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1)
“이 자리인가요?”
“그래.”
송정한은 그 당시 사진을 주변과 비교해 가면서 정확한 위치를 찾았고 노형진은 그곳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운이 좋다면.’
운이 좋다면 생각보다 기억이 더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기억이 묻히는 건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다른 기억이 덧씌워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덧씌워질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후우.”
노형진은 그곳에서 정신을 집중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기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하지만 노형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
눈앞에 있는 기억들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 숫자는 노형진의 예상대로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노형진이 찾는 시점의 기억은 없었다.
‘없다?’
없었다. 분명 7년 전 사건이다. 그 사건 일시도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시간쯤에 사건에 관한 기억이 없었다.
‘사건 시기를 잘못 알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때쯤 벌어진 기억들을 읽어 봤지만 나온 거라고는 노상 방뇨하는 아저씨와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아줌마 그리고 멱살 잡고 싸우는 두 사람의 교통사고 대상자들뿐이었다.
‘뭐지?’
아무리 찾아도 관련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럴 수는 없는데?’
시체를 여기에 버렸다면 시체를 버린 사람의 기억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독하다고 해도 그 기억이 남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걸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다못해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라고 해도 그 즐거움이라는 기억과 감정은 남아야 정상이다.
“역시 안 되나?”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지는 걸 본 송정한은 약간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기억이 안 읽히네요.”
“역시 그렇군.”
송정한은 실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하긴……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으니…….”
송정한은 안타깝다는 듯 말하지만 노형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시체를 버리는 정도의 큰 사건 기억이 남지 않을 리가 없다.
“흠…….”
“뭐하나?”
“아닙니다. 뭐, 좀 생각해 보려고요.”
노형진은 지지대 위에 걸터앉아 최대한 이 상황을 해석해 보려 했다.
‘여기에 시체가 있었던 것은 확실해. 사진도 그렇고 말이야. 희생자의 기억이 없을 수도 있어. 여기 오기 전에 사망했다면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체를 버리는 사람의 기억까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노형진은 멍하니 달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앞으로 한 대의 차량이 휙 하고 지나가면서 창문을 슬쩍 열리고 뭔가를 허공에 날렸다.
“저, 저, 나쁜 놈 같으니라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차량을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송정한. 하지만 그걸 보고 노형진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 시체를 버렸다면 말이지.’
내려서 시체를 들고 여기에 버렸다면 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던진 거라면?’
노형진의 생각에 시체를 버리면서도 기억이 없을 수 있는 한 가지 기억이 있었다. 시체를 바로 내던진 것이다. 여기 내려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혹시 말입니까.”
“응.”
“내던진 게 아닐까요?”
“내던지다니?”
“아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다닙니다. 여기다가 오래 차를 세우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빠르게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가장 좋은 건 내던지는 거죠.”
“내던진다고?”
“네.”
송정한은 방금 전 쓰레기를 버리고 달려간 차량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량이다 보니 이미 보이지도 않게 사라진 상황.
“하지만 내던지는 거라면 훨씬 빠르게 편하죠.”
“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나?”
“증거가 없지는 않죠. 여기 있는 게 증거인 것 같네요.”
“여기 있는 게 증거?”
“네.”
노형진의 생각에 희생자는 다른 곳에서 강간당하고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기에 유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죠. 조사 결과, 교통사고로 처리되었다면서요?”
“그렇지.”
“만일 여기에 곱게 내던져졌다면 교통사고로 몰아갔을까요?”
“아!”
이 사건은 분명 교통사고로 처리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뭔가 교통사고로 처리될 만한 상처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사망한 희생자가 여기서 난데없이 차에 치여서 날아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럼?”
“차에 치이지 않았다면 그런 흔적이 남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죠.”
노형진은 그곳에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우람한 크기의 나무들. 어지간한 충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속력으로 달려오는 차에 치인 게 아니라면 희생자가 날아가는 수밖에.”
“……!”
송정한은 노형진의 말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서 교통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버려진 것이다. 그것도 달리는 차에서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일반적으로는 그렇지요. 달리는 차에서 사람을 던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럼?”
“가능한 게 하나 있지요.”
“트럭 말인가?”
“네.”
그것도 1톤급 트럭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이상의 트럭은 칸이 높아 던지기 힘들다.
“흠…….”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트럭에서 집어던지고 난 후 도망가면 실질적으로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뒤에 다른 차가 없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럼 범인은…… 트럭을 몰고 다니는 사람인가? 장사꾼일 수도 있겠군.”
“그럴 리가요.”
“응?”
고개를 갸웃하는 송정한이었다. 보통 트럭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장사꾼이다. 그런데 아니라니?
“보통 장사용 트럭은 마후라라고 하는 천을 많이 씌우고 다니죠. 안에 있는 물건들 날아갈까 봐. 그리고 마후라가 있는 트럭은 아무래도 옆으로 물건을 못 던집니다. 차들의 방향을 봐서는 뒤로 던져서 이쪽으로는 못 와요.”
“그럼?”
“트럭을 가지고 있지만 마후라는 없는 사람이죠.”
“음…….”
그렇다면 숫자는 한정적으로 변한다. 마후라 없이 장사하는 사람들과 일부 짐을 배달하는 사람들.
“그래도 너무 많은데?”
한국에는 엄청난 수의 1톤 트럭이 있다. 그걸로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단순히 마후라가 없는 트럭이라는 것도 엄청난 숫자다.
“하지만 가능성을 줄여 보면 달라지죠.”
“달라진다?”
“첫째, 경찰이 보호한다.”
“아!”
경찰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했다.
“즉, 상대방은 상당한 고위직이라는 거죠.”
“뭔가 안 맞는데?”
고위직이 뭐가 아쉬워서 1톤 트럭을 몰고 다닌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는 거죠.”
“어떤?”
“상대방은 고위직이기는 하지만 1톤 트럭을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명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운전하는 사람 한 명, 짐칸에 있다가 그걸 내던질 두 명. 아무리 여자라 해도 죽어서 축 늘어진 시체를 바깥으로 내던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보면 힘쓰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요.”
“음…… 자네는 정말.”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친구와 여기에 수십 번은 왔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울분을 토했을 뿐이었다.
물론 노형진에게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긴 하지만 분명 노형진은 기억을 읽지 못했다고 했다. 즉, 이 모든 것은 이 위치만을 보고 추론해 낸 것이다.
‘자네는 진짜 타고 났군그래.’
절대로 공부만 잘해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
“그렇다면 아무래도 숫자가 확 줄지요.”
“그렇겠지.”
힘 좋은 부하들을 쓸 수 있고 1톤 트럭을 동원할 수 있으며 경찰에 힘쓸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너무 많네.”
그렇다고 해도 범인을 특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시체를 버렸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응?”
“송 변호사님은 만일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뭐? 나 말인가?”
“네.”
그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아무래도 그걸 감추려고 하겠지.”
“그런데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고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면요?”
“묻지 마 살인 말인가?”
“네.”
“그거야…….”
송정한은 움찔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고 그 사람과 자신이 접점이 없고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면?
“그냥 튀겠지.”
“네, 그게 정상적인 거죠. 위험하게 사람과 차량을 운행하면서 감추기보다는.”
“그렇다면?”
“원래 성범죄자들의 대다수는 아는 사람들 아닙니까?”
“음…….”
그렇다면 모든 게 성립된다. 1톤 트럭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람을 쓸 수 있는, 그것도 입이 아주 무거운 사람을 쓸 수 있으며 희생자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어째서?”
“그랬다면 집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위장하지, 이런 뜬금없는 곳에 던지지는 않았겠지요.”
“그렇군!”
즉, 그녀의 집을 모른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평소에 알지만 집을 알 정도로 아는 사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마도 평소 희생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누군가가 벌일 일일 가능성이 높지요.”
“소설 같은 이야기 아닌가?”
가진 자가 여자를 강간하고 죽여 버린다는 것은 소설에서 흔하게 나오는 일이다.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소설이나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사건이 일어나는 게 한국 아닙니까?”
“부정하진 못하겠군.”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어찌 되었건 길을 찾았으니 그 길을 한번 따라가 봐야겠군요.”
노형진은 시체가 놓여 있던 그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상미를 따라다니는 사람이요?”
“네.”
노형진과 송정한은 범인을 찾기 위해 그 당시 희생자를 알던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모른다고 손을 흔들었지만 한 아이를 안고 있는 이 여자는 그때를 기억하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나요?”
“음…… 뭐 상미야 따라다니는 남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희생자는 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 말고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 명은 생각나시는 것 같은데요?”
“네?”
“방금 얼굴을 찌푸리셨잖습니까? 그렇다는 건 뭔가 마음에 걸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지요.”
“아…….”
그 말에 그녀는 잠시 자신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도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송정한과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기다렸다.
“한 명 있어요.”
드디어 정리가 끝나고 나오는 이야기.
“누구죠?”
“소학림이라는 녀석이에요.”
“소학림?”
“네.”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이름이다.’
어지간한 재벌 집안의 자녀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르는 이름이다.
“재벌인가요?”
“몰라요. 다만 집요할 정도로 따라다니기는 했죠.”
“흠…… 그가 잘살던가요?”
“모르죠.”
“네?”
“남자 옷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요.”
“아…….”
남자들의 옷의 디자인은 비슷한 게 많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들은 명품이니 어쩌니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진짜 부자들만 입는 명품은 더더욱 알기 쉽지 않다.
“차는요?”
“글쎄요…… 차를 끌고 다닌 기억은 없는데. 무면허라던가?”
“흠…….”
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그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관심 없는 사람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더군다나 7년 전 이미 죽은 친구를 따라다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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