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04)
파리가 필요해 (4)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 그 안에서 그걸 피하면서 배달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과연 기존 배달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배달부들은 충성심이 없습니다.”
한쪽으로 배달이 쏠리는 데다 편의성까지 보장된다면?
“아마 배달부들은 모두 이쪽으로 쏠릴 겁니다. 물론 멀쩡한 사람들은 말이지요.”
범죄 이력도 없고 묶음 배송도 하지 않고 신호 위반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래도 안정적으로 배송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할 거다.
“그리고 그들이 신속의기수로 오면 다른 곳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업처럼 말이군요.”
“어딜 가나 똑같지요.”
작은 사업체들이 몰려 있는 곳에 공룡이 들어오면 그 사업은 공룡이 잡아먹는다.
과거에 택시를 부르던 콜택시도 대형 기업이 들어오자 거의 말라 죽었다.
아무리 그들이 노력해도 공룡은 이길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기존 업체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텐데요.”
분명 그럴 거다. 이 세상에 그냥 앉아 있다가 죽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쪽에서도 저항은 할 겁니다. 뭐, 별의별 짓을 다 하겠지요.”
아마 정치권의 힘도 빌릴 테고 사회운동가들의 힘도 빌릴 것이다.
“하지만 예상한다면 못 막을 건 없지요.”
사람들은 대기업이나 공룡 기업을 싫어한다.
하지만 노형진은 안다, 때때로는 공룡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룡은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강요할 수 있다.
“이제 공룡이 움직일 시간입니다.”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노형진의 예상대로 사람들은 대부분 신속의기수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그냥 일반 배달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나 아이가 있는 집의 경우는 거의 100% 신속의기수를 선택하는 분위기였다.
배달 음식은 가족 단위로 시켜 먹는 게 보통이다.
일단 최저 배달 금액이라는 게 있으니 그에 맞추다 보면, 단가가 높은 음식이 아니라면 가족 단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 단위라면 대부분 선택권은 어머니 또는 아내에게 있기 마련.
“배달 주문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배달 주문이 줄어든 게 문제가 아니야! 배달하고 싶어도 할 사람이 없다고!”
배달해야 하는데 배달부들이 너도나도 신속의기수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도 가족이 있고 신속의기수가 열심히 홍보하는 것을 알고 있다.
당연히 분위기가 어떤지 가족들에게 들어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속의기수는 다른 곳에서는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배달 금지라니. 하!”
개개인의 배달 업체는 그러한 금지 목록을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다.
만들 수야 있지만 배달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걸 찾아볼 수는 없고 결국 자동으로 뜨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돈이 없다.
결국 자연스럽게 진상 고객들이 이쪽 배달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거기에 질려 버린 배달부들이 빠르게 신속의기수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냥 당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인권 단체 연락처 있지요? 그곳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해 봅시다.”
“배달 업계에는 대기업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중소기업 업종으로 신청해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좀 더 공격적인 방법을 찾아봅시다. 가령 신속의기수와 손잡는 업체들은 우리가 배달을 거부한다든가.”
“옳거니! 그런 방법 좋습니다. 아직 신속의기수 놈들은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까요.”
아직은 압도적으로 일반 업자들이 많은 상황.
더군다나 그들은 모두 전국배달연맹이라는 곳에 속해 있다.
배달 앱인 집으로 놈들은 이제 어쩔 수가 없다.
신속의기수라는 곳이 생겼고, 그들과 별로 상관없다고 하기에는 두 곳의 커넥션이 무척이나 심했으니까.
그러니 자신들이 배달을 거부한다고 하면 분명 그들은 다른 곳을 포기하고 신속의기수와 손잡고 일할 것이다.
어쩌면 신속의기수를 만든 게 그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식당을 공략한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직은 수적으로 우세한 배달연맹, 그곳에서 집으로와 신속의기수에 시키는 곳에 보복하겠다고 하면 식당들은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합시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킵시다!”
“대기업을 몰아내자!”
그렇게 흥분하는 업자들을 보면서 고만진은 얼마 전 동생이 말했던 계획이 생각났다.
파업을 유도할 수 있다면 배달의만족과 저기요에서 적지 않은 돈을 줄 거라는 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집으로를 대상으로 하는 파업은 확정적이었다.
‘어쩌면 제법 두둑하게 만질 수 있겠어.’
그렇잖아도 노형진 덕분에 일을 못 하면서 상당한 손실을 봤다. 이제 와서 영업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손실만 보충할 수 있다면…….
‘아니지, 더 크게 놀아야지.’
배달의만족과 저기요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어쩌면 이 지역 배달 업체를 싹쓸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의 입가에는 남들이 모르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
“흠, 삼보일배라……. 고전적인 수법이네.”
노형진은 방송을 보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국밥을 먹던 오광훈은 그런 노형진을 보면서 짜증을 부렸다.
“야, 투자한 거 날리면 죽인다.”
“안 날려. 나 노형진이야.”
“알지. 그런데 저거 지랄 난 거 어쩔 거야?”
삼보일배.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것.
방송에서는 배달 업자들의 그 장면을 계속 틀어 주고 있었다.
“저 새끼들 작심한 것 같던데.”
“그렇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대로는 죽는다는 걸 알 테니까.”
노형진은 빈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정치권에 로비도 좀 하고 인권 단체를 통해 압력도 행사하고. 내가 그랬잖아, 뻔한 방법 쓸 거라고.”
정치인들 중 일부는 대기업의 배달업 진입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인권 단체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을 걱정하며 집으로가 반성해야 한다는 성명을 연신 발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도 그다지 충격받거나 겁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저쪽은 철저하게 약자 포지션을 취하는 거야. 우리는 약하다, 대기업의 횡포에 당하고 있다. 끄어어억~.”
아예 트림까지 하면서 벽에 기대는 노형진.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저 사람들이 왜 삼보일배를 선택했을 것 같아? 노동계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방법이 바로 삼보일배거든.”
그 방법을 씀으로써 대기업에 당하는 약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웃기지 않아? 저놈들은 배달부가 아니라 배달 업체 사장들이야. 노동자는 개뿔.”
중간에 사무실을 차려 두고 용역을 주는 곳이 바로 저런 곳이다. 저런 곳이 많다는 건 가지고 가는 것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있으면 그만큼 비용을 깎을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저놈들이 장난치고 있다는 거지. 겉으로는 약자인 척하면 뒤에서는 수작질을 부리고 있어.”
“수작질?”
“응. 업체들을 협박하더라고.”
집으로와 거래하면 배달 금지. 신속의기수와 거래해도 배달 금지.
그런 협박을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 때문에 집으로와 신속의기수의 이용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아니, 그걸 왜 두고 보고 있는 거야?”
“왜일 것 같아?”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들의 배달 금지는 집으로 배경환 사장도 두려워했던 일이야. 그걸로 지금까지 수많은 협박을 했으니까.”
일개 음식점 사장이 그들의 행동에 저항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내 말은 왜 그냥 당하고 있냐 이거야. 검사들이 투자한 돈이 얼만데.”
“당하고 있는 게 아니야. 방치하는 거지.”
“뭐?”
“내가 저들과 집단으로 싸울 이유가 있어? 솔직히 시간 낭비지.”
“시간 낭비?”
“그래. 저들은 지금 전국배달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 그런데 그들이 기업처럼 일사불란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연맹이니 연합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이권을 위해 뭉친 조직이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그냥 튀어 나가서 따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더 귀찮아.”
못 이기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귀찮다.
보리가 가마니인 채로 있다면 그걸 치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보리 가마니가 터져서 줄줄 새기 시작하면 치우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배달연맹은 그냥 두는 게 나아.”
한꺼번에 청소하기 위해서는 그냥 두자, 그게 노형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무 커다란 짐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커다란 짐은 청소도 힘들어.”
“그건 어중간하게 규모가 될 때의 이야기지. 저놈들은 세력을 믿고 가게를 압박해. 딱 적당한 사이즈야.”
노형진은 방송에서 절규하듯이 외치는 고만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정부는 당장 배달업을 소상공인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고 자생을 위한 정부 보조 정책을 발표해야 합니다!
“진짜로 딱 먹기 좋은 사이즈지,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