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26)
가장 은밀한 살인마 (2)
내부 고발자를 찾기 위해 CCTV를 비롯해서 모든 기록을 뒤지고, 심지어 그날 근무자들을 전원 취조한 결과 발각되었던 것.
“의료계에는 사이코패스가 많습니다. 사실 의료계 시스템 자체가 사이코패스를 양성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정도지요.”
“네?”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렀지만 노형진은 조용히 임진기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들었다.
“학생이 되면 교수들이 그럽니다. 너희는 우월하다, 남들과 다르다.”
“우월해요?”
“그렇습니다. 웃긴 일이지요. 공부 좀 잘했다고, 우리보고 법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구요.”
“뭐, 좀 그런 면이 있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그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의대생이라고 하면 법원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건 아주 유명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군.’
그는 의사들이 이권을 위해서라면 국민들의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여길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회귀 전에 목도한 적이 있다.
“천룡인이라 이거군요.”
천룡인. 하늘이 내린 용의 혈족이라는 의미로, 소설에서 나온 단어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 천룡인은 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고귀한 존재라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의사들 중에는 자신들이 천룡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이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그 힘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사들은 자신들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런 성향은 판사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한테 말씀하시려는 게 그건 아닐 테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임진기를 바라봤다.
“이건 제 억측입니다만…….”
임진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그가 계속 의사였다면, 아니 그냥 흔해 빠진 변호사만 되었어도 아마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론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미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요양 병원에서 사람을 대신 죽여 줬던 그 사건.
“만일 의사가 연쇄살인마라면 어떨까요?”
조용히 듣고 있던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연쇄살인마요?”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연쇄살인마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요.”
누군가는 특정 이성에 대한 원한으로, 누군가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누군가는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중에는 상대방의 목숨을 내가 쥐고 있다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타입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마들이지요. 그리고 보통 그런 놈들은 지능형…….”
말을 하던 노형진은 눈을 찡그렸다.
지능이 높다. 과연 의사를 빼고 그 말을 논할 수 있을까?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의사의 살인을 막을 시스템이 없습니다.”
의사 면허는 국가에서 준다.
하지만 현행법상 의사 면허를 국가에서 되찾아 갈 방법은 없다.
가령 산부인과 의사가 수백 건의 강간을 했다고 치자.
실제로 여성 환자에게 수면제를 놓은 상태에서 강간하는 의사들이 있다.
문제는, 그 의사가 수백 건, 아니 수천 건의 강간을 해도 정부에서는 그의 의사 면허를 박탈할 수가 없다.
현행법상 의사 면허의 박탈 자격이 아주 까다롭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료 행위 관련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의사의 면허는 취소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실지 모르지만, 취소된다고 해도 끝이 아닙니다.”
“아,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의사와 판사는 자기들끼리의 커넥션이 있다.
물론 평소에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사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거나 자신들이 귀족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판사들은 의사들의 범죄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한 편이다.
“면허가 취소되어도, 소송에 들어가면 99% 이상 돌려주지요. 의사 면허가 취소되면 의협에서부터 지랄을 시작하거든요.”
노형진은 쓰게 웃었다.
그게 사실이다.
개인 범죄인데 왜 의협에서 지랄하나 싶겠지만, 의협은 하나의 권력 단체이기에, 의사 한 명의 범죄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순간 다수의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죠. 결국 이권을 쥐고 있는 건 전공의 이상급의 교수진이니까요.”
리베이트부터 대리 수술까지 모든 걸 마구 시킬 수 있는 의사는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조직이든 큰 범죄는 상위에서 벌어지지 하위에서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명의 면허가 그렇게 취소되면 줄줄이 파고들어 가서 취소될 수 있기에 의협을 꽉 잡고 있는 그들이 의사 면허 취소에 예민한 것이다.
‘권력이란 그런 거지.’
매년 권력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기는 그들에게 있어서 면허 취소는 의협에서 퇴출됨과 동시에 그들이 망하는 걸 의미하니까.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의료사고에 해당된다고 판단되어 제게 왔습니다만…….”
임진기는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만일 살인이라면 어떨까요?”
“살인이라면, 걸리지 않는 완벽한 살인이 되겠군요.”
사람을 죽여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주변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지켜 주려고 할 것이기에 그로 인한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의료사고는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해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느냐면, 의학 전문가가 아닌데 의학적으로 그 사실이 맞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저한테 그렇게 사건이 몰리는 거구요.”
아무리 변호사가 노력한다고 한들 의학은 법률만큼이나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복잡한 학문이다.
당연히 변호사들이 그 수많은 가능성과 변수를 다 알 수는 없는데, 의사들도 그러한 의료사고에 대한 감수를 해 주지는 않는다.
완벽히 알 수 없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감수해 주다가는 의료계에서 퇴출당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의료사고로 인정될 가능성은 3% 이하입니다. 설사 저라고 해도 10% 이하죠.”
의사 출신인 임진기조차도 그 정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의사마다 전문적인 영역이 다르다.
뇌가 다르고 심장이 다르며 위나 뼈도 다르다.
당연히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이야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진짜 전문적인 영역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아무리 임진기라고 해도 공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의료사고도 그 정도인데 제가 어떻게 살인을 증명하겠습니까?”
“…….”
수술 중에 고의적으로 죽이는 거야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라며 넘어가고 아주 극히 일부 피해자들만 의료사고로 소송을 걸 테니, 그중에서 잘해 봐야 1%나 의료사고가 인정받을까?
“사람들이 의료사고야 의심해도 과연 살인까지 의심할까요?”
임진기가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노형진은 말문이 막혔다.
“절대 드러나지 않겠군요.”
중얼거리던 노형진은 덩달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의사가 살인마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
“고정관념을 이용한 거죠.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빼고 직업적인 부분에서 부당한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든 직업이 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만 그렇게 순수할까요?”
“그럴 리가요.”
노형진은 회귀했기에 의사들이 어떤 인간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이권을 위해서라면 다섯 살짜리 어린 백혈병 환자의 목숨에도 신경 쓰지 않는 게 그들이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극히 일부의 사이코패스들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살려 달라는 환자의 말에 정부에 가서 따지라고 하며, 사람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는 동료에게 린치를 가하고, 국가적 재난 상태에서 방역을 하느라 쓰러지기 직전인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빨갱이라면서 모욕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바로 이권이었다.
‘어딜 가나 있는 미친놈이 의료업계에만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심지어 헌신이 존재 그 자체인 소방관들 중에도 사이코패스는 존재한다.
승진하고 싶다고 직접 불을 지르고 사람을 구하는 놈도, 자기가 권하는 병원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고의적으로 천천히 구급차를 몰아서 결국 사망하게 하는 놈도 있었다.
“하아.”
노형진은 긴 한숨을 쉬었다.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한 일이었으니까.
“정말 이번 사건이 살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요? 네, 그렇습니다. 만일 그놈이 살인자라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지 가늠도 안 됩니다.”
다른 것도 아닌 심장 전문의다. 수술을 할 정도면 사망 가능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분야.
실제로 수술에 들어가기 전 의사들은 그 부분에 대해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몇 번이고 고지한다.
“제 경험상 의료사고로 고소하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드물죠. 의사와 환자는 결국 믿음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믿지 못하는 의사에게 가족의 치료를 맡기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수술 중에 사망하면 그냥 명이 다했다고 생각하고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삶과 죽음의 찰나가 스치고 지나가는 곳이 바로 병원이니까.
“설사 백 명을 죽였다고 해도 살인으로는 잡히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건 최악의 가정이지만요.”
최악의 가정이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잖아?’
의사가 연쇄살인마로 드러난 사건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간호사가 연쇄살인마인 경우는 있었다.
오죽하면 죽음의 천사라는, 그 사건을 뜻하는 일종의 은어조차 있을 정도였다.
“히포크라테스가 대성통곡할 만한 사건이네요.”
노형진은 긴 한숨을 쉬었다.
이 사건을 알아볼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살인마의 생각을 읽어 내지는 못하니까.’
단 한 사람, 그 자신만 빼고 말이다.
***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이번에 심상섭 환자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상임대학병원의 심장 전문의 자우신.
그가 임진기가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하아, 변호사님. 뭐, 이제는 너무 많이 당해서 씁쓸하기만 하네요.”
자우신은 쓰게 웃으면서 노형진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럴 만합니다. 의료 소송이 엄청 많으시더군요.”
“심장 전문의니까요. 사람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유가족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이겠지요.”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다른 분들에 비하면 사망자가 좀 많은 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임진기는 스무 명 이상이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원에 기록이 남아 있는, 즉 의료 과실 소송이 걸린 사람들 기준인 거고, 병원에서는 사망한 환자의 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당연한 거죠. 제가 심장학회 교수입니다. 쉬운 수술이라면 저한테 안 옵니다. 진짜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술만 저한테 오지요. 노 변호사님이라면 아실 텐데요?”
‘나에 대해 조사했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노형진에게도 어려운 사건만 오지 쉬운 사건은 웬만하면 오지 않으니까.
교수급의 실력이라면 아무래도 힘든 수술이 더 많이 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