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6)
상대방이 말하기 싫거나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공시하는 것도 명예훼손에 속한다. 판사는 교묘하게 그 사실을 지적하면서 노형진의 의견에 슬쩍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큭큭큭.”
노형진과 함께 원고 측 변호인 자리에 있던 남상주는 애써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이길차는 진짜 똥 씹은 표정이 되어 갔다.
“에…… 그리고 이상한 점이.”
노형진은 어색한 얼굴로 다시 재판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판사가 편들어 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 있습니까?”
“계획했겠지요. 충분한 연습을 하면 가능합니다.”
“그거야 가능하지요. 근데 당신 같으면 21만 원 훔치려고 그 연습을 하겠습니까?”
“…….”
아마도 그 비용이 더 들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부분 말입니다.”
노형진은 그들의 진술서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 워낙 특이한 사건이다 보니 제법 많은 구경꾼들이 왔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어 보지요. 범죄를 계획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그 후에 대답이 야심한 밤을 틈타서 피해자를 기절시킬 목적으로 렌치를 선택하여 습격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게 뭐가 이상한가요?”
노형진은 이길차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이 야심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말은 늦은 밤, 아니면 새벽, 또는 캄캄한 밤이라고 표현하지, 야심한 밤이라는 표현은 법률 쪽이나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이 쓰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정신 지체를 가진 사람이 야심한 밤이라는 표현을 쓴다고요?”
“…….”
“그 단어뿐 아닙니다. 다른 단어의 선택도 이상합니다. ‘두 사람이 렌치를 선택하여’라고 표현했는데 두 사람의 부모들은 농사꾼입니다. 차도 없고 농사용 기계 장비도 없죠. 근처에 공장도 없습니다. 그들이 렌치라는 단어를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습격? 도대체 습격이라는 단어에 어떻게 압니까?”
이길차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건 몰랐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런 이길차 변호사에게 더욱 따져 물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진술서 곳곳에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가득합니다. 금전을 취득할 목적으로……. 금전? 보통 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주 하여? 보통은 도망이라고 하지요. 은신한 후에……. 은신요? 보통 숨는다고 하지 않나요?”
“…….”
맞는 말이다. 사건의 진술서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런 건 보통 법률 쪽에서 많이 쓰는 단어 아닌가요? 가령 형사라든가 말입니다.”
“그거야…… 그 애들이 말한 걸 적는 과정에서 형사가 쓸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진술서란 그 사람이 말한 그대로 쓰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요?”
“…….”
이길찬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속으로 진술서를 쓴 경찰 녀석만 욕할 뿐이었다.
‘망할 새끼.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자신이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에 쓰던 표현을 그대로 쓴 모양이었다. 물론 일반적은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특정 계층이나 직업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인 것이다.
“우리 원고 측의 진술서는 훨씬 상세하고 정확합니다. 그날 22시경, 해당 마을에서 버스를 놓쳤음. 23시경, 돈이 없어서 여인숙에서 숙박이 거절되었고 24시경, 남은 돈으로 술을 사 마신 뒤 01시경에 해당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문을 따고 들어감. 도주 중 소리를 듣고 나온 피해자를 밀치고 도주. 다음 날 경찰이 출동한 걸 보고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음.”
“…….”
완벽하게 깔끔하게 정리된 시간 순서.
“그에 비해 이 진술서는 뭡니까? 강도 이유가 치킨을 사 먹고 싶어서였다고요? 치킨을 사 먹고 싶어서 강도질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이렇게 치밀하게 장비까지 준비하면서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크흠…….”
이길차는 애써 눈을 돌렸다.
‘망할 놈들.’
그 당시 담당 형사였던 녀석은 해당 지경의 서장이 되었고 판사는 국회의원이, 검사는 검사장이 되었다. 그 빼고는 모두 공적인 자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어서 쪽팔리다면서 나오지 않는 바람에 혼자서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개새끼들.’
물론 변호사가 있다면 안 나와도 된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임과 동시에 피고인. 사람들의 빈정거리는 듯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 부분은……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추가적인 조사라. 그럼 그 당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거네요?”
“그건 아닙니다.”
“근데 왜 추가적인 조사를 합니까?”
“…….”
이길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기 시작했다.
“멍청하군. 도대체 저런 녀석이 어떻게 거길 들어간 거야?”
남상주 변호사는 나오자마자 넥타이를 풀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가 속한 로펌은 상당히 이름 있는 로펌이다. 물론 새론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중견이라고 할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멍청한 녀석이 변호사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쯧쯧, 변호사 질이 너무 안 좋아졌어.”
“더 심해지겠지요.”
“끄응…….”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국영수와 암기를 잘하는 것만으로 뽑는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상식이 없다. 조금만 상식이 있으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수사를 다시 진행시킬 수 있을까요?”
석진우는 뭔가 답답한 얼굴이 되었다.
“네,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니요? 사건이 다 끝났는데요?”
“원래 형사는 일사부재리를 따릅니다. 동일한 범죄로 다시 처벌받지 않는다. 즉, 한번 형사처벌이 끝나면 끝이라는 거죠. 하지만 딱 하나 다른 게 있습니다. 그 공소 사실의 근간이 되는 정보에 변동이 생기면 다시 수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리는 것도 그것이고요.”
민사이긴 하지만 그들의 증거가 법정에서 부정당하면 노형진과 새론은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원하는 대로 될 겁니다.”
“그렇군요.”
성진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형진은 그런 석진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나저나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걱정거리가 있나요?”
“네? 아닙니다. 그냥 요즘 고민이 많아서요.”
하긴 자기 자신이 감옥에 가겠다고 나섰다. 더군다나 그 당시 마약까지 했으니 자수라고 하지만 가중처벌 받을 수도 있는 일.
“지금이라도 그만두시겠습니까?”
“네?”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애들은요?”
“불쌍하기는 하지만 저희에게는 의뢰인의 의사가 먼저입니다.”
그 말에 석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자기가 저지른 죄는 자기가 받아야지요.”
그는 역시나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이런 사람은 처음인데 말이야.’
보통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속이려고 하지,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벌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자수범의 대부분은 그저 자수하면 형량을 깎아 주니까 하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이제 다음번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다음번에는 저들 전부가 나올 겁니다. 혼자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러면 그걸 어떻게 방어하실 생각인가요?”
“제가 말입니다.”
“네.”
“왜 이 사건에 피해자 가족들을 끼워 넣었는지 아십니까?”
“네?”
석진우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히군. 이게 무슨 현장검증이야?”
피해자 가족은 피해자로서 사건 기록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 물론 자신들의 자료이나 경찰이 확보한 자료만 볼 수 있지만 그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노형진에게는 상당히 큰 이득이었다.
“그렇지요?”
“저런 게 경찰이라고. 어이구, 속 터져.”
남상주가 어이가 없어하면서 보고 있는 것. 그건 다름 아닌 현장검증 영상이었다.
“우리가 과연 이걸 달라고 하면 줬을까요?”
“줄 리가 없지.”
현장검증은 말 그대로 범인을 잡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범죄가 이루어졌는지 현장에서 재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일반적으로 녹화해서 보관한다.
“기가 막히는군.”
남상주 변호사는 다시 한 번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을 다시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야! 거기 아니잖아! 뒤로 돌아가야지!
-저…… 저, 뒤는 잘 몰라요.
-콱! 이 새끼가. 가라면 가란 말이야.
-악!
수갑을 찬 두 아이는 형사의 발길질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경찰 아저씨,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병신 새끼들아, 너희가 그렇게 병신 짓을 하고 다니니까 병신 소리를 듣는 거야.
-엉엉엉.
-잘 들어. 여기는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 너희는 배우고 난 감독이야 알겠냐?
-네…… 흑흑흑.
-그러니까 배우는 감독 말을 잘 들어야지.
-흑흑흑.
-이 새끼들아, 질질 짜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경찰들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두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아오, 병신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여기서는 네가 아니라 네가 노인네 뒤통수를 쳐야지!
-해 본 적 없어요…… 엉엉.
-해 본 적이 왜 없어! 우리가 해 본 적 있다면 있는 거야! 아오, 모자란 병신 새끼들.
자신들의 말대로 안 되자 두 아이를 때리면서 열불을 내는 경찰.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다른 경찰가 낄낄거렸다.
-이봐, 김형사. 그 애들 병신이잖아. 병신을 병신이라고 부르면 그건 욕이 아니지.
-아, 맞다. 병신이야. 아오, 씨발. 내가 병신들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지.
김형사라 불린 남자가 길길이 날뛰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이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거참, 저 애들은 배우는 못하겠구만. 껄껄껄.
현장검증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구타해 가면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정해서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구한 건가?”
남상주는 그걸 보면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피해자 측 가족들이 요청해서 받은 자료들과 별도로 노형진이 가지고 온 이 동영상은 변호사로서의 그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었다.
“썩은 경찰이 저 녀석들만은 아니죠.”
그 말에 왠지 씁쓸한 얼굴이 되는 남상주 변호사.
“그런 말이 있지요.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끄응…….”
썩은 경찰은 저들만이 아니다. 이게 새어 나가면 저들의 인생이 파멸될 거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과연 신경이나 쓸까? 그 정보원은 노형진이 주는 돈에 기꺼이 이 동영상을 복사해서 넘겼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안 건가?”
“하하하, 그냥 어쩌다 보니요. 정보원에게서 들었습니다.”
노형진은 미래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미래는 누가 새어 나가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았고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걸 위에서 모른 척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
“아마도 편집해서 줬을 겁니다.”
“편집해서 줬다면 중간중간 끊기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그 말에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
그리고 남상주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들은 이 모든 걸 짜고 실행했다. 중간중간 끊긴 것에 신경이나 썼겠는가?
“결국…… 모두가 개놈이죠, 뭐.”
“하아.”
남상주는 왠지 갑갑한 마음에 한숨만 쉴 뿐이었다.
“노 변호사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찾아올 손님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데?”
“소태섭 의원이라는데요?”
그 말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소태섭 의원.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결국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
그는 그 당시 판사였던 사람으로,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증거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판결한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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