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05)
충성이 없는 시대 (3)
그는 지광전자 기술을 빼앗아서 퇴임한 전 이사의 회사에 넘겨주는 데 성공한 대가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부장을 달았었다.
당연히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제발…… 제발…….”
“아, 시끄럽고, 그건 경찰서 가서 말합시다.”
경찰은 질질 짜는 정거두를 데리고 나가다가 흠칫했다.
“어? 주 형사? 여기는 어쩐 일이야? 김포로 발령돼서 가지 않았었어?”
“어? 공 형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저 사람 혹시 정거두 아닙니까?”
“응? 어떻게 알아?”
공 형사는 후임 형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김포에 있는 기업에서 산업스파이 혐의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영장 집행하러 왔는데요.”
“영장?”
“네. 혹시 공 형사님도?”
“어, 그런데.”
모두의 시선이 정거두에게 향했다.
“헐.”
두 기업에서 기술을 빼돌렸으니 그가 받아 처먹은 돈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일단 우리 서로 가서 끝내고 데려가.”
“네.”
두 팀은 정거두를 데리고 입구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우르르 내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끼리끼리 알아본다고, 그들은 정거두를 데리고 가던 형사들을 보고 눈을 묘하게 뜨면서 물었다.
“혹시 정거두?”
“혹시…… 경찰?”
양쪽 다 고개를 끄덕거렸고, 경찰들은 정거두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책임이라는 것은 무거운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책임을 피하려고 몸부림친다.
특히 눈치가 빠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보면 눈치가 빠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승진하기는 더 쉽다. 왜냐하면 빠른 눈치로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면 그걸 책임지기는커녕 빠져나갈 준비부터 하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아래 부하들을 쥐어짜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간 놈들은 자연스럽게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렇게 휘두르던 권력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그래서 그로 인해 자기 인생이 좆 되어 버린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들이 책임지고 사과할까, 아니면 평소에 하던 대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사람을 찾을까?
당연히 후자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한다.
이번에는 그런 식의 꼬리 자르기가 먹히지 않으니까.
산업스파이에 관한 법률은 배상금이나 처벌이 강하다.
일개 직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벌금이 아니며, 대부분 전 재산을 팔아도 벌금과 배상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당연히 그들은 살기 위해서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라는 식으로 칼을 위로 향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인 이상주 회장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 이상주 회장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기업 회장단.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모여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놈들이 미친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황이 이리되는 게 말이나 됩니까?”
끌려간 상무나 이사급을 책임자로 지명한 것은 다름 아닌 사장이었고, 사장들은 그 책임을 모두 회장에게 돌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가진 재산 때문이다.
사장이나 이사급, 상무급이 뇌물로 받은 돈이 어마어마했는데, 그 돈은 모두 계좌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조사가 시작되자 그 돈의 출처를 증명할 수 없게 되면서 산업스파이 혐의의 수익으로 추정되어 버렸고, 그 결과 작게는 몇억, 크게는 100억 이상의 돈을 토해 내게 생긴 것이다.
결국 견디다 못한 그들은 책임을 모조리 위에 있는 회장들에게 넘겨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연하게도 회장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미쳤다고 고작 산업스파이 따위의 일에 명령을 내린단 말입니까?”
사실 이해가 가기는 한다.
산업스파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래에서 원가절감을 목표로 움직이거나 자기들끼리 수익을 나눠 먹기 위해 장난치면서 벌어진 일.
당연히 그딴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회장이 시킬 리가 없다.
회장은 최종 결정권자일 뿐이다.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변경? 그건 애초에 회장에게까지 올라오지도 않는 하찮은 안건일 뿐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으라고 명령했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사장단이나 이사들은 본인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고, 이미 이 일이 이슈화된 상황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그걸 무시하고 조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기들의 목이 날아갈 테니까.
“어디 같잖은 놈들이 감히 회장을 노려요?”
이상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했어야지요.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유민택은 느긋하게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대룡은 단 한 건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기술이 필요하면 사들이거나 사용 권한을 정당한 계약을 통해 얻어 왔고, 그에 대한 값어치는 정확하게 판단해서 제공했다.
그 때문에 이 난리가 났어도 정작 대룡은 조사는커녕 일반 직원 한 명 경찰서에 불려 간 사람이 없었다.
“뭐요? 유 회장, 지금 뭐라는 겁니까?”
“왜요? 내가 못 할 말 했습니까?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적당히 빨아먹으라고. 같이 가야 하는 사이라고.”
“기업을 성장시켜야 할 거 아닙니까!”
“성장이라……. 그래서 우리 대룡이 작은 회사던가요?”
“…….”
다들 말을 못 했다.
그들 모두 성장이라는 핑계로 다른 기업을 미친 듯이 빨아먹었지만 정작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대룡이 현재 대한민국의 서열 2위니까.
“하지만 유 회장, 우리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고발당하는 건 기분 나쁜 일입니다.”
회사와 회장의 명예가 있지 이런 식으로 소환장을 받는 것은 지독하게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회장단이 모여서 이렇게 서로 이야기하겠는가?
“아랫놈들이 돈 좀 벌겠다고 한 짓거리 때문에 이게 뭔 일입니까?”
“회장이 골프 치라고 있는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대로 관리를 했어야지요.”
“관리하라고 둔 놈들이 장난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사람을 제대로 보고 둬야지요. 솔직히 승진시킬 때 제일 많이 본 게 뭡니까?”
“그거야…….”
당연히 돈이다. 돈을 얼마나 벌어 왔는가, 회사에 얼마나 헌신을 했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왜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용병술이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은 다 재목이 다른 겁니다.”
누군가는 효율적으로 돈을 벌어 올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위기를 피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또 누군가는 회사 내부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데 능하다.
“그런데 다들 실적 위주로 이사진이나 사장단에 배치하지 않았던가요?”
“…….”
그건 사실이다.
물론 법적으로 사외 이사라는, 내부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을 두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마저도 돈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둔다. 기업의 목적은 결국 돈이니까.
“대룡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아니죠. 최소한 감시하는 사외 이사들은 그렇게 안 합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며 철저하게 정의로운 사람들을 뽑는다.
단순히 이 사람이 정의롭다는 주변의 평가만을 보는 게 아니라 복잡한 심리검사 과정을 거쳐서 뽑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내부에서 부정부패나 갑질이 발생하면 무조건 회장에게 보고한다.
어지간한 부정부패는 모조리 회장에게 보고되는데 부정부패가 쉽게 일어나겠는가?
더군다나 그렇게 보고된 사람은 해고만 되면 그나마 운 좋게 끝나는 거다. 보통은 그 과정에서 기업에서 입은 피해를 보상하도록 소송을 걸고, 만일 회사 외부에 피해자가 있는 경우 새론을 선임해서 그들을 돕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부정부패 한번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게 머릿속에 틀어박혀 버린 대룡의 사장단과 이사진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회장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용병술 아닌가 싶습니다만.”
유 회장의 말에 다들 속만 끓였다. 상황이 이 지랄이니 틀린 말도 아니니까.
더군다나 이 상황을 해결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쉬쉬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수십만 명이라는 게 문제다.
피해 회사의 사장뿐만 아니라 소속되어 있던 직원들, 그리고 그 직원의 가족들까지.
그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한 게 대기업이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극도로 분노했고, 정부에서는 해당 사항에 대해 전수조사를 한다고 난리였다.
그나마 믿을 만했던 국회의원들조차도 그런 짓을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으니, 그 와중에 표적이 되어 버린 회장들은 걸레짝이 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법적으로나 뭐로나 회장을 건드릴 방법이 없긴 하나 회사의 이름에 똥칠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때 유민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다들 곤란해하시는 듯하니까 제가 해결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릴까 합니다.”
의외로 전혀 피해가 없는 유민택이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 이 상황을 회사 내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해결책을 주겠다니?
“내로라하는 학벌을 가진 직원들도 해결책을 못 내놓고 있는데 뭔 수로 해결한단 말입니까?”
두한의 이상주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유민택은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한이 대룡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니까.
“저는 해결해 줄 당사자를 부를 뿐이지 선택은 여러분들이 하는 거지요.”
“당사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유민택이 어디론가 전화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을 때, 이상주는 눈이 뒤집어져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기어들어 와!”
이상주가 이렇게 눈이 뒤집어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들어온 사람이 다름 아닌 이번 사태의 원흉인 노형진이었으니까.
“저도 불려서 왔습니다만?”
“뭐? 너 따위가?”
노형진은 슬쩍 유민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선에 다들 눈을 찡그렸다.
사실 이상주만큼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지 않을 뿐, 이 안에 노형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여러분들한테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왔습니다만.”
“뭐? 웃기지 마! 네놈 때문에 이런 일이 터졌는데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고? 네가 고발한 놈들에게 의뢰받아서 일하는 너를 믿으라고?”
이상주가 흥분해서 따지자 노형진은 그런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뭐?”
“그분들이 고발한 건 기업이 아니라 산업스파이 아닌가요?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모르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그러면 회사는 완전히 제3자인데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아니면, 산업스파이가 아니라서 뭔가 켕기시는 건지?”
“크윽…….”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보면 중소기업에서 고소한 사람은 정보를 달라고 했던 직원들이었고 그게 올라가고 올라가서 회장급까지 간 거지, 현실적으로 본다면 중소기업은 기업이나 회장을 직접 고소한 적이 없었다.
“저와 고소인들은 기업과 회장님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조언하는 게 불법은 아닙니다만.”
천연덕스러운 노형진의 말을, 그들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회장이라지만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