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583)
거짓 위에 거짓을 덧칠하다 (4)
실제로 차명 계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차명 계좌를 운영하면서 로비 자금을 빼돌리고 있다.
“만일 기사가 사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 같은데요.”
“와, 이거 사람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요?”
‘잘못 건드리기는 했지. 날 건드렸으니까.’ 사실 이 모든 메일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노형진이었다.
계획을 시작할 당시에 기업에서 필사적으로 반대할 거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기에 그런 그들의 반대를 무마시키고 그들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기 위해 그러한 명령문을 익명의 메일로 발송한 것이다.
사실 이런 메일을 발송했다 한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확인하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대룡에 관련된 치밀한 정보가 있었다고 적혀 있지만 그건 대룡이니까 가능한 거고, 다른 기업들은 경제 쪽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만한 내용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그걸 이미 삭체 처리해서 보여 주거나 할 수는 없을 테니 결국 대룡의 메일을 기반으로 그 당시 내용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눈에는 그 명령서를 받고 움직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진짜 여론도 살벌하게 돌아가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반대하는 이유를 다들 기업의 자기방어라고 생각했지만, 이 뉴스 이후로는 기업들이 실제로 어둠의 왕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 계속 퍼지고 있었다.
그만큼 타이밍이 절묘했다.
물론 겸사겸사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하지만 그 겸사겸사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는 아주 무거웠다.
기존의 자기 보호라고 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고 어둠의 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지만, 겸사겸사라는 건 국민들 대다수가 어둠의 왕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참 대단하네요,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대기업들이 로비를 멈추지 않다니.”
“그들 입장에서는 다급하겠지요. 솔직히 그들에게 어둠의 왕인지 어둠의 대통령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 국민들이 자기들에게 항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법이 통과되면 안게 될 위험부담이 문제였다.
실제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법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멍청하기는.’
물론 노형진은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로비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의원과 접촉해야 하니까.
평소라면 국회의원을 전부 감시한다는 황당한 생각은 못 하겠지만, 짧은 기간이고 어차피 대기업에서 돈을 싸 들고 달려오고 있는 상황이니 아마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지갑을 두둑하게 채우고 있을 게 뻔한 일이었다.
“징벌적 배상 제도가 무섭기는 한 모양이군요.”
노형진은 모르는 척 이야기했다.
“무섭겠지요. 솔직히 한국에서 국민들에게 대하는 꼴을 보면 1년에 그런 소송이 한 1천 번쯤 걸려도 이상할 게 없어요.”
“그건 그러네요.”
“그런데 이 지랄이 나도 아무래도 파워가 부족할 것 같은데…….”
무태식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상황을 보면 이쪽이 유리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징벌적 배상 제도의 법률 통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뭐, 조만간 방법이 나올 겁니다.”
“조만간요?”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쉽게 방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네, 조만간요.”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노형진은 이미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
며칠 후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를 뒤흔들 뉴스가 갑자기 터져 나왔다.
그 뉴스가 터지는 순간 대한민국의 신문이란 신문은 다 팔려 나갈 정도로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어둠의 왕, 그가 미다스인가?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수많은 경제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미다스는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타난 적이 없으며 또한 업무와 관련해서도 단 한 번도 접촉한 사람이 없다.
다만 그동안 미다스가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은 사실이며 한국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있다는 점을 기반으로 한국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본지 기자에게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어둠의 왕이 전 세계에서 군림하는 미다스라는 것이다.
현재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미다스와 어둠의 왕은 비슷한 점이 있다.
더군다나 아무리 어둠의 왕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재계 순위 1위 기업부터 그 아래 기업들까지 모두 익명의 명령서 하나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다스라면 어떨까?
본지의 기자는 해당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각 기업에 접촉해 봤지만 관련 정보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잖아도 미다스에 관한 소문이나 정보는 여기저기에서 넘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터진 황당한 정보.
문제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미다스와 가장 친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미다스를 대신해서 전 세계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사람.
바로 노형진이었다.
“어마어마하군요.”
노형진은 새론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건물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로변에 있는 보도는 자리가 부족해서 기자들은 아예 도로까지 차지하고 있었고, 경찰은 다급하게 사람을 보내서 그곳을 정리하면서 사고를 막고 있었다.
기자의 숫자가 족히 수천 명은 되어 보였다.
“미다스 아닌가? 미다스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전 세계에서 기자들이 달려오는 거야 당연한 걸 테지.”
창밖을 바라보는 노형진의 옆으로 다가와서 중얼거리는 송정한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할 건가? 욕 좀 먹을 텐데.”
“뭐, 욕먹는 걸로 세상이 나아진다면 기꺼이 먹겠습니다.”
“하긴, 자네가 언제나 하는 말이 있지.”
“청소를 하려면 제가 더러워지는 것도 각오해야지요.”
노형진은 송정한의 말에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내려가 볼까요?”
노형진은 시선을 돌려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향했다.
1층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간 그는 도로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차량으로 기자들을 뚫고 가려고 했다.
당연히 새론의 경호 팀이 그런 그를 보호하려고 주변에 다가오는 기자들을 막았고, 기자들은 온몸으로 밀어 대면서 사진을 찍고 녹음기를 들이밀었다.
“노형진 변호사님, 기사에 따르면 미다스가 한국인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기사에 따르면 어둠의 왕과 미다스가 동일 인물이라고 하던데요!”
“미다스는 아무 말도 없었나요?”
“미다스가 왜 한국의 징벌적 배상에 대해 터치를 하는 겁니까? 한국인이 맞습니까?”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노형진은 기자들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차량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막 차량에 올라타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노형진 변호사님, 지금까지 노형진 변호사님이 보여 주신 모습은 선량하고 국민들을 우선시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부자를 위해 사건을 덮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념을 버리신 겁니까? 신념보다는 역시 돈인 건가요?”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
노형진은 그 질문에 흠칫하며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대답했다.
“저는 신념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요.”
“이번 사건에 관해 제가 드릴 말씀은 하나뿐입니다. 만일 이번 사건이 미다스의 아들이 한 게 맞다면 정당하게 처벌받고 징벌적 배상이고 뭐고 당연히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지새끼도 아니고, 추잡스럽게 이게 뭡니까?”
짜증으로 가득한 얼굴로 대꾸한 노형진은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하면서 차량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량은 기자들을 헤치고 그곳을 떠났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노형진은 고개를 슬쩍 돌려서 기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 보자, 잘 낚였나?”
“낚였을 겁니다. 안 낚이면 어쩔 겁니까?”
운전석에서 마치 운전사처럼 꾸미고 있던 고문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전 세계가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겠네요.”
“그러니까요. 아마 국회의원들도 머리가 아플 겁니다, 후후후.”
***
노형진이 한 말은 금방 언론을 타고 전달되었다.
만일 미다스의 아들이 범죄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단 한순간, 그 말은 일반적인 말이 아니게 되었다.
-현 시간부로 노형진 변호사를 마이스터의 대리인직에서 직위 해제합니다. 또한 동시에 미다스의 대리인직에서도 해직하는 바입니다.
미국에서 터져 나온 충격적인 발표.
마이스터의 대표인 로버트가 한 말에 대한민국은 비명을 질렀다.
물론 노형진이 대리인직에서 잘렸다는 게 충격적인 것도 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발표가 노형진이 범죄자라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 채 네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 시간으로 오전 9시.
그러니까 일 터진 것을 듣자마자 미다스가 바로 자르라고 지시했고, 마이스터는 업무 시작과 동시에 발표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노형진이 마이스터와 미다스를 위해 이룩한 어마어마한 실적을 본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확 잘라 버릴 이유는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 말은 노형진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거고, 그 실수라는 건 짧게 인터뷰한 것뿐이었다.
원론적이고 신념적인 말이었지만 그 말이 미다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박두상이 미다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