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
노형진은 컵을 받는 척하면서 예림의 엄마의 손에 손을 대고 재빨리 그녀의 기억을 읽어 냈다. 그러자 그 기억 속에서 왜 이 꼴이 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 봐 읽는 걸 안 하려고 하지만 두 사람을 보아하니 낯선 자신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읽고 나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아저씨.”
“왜 그러나.”
“바보예요?”
“뭐?”
“어떻게 일곱 달째 월급을 안 주고 버티고 있는데 찍소리도 못해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는 남자.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 그걸 어떻게…….”
“그건 그냥 일종의 신기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도대체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사시는 겁니까?”
“금방 준다고…….”
“도둑놈이 ‘제가 도둑질했습니다.’ 하는 거 봤어요?”
“…….”
“내가 봤을 때는 아저씨는 바보예요.”
“학생, 그래도 어른인데…….”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 취급을 해 드리죠. 어떻게 된 게 남을 챙기느라고 찍소리도 못하고 자기 새끼를 굶겨요?”
“…….”
예림이가 굶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어떻게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돈 때문에 싸우고 쌀이 떨어져서 굶기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가스도 끊긴 것 같구만.’
당장 지금이 12월이다. 그런데 따뜻한 물도 아니고 찬물을 줬다는 건 가스도 끊어졌다는 소리다. 그나마 전기세는 어떻게 냈는지, 유일한 난방 기구는 바닥에 깔린 전기장판뿐이었다.
“사장님이…… 준다고…….”
“사장님이 아니고 사장 놈이겠죠! 아저씨는 애까지 있는 분인데 어떻게 세상을 그렇게 모릅니까? 바보예요?”
“오빠, 우리 아빠한테 뭐라고 하지 마!”
노형진이 마구 뭐라고 하자 예림이는 발끈해서 노형진을 때렸다. 물론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때리는 게 얼마나 아프겠냐마는.
“끙, 미안. 안 그럴게.”
그걸 보면서 남자는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어린 딸도 자기를 지키려고 저러는데 정작 자신은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지 못하는 것이다.
“흑흑.”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오는 건지, 흐느끼기 시작하는 남자. 가만히 바라보던 부인은 그런 그를 안아 줬다. 그러고는 함께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그렇게 부모님이 울기 시작하자 예림이도 울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는 노형진은 한숨만 나왔다.
‘돌아 버리겠네.’
“기가 막히네요.”
솔직히 어른만 있는 거라면 무시하고 가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애를 굶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정을 들어 보았는데 기가 막혔다.
“이상한 거 못 느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럼 바로 움직여야지요.”
“하지만 나 혼자서 어떻게…….”
사장이라는 작자가 힘들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일곱 달째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단다. 일부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 다음, 돈을 받겠다고 소송하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문제는 결국 그나마도 절반 정도에 합의하는 수밖에 없었단다.
“그냥 둬요?”
“그냥 둘 수밖에 없었네. 이 동네는 좁아서…… 그 사람한테 찍히면 취업도 못 해……. 그렇다고 이 돈으로 서울 같은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악질이네.”
‘이래서 시골이 지랄 같은 거야.’
사람들은 시골이 정겹고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은 서울에 비해서 심각할 정도로 결탁한다. 그 때문에 힘을 가진 작자들이 비뚤어지면 대책이 안 선다. 실제로 법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시골에서 노예 사건이나 부정 사건이 터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게 일곱 달째라는 거죠?”
“그렇다네.”
“완전 악질이네.”
적당히 부려 먹다가 연차가 쌓여서 자를 때가 되면 힘들다며 월급을 안 준다. 그렇다가 그만두면 주변에 압력을 가해서 취업도 못 하게 한다. 돈을 받으려고 하면 끝까지 버티고, 소송까지 가도 그와 친하게 지내는 지역 판사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합의를 시도한다. 문제는 합의를 하든 재판을 하든 이기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 녀석 명의로 된 재산이 아무것도 없어서 받아 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명의로 된 게 없다구요?”
“그래, 알거지야. 법적으로는 말이지.”
“허! 가족은요?”
“가족들 명의로 된 것도 없어.”
“이런 미친…….”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단 말인가?
“우리로서는…….”
단순히 멍청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제대로 작정하고 하는 짓이 분명했다.
‘돌겠네.’
이런 사건이 제일 더럽다. 상대방이 완벽하게 방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라고 이렇고 싶은가……. 하지만 돈도 없고…….”
다시 왈칵 눈물을 흘리는 남자.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제가 좀 알아볼게요.”
“자네는 그저 학생이지 않은가?”
“저도 방법이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아세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울다가 지쳐서 잠든 예림이가 너무 불쌍했다.
‘내가 죽어서도 이 버릇을 못 고치는구나.’
힘든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 생각.
힘을 가진 만큼 행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때문에 모든 변호사들이 거부했던 두한의 사건을 담당했다.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에 후회가 없었기에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계좌 번호 좀 불러 주세요.”
“계좌 번호는 왜?”
“일단 불러 주세요.”
남자가 불러 준 계좌로 노형진은 텔레뱅킹을 이용해 바로 100만 원을 입금했다. 다행히 유민택 회장이 준 돈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은…… 이걸로 버티세요.”
자신의 핸드폰으로 날아온 100만 원 입금 문자에 남자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 이건…….”
“빌려 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돈을 어떻게…….”
“그럼 예림을 굶기실 거예요?”
“…….”
“걱정하지 마세요. 일이 끝나면 돌려받을 거니까.”
노형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거, 아주 꾼이야.”
노형진은 법무법인 새론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주식회사 요상공정. 주로 전자와 관련된 정밀 부품을 만드는 회사야. 매해 매출은 200억대. 대표는 왕요상.”
“그 녀석의 재산은요?”
“공식적으로는 없어.”
“공식적으로는 없다?”
“그래, 심지어 가족 명의의 재산도 없어. 완벽하게 감췄더군. 이렇게 완벽하게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 정도예요?”
“우리도 방법이 없어.”
새론은 부탁받고 바로 알아보면서 혹시나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점쳐 봤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모여서 아무리 머리를 써도 이번의 경우는 아예 대책이 없었다. 일단 본인 명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의로도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좀 알아봤거든? 청계 솜씨더라.”
“청계? 법무법인 청계요?”
“그래, 얼마 전에 네가 박살 낸 그곳.”
“끄응.”
하긴, 청계는 법률을 이용한 나쁜 짓을 컨설팅해 주는 곳이다. 당연히 이런 사건에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게도…….”
“명의자는 다른 사람이겠지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죠.”
재산을 다 빼돌린 인간이 자기 이름으로 명의를 남겨 놨을 리 없다.
“방법이 없어.”
청계라면 허투루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 녀석이 너한테 잘못이라도 저질렀냐?”
“그건 아닌데요. 제 인생이 좀 고달프다고 하면 될까요?”
“하긴, 넌 이상하게 일이 찾아가는 관상인가 봐.”
“하하하.”
웃을 수밖에 없는 말이지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노형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녀석이랑 어떻게 해 보려고?”
“아마도요.”
“그러면 한 명 보내도 되냐?”
“보내다니요?”
“민시아 말이야. 지난번에 너랑 일하고 상당히 감명받았나 봐. 만일 너랑 할 일이 있으면 꼭 보내 달라고 하더라.”
“아직 재판을 하기로 결정된 것은 아니라서.”
“뭐, 재판만 일이 아니잖아?”
“하긴, 그렇지요.”
변호사의 일은 재판하는 게 아니라 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적인 싸움은 재판정 바깥에서 더 많이 벌어진다.
“보내 주시면 감사하죠.”
아무래도 자신은 학생이라 사람들이 쉽게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변호사가 있다면 충분히 사람들이 믿어 줄 수 있다.
“보내 달라고 하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구나.”
그 말에 히죽 웃는 노형진. 그걸 본 송정한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넌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냐.’
아무리 자신들이 전관 출신의 변호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렵기로 유명한 사법시험을 통과한 변호사들이다. 그런 자신들조차도 이번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저 미소는 분명 어딘가 방법이 있고 그걸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인 건가?’
송정한은 자신도 모르게 노형진을 한 번 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변호사가 되는 날, 변호사의 세계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받아 주겠다고?”
예림의 아버지인 이창훈은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노형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돈을 준 것도 고마운데 그 비싼 변호사까지 동원해서 받아 준다니.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만일 받게 되면 선임비는 후불로 내셔야 해요.”
“으음.”
변호사를 내야 한다면 그 비용은 적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한 달에 받던 돈이 200만 원 정도. 일곱 달을 못 받았으니 1,400만 원이다. 그런데 거기서 선임비를 내고 나면 절반이나 남을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을 모아야지요.”
“다른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고?”
“네. 어차피 선임비는 똑같습니다. 그리고 소송하는 과정도 똑같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거대한 집단을 만들면 그 비용은 확 줄어듭니다. 피해자가 얼마나 되죠?”
“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이창훈.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한 일흔 명 정도. 아마 알음알음 모으면 백 명은 되지 않을까?”
“선임비는 700만 원으로 했으니까 백 명이면 한 사람당 7만 원입니다.”
그걸 투자해서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야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될까…….”
사실 모여서 한번 소송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소송이 끝난 뒤에 받는 것이 없었다. 그의 명의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그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노형진은 씩 웃었다.
체불임금(2)
“이건 아무리 봐도 방법이 없어.”
이창훈이 모아 온 사람들은 무려 백스무 명에 달했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부터 소송에서 이겼지만 한 푼도 못 받은 사람까지, 평균 피해액이 1,500만 원, 총 피해액은 무려 18억이다. 이는 연매출 200억짜리 회사가 지난 3년간 안 준 돈이 18억이라는 소리였다.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자신이 아는 법률적인 지식 안에서는 진짜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이건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고요.”
노형진은 그들로부터 넘겨받은 근로계약서를 체크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 주변에는 몇몇 학생들이 서류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노형진이 또 한 건을 하겠다고 시간을 내 달라고 하자 몇몇 학생들이 배우고 싶다면서 접근한 것이다. 사법시험을 앞둔 학생들이지만 벌써 여러 번 재판에서 승리한 노형진의 실력을 학원 내의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아예 빈 강의실 하나를 전용 공간으로 빼 주기까지 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고개를 갸웃하는 효린이었다. 그가 봤을 때 근로계약서나 소송장 등은 멀쩡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르겠는데?”
“누나는요?”
민시아 역시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틀린 게 없는데?”
법률적으로도 맞고 지식적으로도 맞고 실무적으로도 맞다. 틀린 곳은 보이지 않았다.
“틀린 곳은 이곳이죠.”
노형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맨 위였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왜?”
거기에는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의 이름이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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