진은 그저 시간 없는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응”
그렇게 신혼여행에서 갔다 온 박광석은 며칠 후 자신에게 날아온 명령서를 보고 기가 막혔다.
“뭐야?”
다름 아닌 지급명령 신청서. 지급명령이란 돈을 빌렸거나 갚을 게 있는 경우 빨리 갚으라는 일종의 법원을 통한 최종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에 반응하지 않으면 그건 확정되어 빚이 된다.
“뭐야, 이 새끼는?”
그 내용을 본 박광석은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안에는 위약금인 40만 원이 아닌 5일간의 차량 임대비인 200만 원을 갚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박광석은 그걸 갚을 의사가 없었다. 애초에 약속을 어긴 것은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먼저 약속을 어기고는 법대로 하자니?
“이 새끼들이 죽으려고.”
아무리 성격이 좋은 그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박광석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 그걸 구겼다.
“오냐, 이 새끼들아. 내 사법시험에 합격한 기념으로 밟고 시작하자.”
박광석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이거 참.”
노형진은 별거 아닌 걸 가지고 소송까지 하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자들이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으면서 돈을 달라고 한다고요?”
“그래, 이게 말이나 돼?”
“물론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돈이 되니까요.”
“돈이 된다?”
“약관 사기라고 하죠, 이런 걸.”
“약관 사기?”
“네.”
노형진은 박광석이 사기당한 걸 알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싼 게 비지떡이라고.”
노형진의 집안에는 돈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노현아가 아껴야 잘산다면서 여기저기 싼 곳으로 알아보더니 결국 이런 녀석들을 만난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니까요.”
사람들은 당장 들어가는 돈이 적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상대방에게 적당한 대가는 필수다.
가령 동남아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40만 원이라고 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에 들어가는 필요 경비를 생각하면 아무리 싸도 60만 원은 넘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조건 싼 것만 생각하면서 계약한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된다. 정작 동남아에 가면 관광지가 아닌 물건을 사게 하기 위해 마트에만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때쯤이 딱 그런 약관 사기들이 횡행할 때 인가?’
약관 사기란 간단하다. 사람들이 제대로 약관을 보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약관 내에 터무니없는 조항을 넣고 그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남아 여행의 3분의 2 이상이 쇼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렌터카 업체도 약관 사기를 한 거죠.”
아마도 노형진이 약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계약 위반 시 전체 임대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약관이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말이 돼?”
“됩니다. 현행법상 그래요.”
현 정부는 국민들의 피해나 그런 것보다는 철저하게 기업위주의 정책을 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재판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철저하게 기업 위주로 운영하게 된다.
“일단 약관에만 되어 있으면 솔직히 법보다 우선해 버리죠.”
“그게 말이 돼?”
“네.”
물론 약관에 사인한다고 해서 뭐든 법보다 우선하는 건 아니다. 가령 약관에 신체 포기 내용이 들어 있으면 아무리 기업이라고 해도 그걸 우선시할 곳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내용, 즉 금전이나 서비스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 민사법은 일반적으로 법적인 내용보다 약관을 우선시한다.
“특히나 이런 가격이나 서비스 등은 법적으로 규정된 게 아니니까요.”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규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말도 안 돼!”
“안 되기는요. 당장 비행기만 해도 언제 취소하든 30%는 위약금으로 떼어 가잖아요.”
“끄응…….”
박광석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맞는 말이다. 가령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세 달 전에 그걸 취소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여행사와 항공사에는 피해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 간다. 그러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가게 된 사람들은 심한 경우 50%의 돈을 뜯기게 된다.
“이쪽도 그렇고요. 솔직히 말해서 이건 저도 못 이겨요, 재판하면.”
“뭐?”
천하의 노형진이 못 이긴다는 말에 박광석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만드는 변호사. 그게 노형진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였다. 그런 그조차도 못 이긴다니.
“그게 현실이라니까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슥했다. 자신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결국은 변호사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이길 수는 없다.
“더군다나 저들도 그걸 알고 움직이는 녀석들이라서요.”
“뭐, 공정 거래 위원회로는 안 되려나?”
“될 리가 없죠.”
그쪽은 사법기관이 아니다. 그쪽에서 뭐라고 하든 그건 일종의 권고일 뿐 그걸 지킬 이유는 없다.
‘이건 영 안 좋아.’
이게 심해지니까 나중에는 심각하게 문제가 되었다. 나중에는 아예 여행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에도 그걸 어기는 놈들이 많았지만
‘결국 자폭인데 말이지.’
이때만 해도 자잘한 여행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모두 이런 짓거리를 하다가 사라지고 결국 거대 기업들만 살아남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쪽은 비싸지만 투명하게 운영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싸지만 바가지를 씌우고 사기를 치니 사람들이 절로 비싼 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탕 하고 나가려는 녀석들한테는 관심도 없는 일이지만.’
결국은 자기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장을 교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지만 정부는 그걸 막을 의지가 없었다.
“망할. 그러면 이 녀석들한테 돈을 줘야 한다는 거야?”
박광석이 사법시험에 붙었다곤 하지만 아직 사법연수원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실전을 겪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속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우 많아요.”
노형진은 안타까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물론 조정하게 되면 어느 정도 깎이겠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빼앗기겠지요.”
노형진의 말에 박광석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망할 놈들,”
“망할 놈들이죠.”
사람들은 노력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쉽게 돈을 벌려고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약관 사기는 피하려고 해도 쉽게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노형진에게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은 푼돈이다. 사실 하루 이자도 안 되는 돈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형진은 약관 사기를 하는 녀석들이 왠지 괘씸했다.
‘약관 사기라…….’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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