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28)
미래는 성적순? (2)
“그것뿐만이 아니죠.”
고윤주는 지원이 있기 전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번에 커닝으로 징계를 받으면 당연히 과거의 시험도 커닝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테고, 다음 시험에서도 커닝했다는 소리가 나올 게 뻔하다.
“학교에서는 분명 내신 관리하는 있는 집 자식들을 위해 윤주를 시궁창에 처박고 싶어 할 거예요.”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 공정한 학교.
그런 건 소설에서나 나오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우리가 가서 화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거기를 뒤집을 수도 없다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모아서 변호사를 사죠.”
“변호사?”
“네. 우리가 변호사를 사서 거기를 박살 내 놔야 윤주한테 이런 짓거리를 다시는 못 할 거예요. 우리가 잠깐 신경 쓰다가 놔두면 다시 윤주한테 보복하겠지요. 그리고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윤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 하긴 그러네.”
고윤주가 다니는 화상고등학교는 이 보육원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다. 그 말은 여기 보육원에 있는 고등학생들 대부분이 거기를 다닐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다른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버스비마저도 이런 보육원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학교가 바로 화상고등학교인 것이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이런 짓거리를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물론 다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학원을 다니지도 못하고 문제집도 제대로 사기 힘들다. 개인 교습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거 다 받는 애들을 단순히 문제집 좀 사 줬다고 따라잡은 고윤주가 엄청 대단한 거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고윤주 한 명뿐이라는 보장은 없다.
보육원의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돈 있는 집안의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똑같이 취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는 거다.
“변호사라……. 하지만 내가 여러 변호사를 만나 봤는데 그렇게 싸워 줄 변호사는 없을 것 같은데.”
물론 변호사에게 수임하는 순간 고윤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변호사는 자신의 일만 딱 해결하고 끝이다. 학교의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한 분 계세요.”
“누구?”
“노형진 변호사요.”
“노 변호사님? 음, 확실히 노 변호사님이 이런 사회적인 문제, 특히 공정에 관한 문제에 예민하시기는 하지.”
대룡에서도 가장 우선시하는 게 공정이다. 약자라고 무조건 선하다고 믿는 게 아니라, 약자든 강자든 최소한 기회는 공정하게 받아야 한다는 게 핵심.
“하지만 고작 이런 사건을 노 변호사님이 해 주실까? 엄청 바쁘신데.”
“이런 사건이니까 오히려 해 주시지 않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회사 일은 아니니까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의뢰해 봐요.”
“이참에 그 학교 박살 내 버리면 좋겠네.”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진하선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그래서 저희가 의뢰를 드리고 싶어서요. 이건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니까.”
“그건 가능합니다.”
노형진에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노형진이 모든 사건을 다 받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분명 노형진이 받아 줄 가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되게 심각한 문제였지. 잊고 있었네.’
대한민국은 입시에서 사생결단을 내는 경향이 너무 심하다.
공부 말고 다른 인생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 사람, 실패하면 인생 패배자라는 인식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위에 서려고 한다.
‘학력고사에서부터 수능, 그리고 내신까지.’
학력고사가 아이들을 암기만 할 줄 아는 바보로 만든다며 변별력을 갖추겠다고 도입한 게 수능이었는데, 수능이 실시되자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다 결정되는 건 잔인하다며 내신이 도입됐고, 여기에 공부만 하는 애들만 유리하고 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불리하다고 해서 특기가 도입됐다.
그런데 그때마다 호황인 것은 언제나 학원뿐이었다.
학력고사를 넘어서 수능 전문 학원이 생기고 내신 전문 학원이 생겼다.
‘내가 진짜 그 꼴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특기를 도입한 이유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쪽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진학시키기 위함이었다.
국어국문학과에는 국어 점수가 높은 아이들이 아닌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고, 수학과에는 수학 점수가 높은 아이들이 아닌 수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가고, 체육학과에는 체육 점수가 높은 아이들이 아닌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는 것.
그런데 그해 강남에는 글짓기 학원뿐만 아니라 심지어 줄넘기 학원까지 생겼다.
글짓기라는 것은 사실 상당 부분 재능의 영역이다. 그런데 학원 선생들은 그 글짓기를 단순히 고루한 교수의 수준에 맞춰서 순수 문학 위주로 가르쳤고,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뭐가 하나 바뀌면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학원과 학교다.
“그놈의 학교 명예가 뭔지 이해가 안 가요. 고교 평준화가 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선생이나 교장 하는 놈들의 대가리에는 똥만 가득해서 그렇습니다.”
학교의 명예. 학교가 평준화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그게 참 중요했다.
지금의 대학처럼 고등학교를 골라서 가야 하다 보니 대학이 거의 없던 시절의 대학처럼 인맥이 거의 끝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때는 당연히 고등학교의 명예가 드높아야 더 좋아서,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이름이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도시에서는 모두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졌고 보육원이 있는 수원시 역시 고교 평준화 지역이다.
즉, 원해서 거기로 진학한 게 아니라 가까운 거리 우선으로 추첨을 통해 진학하게 된 것뿐이다.
“결국 그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준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죠.”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결국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선생의 능력이 됩니다.”
문제는 선생들이다.
결국 그 학교가 유명해지고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선생이 유능하고 실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또 선생들 입장에서는 귀찮은 거다.
적당히 월급이나 받으면서 다니고 싶고 또 일하기 싫은 거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일부 선생들은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문제는 그런 바른 사람일수록 견제받고 조직에서 쫓겨난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는 적당히 가르치고 마는 선생만이 남게 되는 거죠.”
반에서 1등 하는 애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1등을 한다. 그런 아이들은 대부분 스스로도 공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걸 커버해 줄 수 있는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애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보니 선생들이 그 애들을 지원하는 스승 역할을 해 줘야 하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되니까 편하게 그냥 1등 하는 아이에게만 신경 쓰는 거다.
그러면서 공부를 잘하고 환경이 좋은 아이들을 통해 학교의 명예를 올리고 자기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짓된 환상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거고.
“하지만 이번 경우는 선을 넘어도 심하게 넘었군요.”
아무리 1등을 비롯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위해 굴러가는 학교라고 해도 결국 학생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건 기본적인 사항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걸 지킬 생각이 없다면 기꺼이 도와드려야지요.”
“아, 다행이에요. 안 도와주시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뭐, 매일같이 무겁기만 한 사건을 하면 부담이 가지 않습니까? 때때로는 가볍게 할 수 있는 사건도 있어야지요.”
노형진은 재미있을 거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학교 입장에서는 전혀 가볍지 않겠지만요.”
***
며칠 후 화상고등학교에서는 고윤주의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저는 진짜 커닝 안 했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평소 너의 성적과 비교해서 성적이 너무 많이 올랐어. 커닝이 아니라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
“맞습니다.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를 한 고윤주 학생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합니다.”
“더 자세히 조사해서 커닝 행위를 한 모든 시험을 0점 처리해야 합니다. 역시 가난한 애들은 믿으면 안 돼요. 양심이라는 게 없다니까요, 양심이라는 게.”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선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하나 되어 고윤주를 욕했다.
고윤주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힘이 없다는 게 이렇게 억울한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면 징계 수위를…….”
교감은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는 듯 징계 수위를 결정하자고 재촉했다.
그 순간 갑자기 회의 중인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바로, 노형진이었다.
“누구세요?”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노형진은 다짜고짜 밀고 들어왔다.
“지금 회의 중입니다. 뭐 하는 분인지 모르지만 나가 주세요.”
“죄송한데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빈 의자 하나를 질질 끌고 와서 회의를 주관하던 교감의 건너편에 있는 고윤주의 옆에 두고는 떡하니 앉았다.
“당신, 누구야?”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고윤주 양의 변호사죠.”
“변호사? 변호사라고?”
“변호사가 왜?”
“고윤주네 집, 거지 아니었어?”
당황하는 사람들의 눈빛
그걸 느끼면서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어이가 없구만.’
고윤주가 변호사를 불렀다는 사실에 놀라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학생 앞에서 거지?
이건 평소에 윤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예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하긴, 그런 최소한의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런 뻔뻔한 회의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다.
“여기는 공식 석상입니다.”
“그렇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교감에게 되물었다.
“여기가 공식 석상인 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니 나가 주세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고윤주 양의 변호사입니다만.”
“여기는 학교의 회의실이지 재판정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필요 없습니다.”
뭔가 불편한 듯 계속 노형진을 내보내려고 하는 교감.
물론 노형진은 그 이유를 안다. 자신들도 켕기는 게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무마하려고 하는 거다.
노형진이 늦게 들어와서 들은 게 없으니 자기들이 결정을 내리면 반박을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교감이 변호사들과 엮여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한 일종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곤란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방금 전에 교감 선생님께서 공식 석상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할 때 보호자를 대동해야 한다는 건 아시죠?”
“그건…… 어디까지나 법률적인…….”
“학교의 규칙이 법률보다 우선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금?”
“…….”
물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그게 가능했다면 누구나 규칙을 만들어서 법을 무력화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