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02)
때로는 적반하장도 무기 (2)
그런데 뜬금없이 대출받은 채무자가 자기가 부정한 대출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은행을 고소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지금 회사에 감사 팀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감사 팀이라면 그나마 내부에서 묻어 버리기라도 하지요. 지금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조사하겠다고 연락이 왔단 말입니다.”
“그쪽은 우리가 어떻게 막아 보리다.”
지점장의 말대로 이게 금감위에서 터지면 여러모로 곤란할 수밖에 없다.
“본사에서 지랄하겠지만…….”
그나마 본사는 융통성이라도 있다.
정확하게는, 본사도 금감위가 끼어드는 걸 원하지 않기에 두한에서 금감위를 막아 준다고 하면 이 건을 적당히 처리해 줄 것이라는 걸 안다.
어떤 대기업이나 다 마찬가지다.
국가에서 조사하러 나오는 건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소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인수 사장이 아무래도 노형진 쪽으로 붙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이런 황당한 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이런 황당한 식으로 법을 이용해서 엿을 먹이는 건 노형진의 특기이기도 하다.
“나인수 사장을 바로 신용 불량으로 올리세요.”
“네? 신용 불량요?”
“네, 그렇게 해서 바로 원금 회수에 들어가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 새끼도 아차 싶겠지요. 솔직히 노형진에게 붙었다고 해도, 노형진이 65억을 다 갚아 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그놈을 신용 불량으로 올려서 원금 회수를 시작하세요.”
그 말에 지점장은 눈을 찡그렸다.
“그러면 본사는…….”
“그건 우리 쪽에서 전화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두한이 아무리 힘이 빠졌다 해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알아주는 기업 중 하나고, 고작 65억 가지고 자신들에게 지랄하며 내부 감사를 해서 일을 크게 키우지는 않을 거라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은행은, 두한과 시끄럽게 싸우느니 65억 정도의 대출은 조용히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땅과 장비 그리고 나인수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으면 손해는 대략 15억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당장 신용 불량으로 올리고, 우리가 보복할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기다려 봐요.”
두한은 자신들이 했던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머리가 아파 왔지만, 최대한 저항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
“아마 신용 불량으로 등재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물론 제가 이자를 안 낸 건 사실이지만 그건 고작 한 달인데.”
나인수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행법의 함정이지요. 실제로 은행에서 돈을 받아 내기 위해 저지르는 수많은 불법행위 중 하나이고요.”
대한민국에는 파산 면책 제도가 있다.
법적 절차에 따라 법원에서 면책 허가를 받으면 그 빚의 전체나 일부를 탕감해 주는 제도다.
물론 그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하지만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 면책 제도로 회생의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신용은 아예 제로에서 시작할지언정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은행들 중 일부는 비양심적으로 행동하지요.”
파산 면책이나 개인 회생은 단순히 돈이 없다고 해서 다 받아 주는 게 아니다.
본인이 돈을 갚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그 노력을 보고 법원에서 빚을 깎아 주는 거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그냥 돈을 날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일부 은행들은 실제로 그러한 법적인 파산 면책 절차가 종료되어 채권이 소멸했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받아 내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신용 불량자로 등재시키는 겁니다. 아, 지금은 채무불이행자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런데 그러면 금감원에 신고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죠.”
법적으로 개인 회생이 끝난 시점이니 은행에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빚을 받아 내려고 한다.
그러면 금감원에서 그런 행위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어 줘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금감원이 은행에 거는 브레이크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내부 감사를 하거나 부정행위를 감시할 수는 있지만, 개인신용 등재에 관해서는 금융감독원은 권한이 없습니다.”
결국 민원을 넣어 봐야 금감원에서는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금감원 쪽도 썩어 빠진 건 마찬가지라서요.”
물론 금감원에서 강하게 나가면 은행에서는 그런 짓거리를 못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감원 출신들은, 금감원에서 나오면 억대 연봉을 받아 가면서 은행으로 옮겨 갑니다.”
당연히 강하게 말할 리가 없고, 이후 신용 불량을 풀어 주는 조건으로 은행은 당사자에게 금감원에 넣은 민원의 취소를 요구한다.
“결국 회생을 마치더라도 돈은 돈대로 갚고 아예 금융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지요.”
만일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면 카드는 정지되고 은행에서는 일괄 채권 추심이 들어오며 동시에 계좌들이 압류된다.
그걸 풀기 위해서는 소송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에서 그런 수법을 쓰는 게 한두 번은 아닐 거란 말이지.’
사실 그 방법은 아직 터지지 않았을 뿐 이슈화되면서 결국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기업은 결국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만일 개인의 판단으로 금감원에 민원을 넣은 사람을 신용 불량으로 올린다면 난리가 날 거다.
애초에 그런 건 절대 개인이 혼자서 올릴 수 없다.
즉, 개인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수차례 그런 방법을 써 왔다는 거다.
‘다만 그때는 걸린 거고 말이지.’
아마도 금감원이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테고, 언론에 제보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이 빚을 갚아 줄 것도 아닌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인수가 바르게 살다가 이런 상황이 된 거라면 모를까, 그는 두한과 함께 나쁜 짓을 하려다가 결국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거다.
그를 도와서 싸우고 있지만, 그의 채권을 구입해 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러면 어쩌라고요? 요즘 같은 시대에 신용 불량으로 등재되면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단 말입니다.”
“잠깐은 그러겠지요. 바로 그게 제가 노리는 겁니다.”
“뭐라고요?”
“은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노형진의 질문에 나인수는 짜증을 부렸다.
“그놈의 혼자 하는 질의응답은 하고 싶지 않네요.”
“뭐, 그렇다면야. 답은 신용입니다. 그들은 신용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요.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신용의 대상입니다.”
은행은 서민에게 절대적인 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또 전 세계에서 절대적인 갑이냐? 애석하게도 아니다.
한국의 은행들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그다지 큰 기업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해외에서 돈을 빌려 국내에 대출해 주는 경우도 있다.
즉, 은행에도 신용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그 신용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재판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뭔가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든 나인수는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마이스터의 투자 계약서니까.
“우리한테 투자하신다고요? 아니, 왜요? 방금 전에는 돈은 절대로 못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돈은 절대로 못 드립니다. 하지만 소송의 권한을 우리가 살 수는 있지요.”
“네?”
“마이스터는 비밀리에 여기 무상에 투자할 겁니다. 계약서를 쓸 거고, 돈을 지급하기 직전까지 갈 겁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그러한 불법행위를 침해해서 무상의 가치를 하락시킨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하지만 무상에 큰 가치가 있는지…….”
무상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가장 큰 거래처인 두한이 잘려 나갔으니까.
“그건 우리가 판단하는 거죠.”
투자하는 회사에서 회사의 가치를 어찌 판단하든, 그걸 남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한 손실은 자기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잠깐만, 그러면?”
“요즘 인터넷에서는 누구한테 감사하라는 밈이 유행한다죠?”
‘누구에게 감사해라. 원래는 자신의 병신 짓으로 쪽박 찰 것을 다른 누군가의 공격으로, 자기들의 병신 짓을 감출 수 있게 되었으니까.’라는 말이 인터넷에서는 유행한다.
그런 밈의 내용은 간단하다.
사실은 그냥 둬도 망할 건데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등장해서 어쩔 수 없이 패배한 거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마이스터에서 투자를 결정한 회사가 갑자기 은행의 공격을 받아서 망한다? 그러면 마이스터는 어떻게 할까요?”
“아…….”
그러면 마이스터는 그 순간부터 그 은행에 대한 공격 권한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억지일 수도 있지만, 마이스터에서는 은행이 마이스터가 투자한 기업을 불법적인 행동을 통해 파산시키려고 하는 이유를 법원을 통하여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은 절대로 합법적인 이유로 공격했다는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해당 근거를 가지고 법원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재판하는 장소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마이스터와 한국의 은행이 재판한다는 것은 두 집단이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는 거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은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용입니다.”
그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 다른 나라의 거대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이스터와의 전쟁이라면?
그건 상황이 달라진다.
물론 규모는 크지 않겠지만, 신용 자체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개인이 100만 원을 못 갚아도 신용 등급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하물며 은행은 어떨까요?”
더군다나 마이스터는 성장할 때 외부의 단체로부터 견제를 목적으로 한 부당한 대우를 당한 적이 있기에, 누군가가 자신들을 먼저 건드리면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못 이길 텐데요?”
돈은 주지도 않고 그냥 투자 계약만 한 상황에서 소송에 들어가 봤자, 피해 자체가 없다고 봐야 할 테니 당연히 소송해도 이기기는 힘들다.
“물론 압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다른 누구도 아닌 마이스터가 소송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전 세계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간단합니다. 더 뻔뻔한 놈이 이기는 거죠.”
저들은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건 노형진도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금감원도 제소할 겁니다. 미국 법원에 말입니다.”
“네? 어째서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금감원이 이런 걸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알았지만 미래를 위해 모른 척했다고 봐야 한다.
“그때는 개인이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국가 인권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조사와 감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길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 뿐이지요, 후후후.”
노형진은 그들이 가는 길에 기꺼이 함정을 파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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