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22)
주장과 진실 (1)
군 내부에는 변호사라는 존재가 없다.
누군가는 그게 인권침해가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군 내부에 변호사가 없으니 보호도 어렵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사실 변호사가 없는 게 아니라 변호사라는 보직이 없는 것뿐이니까.
군 변호사는 없지만 대신에 군 내부에서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군법무관 중에서 한 명을 국선변호인으로 지정, 변호사 업무를 하게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국선변호인을 믿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대는 상명하복이니까.
물론 민간 사법부 역시 서열이 있고 윗서열의 명령에 따라 판단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그건 불법이다. 그리고 변호사는 명백하게 사법부 바깥의 사람이다.
그러나 군대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일단 국선변호인은 다른 곳에서 파견되어 오지 않는다.
같은 부대 내에서 선임된다.
어제 후임으로 하하 호호 웃던 사람이 국선변호인이 되었다고 갑자기 피의자를 위해 상대인 선임과 제치고 치고받고 싸워 줄까?
그랬다가는 자기 군 생활이 꼬이는데?
당연히 군 내부의 국선변호인에 대해서는 군 내부에서도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래서 군 내부의 사건에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 외부에서 데려다 쓰는 게 보통이다.
일단 민간인이기에 국방부고 뭐고 다 물어뜯어도 불이익은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다.
일단 군대는 일반형법이 아닌 군형법이 적용되는데, 아무래도 특수한 신분이 적용되는지라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걸 공부하지 않는다.
필수도 아닌데 달리 공부할 것도 많은 상황에서 굳이 써먹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걸 공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변호사님이 이 사건을 담당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직원이 그렇게 말하며 사건과 관련된 서류를 내밀자, 노형진은 그걸 받아 들었다.
“군 내부의 사건이네요.”
“네. 그런데 현재 군법무관 출신이신 다른 변호사님들이 모두 한계까지 몰려 있어서요.”
“음? 네? 어째서요?”
“그거야, 노 변호사님이 군 내부 민사사건을 터트리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그런데……. 아, 그렇겠네요.”
노형진은 군 내부의 부당 명령과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 외부에서 장교에게 민사를 걸어 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생기기가 무섭게 많은 장병들과 장교들이 부당한 명령과 시스템에 민사를 걸어 버리면서 말 그대로 대혼란이 일어났다.
장교들은 장교를 무시한다면서 난리를 피웠지만, 애초에 재판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가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장교들의 불법행위는 계속해서 드러나는 중이었다.
“그런 경우는 군형법상의 사건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습니까?”
외부와 다르게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민사가 들어오면 그에 따른 조사를 기본으로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장교나 선임들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군사재판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사건이 넘쳐 납니다.”
“허허, 이것 참.”
군형법 관련 전문가는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사건이 밀려들자 군검찰 출신들이 미친 듯이 바빠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 변호사님도 군법무관 출신이시라고 하더군요.”
“아,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러면 이 사건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솔직히 사건 자체가 상당히 난이도가 있어서요. 다른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님이, 자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어떤 사건인 겁니까?”
“군 성군기 위반 사건입니다.”
“군 성군기 위반 사건요? 군 내부의 강간 사건인가요?”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노 변호사님이 아니라 다른 분께 드렸을 겁니다. 한번 보세요.”
노형진은 일단 사건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찡그렸다.
“병사 간의 사건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고소 당사자는 일병이고 피의자는 상병입니다. 근무 중 상병이 일병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하더군요.”
“이거 참…… 곤란한 사건이군요.”
군형법은 민간의 법보다 훨씬 처벌이 강하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개는 특히 더 강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군 성군기 위반이다.
군 내부에서 강간은 군형법 92조에 따라 최하가 5년 형이다. 외부에서는 합의만 잘하면 훨씬 낮은 처벌이 떨어지지만, 군형법은 벌금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무조건 징역이다.
“이러면 준강간으로 92조의 2에 해당되는데.”
그러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떨어진다.
성범죄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록도 남고, 제대하고 나면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사건 기록을 보면 피의자 측은 억울하다고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흠, 다른 사건이면 모르지만 이건 착각할 만한 사건이 아닌데.”
단순 추행이라면 이해가 간다. 위로 차원에서 어깨를 두들긴다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추행으로 느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니까.
“하지만 이 사건은 그것도 아니니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거군요.”
진술서에 따르면 피의자인 상병이 피해자인 일병과 함께 근무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계급을 이용해서 찍어 누르는 등의 행동을 하며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참다못한 일병이 헌병대에 직접 신고했다는 것이다.
“초소에 가서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면 진짜 일이 커지는데.”
구강성교 강요만 해도 최소한 3년 이상의 징역이 확정인데, 거기에다가 경계 근무를 나가서 그랬다면 최소 기준인 3년은 절대 안 나온다. 못해도 5년은 나온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경계 근무 중인 초병을 협박하는 행위는 유기징역 1년 이상의 처벌 대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까 다른 분들도 사건 해결을 좀 곤혹스러워하시더군요.”
“하긴, 경계 근무지에 무슨 증거가 남아 있을 리도 없고.”
경계 근무라는 것 자체가 외부를 감시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당연히 거기에 CCTV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폐급들은 짬밥으로 밀어붙여서 근무 중에 잠을 자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그런 동성 간 위력에 의해 벌어진 준강간에 관련된 행동의 증거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많이 힘든가요?”
“음…… 힘들죠.”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군대라는 조직이 진실하고는 좀 거리가 먼 집단 아닙니까?”
노형진은 군법무관 시절을 생각하면서 쓰게 웃었다.
“군대라는 조직은 사실 답을 정해 놓고 움직이는 편이거든요.”
안되면 되게 하라, 그게 군대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는 답을 정해 두고, 그걸 해내도록 강요한다.
“그런데 법에도 그 지랄이니까요.”
문제는 그래서는 안 되는 부분까지 그런 정신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법이다.
법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지, 처벌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군 사법 시스템은 그게 아니에요.”
시스템의 목적은 처벌이고, 신고가 들어왔으니 무조건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는 아주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사건을 은폐해야 한다는 목적이든가.
그런 경우는 아무리 노력해도 진실과 상관없이 결국은 처벌되거나 혹은 은폐된다.
“아니, 왜요?”
“군대니까요. 뭐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군대니까.
군대의 그 모든 몰상식과 비효율을 합리화하는 마법 같은 말이다.
“그리고 군대는 목적이 결정되어서 재판이 진행되면 뒤집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물론 군대에도 2심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판 결과는 2심에서 뒤집어지지 않는다.
처벌이라는 목적으로 재판이 이루어진 후에 결과를 뒤집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단 군 내부의 상황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조사할 건데요?”
“아, 하긴, 그건 그러네요.”
민간인이라면 변호사가 조사하기가 그나마 편하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재판 관련이라고 해도 부대 내부에 들어가는 건 허가해 주지 않을 테니, 당연히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나 진술 등을 받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변호사는 오로지 군검찰에서 조사한 서류만을 가지고 방어해야 하죠.”
문제는, 그 서류가 처벌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걸 뒤집을 수 있는 조사가 불가능하니 사실상 군 형법재판을 외부의 변호사가 뒤집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면 이 사건은 어떻게 하지요? 이 기록대로라면 처벌이 엄청 강해질 텐데.”
“그럴 것 같네요.”
그런데 피의자는 분명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짜 억울할까요?”
“후우, 글쎄요. 그건 일단 만나 봐야 알겠지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저는 진짜 억울합니다, 변호사님!”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김삼호는 애써 눈물을 삼키면서 말했다.
“제가 박고강 그놈을 얼마나 보살펴 줬는데, 진짜 말도 안 됩니다.”
박고강은 이번 사건에서 김삼호를 고발한 일병이었다.
“고작 4개월밖에 안 된 일병을 상대로 준강간을 벌여요? 제가요? 전 군대에 오기 전에 여자 친구도 멀쩡하게 사귀던 사람이란 말입니다!”
“자, 자! 진정하시고. 일단 그 부분은 변론의 요소로 써먹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걸 말해 봐야 안 먹힐 겁니다.”
“아니, 왜요!”
“양성애자들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양성애자들은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더군다나 군대나 교도소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는 동성애가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동성애요? 전 그런 거 싫어한다니까요!”
“자, 자! 진정하세요.”
너무 억울한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는 김삼호를 다독거리는 노형진. 그러면서 그런 그의 기억을 슬쩍 읽었다.
만일 그가 진짜로 동성애를 한 거라면 방어 전략을 바꿔야 하니까.
‘어?’
그런데 그의 기억, 아니 그의 심정은 진짜 억울했다.
차라리 자살하고 싶어 할 만큼 말이다.
‘혹시나 했는데.’
준강간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사건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근무시간 내내 아무 일 없이 멀쩡하게 근무를 마치고 와서 잘 잤었다.
‘역시 박고강이 거짓말한 거였나? 하지만 어째서?’
노형진은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기억 속에는 김삼호가 준강간을 벌이기는커녕 추행으로 의심할 만한 일조차 한 적 없어 보였다.
“자, 제가 어떻게 해서든 꺼내 드릴 테니 너무 울지 마시고. 그러면 박고강 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개새끼는 왜요?”
“이런 진술서는 박고강 씨 측의 입장에서 작성된 겁니다. 오로지 그의 입장만으로 가득하지요.”
물론 김삼호는 군 검사에게 억울하다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그게 안 먹힌다는 게 문제다.
‘그게 지랄맞은 거지.’
범죄를 조사해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범죄가 저질러졌으니 너는 처벌되어야 한다는 게 군검찰의 방식이었는데, 실제로 군검찰은 피의자를 조사할 때 죄를 인정하라면서 압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게 참 웃긴 거지.’
죄를 인정하라고 압박받아서 죄를 인정하면? 당연히 처벌.
죄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그것도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