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624)
주장과 진실 (3)
소원 수리함은 가혹행위가 생기면 신고하라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무려 40년 넘게 운영되었지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적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고하면 그걸 기반으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필적을 조회해서 신고자를 색출해 처벌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왔으니까.
심지어 필적을 바꿔서 신고해도 병사가 가지고 있는 연습장이나 기타 수첩 등을 뒤져서 재질과 디자인, 크기까지 비교해 가면서 신고자를 색출해서 처벌해 왔다.
“군대만큼 변화가 없는 조직이 또 있을까?”
물론 군대도 많이 바뀌기는 했다.
핸드폰이 들어가고 병사들의 가혹행위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병사들 이야기. 장교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사실 한국의 장교의 질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걸 장교들이 인정하지 않을 뿐.
미군이 한국의 군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게 바로 한국의 장교의 질이다.
한국은 장교가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역할보다는 노예를 관리하는 일종의 노예 관리장 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전략 전술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지휘 시스템도 알지 못한다.
병사들의 인성 관리나 개개인의 고민 상담 같은 건 배워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제대로 지휘를 못하니 통제하려고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장교들에게 병사들의 신분은 간단하다.
“여전히 장교들의 머릿속에 장병들은 노예라고 박혀 있으니까요. 한국의 대부분 장교들은 지휘관이 아니라 통제관입니다. 마치 노예 관리인처럼요.”
노형진은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군대라는 조직의 한계죠. 장병을 사람으로 대해 줄수록 승진은 물 건너가거든요.”
‘당장 질병이 돌 때도 그 지랄이었지.’ 전 세계적인 질병이 돌 때도 장병들은 집에도 안 보내고 휴가도 반려하고 심지어 어떻게 나갔다 온 경우 격리 기간인 2주간을 가두어 두고 거의 굶기다시피 한다거나 정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2주간의 격리 기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휴가와 외박으로 대체해서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형태로 노예처럼 부려 먹었지만, 정작 장교들은 외부에 심각한 질병이 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같이 나가서 술 처먹으면서 흥청망청 돈을 쓰곤 했다.
‘물론 일부라고는 하지만…….’
하지만 그들은 문제가 되면 언제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전 군에서 ‘일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서 병사들에게 상황을 물어봐야 조사도 가능한데, 현장 조사도 못 하고.”
“이런 경우는 현장 조사해 봐야 소용없을 겁니다. 초소에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사실 초소에 뭔가 있다면 벌써 사건이 뒤집어졌어야 한다.
아무리 답을 정해 놓는다고 해도 눈에 빤히 보이는 물증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중요한 건 두 가지죠. 하나는 병사들의 진짜 진술, 다른 하나는 박고강의 평소 행실.”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첫 번째부터 시작할까요?”
“첫 번째요?”
“네.”
노형진은 핸드폰을 들어서 톡톡거리면서 문자를 전송했다.
“뭐 하신 겁니까?”
“중대장님한테 문자를 보낸 겁니다.”
“아까 이미 거절당하셨잖습니까?”
“아,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번 건 거절할 수 없을걸요.”
그 순간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
노형진은 그걸 확인하고는 씩 웃었다.
“거봐요. 거절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후후후.”
***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뭘 어쩌긴요. 저는 그냥 사실대로 말한 겁니다만.”
“사실요? 사실? 이게 사실이라고요?”
“저희 의뢰인은 그러더군요, 중대장님이 시켜서 한 거라고.”
“아니, 이런 미친 새끼가! 제가요? 진짜요?”
“아닌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런데 왜 굳이 매번 김삼호 씨와 박고강 씨를 같은 근무로 묶어서 보내셨습니까?”
“그건…….”
중대장은 숨이 턱 막혔다.
‘그러겠지. 중대장이라고 해 봐야 결국 애송이니까.’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나이로 친다면, 사실 중대장쯤 되면 충분히 어른이다.
하지만 노형진이 애송이라고 하는 이유는 군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다.
군 내부는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움직인다.
물론 올라갈수록 승진을 위한 치열한 정치질이 벌어지지만 중대장까지는 그런 게 별로 없다.
어차피 상당수의 3사 출신들은 장기 의사가 별로 없고, 학사 장교 출신들도 장기를 지원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장교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중대장까지는 무난하게 단다.
다만 그 위로 올라갈 때부터는 정치질이 필요하다.
‘즉, 이런 속임수 같은 것에 약하단 말이지.’
오죽하면 사기꾼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사기 치기 가장 만만한 사람이 선생님 출신, 그리고 군인 출신, 마지막으로 교수님 출신이라는 거다.
세 직업 다 아랫사람들이 있으면서도 치열한 정치질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속임수에 쉽게 걸린다는 거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지.’
당황해서 벌벌 떠는 중대장을 보면서 노형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아무리 박고강이 싫어도 김삼호 상병한테 그런 명령을 내리면 안 되죠.”
“그런 적 없다니까요!”
“그런 행동을 하라고 근무까지 내내 같이하도록 짜 주셔 놓고서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거야 김삼호한테 박고강을 관리 좀 하라고 시킨 거고…….”
“그건 위법인 거 아십니까? 병사들끼리는 터치 못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
중대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병사의 관리는 장교나 하사관이 해야지, 병사에게 일임할 수 없다.
“뭐, 저라고 별수 있습니까? 김삼호 씨가 중대장님이 시켰다고 하니 그렇게 고발해야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삼호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거야…….”
중대장은 노형진이 계속 물어뜯자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뭐,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다면 지금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중대장님쯤 된다면 잘 아실 텐데요?”
김삼호가 빡쳐서 진짜로 ‘사실은 중대장이 시켰어요.’를 시전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난리가 난다.
중대장은 그 누명을 벗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고, 설사 그걸 벗어난다고 해도 군대는 그런 소문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대위 정도의 모가지는 잘라 버릴 수 있는 조직이니까.
“그러면 처벌이 더 가중된다는 거 모릅니까!”
“뭐, 어차피 이 사건이면 인생 조지는 건데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그리고 그게 진실인데 뭐가 문제입니까? 안 그런가요?”
“그…….”
틀린 말은 아니다.
동성 준강간, 그것도 초병을 대상으로 한 준강간이면 5년 형은 확정적이라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한 번도 아니고 다수에 걸쳐서 한 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끝장 보자고 덤빈다면 답은 없다.
더군다나 노형진의 말처럼 군대는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 내는 조직이다.
“아! 맞다. 피해자 측에도 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뭐요?”
“피해자도 알아야지요. 그래야 피해자도 고소하지요.”
그리고 그 책임은 중대장이 다 져야 한다.
“같이 손잡고 군 교도소에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노형진의 말에 중대장은 찔끔했다.
김삼호와 박고강 두 명이 한꺼번에 고발하면 자신은 점점 더 벗어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진짜 안 시켰습니다. 진짜로요.”
“뭐, 상관있습니까? 애초에 이번 사건은 진실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노형진의 말에 중대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형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라는 게 있긴 합니까?”
“미안합니다. 사실은 김삼호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
노형진이 같이 죽자는 식으로 행동하자 그제야 중대장은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게 거짓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사실대로 말 안 한 겁니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안 했다는 증거가 없어요.”
“아니, 그러면 제대로 진술이라도 하든가요.”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지요.”
그런데 조사를 시작하자 헌병대는 딱 노형진의 예상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거짓말하면 처벌 대상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몇 번이나 아니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대대장님이 그냥 넘기라고 하더군요.”
“쯧쯧.”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너무 기가 막혔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써 준 거란 말입니까?”
“네.”
“그러면 그 이후에 조사를 막은 이유는 뭡니까?”
“위에서 막으라고 시켰습니다, 변호사가 찾아올 거라고. 대대장님도 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긴, 아무리 중대장, 대대장의 힘이 강해 봐야 군대라는 조직 전체를 놓고 본다면 바닥 중의 바닥이다.
그런데 헌병대는 말 그대로 권력의 상징.
헌병대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2계급 높게 보는 게 일반적일 정도다.
“그러면 우리가 들어가서 장병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걸 계속 막을 겁니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저도…….”
‘안 봐도 뻔하군.’ 말이 대대장이 시켰다는 거지 사실상 명령 자체는 그 위쪽, 그러니까 연대장급이나 여단장급에서부터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군 내부는 상명하복이고, 이런 사건은 위로 보고가 올라가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병사들 소속과 이름 정도는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네? 그걸 왜……?”
“면담이 금지되었지 면회가 금지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중대장은 고민하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면회는 금지한 적이 없지요. 하지만 찾아오시면 윗선에서 알 텐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 걸리게 찾아갈 테니까.”
중대장은 부대로 가서 관련 사항을 문자로 알려 준다고 하고는, 자신은 억울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조용히 듣고 있던 무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노 변호사님, 왜 헌병대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겁니까? 헌병대라면 제대로 사건을 조사해서 처벌해야 하지 않습니까?”
“군대라는 조직이니까요.”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박고강이 허위로 신고했다고 치죠. 조사해서 허위라는 걸 알아내고 처벌했는데, 박고강이 제대한 후에 그걸 터트리면 어떻게 될까요?”
“으음…… 아, 그러겠네요.”
아마도 언론은 난리가 날 것이다.
박고강이 군 내부에서 준성폭행을 당했다고 떠들어 대는 걸 빌미로 언론은 신나게 물어뜯을 게 뻔하다.
“군대는 이미 성범죄와 관련해서 전과가 여러 번 있습니다.”
군 내부에서 성추행은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 데다 장군들이 여자 장교들을 강간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군대라서 그걸 다 힘으로 덮고 있는 것이다.
“당장 무태식 변호사님의 반응만 봐도 알죠.”
국방부가 국방부질 했다는 말처럼, 군 내부에 성범죄가 만연했다고 신나게 씹어 댈 게 뻔하다.
“대한민국의 징병률은 99%가 넘습니다. 그 안에는 당연히 게이도 있을 테고요. 실제로 부대 내의 증언들을 보면 그런 의심 사례들이 넘쳐 납니다.”
심지어 정치인 아들 하나가 후임을 성추행했는데 결국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적도 있어서, 기본적으로 국민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군대 입장에서는 그걸 터트리면 자기들이 곤란한 거죠.”
“군대가 군대 했다 이거군요.”
국민들은 군 내부에서 성범죄를 덮어 버린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