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73)
인생을 건 게임 (3)
무에타이 선수들이 기둥을 발로 차면서 단련하는 건, 상대방의 발을 공격해서 균형을 무너트리면 사실상 싸움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흔적을 보면, 그냥 막 찬 거예요. 사실 상대방이 발 공격을 그리 많이 한 것 같지도 않고.”
무태식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형태로 보면 막싸움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완전히 막싸움도 아니고…….”
막싸움이라면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고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고, 아주 개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싸움은 이렇게까지 될 리가 없거든요.”
막싸움이라는 말에 노형진은 슬며시 한만우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한만우가 묘한 표정이 되었다.
“막싸움은 아닐걸. 그래도 그놈이 용안대학교 출신이거든. 그것도 권투부.”
“권투부요?”
“그래.”
용안대학교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교 중 하나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스포츠계를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성체대와 용안체대. 한국의 스포츠는 이 양 갈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주요 스포츠의 국가 대표는 웬만하면 이 두 학교 중 한 곳 출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용안대학교 권투부 출신이 상대였다면 이런 막싸움 흔적은 남을 수가 없는데.”
아무리 실력이 부족해서 국가 대표가 되지 못하고 조폭으로 흘러들어 왔다고 해도, 애초에 용안대학교 출신이면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정도는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용안대학교 권투부 출신하고 싸우면 이 정도가 되기도 전에 눈 까뒤집고 기절하죠.”
단 한 방, 정확하게 관자놀이만 맞아도 사람은 눈 뒤집고 기절하게 된다. 그게 정상이다.
“그 상황에서 맞은 것 같지도 않고.”
여러모로 상처가 현실과 맞지 않는 상황.
“이거 참, 말이 안 되는데.”
무태식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일단 제가 변론에 나서 보지요.”
노형진은 일단 여러모로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민하면서 말을 꺼냈다.
물론 이 모든 게 정황증거이기는 하지만 엉뚱한 사람이 처벌받게 둘 수는 없으니까.
“아니야. 그만두게.”
“네?”
노형진은 갑자기 하지 말라는 한만우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한만우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온 것 아닌가? 그런데 그만두라니?
“이런 거라면 자네가 가 봐야 뭐 정황증거만 놓고 싸우게 될 테고, 그건 다른 변호사라고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격투기 이야기는 내가 전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부하 되시는 분은?”
“어차피 조폭이야. 이 바닥에 들어온 사람이 구속 같은 걸 두려워할 것 같나? 중요한 건 처벌을 안 받는 거야. 구속이야 뭐 벌도 아니니까.”
“처벌을 안 받는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내가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러네.”
한만우는 고민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조만간 내가 더 큰 걸 부탁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이지.”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고객이 의뢰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
그리고 노형진이 그 사건을 잊어버릴 때쯤 되었을 때, 한만우가 다시 찾아왔다.
“뭐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그가 꺼낸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암흑투기장이라고 아나?”
“그게 뭡니까, 그 중2병스러운 작명 센스는?”
“뭐, 센스는 둘째 치고 존재는 확실하지.”
“투기장이라고 하면 싸우는 공간 아닙니까? 그런데 그건 왜요?”
“사실은 그 사건 이후에 우리 쪽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봤거든.”
“실종요? 조직원 중에서요?”
“아니, 채무자 중에서.”
“채무자들이 야반도주하는 경우야 많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이사 업체 중에서 야반도주 전문이라고 홍보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알고 있네. 그래서 우리도 신경 쓰지 않았지. 그런데 자네랑 무태식 변호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좀 알아봤다네.”
어설픈 싸움의 흔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도록 싸운 흔적.
“설마?”
그 말을 듣자 노형진도 머릿속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투기장. 싸우는 걸 구경하는 공간.
투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로마에는 검투사가 있었고 스페인에는 투우가 있다.
한국도 투견이라는 불법 도박이 매년 벌어지고 경찰이 매년 잡아내고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 피 튀기는 현장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 큰 흥분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런 거, 소설이나 만화에나 나오는 거 아니었습니까?”
때마침 옆에 있던 무태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걸 보고 만들었을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사람이 상상한 거고 구현해 내지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확실히 그렇다. 과학기술이 필요한 SF도 아니고, 그냥 투기장으로 쓸 조용한 공간만 확보되면 그만.
“그런데 왜 야반도주한 사람을?”
“그 죽은 사람도 야반도주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 꼴이 난 것이다.
“그런데 야반도주했다는 놈이 가족을 버리고 갔어.”
물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악성 채권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제법 많아.”
“그 사람들이 도주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물론 도망간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이상하게 고소가 많았거든.”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쪽을 납치랑 협박으로 고소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야.”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실종된 사람이 고소할 리는 없으니, 결국 고소한 사람은 그 가족이라는 소리다.
“그때야 별생각이 없었거든. 하지만 당하고 보니 이상하더군.”
아무리 돈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다고 해도 가족들에게는 한마디라도 하기 마련이다.
무슨 드라마에서처럼 ‘아빠가 돈 벌어 올게.’라는 한마디라도.
“그래서 야반도주를 해도 고소가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었지.”
그런데 요 근래에 갑자기 그런 식으로 실종에 관련된 고소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한 3년 전쯤부터 늘어났더군.”
물론 그걸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 데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다면 이미 조폭이 아니다.
더군다나 증거도 없는 일방적인 신고인 만큼 대부분 경찰에서 혐의 없음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이번 일이 닥치고 보니 이상하다 느껴졌다는 것.
“혼자 야반도주한 사람이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알음알음 좀 알아봤지.”
아무리 양지화되었다고 해도 그들의 기본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한만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련 소문을 찾아봤고,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소문을 하나 들었다.
“투기장이라는 곳이 생겼다더라 정도의 소문이지만.”
정확한 위치나 날짜, 누가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저 그런 데가 있다더라 수준의 소문이었다.
“투기장이라…….”
노형진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같기는 하지만 또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예 거래와 장기 매매도 뻔하게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투기장은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신고가 들어오기 힘들겠네요.”
무태식도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만일 투기장이 있고 소수의 사람들이 거기서 쾌락을 얻고 있다면?
그들이 신고할까?
그럴 리가 없다.
결국 피해자가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살아 있는 피해자여야 한다는 것.
“로마에서는 관중의 선택에 따라 검투사의 목숨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헛소문이다.
검투사는 그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직종 중 하나였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진짜 노예들이 투입된 거고,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우는 검투사들은 승패에 따라 목숨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요즘 사람들이 잘 아는 건 아닐 테고.”
도리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검투사라는 건, 관중이 죽이라고 하면 일격에 패배자의 목을 날려 버리는 그런 것이다.
“나도 더 이상 파고들 수는 없었네. 정보가 너무 막혀 있어. 그나마도 이런 뜬소문 수준이 끝이라…….”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그러나 무태식은 얼굴 가득 불신을 띄웠다.
“아니, 그래도 진짜로 사람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지는 않지요. 이미 있는 거니까.”
“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투기장은 이미 존재합니다. 특히 태국 쪽에는 넘쳐 나지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태국이다.
태국에는 수많은 무에타이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태국은 그다지 인권을 신경 쓰는 나라가 아니다.
“태국에는 엄청난 수의 투기장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선수들은 출전하고, 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권 따위는 완전히 무시된다.
태국 정부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 안에서 흐르는 돈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국에서 13세 아동이 시합 중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첫 시합에서 재수 없게 터진 게 아니었다.
고작 열세 살짜리 아이가 무려 170회의 싸움을 했던 것.
공식 기록이 그렇다.
그 아이는 고작 여덟 살 나이에 첫 시합을 시작했고, 열세 살에 죽을 때까지 한 달 평균 3회 정도의 시합을 해야 했다.
그것도 돈을 걸고 하는 도박 싸움을 말이다.
“태국은 가난한 나라니까 그런 일도 가능한 거라고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잘사는 나라라고 해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과 관련된 범죄는 더더욱 그렇다.
“진짜로 누군가가 채무자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투기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게 한단 말입니까?”
“어차피 살아남아도 신고는 못 합니다.”
그런 투기장을 운영하는 자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신고해 봐야 본인도 살인죄로 처벌받을 뿐만 아니라, 보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빚을 탕감해 준다는 조건을 붙인다면?”
그렇게 말하면서 한만우를 바라보는 노형진.
그러자 한만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겠지.”
그 정도로 코너에 몰린 사람이라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다.
싸워서 이기면 빚을 탕감해 준다는데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지면 죽는다는 건 이야기해 주지 않을 거야.”
피해자가 사고로 죽은 건지 아니면 죽이라는 요구 때문에 죽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죽었다는 거고, 그 이유가 ‘맞아서’라는 거다.
무태식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거다.
“일단 이 사건은 저희가 하도록 하지요. 어차피 이게 사실이라면 감옥에 있는 직원분은 무죄라는 거니까요.”
“나중에 감옥에서 나오면 정부에서 두둑하게 뜯어내 주게나.”
역시 조폭 출신이라고 해야 하나?
억울하다는 말보다는 그걸 핑계로 정부에서 뜯어낼 생각을 하는 한만우였다.
“그런데 어떻게 찾으려고? 죽은 놈은 말이 없는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요. 하지만 그가 발견되었다는 게 바로 증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암흑투기장이라는 중2병스러운 이름을 가진 곳이 어디든 간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일 겁니다. 그런데 그는 발견되었지요. 지금까지 오랜 시간 운영되었다면 그놈들에게 시신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겠습니까?”
“아하!”
사인은 폭행으로 인한 뇌출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