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17)
프레임 아웃 (3)
하지만 이제는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투입되고, 그렇게 악의적으로 내용을 축소하거나 곡해하는 경우 처벌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기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음대로 곡해하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내 복직 기자회견이야. 너도 알다시피 언론에 재갈을 물린 건 나거든. 초반에 자살한 기자들이 얼마나 많았냐?”
당연히 기자들은 꼬리를 말았고, 노형진이 한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거나 기자회견 내용을 축소하는 등의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 관련 내용도 기자회견 내용으로 들어가는 거지. 설사 내가 단순히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거라고 해도 말이야.”
“이야, 독한 새끼네.”
오광훈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형진이 무섭다는 건 알지만 그걸 다 계산하고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 그거랑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거랑 무슨 관계야?”
“내가 만일 기자회견에서 협박한 적이 없다며 그 사건을 계속 이야기했다면, 그게 바로 그들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거야.”
그렇게 되면 사건의 핵심은 황주인의 협박 여부가 된다.
물론 협박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처벌이야 받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황주인이 협박했다는 탁상환의 말에 믿음이 더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기자회견을 통해 상관없다고 밝혔단 말이지.”
“뭐가 달라지는데?”
“달라지는 거? 우리가 탁상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게 된 거지. 사실 기자회견의 목적도 그것 중 하나고.”
“엥? 무슨 소리야, 그게? 이해가 안 가네.”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런 거지. 일단은 말이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서는 특정성이라는 게 성립되어야 해. 그건 너도 알지?”
“알지. 모르겠냐?”
“그런데 말이야, 탁상환 측이 한 말은 무척 애매해.”
30년 전 사건의 유가족이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건 알지.”
“그런데 그걸로는 특정할 수가 없단 말이지. 현실적으로는 말이야.”
현실적으로 본다면 30년 전 사건 관련 기록은 전혀 없다.
탁상환과 그 일가에서 벌써 오래전에 힘써서 깡그리 지워 버렸으니까.
그리고 탁상환이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은 새사람이 되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그 주변에서만 그 사건을 아주 어렴풋하게 기억할 뿐이니 언론 플레이하기에 딱 좋다.
“어…… 그렇겠지. 무려 30년 전 사건이니까.”
“그렇지. 그게 문제야.”
아는 사람도 없고 특정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물며 피해자도 특정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말살되었는데, 과연 피해자도 아닌 유가족을 특정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불가능하지.”
현실적으로 그러한 정보만을 가지고 사건의 유가족을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피해자 본인이라면 또 모를까, 피해자의 유가족을 어떻게 특정한단 말인가?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내가 기자회견을 못 한 거야. 사람들 눈에는 그게 일종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현상으로 보일 수 있거든.”
“하지만 현장에서 말한 건 사실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 이름이 내가 아니라 기자들 입에서 먼저 나왔잖아.”
“응? 그랬어?”
“그래. 나는 내 기자회견과 관련이 없는 거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기자들이 집요하게 요구한 거야. 실명까지 이야기하면서 말이지.”
그 순간 오광훈의 머릿속에서 천둥이 번쩍 쳤다.
“와, 미친. 그런 설계였어?”
“뭔 소리인지 알겠어?”
“진짜 난 생각도 못 하겠다.”
만일 기자회견장에서 노형진이 먼저 그 이야기를 했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나올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들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가 된다.
중요한 요소는 협박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내용이 될 테니까.
“하지만 기자들의 입에서 먼저 나왔지.”
기자들은 제3자다. 그리고 그들은 조사를 통해 사건 관련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명예훼손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성.
기자들이 특정하는 데 성공했으니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주 어마어마하지.”
만일 노형진이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갔다면 주요 사항이 협박의 여부가 될 것이니 당연히 그 과정에서 황주인을 믿어 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가 밖에서 고소하면 명예훼손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보게 되는 요소는 협박이 아니라 탁상환이 거짓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되어 버린다.
“그 두 개는 전혀 다르지.”
저쪽은 황주인이 당사자이지만 이쪽은 탁상환이 당사자다.
즉, 소환되어서 조사받는 것은 탁상환이 된다는 거다.
“그리고, 기억하지?”
“아, 그거?”
오광훈은 노형진이 뭘 이야기하는지 알고는 씩 하고 웃었다.
“꼴 참 볼만해지겠는데, 후후후.”
***
오광훈의 검사 사무실 안.
정식으로 고소가 들어갔고 해당 사건을 오광훈이 담당하게 되면서, 그걸 방어하기 위해서 온 최 변호사는 당혹감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게 아닌데.”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최 변호사는 눈앞에 오광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탁상환을 지키기 위해 일단 선빵을 친 건 좋았는데 그게 도리어 자기들이 공격당하는 빌미가 되어 버렸다.
‘기자들을 그렇게 이용할 줄이야.’
협박당했다고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특정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적당한 수위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기자들을 완전히 간과한 반면, 노형진은 기자들이 제3자이고 제3자가 인지할 수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걸 이용해서 탁상환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니까, 협박당하셨다 이거죠?”
오광훈은 휙휙 사건 기록을 넘기면서 물었다.
“그게, 협박당한 건 아니고 무리한 요구를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무리한 요구가 뭔가요? 저쪽에서는 사과를 요구한 것뿐이었다는데.”
‘돌겠네.’ 여기서 협박당했다고 하면 협박의 증거를 내놔야 한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언론에서 떠들고 고소만 안 하면 자신들이야 증명할 필요 없이 여론전을 할 수 있기에 자신들이 유리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역으로 명예훼손이 성립되어 버리자 자신들이 방어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방어하기 위해서는 협박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는 거다. 애초에 협박도 없었으니까.
“후우.”
최 변호사의 옆에 있는 탁상환은 분노로 심호흡하고 있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명예가 시궁창에 처박히고 있었으니까.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과거 탁상환의 합의 방법이 소문나면서 황주인 측이 요구한 게 사과뿐이라는 게 알려지고, 점점 탁상환에 대해 안 좋은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괜찮지만, 일부에서는 범죄자 출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벌써 악플이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과가 무리한 요구인가요?”
오광훈은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갸웃했다.
“오 검사님, 아시겠지만 그걸 하는 순간 상대방은 돈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과와, 돈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만? 돈을 요구한다면 그때 가서 고소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거야…… 그런데…….”
“어쨌거나 그 말은, 황주인 씨가 요구한 게 사과가 맞다는 말씀이군요.”
“사과이기는 한데 무리한…….”
“그러니까 협박이 있었다?”
“협박은 없었고요.”
“결론적으로 무리한 요구가 사과다 그런 거군요.”
“아니, 그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만…….”
최 변호사의 말에 오광훈은 짜증을 냈다.
“경찰에 넘겨서 거기서 조사받으라니까 굳이 저한테 오셔서 한다는 말이 왜 자꾸 말장난입니까?”
최 변호사는 땀을 뻘뻘 흘렸다.
만일 최 변호사가 여기서 사과가 무리한 요구라고 말해 버리면 그때는 탁상환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도 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하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명예가 더럽혀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니, 이러는 건 아니죠. 저희가 대체 언제 명예훼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사실 최 변호사가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법적으로 우리는 명예훼손을 한 적이 없다니까요. 안 그래요? 무리한 요구? 네, 저희 입장에서는 무리한 요구 맞습니다. 이제 와서 뭘 사과하라고요?”
최 변호사가 생각한 방법은 다름 아닌 불확실성.
현행법상 명예훼손이 성립되려면 명확한 행동을 적시해야 한다. 설사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뭔가를 했다는 명확한 적시가 없으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가 도둑질을 했다고 하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만, 뭔가 없어졌는데 방에 그 사람밖에 없었다고 하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행동의 적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쯧쯧쯧.”
그런데 오광훈은 불쌍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뭡니까?”
“탁 회장님, 그냥 변호사 바꾸세요.”
“뭐라고요!”
갑자기 탁상환을 물고 늘어지는 오광훈의 말에 발끈하는 최 변호사.
그러나 오광훈은 그런 최 변호사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거 판례 바뀐 지가 언제인데.”
“뭐라고요?”
“그거 판례 바뀌었다고, 이 사람아. 변호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면 어쩝니까? 명예훼손이 얼마나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인데.”
“그게 무슨…….”
“확인해 봐요. 내가 사건 번호 불러 줄 테니까.”
오광훈이 사건 번호를 불러 주자 그걸 확인한 최 변호사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판례가 하급심도 아니고 대법원에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의 적시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행위 역시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으로 대법원의 판례가 바뀌었던 것.
실제로 명예훼손과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법이 알려지자 두루뭉술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법률의 해석도 바뀐 것이다.
“이게 바뀐 게 언제 적 일인데.”
대법원의 판례는 하급법원에 구속력을 가진다. 그 말은, 하급법원에서 이 판례를 기준으로 볼 경우 탁상환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형진 이놈은 나오는 판례를 다 읽어 보는 건가?’
사실 오광훈도 원래 이 판례를 몰랐었다.
오광훈뿐만 아니라 법률계 사람들은 아직도 판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규정을 우선시하고 있다.
판례가 나올 때마다 그걸 지속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의 피해자들이 그런 식으로 당하고 나서 신고해도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하지만 판례가 바뀐 건 사실이니, 그걸 가지고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면 처벌할 수밖에 없다.
“에엑!”
최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사실 그도 다른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판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으니까.
“뭐……라고요?”
탁상환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법에 대해 모른다. 당연히 그 모든 법률 과정을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그의 말을 따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최 변호사가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기에 그가 시키는 대로 계속해 왔다.
“그런데 그게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는 말씀입니까?”
“뭐,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그는 특정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노형진은 특정했고, 그가 명예훼손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명예훼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