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484)
집단이 반지성 주의 (2)
“이렇게 되어 버리면 여론전은 아무런 효과도 없지요.”
여론전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곳 사람들이 눈치를 볼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눈치 보기는커녕 도리어 ‘우리는 멀쩡한데 공격하는 사람들이 병신이다.’를 시전하면서 정신 승리를 해 버리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흠.”
노형진은 한참을 기록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 상황에서 형사사건이 업무상배임으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만 이걸 무고로 엮기도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차라리 무고로 엮어서 처벌이 가능하면 우리 쪽에서 협상 카드로 쓸 수 있겠는데.”
그런데 무고로 엮어서 처벌할 수 없으니 협상 카드로써의 가치는 없다.
“민사소송도 인정되지 않을 것 같고요.”
“전형적인 심리적 공격 전술인데. 저쪽에 변호사가 있나요?”
서류의 형태나 서식 그리고 공격 방식을 보면 일반인이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다,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이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정신 나간 변호사가 이따위 일을 받아 주겠는가?
돈이 되면 다 하는 게 변호사라지만 양심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는 게 변호사다.
“네, 아파트 측에 변호사들이 몇 명 있어요.”
“정식 의뢰는 아닌 것 같네요.”
“주민이에요.”
“주민이라……. 역시 홍보가 목적이겠군요.”
자존심 때문에 이런 사건을 대신해 주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자존심만 죽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정도 사건에서 편들어 주면서 소송을 이끌어 가면 홍보하기는 좋지.’
특히 아파트 내에서 이런 행동으로 관심을 받는다면 당연히 나중에 소송전이 터졌을 때 가까이에 있는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입주민 자격으로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불법은 아니라는 거다. 변호사도 결국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거주자니까.
“혹시 형사나 민사에서 제가 도와드려야 할 건 있나요?”
“아니요. 이건 뭐 어려운 소송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는 게 영 쉽지 않아서요.”
“회사 쪽에서 단호하게 커트해 주면 좋은데.”
사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회사에서 해당 지역의 택배 서비스를 거부하면 된다.
택배는 민간 기업이지 공공서비스가 아니다.
당연히 기업별로 차등을 둘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회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회사는 배달을 못 해도 어차피 배달 기사의 문제이기에,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제가 일단 피해자들을 만나 보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해당 아파트의 배달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는 총 여덟 명이었다.
노형진이 약속한 장소에서 마주한 그들의 얼굴에는 푸르죽죽한 색이 가득했다.
‘하긴, 마음고생이 심하기는 하겠지.’
택배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갑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측에서 공격받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저희 입장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싸워도 보고 읍소도 해 봤지요. 그런데 저쪽은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답니다.”
“거기 아파트들이 30층입니다, 30층. 그런 곳에서 택배를 하나하나 들고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배달하라고요?”
“한 동만 배달해도 하루가 다 갑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계단으로 다니는 게 건강에도 좋지 않냐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을 챙길 거면 자기들이 다니면 안 된답니까?”
푸념과 한탄.
노형진은 그들의 말을 한참 들어 준 다음에 조용히 물었다.
“거기로 가는 물건을 접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외부 계약자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런 경우 부당한 배달 접수는 거부할 수 있다.
직원이 아니니까.
“저희도 처음에는 그랬지요. 말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회사에서 뭐라는지 아십니까? 그러면 다른 곳도 안 준답니다.”
“네?”
“저희가 담당하는 곳이 거기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달 한 건당 800원. 그게 대한민국 배달 기사의 현실이다.
그 아파트가 세대가 많다지만 그들이 배달해야 할 곳 중에는 다른 지역 아파트들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지역 배달 물량은 20%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걸 거부하는 경우 나머지 80%의 물량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저희도 사람입니다. 먹고살아야 하고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데…….”
나머지 80%의 물량을 받지 못한다는 건 사실상 실직을 의미하니 택배 기사들의 생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변호사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지입입니다.”
차량을 가지고 외부 계약으로 들어가는 형태. 현재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형태다.
“당장 돈이 안 들어오면 자동차 할부도 못 냅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차량의 할부금도 내지 못하면 당연히 차량에 대한 압류가 진행될 게 뻔하다.
‘그걸 아니까 저 지랄을 하는 건데.’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택배를 배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쪽에 타격이 가는 건 거의 없단 말이지.’
물론 아파트 주민으로서는 귀찮은 부분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직접 마트에 가야 한다는 수준의 귀찮음이지, 지금 이들처럼 생계가 절박해지는 귀찮음은 아니다.
‘내가 돈으로 좀 도와줄 수는 있지만.’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일단 노형진이 돈을 빌려주면 잠깐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채무가 되고, 그걸 갚기 위해서는 저쪽에 더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그렇다고 노형진이 그 돈을 돌려받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저희가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일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가를 높여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이전처럼 차량 운행을 가능하게 해 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지극히 상식적이고 멀쩡한 요구다.
‘그렇다고 해서 저쪽에서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지.’
그 요청을 받아들일 정도로 멀쩡한 놈들이라면 애초에 이런 정신 나간 헛소리를 할 리가 없다.
“일단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네?”
“해 주실 수 있는 게 없다니요?”
“현실적으로 말씀드리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해 드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째서요?”
“여러분의 생계 문제가 달려 있으니까요.”
노형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목구멍이라고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지요.”
“그런데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까지 여러분이 일을 안 하셔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안 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다른 지입이 들어올 겁니다.”
그게 문제다. 이들이 안 한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는 들어와서 할 테니까.
그러니 택배 회사들은 절대로 이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이다.
“압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3개월만 쉬시면 업체는 이번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고 하시면?”
“여러분이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은 가슴 아프고 억울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모두가 같이 잘 살 수는 없다.
그걸 알기에 노형진은 이들의 확신을 받아 둬야 했다.
“원래 사회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그걸 낄낄거리면서 구경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그들의 싸움은 남의 싸움이지요.”
“다른 사람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요?”
“네.”
그 말에 여덟 명의 택배 기사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굳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바닥입니다. 우리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결의에 찬 그들의 모습에 노형진은 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부터 악마가 되셔야 합니다.”
***
염경진은 부하의 보고에 피식 웃었다.
라진택배 경기 지부를 총괄하는 그에게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턱도 없는 소리다.
“뭐?”
“부천 신도시 말입니다. 거기에서 문제가 된 지역 택배 기사가 그 지역 택배는 거부하겠답니다.”
“뭔 개소리야?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지부장님, 그 아파트 진짜 어떻게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곳 때문에 제대로 배달이 안 됩니다.”
“그건 우리 알 바 아니지. 우리는 배달 지역을 배정해 줬으니 그곳의 택배를 배달 못 하는 건 그 새끼들 잘못이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말이 됩니까,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직접 배달한다는 게?”
“시끄럽고, 알아서 배달하라고 해.”
“하지만 계속 불만이 쌓이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당연히 택배 기사들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엘리베이터로 물건을 날랐고, 입주민들은 그것만 보면 경비원을 불러서 지랄 발광을 해 댔다.
결국 경비원은 눈에 불을 켜고 택배 기사들과 멱살잡이를 하고 말이다.
“그 새끼들이 안 한다고 하면 그냥 다른 애들 보내.”
“하지만 거기를 맡으려고 할지…….”
“어차피 거기 물량이 20%나 되잖아? 지입하려고 줄선 애들은 많아.”
“네, 알겠습니다.”
염경진의 말에 부하 직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짜증을 내면서 내려왔다.
“지부장님이 뭐래요?”
“다른 지입 데리고 하란다.”
“아, 또요? 거기 그냥 버리면 안 돼요? 사실 수익도 얼마 안 되는데.”
한 지역에서 20%의 수익. 많다면 많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아주 큰 수익은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그 지역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시끄럽다고.”
“아니 민원이고 자시고, 그러면 일이나 할 수 있게 해 주든가.”
“아, 모르겠고, 그냥 다른 지입 차량 배당해.”
“알겠습니다.”
“후우~ 그놈의 아파트, 불도저로 밀어 버릴 수도 없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하 직원.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게 노형진의 함정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지입 차량을 가지고 온다는 것. 그건 쉽게 말해서 개인적으로 소유한 차량으로 업무를 보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 행동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화물 운송은 사실 아무나 못 합니다. 지금은 사실 사법화되어 있기는 한데, 화물 운송에 대한 영업은 별도의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의 영업용 차량들은 노란색의 번호판을 달고 영업해야 한다. 그건 상식이고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아요.”
영업용 차량에 관한 법은 과거에 우체국이 모든 물류를 담당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택배업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영업용 차량의 수요는 어마어마하게 늘었는데, 정작 영업용 차량의 허가는 거의 그대로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과 이번 일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민시아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간단합니다. 책임의 문제죠.”
“책임의 문제?”
“현재 택배업은 대부분 지입으로 운영됩니다. 그리고 그 지입 차량들은 대부분 무허가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 영업용 차량의 허가는 거의 제로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추가적인 허가를 거의 내주지 않는다.
내준다고 해도 그 면허를 따는 조건이 어마어마하게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