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16)
프레임 아웃 (2)
그런데 굳이 일주일 전에 기자회견 약속을 잡고 장소까지 빌려 가면서 준비하는 게 영 미심쩍었다.
‘일을 키우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노형진.’
사실 최 변호사는 노형진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능력 있는 변호사로 언제나 노형진이 뽑혔으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노력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불가능했다.
차라리 정면으로 붙어서 진 적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같은 사건에서 마주칠 일이 없어서 제대로 붙어 본 적도 없는데 매번 노형진에게 뒤처지니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런데 드디어 사건이 겹치고 둘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절대로 지지 않아. 절대로.’
최 변호사는 그렇게 자신하고 있었다.
***
다음 날 최 변호사는 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탁상환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에 기자들은 어마어마하게 몰려왔고, 그 덕분에 최 변호사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발표할 수 있었다.
“현재 탁상환 회장님께서는 과거 사건의 유가족이라는 자에게 협박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협박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그는 과거의 잘못을 빌미로 탁상환 회장님께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어떤 사건인가요?”
“30년 전 발생한 교통사고로, 수차례 탁상환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 당시에 형사처벌을 받았고 민사적 합의까지 모두 종료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압력을 행사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그들은 과거의 합의가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면서, 다시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변호사는 누굽니까?”
“노형진 변호사입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노형진. 언론인들에게는 원수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노형진 때문에 언론은 권력을 잃었고 돈도 잃었다.
그런데 그런 노형진이 무리한 요구를, 그러니까 협박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기회였다.
“노형진 변호사가 그 사건을 담당하고서부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기자들은 너도나도 다급하게 기사를 날렸고, 이내 인터넷에는 노형진의 이름과 과거의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넘쳐 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노형진이 한다는 기자회견의 주제가 탁상환의 30년 전 음주 운전 사고라는 생각이 들어찼다.
최 변호사는 그런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희열에 가득 찼다.
‘이제 어쩔 거냐? 너희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이제 세상은 우리 편이다.’
***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뻔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제가 한 요구가 정말 무리한 거였습니까?”
“절대 아니죠.”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책임져 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제대로 사과 한번 해 달라고 한 것뿐이다.
그런데 무리한 요구 운운하면서 마치 돈을 달라고 협박이라도 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뭐, 저쪽 변호사는 제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저러는 모양입니다만.”
“네? 왜요?”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제 가장 강력한 힘은 미다스와 마이스터였습니다.”
실제로 미다스와 마이스터의 이름으로 행한 일이 많으니까.
“하지만 지난번에 모종의 사건으로 퇴직했지요. 그러니까 제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힘이 빠진 노형진을 물어뜯어서 엿을 먹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건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저한테 좋은 감정을 가진 기자들이 많지 않아서요.”
특히 노형진은 언론사들의 철천지원수다.
“그러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주일 후에 기자회견으로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잘해 봐야 중립을 지킬 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협박이 맞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물론 그걸 그때 발표한다면 그럴 겁니다.”
“네? 그때 발표한다면요?”
“네. 하지만 저는 그걸 발표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네?”
황주인은 눈을 크게 떴다.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그때 자신이 당했던 일을 발표하고 제대로 탁상환에게 엿을 먹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발표를 안 한다니?
“발표를 안 하면 제가 협박범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발표를 안 한다고 했지 말을 안 한다고는 안 했으니까요.”
***
며칠 후 노형진은 예정대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탁상환과 관련하여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기자회견장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기자들로 가득했다.
“아아…….”
노형진은 전면에 나서서 마이크를 확인하면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기자회견에 앞서서…….”
“노 변호사님, 과거의 사건과 관련해서 피해자 측과 손잡고 탁상환 씨를 협박한 게 사실입니까?”
그때 성급한 기자 한 명이 노형진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노형진을 잘근잘근 밟아 버릴 수 있는 기회다.’
노형진 때문에 매달 자신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칭 활동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기자들은 눈이 뒤집혀 있었다.
“…….”
“노 변호사님, 약자를 위한다던 그 말은 거짓이었나요?”
“노 변호사님, 탁상환 씨같이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가 뭡니까? 돈만 되면 뭐든 해도 된다는 건가요?”
노형진은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계속 찍어 대는 카메라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가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한 건지 다들 갑자기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노 변호사님!”
“노 변호사님, 한마디 해 주세요.”
“노 변호사!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그러면서 은근슬쩍 반말까지 섞는 기자들.
노형진은 그런 기자들을 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제 기자회견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기자회견을 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증거 있습니까?”
“뭐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다소 당황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제가 협박했다는 증거가 있느냔 말입니다. 왜 제 개인적인 기자회견에 상관없는 사건을 들이미는 겁니까?”
실제로 증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협박한 적이 없으니까.
“이 일은 이 정도 답변이면 된 것 같고, 제대로 기자회견을…….”
노형진이 다시금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기자들 중 한 명이 질질 물고 늘어졌다.
“지금 탁상환 씨 측은 협박당했다고 발표했습니다만?”
“그러니까 증거가 있느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죠.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도 없는 이야기를 자꾸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노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기자들은 눈에 불을 켰다. 노형진이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을 돌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진짜 그런 게 있었다면 기자회견을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켕기는 게 있는 게 분명해.”
“진실을 밝히세요!”
“미다스에게서 버려지자 돈에 눈이 멀어 선량한 사업가를 협박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허허허, 이거 참.”
노형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참 만만해 보였나 보네.’
마이스터에서 잘렸다고, 그래서 이제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미친 듯이 물어뜯는 게 참 가관이었다.
“일단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기자회견을 하죠. 오늘은 내 기자회견 좀 합시다, 네?”
“일단 들어나 봅시다.”
‘들어나 봅시다라니, 가관이구만.’ 그 말을 한 기자를 한번 노려본 노형진은 헛기침하고 다시 마이크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다들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물어뜯을 수 있는 건더기였으니까.
그러나 노형진의 입이 다시 열리는 순간,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일단 오늘 기자회견의 내용은 제 복직에 관한 것입니다.”
“복직? 무슨 복직?”
“새론 이사 아닌가?”
다들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뻔하다면 뻔한 일이지만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우고 싶었을 테고.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 시간으로 어젯밤 12시 기준으로 저는 마이스터와 미다스의 대리인으로 정식 복직되었음을 알립니다.”
아까 물어뜯던 기자들은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고, 노형진은 그들에게 물었다.
“아까 저한테 반말로 질문 던지신 분, 누구였지요? 아, 그러고 보니 일단 들어나 보자고 하셨던 분. 그래서, 질문 있습니까?”
그러나 누구도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부디 악몽이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한국의 언론사들은 난리가 났다.
노형진 변호사, 마이스터의 대리인으로 복직
대한민국 최대 호재
여전히 미다스의 존재는 비밀. 하지만 미다스의 대리인은 한국인 각 기업들, 미다스의 친한국 정책에 환호 뉴스를 보던 오광훈은 힐끔 노형진을 돌아보았다.
정확하게는 노형진의 특정 부위를 바라보았다.
“왜? 또 뭐? 아니, 왜 묘한 눈빛으로 내 엉덩이는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아니, 똥구멍 안 헐었나 해서. 이렇게 빨아 줄 수도 있구나 싶네.”
“검사라는 놈이 진짜.”
“아니, 그렇잖아. 어제저녁만 해도 분명히 세상 전부가 너를 때려죽이려고 하는 눈치였거든?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네.”
“뭐, 그런 거다.”
노형진은 씩 웃었다. 예상했던 일이니까.
노형진을 최대한 물어뜯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후안무치한 실패자로 취급하려고 했던 기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사과부터 해 왔다.
“그놈들한테는 뭐라고 했는데?”
“어, 일단 회사에 가 계시라고, 나중에 회사를 통해 연락드리겠다고 말했지.”
“야, 그놈들은 너랑 다른 의미로 똥구멍이 성하지 않겠는데?”
진짜로 보복이라도 할까 두려워서 똥줄이 타고 있을 것이 뻔했다.
“진짜로 보복하려고?”
“내가 애냐? 기자들이 그러는 게 한두 해 일도 아니고. 살짝 겁만 주는 거지.”
“그래? 그런데 왜 기자회견에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일단 공식적으로는 기자들이 질문을 던진 거니까 한 것뿐이지만…….”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비공식적으로 말하면 기자들 말이 맞아. 이슈화하려고 한 거지. 소송하기 위해 그런 것도 있고.”
“소송?”
“그래. 내가 프레임 밖으로 나올 거라고 그랬잖아.”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 그들의 프레임 밖에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
둘째, 이 사건을 이슈화하는 것.
“이슈화하는 건 성공했지.”
노형진의 복직 문제와 더불어 터졌기에 일단 그 당시 이야기를 하려면 당연히 황주인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과거에는 기자회견 내용을 기자가 자기 마음대로 조작해서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의적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기자회견의 특정 문구만 트집 잡아서 그것만 계속 물어뜯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