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40)
결국은 공무원이 문제 (2)
“현실적으로 턱도 없지. 내가 원하는 것도 그게 아니고. 조사야 네가 하겠지만 아마 적당한 선에서 끝날 거야. 내가 봐서는, 시스템을 고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저 지랄이야?”
“결국 언론까지 탄 사건이야. 그러면 뭔가 실적을 보여 줘야 해. 그럼 실질적으로 교수급은 우리가 건드리지 못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난리가 나는 거지.”
“아래?”
“인턴, 레지던트. 음, 보드랑 펠로우까지는 위험할걸.”
사실 의사 국시에 합격하면 의사로서 활동은 가능하다.
하지만 제대로 의사 취급은 안 해 준다.
당연히 의사들은 실력을 쌓아서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인턴이다.
레지던트와 함께 수련의, 혹은 전공의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들은 임상 수련을 하고 수련 가능한 병원에 취업해서 실력을 쌓게 된다.
“그런데 그런 병원의 숫자가 많지 않거든. 거기에서부터 쉽게 말하는 족보가 나뉘는 거지.”
백이 없으면 그러한 병원에 들어가서 인턴 생활을 하는 것부터가 고난이다.
병원에서 고생하는 의사들의 대부분은 인턴이라고 보면 된다.
영혼을 갈아 넣는 단계라고나 할까?
“그다음이 레지던트.”
레지던트는 전공과목을 선택해 수련하는 인턴 다음 과정이다.
“거기서 안과, 비뇨기과, 내과 등등으로 갈리지.”
나가서 전문적인 병원 하나 차리려면 레지던트로서 전공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이 보드라고 불리는 전문의 과정.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한 단계이고, 이후에 개업의나 의대 교수 과정을 밟게 된다.
전문의가 아니면 해당 질병에 대한 공식 소견서를 발급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다음이 펠로우, 즉 전임의.
“여기서부터는 강사로 나가거나 하지.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이야.”
마지막이 스텝이라 불리는 교수직이다.
“문제는 말이야, 레지던트까지는 힘이 없다는 거야. 아니, 사실 펠로우까지는 거의 파리 목숨이지.”
“파리 목숨?”
“그래. 의사들은 철저하게 승자 독식 시스템이거든.”
물론 개원의가 되면 나름 돈을 벌기는 하지만 교수급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다.
“그래서 다들 교수가 되려는 거고. 결국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야.”
그렇다면 그 희생양은 누가 될까?
“대한민국의 전통은 아래부터 책임지는 거.”
노형진은 씩 하고 웃었다.
“당연히 누군가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법이지.”
그리고 그 몸부림이 새로운 미끼를 불러올 거라는 걸, 노형진은 알고 있었다.
***
수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건 아래부터다.
위를 수사하려고 하면 그만큼 저항이 심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 저항의 강도는 권력에 비례한다.
권력이 약할수록 저항은 미미하다.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권력?
그들의 권력은 파리 목숨이라는 게 노형진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오광훈을 비롯한 검사들의 조사가 시작되자 그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니, 저는 커닝한 적 없다니까요.”
“이미 너희 시험 때 선발대 인원이 누군지 확인 끝났어. 너 3차 아냐!”
“아, 미치겠네. 진짜예요. 저는 그거 못 받았어요.”
“개소리하지 마. 너 그때 합숙해서 교육받은 거 알거든!”
교수들은 자기들이 공격당할 거라 생각해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급하게 파업했는데, 정작 오광훈이 공격한 대상은 그들이 아닌 인턴과 레지던트였다.
“증언도 나왔고 증거도 있어. 합숙하던 당시에 널 본 사람들이 한두 명인 줄 알아?”
“아니, 그게……. 그냥 공부하는 모임이었다고요.”
“그래, 커닝을 준비하는 모임이었지.”
후발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만일 여기서 커닝이 인정되면 의사 면허는 취소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수년간의 공부가 모두 허사가 된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진짜 몰랐어요.”
“아니, 헛소리하지 말라고.”
선발대 명단을 구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선발대라는 게 1차에서 시험 본 사람들을 의미하는 거니까.
그들을 제외하고는 다 후발대라는 거다.
물론 그들이 다 커닝을 한 건 아니다.
실제로도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커닝 집중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시험을 봐야 했다.
‘그리고 그걸 노리라고 했지.’
노형진은 오광훈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증언시키라고.
처음에는 배신이라 생각해서 누구도 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증언.
하지만 누군가는 하게 되어 있다.
특히나 그들에게 찍혀서 제대로 정보를 받지 못한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들, 그들은 도리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조규인 씨, 진짜로 잘 생각하세요. 이대로는 당신 의사 생활이 끝납니다.”
노형진이 노리라고 한 건 바로 의원급 페이 닥터들이었다.
한정되어 있는 인턴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성적으로 자르는 경우도 있지만 교수에게 찍혀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합격 정보도 공유받지 못하는데 과연 교수들이 그를 인턴으로 써 줄까?
당연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의사 자격을 얻었기에 진료는 할 수 있으나 큰 병원에서 경험을 쌓을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의 대부분은 소위 의원급이라고 하는, 병상이 다섯 개 미만인 병원에서 페이 닥터로 일하는 거다.
당연히 월급도 기대에 못 미치지만, 현실은 그렇다.
인턴을 거치지 못한 그들은 일반의라 불리며 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세운다.
“당신이 제보한 내용은 익명으로 처리될 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되면 당신에게 기회가 돌아갈 거고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조규인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신이 커닝을 한 사람들을 제보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의 의사 면허는 무효가 될 겁니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인력을 보충해야 하지요.”
조규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재의 병원은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없으면 못 굴러간다. 당연히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
‘한두 명이 잘리는 게 아닐 텐데.’
문제는 당장 일하는 이들의 의사 면허가 무효가 되어 버리면 그 자리가 비어 버린다는 것.
그렇다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자신같이 커닝한 적이 없는 페이 닥터뿐이다.
즉, 제대로 인턴으로서 삶을 시작하고 제대로 된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사건 기록을 보니까 여자 친구의 성추행 사실을 항의했다고 잘리셨더군요.”
조규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의대에 다니던 시절 그는 다른 의대생을 사귀었는데, 교수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성추행하는 걸 보고 욱해서 항의했다.
그러자 그다음부터 교수는 그를 노골적으로 싫어했고, 아예 대놓고 사람 취급도 해 주지 않았다.
교수의 권력이 강한 의과대학의 특성상 한번 찍혀 버린 자신이 용서받을 길은 없었고 결국 여자 친구조차도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그를 멀리한 끝에 이별을 고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교수는 그 이후에 인턴 시절에도 그가 지망하는 병원마다 전화해서 인성이 썩었다는 둥 의사로서 재능이 없다는 둥 헛소리를 하면서 취업을 막았고, 결국 그는 인턴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현재의 인턴들이 죄다 잘려 나간다면?
교수가 지랄을 하든 말든, 병원들은 자신을 쓸 수밖에 없다. 병원 운영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원하신다면 그 당시 사건도 제대로 조사해 드리겠습니다.”
오광훈은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의사 면허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책임을 물어서 교수 자리에서 자를 수는 있겠지요.”
“진짜입니까?”
“물론 죄가 얼마나 쌓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죄가 얼마나 쌓였는가…….”
자신 말고도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말이지.’
조규인은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그는 멍청이가 아니다.
지금 교수를 날리지 못하면 나중에 다시 그가 돌아와서 자신의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100% 그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진술은 익명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일단 커닝을 한 사람들을 특정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아십니까?”
“알지요. 아주 잘 알지요.”
조규인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 말했다.
***
“오 검사, 어떻게 안 되겠나?”
검사들 중에도 자식이 의사인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자식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오자 그걸 무마하기 위해 오광훈을 찾아왔다.
물론 과거라면 어렵지 않게 무마했겠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하필이면 조사하고 있는 검사가 미친개라 불리는 오광훈이었다.
사실 덮으려고 하면 강제로 덮을 수야 있겠지만 그 순간부터는 오광훈과의 싸움이 아니라 노형진, 아니 마이스터와의 싸움이 되리라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검사들은 무조건 수습하라고 명령할 수가 없었다.
당장 이 사건만 수습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니까.
강제로 수습하면 당연히 노형진과 오광훈이 보복할 테고, 그러면 결국 검사나 판사 자리에서 잘려서 변호사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만일 로펌에 들어가면 그 로펌은 마이스터와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지금은 그 누구도 감히 오광훈에게 강짜를 부리지 못했다.
하지만 강짜를 부리지 않는 것과 별개로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 애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고 한 거네. 물론 그 과정에서 커닝은 좀 문제가 되겠지만, 어떻게 죄라도 좀 가볍게 해서…….”
일단 커닝의 경우 그 무효는 행정재판이다.
즉, 상황에 따라서 행정재판에서 무효까지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형사에서 처벌이 심해지면 행정재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하아.”
오광훈은 그런 다른 검사들의 부탁을 한두 번 받아 본 게 아니었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김 선배,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의사 쪽에서 막 나가잖습니까?”
“아니, 막 나가는 게 우리 자식은 아니지 않나?”
“끄응…… 이게요, 문제가 영 쉽지 않아요. 김 선배 자녀도 그렇겠지만…….”
오광훈은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이게 파고들수록 문제가 있더라고요.”
“물론 커닝이 문제이기는 하네만…….”
“그게 아니라, 원해서 커닝한 애들은 거의 없단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김 검사라 불린 선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내 자식한테 들었네.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더군.”
‘거참, 그런 뻔한 말을 믿어 주다니. 검사라고 해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 이건가?’ 사실 이런 질문이 나왔을 때 나올 답변은 뻔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로 고의적인 커닝으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제로 하는 것과 자신의 선택으로 하는 것은 처벌의 수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 말이 그겁니다. 지금까지 계속 피의자들을 불러서 확인했는데, 공통점이 그거예요. 강제였다.”
“응? 그런가?”
“네.”
오광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강제로 한 거라는 점은 이해하죠. 의료계의 서열 문화가 심한 거야 한두 해 문제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정상적인 상황에 한해 그렇지 않습니까? 이건 범죄행위인데, 강제로 범죄행위를 했다고 하면서 정작 그다음 행동을 안 해요.”
“다음 행동이라니? 무슨 말인가?”
“지금이라도 교수를 고발하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요.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서 무조건 처벌은 면하게 해 달라고 하면 제가 뭘 어떻게 합니까? 선처도 뭐, 요건이 맞아야 하지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