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63)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2)
***
다시 시작된 재판.
세 사람은 노형진의 예상대로 철저하게 어윤자를 배신했다.
자신들이 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그 처벌을 받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증인, 그러면 그날 어윤자 씨에게 강제적 성관계에 대한 어떠한 말도 들은 적이 없단 말이죠?”
“네,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면 그날 한 이야기는 뭐였지요?”
“그냥,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요. 가정에 소홀한 것에 대한 불만이랑, 저희 같은 경우는 시댁에 대한 불만이나…….”
강요화의 진술이 이어지는 내내 어윤자가 부들부들 떠는 게 보였다. 일이 이 지경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을 테니까.
“그러면 그날 외에 다른 날에라도, 강제적인 부부 관계 시도에 대해 들은 적은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그러면 반대로 부부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요?”
“그에 대해서는 몇 번 들었어요. 일에 미쳐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자신한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고요.”
그 말에 고개를 숙이는 어윤자.
이로써 부부 강간이 성립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뭐, 여기서 끝내도 되기는 하지만.’
일이 이 정도 되면 배심원들은 이미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강초진은 무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끝내면 부부 강간에서야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러면 증인은 부부 강간에 대해 어윤자와 이야기하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네?”
“부부 강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에 대해 알려 준 적이 있느냔 말입니다.”
노형진이 여기서 이렇게 훅 치고 들어간 것은 그녀가 현재 증인으로서 선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요화는 증인 선서를 했고, 그 후에는 어떤 거짓말을 하든 그녀는 위증죄로 처벌받게 된다.
‘이혼소송에서 이기려면 모해위증죄로 엮어야지.’
모해위증죄로 엮기 위해서는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건 위증죄와는 다른데, 위증죄는 단순히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인 반면 모해위증죄는 상대방이 처벌받게 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거다.
단순 위증과 모해위증은 그 죄목이나 처벌이 아주 다르다.
단순 위증은 벌금이나 금고 정도지만, 모해위증은 처벌이 10년 이하 징역이다.
일반적인 무고보다 훨씬 처벌이 높은데, 무고는 단순히 경찰에 신고하는 것인 반면 모해위증은 증인 선서를 하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걸 알기에 모해위증으로 어윤자를 엮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요화가 어윤자에게 해당 사실, 즉 부부 강간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는 증언이 필요했다.
“저는 그게, 말해 주거나 들은 적은 없어서…….”
“그래요?”
자신이 말해 줬다면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던 강요화는 결국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 말에 씩 하고 웃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놔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저희한테 들어온 제보는 좀 다릅니다만.”
“네?”
“저희 쪽에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강요화 씨가 어윤자 씨에게 적극적으로 부부 강간이라는 범죄에 대해 알려 주고 그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면서 범죄행위를 교사했다고 하던데요.”
“누가 그래요!”
강요화는 기겁해서 펄쩍 뛰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문제는 이걸 단순 조언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범죄의 교사로 판단하느냐는 것이었다.
“제가 제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지요. 그저 그와 관련해서 제보자의 증언을 전해 드릴 뿐입니다.”
“절대 아니에요! 진짜예요!”
“그래요? 그러면 105동의 그분에 대한 자료를 공개해도 될까요?”
그 말에 강요화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증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두 여자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정보처가 105동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저 두 사람과 어윤자뿐이니까.
‘이렇게 되면 서로 배신할 수밖에 없지.’
이미 거짓말이 걸린 강요화뿐만 아니라, 이쪽에서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도 거짓말은 못 하게 된다.
물론 노형진이 105동에 관련된 녹음 파일을 공개할 이유도 없다.
“재판장님, 제가 증인에게 법률적 조언을 해도 됩니까?”
“하세요.”
“감사합니다.”
재판장에게 허락받은 노형진은 강요화에게 말했다.
“이미 당신은 위증죄를 저질렀습니다. 아시죠? 저희에게는 그걸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고요.”
그 말에 격하게 흔들리는 강요화의 눈빛.
자신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심장은 공포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노형진은 그녀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 줬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증언을 끝내지 않았지요.”
“네?”
“아직 증언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증언을 철회하고 진실을 말하면 위증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 말에 강요화는 진실인지 알고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검사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지 두 눈을 가리고 있었고,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의 말이 맞습니다. 아직 증언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위증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말에 강요화의 입에서 진실이 튀어나왔다.
“제가 이야기해 줬어요! 저희 아파트 105동에 사는 여자가 이혼하면서 전 남편한테 부부 강간죄를 뒤집어씌워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산을 분할했고 추가로 1억이 넘는 돈을 가지고 왔다고 한 적이 있어서요.”
“범죄를 교사한 겁니까?”
“아니에요! 저는 그냥 그런 일이 있다더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제가 어윤자한테 그런 일을 하라고 한 적은 없어요! 진짜예요!”
지옥에 발을 살짝 담갔던 강요화는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어윤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어…… 1월 22일이었던 걸로 기억나요. 네, 맞아요. 22일이었어요. 그날, 이혼소송을 한다고 이혼 소장을 넣고 왔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복수하고 싶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방법을 조언해 줬다?”
“아니, 조언해 줬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하라고 한 적은 없어요!”
가볍기 그지없는 관계. 그 관계는 결국 파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강요화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두 사람도 결국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어윤자의 편을 들어 주면 자신들 아니면 강요화 둘 중 하나에게 위증이 성립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어윤자를 대신해 감옥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재판이 끝나자마자 어윤자는 모해위증으로 현장에서 긴급체포 되었다. 거짓말한 게 드러났고 더 이상 그걸 유지할 힘이 없었으니까.
그제야 어윤자는 자기는 그냥 이혼만 하고 싶었을 뿐이라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지만 이미 그녀가 한 일이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당연히 강요화가 한 증언에 따라 105동의 누군가도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될 건 뻔한 일.
“부부 강간은 뒤집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성식은 사건 기록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현실적으로 부부 두 사람만이 사는 집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증명하고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혼과 관련해서 실제로 수많은 부부 강간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진실과 상관없이 확정적으로 처벌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온수라……. 확실히 특이하기는 하네요.”
“강간에서 피해자들의 행동 패턴에 꼭 들어가는 부분이 바로 씻는다는 행위니까요.”
단순히 관계 이후의 청결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이 당한 더러운 일을 씻어 내고 싶다는 심리적인 방어기제로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형태가 바로 씻는다는 행위다.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관계 이후에 씻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문화니까요.”
그래서 노형진이 굳이 씻었느냐는 질문을 계속 한 것이다.
처음부터 온수를 물고 늘어졌다면 어윤자는 안 씻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미 씻었다는 증언을 한 상태에서 기록은 그것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운이 좋은 거 아닌가? 사실 온수 사용량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곳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개별난방을 하는 곳인 경우는 보일러를 통해 온수를 공급받기도 하니까.”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경우는 확실히 증거를 뒤집기 힘들다.
“그래서 제가 물어본 게 바로 방송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전업주부의 경우는 TV를 보는 게 패턴화되어 있지요.”
“하지만 방송은 증명력이 좀 약한데요?”
고연미 변호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확실히 온수 같은 경우는 거짓말이 증명되는 거라 중요한 무게감이 있지만, 방송의 내용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착각이 가능한 정보라서 법원에서 쉽게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경우는 다른 걸 확인하면 됩니다. 일단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게 게임이나 IPTV의 구매 내역이겠지요.”
“흠…… 하긴, 게임 같은 건 구매해서 해야 하는 거니까 그 와중에 강제적인 성관계가 벌어지기는 힘들겠지.”
게임 같은 경우는 지속적으로 컨트롤이 필요하다. IPTV 역시 그런 상황에서 구매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배달 내역이나 통화 내역 같은 것도 가능합니다. 사실 사람은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뭔가 하고 있다는 증거를 계속 남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고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된 상황에서는요.”
“집 내부에서 외부로 가는 일상을 모두 기록으로 확인한다라…….”
그렇게 된다면 운이 좋다면 이번처럼 현실적으로 부부 강간이 불가능하다는 게 입증될 수도 있다.
“하다못해 카드 내역도 있을 수 있고요.”
물론 이게 이혼을 위한 허위 신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을 추적해서 가짜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혼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을 더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실은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당장 냉장고에서 디지털 정보를 이용하면 언제 냉장고를 열고 닫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문을 열고 닫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걸 따로 기록하지 않는 냉장고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디지털 장비가 실내 온도 변화를 감지해서 냉각장치를 작동시킨다.
만일 사건이 벌어진 때에 냉장고의 작동 기록이 발견된다면 시간적 충돌 가능성도 따질 수 있게 된다.
“물론 정황상의 증거가 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이혼소송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몰리겠군.”
김성식은 왠지 씁쓸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이니까.
“적당히 하늘과 일을 분배해야지요. 그나저나 강초진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어윤자가 거짓말한 게 드러나자 강초진에게는 당연히 무죄가 선고되었다.
다음 주에 있을 이혼 재판에 가면 아마도 귀책사유 문제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강초진이 가정에 소홀한 건 사실이지만 어윤자가 심각한 귀책사유를 발생시킨 시점에서 그게 가정 소홀로 일어난 이혼소송인지, 아니면 어윤자가 자신의 귀책사유를 감추기 위해 핑계로 이혼을 청구한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그게 말이지요.”
고연미는 왠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강초진 씨는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네? 지금 상황에서요?”
노형진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지금 어윤자는 심각한 죄를 저질러서 체포당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