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
“소용없는 건 아니죠. 이분들이 누굽니까. 거기 근무자들 아닙니까? 일정은 꽉 잡고 있는 거죠.”
“……?”
“제가 왜 여러분한테 입구에서 모든 걸 감시하라고 했는지 아직은 모르실 거예요.”
회사에 들어가면 불법 침입이다. 그렇다고 압류한 부품들과 재료들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노형진은 그 안에 경보기를 설치한 것이다. 그걸 바탕으로 감시하다가 그게 뚫리면 바로 경찰을 부르면 되는 것이다. 사실 벌써 세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 때문에 왕요상은 화가 바짝 나 있는 상태였다.
“그냥 물러날 녀석이 아니기는 한데…….”
이창훈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거대한 트럭들이 회사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엄청난 자재와 소모품들이 쌓여 있었다.
“역시 구했군요.”
“저것도 압류?”
“아니요, 지금 압류 신청을 해도 나오는 데에 상당 기간이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의미가 없죠. 그때쯤이면 다 소모되고 없을 테니까.”
“그럼?”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이 누굽니까? 전문가 아닙니까? 일정은 빠삭하게 잡고 계실 거 아니에요?”
노형진은 미소로 그들의 눈빛에 화답했다.
“후우.”
재료와 소모품은 늦게 도착했다. 그 덕분에 회사의 직원들은 죽어라 일해야 했고 간신히 주문량을 맞출 수 있었다.
“오라이!”
“이게 마지막 양입니다.”
“수고들 했어.”
작업반장은 가득 쌓여 있는 짐들을 보면서 씩 웃었다.
“그나저나 미안하네요.”
“어쩌겠어.”
바깥에서 싸우는 동료들을 보면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저쪽에서 가지고 가겠…… 어? 뭐야?”
그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비원을 제치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이 팀장?”
이창훈을 본 다른 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에 더욱 딱딱해졌다.
“당신들은…….”
“압류할 물품은 이것들입니다.”
노형진은 막 나온 따끈따끈한 생산품을 가리켰고, 법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만 가차 없이 가압류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이건 다른 회사로 갈 거라고!”
“이건 다른 회사 물건이야!”
황급하게 그들을 가로막는 직원들. 노형진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그래서, 돈 받았어요?”
“뭐?”
“돈 받았느냐구요. 잔금.”
“그거야…… 당연히 물건을 줘야 받지.”
“그럼 돈을 받기 전에는 아직 그쪽 게 아니죠.”
“그거야…….”
맞는 말이다. 계약금이야 받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잔금을 미리 주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 물건들은 가압류하겠습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보는 직원들을 밀쳐 내면서 법원 직원들은 냉정하게 그 물건에 가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런, 젠장!”
왕요상은 어이가 없었다. 재료를 압류하기에 급하게 재료를 구해서 그들이 압류하기 전에 주문받은 부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부품을 압류해 버린 것이다. 당장 상대방 회사에서는 길길이 날뛰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방법이 없는 건가?”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순식간에 계약 불이행으로 하루하루 막대한 손해를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망할 거지새끼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재료를 주문해?”
그럴 수는 없다. 원래 공장은 대규모로 재료를 소비하기 때문에 구매상에게 주문할 때는 선주문이 보통이고, 구매상은 그 선주문에 맞춰서 재료를 구해 온다. 지난번에도 재료를 추가로 급하게 구하느라고 추가금까지 줘야 했는데 또다시 추가로 구할 수는 없었다. 아니, 구한다 한들 저 망할 놈들이 다시 가압류를 하면 끝이다.
“도대체 누구야?”
분명 완벽하게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파훼하고는 자신에게 엿을 먹이다니.
“저 녀석들 뒤에 있는 변호사는…….”
그러고 보니 그들과 함께 다니는 변호사가 한 명이 있었다. 젊어 보이는 여자 변호사였다.
“그 녀석인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는 너무 어려 보였다. 많아 봐야 20대 중반? 그런데 그가 법무법인 청계에서 공들여서 짜 둔 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 믿을 수 없었다.
“청계에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청계의 컨설팅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다. 지난번에도 이 컨설팅을 받는 데에 무려 10억이나 줬다.
“으으으.”
그가 고민하는 그때였다. 한 여자가 황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큰일 났어!”
“큰일이라니?”
그녀는 왕요상의 딸이었다. 회사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말만 그렇지, 놀러 다니는 게 보통이지만. 그런데 큰일이라니?
“한국전기공사랑 한국수도공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뭐라고?”
“세금을 안 내서 전기를 끊어 버리겠대.”
“뭐!”
노형진은 결정문을 받아 보면서 씩 웃었다. 왕요상이 이용해 먹고 잘라 낸 직원들은 공장 직원뿐만 아니라 회계 팀도 있었다. 그는 그 회계 팀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세금이 나가기 직전, 자동이체가 되는 계좌를 압류함으로써 계좌를 봉쇄해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전기공사와 수도공사 등에서는 가압류에 막혀서 돈을 빼 낼 수가 없었고 막대한 양을 사용하는 공장이기 때문에 바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 것이다.
“지금쯤 똥줄이 탈걸?”
전기가 끊어지면 공장은 죽는다. 당연히 그는 똥줄이 바짝바짝 탈 것이다.
“이 정도면 월급을 돌려주겠지?”
민시아는 대단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순식간에 공장의 숨통을 조여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을 살리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월급을 돌려주고 가압류를 푸는 것.
“그러면 좋겠지만…… 안 줄걸요?”
“이렇게 당했는데?”
“이렇게 당한다고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진 자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하다. 자신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왕요상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안 줄 겁니다.”
“그럼 어쩌려고?”
“어쩌긴요. 다음 작전을 시작해야지.”
“배 째!”
아니나 다를까, 왕요상은 배 째라며 버텼다. 일단 급한 대로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을 자기 돈으로 낸 것이다. 그렇게 버틸 거라 예상하고 있던 노형진은 다음 작전을 실행했다.
“허허, 참.”
친자 확인 소송 때 정보원으로서 지라시를 터트려 줬던 형사는 자신 앞으로 온 소포를 뜯어 보고는 혀를 찼다.
“이게 뭐람?”
그건 요상공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상세한 정보였다. 얼마만큼의 채무가 있는지, 얼마나 큰 재판인지, 소송 당사자가 몇 명인지. 그리고 재료뿐만 아니라 완성품까지 압류당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등과 같은 세금까지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증거들이었다.
“이건…… 대박인데?”
요상공정은 큰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이 거래가 되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재무 상태가 좋지 못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거래 자체도 적고 풀려 있는 주식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요상공정은 극도로 정보가 제한된 업체여서 이런 정보가 나온 것도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태라면…….”
무려 백쉰 명이 넘는 직원에게 몇 달간 지급하지 못한 월급이 18억이나 된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난달 전기세와 수도세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가압류 등의 정보는 노형진이 고의적으로 뺀 것이다. 일종의 증거 조작인 것이다.
“부도의 위험이 있을지도?”
결과적으로 노형진이 그에게 몰래 보내 준 정보만 보면 지금의 요상공정은 극도의 자금난으로 세금도 내지 못할 정도이며 부도 위기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흠…….”
이게 왜 자신에게 왔는지 모르지만 증거 자체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가 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어, 난데. 이번에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왔어.”
“많이 떨어졌네.”
노형진은 피식거리면서 요상공정의 주가를 확인했다. 20만 원 안팎에서 왔다 갔다 하던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떨어진 셈이다. 하긴, 계약 파기에, 손해배상에, 자금 압박설까지, 좋은 게 하나도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회사가 망하는 거 아냐?”
“회사가 망하면 우리 월급은?”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은 진짜로 회사가 망해서 돈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망하진 않을 테니까.”
“그럼?”
“제가 이렇게 만든 거예요.”
“왜?”
“절 믿으시라니까요, 후후후.”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네.”
“영민이는요?”
“잘 크고 있어. 할아버지한테 예쁨 많이 받고.”
“다행이네요.”
노형진은 오랜만에 강소영을 만났다. 강소영은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지쳐서 깡만 남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훨씬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요즘 후계자 수업은 어때요?”
“후계자는 무슨.”
“아니라고는 부정 못 하시잖아요.”
영민이의 할아버지 유민택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즉, 유민택이 죽으면 그걸 물려받아야 하는 사람은 영민이라는 건데, 영민은 나이가 어리다. 영민이 제대로 후계자 자리를 넘겨받으려면 못해도 30년 후에나 가능한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공백 기간 동안 회사를 맡아 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그동안에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잖아?”
“아, 부탁 좀 드리려구요.”
“부탁?”
“회사 하나 사 주세요.”
그 말에 강소영은 벙한 표정이 되었다. 부탁이라고 해서 돈을 좀 달라거나 아니면 뭔가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를 사 달라니?
“그건 좀…… 그런데.”
“왜요?”
“그건 좀 무리이지 싶은데?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얼마 안 해요.”
“얼마 안 한다니?”
“글쎄요. 일단 우호적 지분까지 합치면 한 20억?”
“뭐?”
고작 20억으로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무리 작은 기업도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그 이상이 나가기 때문이다.
“어딘데?”
“요상공정요.”
“요상공정? 거기 요즘 흔들리는 곳 아냐?”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거야 나도 그 신문? 지라시? 하여간 그걸 보니까.”
그걸 보니 아무래도 확실히 강소영에게 후계자 교육을 하는 모양이다.
“맞아요.”
“그런데 그걸 사라고?”
“사실은 그거, 제가 장난친 거거든요?”
“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 되는 강소영이었다. 노형진은 작전을 말해 줬고, 강소영은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아마도 후계자 교육을 받은 걸 가지고 가치를 판단하는 중일 것이다.
“요상공정급의 기업을 구입하려면 못해도 1천억 이상은 들죠.”
“그렇지.”
“하지만 성공하면 20억도 안 들어요.”
“…….”
“어차피 마지막에 들어올 테니 실패해도 손해 볼 건 거의 없는 거 아시죠?”
“흠.”
강소영은 한참 고민하다가 눈을 떴다.
“조건은 뭔데?”
“제 조건은…….”
노형진은 막바지 음모를 짜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주식시장은 마치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요상공정의 주가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거래은행에서 자금 회수를 위한 실사 팀을 보내겠다고 발표한 덕분이었다.
“이럴 수가.”
주거래은행에서 그렇게 발표한 걸 보면서 왕요상은 혼이 나간 듯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실사 팀이 와서 확인하면 부도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겠지만, 외부에는 부도 위험이 있어서 은행에서 서둘러 자금을 회수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보게, 지점장…….”
“미안합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본사 차원에서 내려온 거라…….”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지점장에게 읍소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벌써 주가는 2만 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다.
“제발 부탁이네…….”
“본사 차원에서 온 거라 저도 방법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 한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라니?”
“주식시장 퇴출 건으로 조사가 들어간답니다.”
“뭐?”
“월급을 일곱 달이나 밀릴 정도로 주지 못하는 기업이 흑자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식시장 재무 확인을 위해서 조사에 들어간답니다.”
“그게 정보야!”
그건 정보가 아니라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저도 이게 한계입니다. 죄송합니다.”
지점장이 전화를 끊어 버리자 왕요상은 혼이 나간 듯 전화기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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