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66)
이 세상 모든 프로 불편러에게 고합니다 (3)
“두 분…… 아니지, 라이스의 대응이 결국 사건을 키운 겁니다.”
노형진의 말에 라이스의 사장인 하승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의 대응이 사건을 키웠다니?
“저희가요? 저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악플러 사건이었지요.”
처음에 악플러들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악플을 다는 놈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본인들의 자격지심과 불만을 악플로 풀어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악플을 달 대상을 찾아내고 물어뜯는다.
“더군다나 요즘은 연예인들에게 붙는 악플러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형진이 엔터테인먼트조합을 만든 후에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악플러의 고소로, 선처는 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줬으니까.
실제로 악플러들이 걸리면 나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민사소송까지 가서 거덜을 낸다.
엔터테인먼트조합의 가입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악플러들의 고소에 대해서는 선처하지 않는다는 것일 만큼, 노형진은 그들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악플러들에게 먹잇감으로 다른 악플러들을 던져 주는 방송을 해서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저도 그 방송은 봤습니다. 그런데 그거랑 제가 무슨 관계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과한 게 잘못이라는 겁니다.”
“제가 사과하게 만든 게요?”
“네.”
악플러들이 뭘 하든 무시하든가 고소로 대응했어야 했다.
하지만 라이스엔터테인먼트와 하승하는 그 대신에 사과라는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 사과가 악플러들에게 승리감을 줬다는 거다.
“전에 어떤 심리학자와의 대담에서 악플러가 한 말이 있지요. 가장 싫어하는 댓글이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것과 ‘정신병은 나을 수 있는 병입니다.’였다고요.”
즉, 그들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사과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존감을 채우려고 하는 게 악플러들의 방식이니까.
“개인 방송을 하는 다른 곳에 가 보세요. 좀 뻔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들이 있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곳요. 그곳에 악플러들이 얼마나 있던가요? 가령 제국연구소 같은 곳 말입니다.”
제국연구소는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 덕분에 한국이 발전했다는 논리를 펴는 미친놈들이다.
사람들은 그곳의 댓글난이 온갖 욕으로 도배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댓글은 별로 없다.
“왜 그럴 것 같습니까?”
“글쎄요…….”
“뻔뻔하거든요.”
한국의 개인 방송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대놓고 얼굴을 까고 방송하는 놈들이다.
그것도 심지어 대학교수까지 패널로 들어가 있다.
그런 놈들은 욕을 아무리 먹어도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안다.
실제로 제국연구소가 처음 생겼을 때는 욕이 어마어마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
“아무리 악플을 달아 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반응도 없으니까요. 즉,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일부 사람들이 잘못 들어왔다가 빡쳐서 단 댓글 말고는 딱히 악플이 달리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반응입니다. 그나마 고소로 반응했으면 떨어져 나갔을 텐데 사과라니, 최악의 선택을 하신 거죠.”
“으음…….”
하승하는 신음을 흘렸다.
설마 자신의 선택으로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저 너무 시끄러워서 잠잠하게 하려고 사과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여러분이 잘못된 프로그램을 만든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과는 잘못된 겁니다. 그 사과가 다른 미친놈들마저 추가로 불러온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악플러들보다 더 지독한 놈들을요.”
“다른 미친놈들요?”
“네. 악플러는 사실 병신들이지만 퇴치는 가능합니다.”
무차별적으로 고소해서 그 사실이 소문나기 시작하면 악플러들은 도망간다.
실제로도 몇 번이나 그랬다.
뒤에서는 온갖 욕을 하지만, 고소장이 들어오는 순간 악플러들은 꼬리 말고 모조리 튀어 버렸다.
“하지만 사과로 인해 기어들어 온 놈들은 도망도 안 갑니다.”
“누군데요?”
“순교 주의자라고 해야 할까요, 정의 주의자라고 해야 할까요?”
“네?”
“법률적으로 본다면 확신범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확신범.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서 그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
보통 테러범 중에 그런 확신범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정의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합니다.”
자기는 정의이고, 상대방은 악이다.
당연히 악은 처단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악을 죽이기 위해 선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다.
“설마요?”
“몸에 폭탄 두르고 자폭하는 놈들이 그런 타입입니다. 설마라는 말은 안 통합니다. 물론 이놈들이 진짜로 그럴 놈들은 아니죠.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순수하고 깨끗하며 정의롭다. 따라서 남을 욕하고 협박해도 괜찮다. 나는 순수 정의 그 자체니까.’ 물론 그건 개소리고요. 사실 제 경험상 이런 놈들은 테러범만도 못해요. 자기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못 참으니까요. 어찌 되었건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사상범으로 분류하기는 합니다만.”
자신이 못났다는 진실을 인정하기 싫으니 자신이 너무 순수하고 깨끗한 탓에 타락한 세상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포장하고, 세상을 정화하는 게 자신의 미래를 밝히는 거라고 포장하는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개소리일 뿐이다.
“아니, 왜…… 그런 놈들이 오는 겁니까?”
“사과하셨잖습니까? 그게 문제인 겁니다.”
사과하지 않고 그냥 고소와 고발로 악플러들을 잠재웠어야 했다.
그런데 도리어 사과했다.
사과했다는 것은 역시 방송한 놈이 잘못했다는 뜻.
즉, 방송한 놈은 악.
그리고 악은 죽어야 한다.
“미친놈의 간단한 논리죠. 그놈들은 악플러들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한계란 게 없어요. 일단은 그런 놈들을 불편러라고 부르겠습니다.”
악플러나 불편러나, 기본적인 감성은 똑같다.
‘나는 바닥인데 왜 저 새끼들은 잘 먹고 잘 사는가?’, ‘왜 저들은 나보다 잘났는가?’라는 열등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행동 패턴은 다르죠.”
일부는 상대방을 욕하고 끌어내리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고 하고, 다른 일부는 상대방의 부정한 부분을 공격해 자신이 올바르고 정의롭게 산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고 한다.
“전자는 겁만 주면 도망갑니다. 무시해도 반응이 없으면 그냥 가 버리죠. 하지만 후자는 다릅니다.”
자신은 정의로우니까, 자신은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니까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한다.
정확하게는 증명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하지만 힘이 있는 자는 두렵다.
그렇다면 누구를 노려야 할까?
당연히 힘도 없고 저항도 못 하고 자신보다 우월한 놈들이다.
“얼마 전에 제가 악플러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지요.”
그때도 그들의 불만은, 좀 더 나은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본인의 열등감을 해결하기 위해 절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매달리거나 작은 흠집이라도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설마 제가 사과한 게 그런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들였다는 겁니까?”
“아뇨,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지 않지요.”
다만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기에 뭘 해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미친놈들일 뿐이다.
“요즘 시위하러 다니는 그 이상한 단체 있지요? 육식에 반대한다고, 육식은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놈들.”
“네, 봤습니다.”
“그런 놈들입니다.”
“아…….”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갖 패악질을 한다.
식당에 들어가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고기는 살인이라고 욕하거나, 돼지 농가에 몰래 들어가서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구한답시고 훔쳐 오는 등의 행동을 한다.
“물론 그 결과는 다 좋지 않았지요.”
일단 식당에서 업무방해로 고소를 넣은 건 당연한 일이었고, 훔쳐 간 새끼 돼지는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해서 끌고 간 지 사흘도 되지 않아서 죽어 버렸으며, 그 어미 돼지 역시 자식을 빼앗긴 충격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 폐사했다.
그런데 죽인 건 자기들인데도 그들은 돼지를 위해 진혼제를 지낸답시고 설레발을 치기도 했었다.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범죄자들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직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정상적인 콘텐츠였고요. 그런데 왜 사과하신 겁니까?”
“그거야 시끄러우니까…….”
“그게 문제인 겁니다. 사과하면 그냥 쉽게 넘어갈 거라 착각하기 쉽습니다만.”
하지만 그런 경우 온갖 파리가 달려들어서 물어뜯는다.
“하지만 제때 사과하지 않으면 인성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물론 인성이 중요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자기가 잘못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인성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까?”
하승하는 뭐라고 대꾸도 못 했다.
계속해서 사과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지금 누구보다 확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 방송인 중에 사과하고 반성하고 고치는 사람들은 더더욱 악착같이 물어뜯기지만, 뻔뻔한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산다.
“사과에는 철칙이 있습니다. 첫째, 명백히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사과할 것. 남이 뭐라고 하든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지만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심지어 강간범이 피해자에게 네가 나를 유혹해서 강간하게 했으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노형진은 본 적이 있다.
“둘째, 불특정 다수에게 사과하지 말 것.”
불특정 다수에게 사과하는 경우, 결국 그들이 계속해서 물어뜯을 핑계를 만들어 줄 뿐이다.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사과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그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셋째, 모든 사과에는 금전적 배상이 따라갈 것.”
상대방을 특정하고 사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일 자기 잘못이 확실하다면 스스로 배상하려는 노력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입만 살아서 말로만 사과하고 퉁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중 어떤 것도 지키지 않으셨지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말로만 사과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이라도 사과 영상을 내려야 할까요?”
“아니요. 이미 늦었습니다.”
그걸 내리면 저쪽은 이제는 아예 반성도 하지 않는다고 욕하기 시작할 거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는 ‘피직스=범죄자’라는 생각이 박혀 있다.
“그건 그냥 두세요. 어차피 물어뜯기는 건 똑같고, 내려 봐야 ‘거봐라, 사실은 반성 안 한다.’라는 소리만 나오니까요.”
“그러면 역시 명예훼손으로…….”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