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1)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사건은 기계적으로 처리하지, 노형진을 직접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그를 불렀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뜻.
“당분간 자네한테 다른 사건은 배당하지 말아야겠군.”
“네, 일단 기존에 있던 사건 중에서 어렵지 않은 것도 다른 곳으로 배당해 주시고요.”
“그러지.”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갈 때 말이야, 손예은 변호사를 데리고 가게나.”
“손예은 변호사를요? 하지만 손 변호사는 이런 쪽을 맡기에는 아직 좀 어리지 않나요?”
다른 곳도 아닌 대룡이다. 물론 노형진과 동갑이니 딱히 어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어린 것이 맞다.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자리를 좀 터 줘야 할 것 같아.”
“자리를요? 아아, 알겠습니다.”
노형진도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손예은 변호사는 청계 출신이다. 안 그래도 그런 부분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은근히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 얼마 전에 터진 청계의 범죄 사실이 소문나 더욱더 고립되었다. 물론 그녀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1년밖에 안 되어 그런 사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 변호사인데 챙겨 줘야지.”
“그렇지요.”
변호사란 적도, 아군도 없다. 어제 변론해 줬어도 오늘 다른 편으로 만난다면 공격해야 하는 게 바로 변호사다. 어디 출신이라고 무조건 적대적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성관중 변호사도 걱정했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많은 만큼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한 덕분에 그게 나중에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아는 터라, 전에도 노형진에게 손예은 변호사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자네가 좀 데리고 가게.”
“그러지요.”
실제로 사건을 맡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대룡, 그것도 유민택이 직접 맡기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동석하는 것만으로도 자리를 잡기가 상당히 편해질 것이다. 그곳에는 새론에서도 말 그대로 중요 인물만 가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바로 몸을 돌려서 구석에 있는 손예은 변호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손 변호사님?”
“네.”
언제나처럼 무심하면서도 차갑게 대답하는 손예은 변호사.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애써 웃었다.
‘이거 진짜 찬 바람 부네.’
하긴 주변에서 자신을 왕따시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닐 테니 가뜩이나 찬 바람이 불던 그녀가 더욱 차가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일하러 갑시다.”
“사건 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요.”
“그럴 사람이 없습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 그럴 사람이 없다. 노형진은 결국 직접 나서서 움직여야 했다.
“그렇다면야.”
노형진은 그녀가 보고 있던 서류철을 턱 덮고 다른 서류 위에 올린 상태로 집어 든 뒤, 바깥으로 나갔다.
“노 변호사님?”
그런 어이없는 행동에 손예은조차도 기가 막혀 할 정도였다.
“가끔은 이사의 직권을 쓰죠. 후후.”
노형진은 명백하게 새론에 투자한 이사다. 직급상으로도 다른 변호사들보다 상급이라는 뜻이다.
그가 서류들을 배당부에 턱 올려놓자 담당 직원이 움찔했다.
“자, 지금부터 손예은 변호사의 사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당하세요.”
“네?”
“저와 손 변호사는 당분간 대룡에서 유 회장님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 말에 배당부 직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룡과 유민택은 새론의 최우선 사항이니까.
“알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노형진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따라온 손예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제 움직이지요. 뭐합니까? 빨리 가방 들고 오세요. 유 회장님은 모르지만 사건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하하.”
“여자 친구?”
“제가 여자 친구가 있으면 여길 데려오겠습니까?”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피식 웃었다.
“급하게 일이 있어서 절 불렀다더니 바쁘시진 않은 모양입니다.”
노형진은 유민택이 말하기도 전에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손예은은 그럴 수가 없었다. 유민택이 집요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왜 그렇게 바라보십니까? 설마 나이 먹어서 첫사랑이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자네가 소문의 그 사람이군.”
“소문?”
“청계 출신.”
그 말에 손예은의 입꼬리가 묘하게 움직였다.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과거. 그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닐 줄 알았더라면 청계에 입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닐세. 다만 주의는 해야 하니까. 상대는 다름 아닌 성화거든.”
“압니다. 하지만 이제는 청계는 사라졌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여전히 청계 출신은 그들과 선이 닿아 있지.”
“원하지 않으시면 전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에 유민택은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손예은을 바라보았다.
“그럴 필요는 없네. 노 변호사가 그런 것도 모를 리 없으니까.”
그 말에 노형진은 약간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내 능력에 대해서 아나?’
그럴 리가 없다. 유민택이 자신의 능력을 알 만한 일은 없었다.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조차도 모르는데 그가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앉도록 하게.”
“네.”
손예은은 화내지도,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웃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자리에 앉았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얼음 같은 여자라고 하더니 진짜로군.”
“이제는 저희 변호사들 신상도 캐고 다니십니까?”
“일이란 게 그런 걸세.”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민택은 지난번의 스마트폰의 터치패드 사건 이후에 내부 스파이 색출에 힘쓰기 시작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스파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면 저런 행동이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 어쩐 일로 부르신 겁니까? 다짜고짜 저한테 빚을 갚으라고 하시다니요.”
“성화가 새로운 수익 라인을 만들었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전에 있던 수익 라인이 우리의 예상을 깨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해야겠지.”
“새로운 수익 라인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들어 성화가 새로 시작한 사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역사가 바뀌었나?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유 회장님이 위협을 느낄 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텐데?’
노형진이 고민하는 사이 유민택은 몇 가지 서류를 내밀었다.
“이걸세.”
“이건 자동차 카탈로그 아닙니까? 설마 성화에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겁니까?”
“아닐세. 잘 보게. 이건 우리나라 차가 아냐.”
그러고 보니 거기에 있는 차들은 대부분 수입 차였다.
“이건 수입 차 아닙니까? 설마 저한테 차를 사 주시려고 부르신 건 아닐 테고.”
“원하면 사 주지. 그러고 보니 자네도 외제 차 타지?”
“제 목숨은 소중하거든요.”
“누군들 안 그런가? 그런데 그거 아나? 그거 성화 계열사일세.”
“네?”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성화 계열사라는 것은 듣지 못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감춰진 계열사지.”
“감춰진 계열사요?”
“그래, 그래서 회사 이름도 성화가 아닌 일성이라는 이름을 쓰네.”
일성자동차.
주로 해외 브랜드 자동차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기업.
어지간한 브랜드는 다 취급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독점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실제로 독일에서 약 1억에 팔리는 차를 한국에서 두 배 이상의 가격에 파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무리 세금이 붙는다지만 말이다.
“흠…….”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수입 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 않나?”
“그거야 그렇지요.”
그의 차만 해도 수입 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국산 자동차의 안전도가 수입 차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소위 말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과연 허투루 만들까? 그 상황에서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죽기 싫어서라도 수입 차를 쓰게 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쪽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네.”
‘그러고 보니 그렇지?’
수입 차 시장은 계속해서 커진다. 미래에는 무려 한국 내 수입 차 비율이 20%에 육박하게 된다. 다섯 대 중 한 대는 수입 차인 것이다. 국내 기업 중 점유율이 20%가 안 되는 기업이 있는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웃기네.’
자동차를 가져다가 판다. 그러다 보니 들어가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남는 게 많다. 매년 연식이 바뀐다는 이유로 가격을 올려도 그러려니 한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A/S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입 차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
‘완전 땅 집고 해 먹었네.’
애초에 20%의 시장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자동차 회사보다 수익을 더 많이 냈다는 뜻이다.
‘유 회장님이 경계할 만하군.’
유민택은 급성장하는 수입 차 시장을 보면서 빠르게 눈치챈 것이다.
“그래서 부른 걸세.”
“그건 제가 막을 수 없는데요. 그들은 정식으로 수입하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병행 수입을 해 보시죠.”
“안 된다네. 벌써 알아봤네.”
병행 수입이란 쉽게 말해 같은 제품을 다른 곳을 통해서도 수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경쟁이 붙어서 거품이 꺼지게 된다.
“하지만 독점권을 줬더군.”
“끄응…….”
노형진은 그 말에 신음성을 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죠.”
병행 수입을 하면 거품이 꺼지면서 사람들에게 좋게 작용한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격도 가격과 함께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프리미엄 브랜드는 병행 수입을 잘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다음번에 수출 업체를 할 때 해 보시죠.”
“10년 남았네.”
“멀었군요.”
그때쯤이면 성화는 실적을 바탕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실적도 없는 대룡은 성화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안 팔릴 게 뻔한 차들을 실적을 위해 수입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흠…….”
물론 성화가 손대지 않은 브랜드들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주로 가난한 국가의 차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곳들은 아무래도 국산 차보다 안전성이나 기술력이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디자인이 국내 시장에 어울리지 않든가.
“그나마 적당한 곳이 사브였다네.”
“사브요?”
“그래.”
“거긴 좀.”
“그렇지?”
노형진은 사브를 좋은 차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디자인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에서 수입했다가 철수하지 않았나?’
기억에 의하면 판매 부진으로 결국 한국에서 철수했다.
물론 대기업인 대룡에서 수입하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이 한국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나중에 타이틀로 내세울 만큼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았다.
“곤란하군요.”
“그래,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걸세.”
“하지만 그건 법적인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언제는 법적인 문제만 해결했나?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서 뭐든 하는 게 변호사라며?”
“그거야 그렇지만…….”
이건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다. 난데없이 자동차 업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니.
“일단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만 솔직히 너무 무리한 일입니다.”
“그래도 생각 좀 해 보게. 자네가 내게 진 빚도 있지 않나?”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제가 손해인데요?”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조건 아닌가? 그에 비해 노형진이 부탁했던 것들은 그다지 어려운 부탁들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것들로 퉁 치고 내가 빚진 걸로 하지.”
“그렇다고 해도…….”
노형진이라 해도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갑갑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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